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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2:8~14 일어나 함께 가자    2020. 1. 1        (32장)


8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9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전도서 1:1~11절을 먼저 봅니다.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송구영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가서 보기 전에 먼저 전도서와 잠언을 보았습니다. 잠언에서 참된 지혜란 사람에게서 나올 수가 없음을 보았습니다. 참된 지혜 자가 선물로 주셔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지혜를 받게 되면 먼저 인생들이 해 아래 행하는 모든 일들이 방금 읽은 말씀처럼 헛되고 의미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 헛됨이 끝이 아님을 전도서 마지막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경외란 종이 주인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경외임을 아가서가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참된 송구영신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선포되는 모습은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는 선포입니다. 이런 선포에 반응이 일어나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지금까지 자신이 해 아래 수고 한 모든 것이 헛됨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그 일들만을 새것으로 믿게 됩니다. 이런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들이며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새로움을 맛보며 살아가게 됩니다.

 

본문 8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 사랑하는 임의 목소리! 저기 오는구나. 산을 넘고 언덕을 넘어서 달려오는구나.” 지난주의 결론은 사랑하는 임의 품에 안겨 그 사랑에서 깨어나지 않도록 방해하지 말라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내용이 마치 꿈결처럼 신랑의 품에 안긴 상태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꿈이 아니라 직접 음성이 들립니다. 목소리를 발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그가 산을 넘고 언덕을 넘어서 달려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내용을 보면서 찬송가 297장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3~4절입니다. 길 잃은 양을 찾으러 산 넘고 물 건너 그 어둔 밤이 새도록 큰 고생 하셨네 그 양의 울음소리를 저 목자 들으셨도다 저 목자 들으셨도다. 산길에 흘린 피 흔적 그 누가 흘렸나 길 잃은 양을 찾느라 저 목자 흘렸네 손발은 어찌 상했나 가시에 찔리셨도다 가시에 찔리셨도다.” 잃은 양을 찾는 목자에 대한 내용인데 산을 넘고 언덕을 넘은 정도가 아닙니다. 하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자신을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오신 분입니다. 우리가 그의 음성을 듣는 것이 사랑에 눈뜨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14~17절입니다.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목자가 양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거짓 목자들에 속은 자들이 참된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는 자기 목숨을 버림으로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양들을 찾아내십니다. 예수님의 목숨 버리심과 얻으심 안에 자기에게 맡겨진 양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찾아내십니다(6:38~40).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을 다 찾아내시는 일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 일을 이루셨기에 하나님의 백성은 그 십자가의 복음이 들리는 것입니다.

 

본문 9절과 이하의 내용도 새 번역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임은 노루처럼, 어린 사슴처럼 빠르구나. 벌써 우리 집 담 밖에 서서 창틈으로 기웃거리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사랑하는 그 분이 산을 넘고 언덕을 넘어오는데 노루처럼 사슴처럼 빠르게 달려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보았습니다만 노루와 사슴을 70인 역에서는 권세 있는 군대의 개념으로도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가 가까이 왔지만 담 밖에 서 있습니다. 창틈으로 기웃거리며 창살 틈으로 엿보고 있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이 집 안에 있는데 담과 창살이 있어서 들어가지 못하여 서성거리는 모습 같습니다.

 

이런 가곡이 생각납니다. 이은상 시에 현제명 곡인 그 집 앞입니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이게 1절인데 2절은 이렇습니다. ‘오늘도 비 내리는 가을 저녁을 외로이 이 집 앞을 지나는 마음 잊으려 옛날 일을 잊어버리려 불빛에 빗줄기를 세며 갑니다.’ 결국 이별의 쓸쓸한 노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은 실패가 없습니다. 그 죽음으로 사랑하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사랑하는 임을 막고 있는 담과 모든 걸림돌을 제거하여 버리시고 말씀하십니다.

 

10~11절입니다. “10 , 사랑하는 이가 나에게 속삭이네. (남자) 나의 사랑 그대, 일어나오. 나의 어여쁜 그대, 어서 나오오. 11 겨울은 지나고, 비도 그치고, 비구름도 걷혔소.” 사랑하는 임이 산을 넘고 언덕을 넘어 달려와서는 담 밖에서 속삭입니다. 나의 사랑 그대 일어나라고 합니다. 나의 어여쁜 그대 어서 나와서 함께 가자고 합니다. 겨울은 지나고 비도 그치고 비구름은 걷혔다고 합니다. 팔레스타인은 겨울이 우기 철입니다. 그런데 그런 겨울과 우기가 끝났으니 나와 함께 일어나 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내용만 보면 이 말을 들은 여인이 용기를 내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미 사랑하는 임이 부르면서 함께 가자고 하는 것은 모든 장애를 제거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31:31~33절입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손잡아 이끌어 내어 가자고 해도 안 되는 자들이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자기 피로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4~8절입니다.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허물과 죄로 죽은 자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셔서 하늘에 함께 앉히시고 부르십니다.

 

에베소서 2:14~18절입니다.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기에 서로 간에도 원수였습니다. 이러한 담들을 예수님의 피로 허물어 주셨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한 새사람이 되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사랑하는 임이 담 밖에서 부르시는 것은 담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겨울과 비도 장애가 되는 율법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율법의 담이 제거되지 않으면 어느 한 사람도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율법을 다 이루심으로 유대인들도 이방인들도 예수님의 피로 새 사람이 되어 아버지께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이 술람미를 향하여 나의 사랑하는 이여 일어나 나와 함께 가자는 것은 모든 장애를 제거하시고 부르는 복음의 소리로 봐야 구약의 해석입니다.

 

골로새서 1:13~20절입니다.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새 언약의 성취가 이러합니다.

 

골로새서 2:12~17절입니다. “12 너희가 1)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2)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사랑하는 임이 우리에게 담 밖에서 불러내어도 우리는 스스로 담을 무너뜨리고 나갈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에베소, 골로새서를 오늘 본문과 연결하여 읽어보면 사랑하는 분이 우리에게 일어나 함께 가자고 하는 것은 구약에서 손을 잡고 이끌어 내어도 마음이 따라오지 않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새 언약으로 이끌어 내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새 언약은 예수님의 살과 피로 이루어내신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모든 장애를 제거하여 놓고 우리를 향하여 일어나 함께 가자고 부르시는 것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도 여전히 가려져 있기는 합니다.

 

고린도후서 4:3~7절입니다.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왜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사람들이 받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이 세상의 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심을 전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주님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힘과 영광을 원하고 있기에 십자가로 이루신 그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는 그 십자가가 밝히 보여 지도록 조치를 하십니다. 그 조치의 결과는 세상의 영광이 헛됨을 알게 하십니다. 그것을 고난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하여 그 안에 보배가 담겨지는 것입니다. 이 보배가 담겨지게 되면 드디어 어두움에 빛이 비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됩니다.

 

본문 12~14절입니다. “12 꽃 피고 새들 노래하는 계절이 이 땅에 돌아왔소. 비둘기 우는 소리, 우리 땅에 들리오.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무화과가 열려 있고, 포도나무에는 활짝 핀 꽃이 향기를 내뿜고 있소. 일어나 나오오. 사랑하는 임이여! 나의 귀여운 그대, 어서 나오오. 14 바위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여,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숨은 나의 비둘기여, 그대의 모습, 그 사랑스런 모습을 보여 주오. 그대의 목소리, 그 고운 목소리를 들려주오.” 이 사랑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우리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겨울이 지나서 봄의 기쁨을 맛보며 주와 동행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