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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7:13~19 마음을 비추는 거울 2018. 6. 27

 

13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 14 2)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15 다투는 여자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16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 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3)빛나게 하느니라 18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에게 시중드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19 물에 비치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치느니라

 

본문 13절입니다. 타인에 대하여 보증 선 사람의 옷을 취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로 잡아두라고 합니다. 잠언에서 보증에 대한 말씀들이 몇 번이나 나왔습니다. 잠언 6장에서 보증과 담보에 대하여 잠언 전체와 성경 전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본문 13절은 잠언 20:16절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잠언 6장의 설교중에 핵심 부분만 다시 말씀드립니다. 율법에 의하면 가난한 자의 겉옷을 담보로 잡았다면 저녁에는 돌려줘야 합니다(22:26,27). 그런데 외인들에게 보증을 선자는 그 몸을 볼모로 잡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가난한 자가 받는 그런 보호조차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함에도 보증을 서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그 사람을 위하여 전적으로 희생할 의향이 있으면 보증을 서면됩니다. 그런데 누가 이런 보증을 서겠습니까? 그런데 이웃도 아닌 죄인을 위하여 이렇게 보증을 선분이 있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1:20~22절입니다.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우리는 유대인이 보면 외인이며 동시에 죄인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을 위하여 보증을 서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우리를 보증하셨기에 대신 죽으시고 그 보증금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셨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짐을 믿는 사람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된다고 합니다. ‘이른 아침에 각주가 있습니다. 각주를 보면 부지런히라고 되어 있습니다. 공동번역은 이렇습니다. 새벽에 큰소리로 인사 받거든 욕을 먹었거니 생각하여라.” 연결하여 보면 때에 맞지 않게 큰 소리로 축복을 하거나, 부지런하게 축복을 하면 이것은 아부(阿附)인 것입니다. 지나치게 아부하는 것은 축복이나 칭찬이 아니라 저주나 욕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칭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21절을 보면 칭찬으로 사람을 연단한다고 합니다.

 

본문 15~16절입니다. 다투는 여자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다고 합니다. 공동번역은 이렇습니다. 아내가 바가지를 긁는 것은 장마철에 지붕이 새는 것과 같다. 그런 여자를 다스리는 것은 바람을 잡는 격이요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켜잡는 격이다.” 다투는 여인을 바가지 긁는 것으로 말하니 생동감이 있습니다. 아내가 바가지를 많이 긁는 남편들은 격하게 공감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내를 제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바람을 제어할 수가 없고 한 손으로 기름을 움켜잡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도 주님께 순종하지 않는 모습은 이와 같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이런 아내와 살려는 남편은 어떤 남편이 되어야 합니까?

 

호세아 2:19~20절입니다. “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세아 선지자가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함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줍니다. 고멜이 아무리 바람을 피우고 도망가도 값을 주고 사와서 함께 사신다고 합니다. 그것도 영원히 사신다고 합니다.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장가들고 진실함으로 장가들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고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담보물이 되어서 희생하시고 그 보증으로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자기 신부와 영원히 사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와 아들이 우리 안에 거처를 삼으신다는 말씀입니다(14:23).

 

본문 18절을 먼저 봅니다.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에게 시중드는 자는 영화를 얻는다고 합니다. 점층법이 사용됩니다. 무화나무를 짓는 농사꾼이 그것을 잘 가꾸면 그 과실을 먹듯이 자기 주인에게 시중을 드는 자는 영화를 얻게 됩니다.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처럼 보입니다만 성경은 참 주인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시는 계시의 말씀이기에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누가 주인인지를 알고 살아가야 함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주인은 유대인들에게 거리끼고 헬라인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를 지신 분이십니다. 그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자들은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그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살후2:14).

 

본문 17절을 봅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3)빛나게 한다고 합니다. 빛나게 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날카롭게 한다는 말입니다. 17절을 직역하면 쇠는 쇠와 함께 / 사람은 제 이웃의 얼굴과 함께이렇습니다. 새 번역으로 봅니다. 쇠붙이는 쇠붙이로 쳐야 날이 날카롭게 서듯이, 사람도 친구와 부대껴야 지혜가 예리해진다.” 공동번역입니다. 쇠는 쇠에 대고 갈아야 날이 서고 사람은 이웃과 비비대며 살아야 다듬어진다.” 여러 번역으로 보는 이유는 히브리어 원문은 아주 간결하기에 이렇게 번역을 한 것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인 마음을 비추는 거울17절과 19절을 보면서 정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도를 닦는 수도승의 모습이 아니라 두 세 사람이라도 함께 모여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이유도 이런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그러므로 공동번역대로 쇠는 쇠에 대고 갈아야 날이 서듯이 사람도 이웃과 비비대며 살아야 다듬어진다는 번역도 좋습니다. 그리고 새 번역처럼 사람도 친구와 부대껴야 지혜가 예리하여 진다도 좋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고서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이웃과 부대낌으로 자신의 실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웃과의 관계를 통하여 자기 속에 얼마나 악한지 아는 자들은 더욱 주를 의지할 것입니다.

 

본문 19절입니다. 물에 비치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친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오늘 같은 거울이 없었기에 맑고 고요한 물에 얼굴을 비추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청동거울이 있었습니다. 이런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보듯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추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 보는 것은 자기의 외모를 보지만 우리의 마음을 무엇으로 비추어 볼 수가 있습니까? 사람의 마음으로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친다고 할 때에 이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 봐야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봐야하는지 해석이 달라집니다. 몇 가지 번역을 대조해 보겠습니다.

 

새 번역입니다. 사람의 얼굴이 물에 비치듯이, 사람의 마음도 사람을 드러내 보인다.” 사람의 얼굴은 물이나 거울에 비칩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보이는 것입니까? 사람의 마음이 사람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공동번역입니다. 내 얼굴은 남의 얼굴에, 물에 비치듯 비치고 내 마음도 남의 마음에, 물에 비치듯 비친다내 마음이 남의 마음에 비추어집니다. 어떤 책에서 본 내용입니다. 두 사람이 굴뚝에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얼굴에 검정이 묻은 사람과 묻지 않은 사람 이 서로 보면 누가 얼굴을 닦겠습니까? 얼굴에 검정이 묻지 않은 사람이 닦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의 마음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8:1절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나서 사울 왕과 말할 때에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됩니다. 하나로 연결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같은 신앙고백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의 신앙은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삼상14:6). 다윗의 신앙도 여호와의 구원이 창과 칼에 있지 않다고 골리앗을 물리치면서 말하였습니다(삼상17:47). 이런 믿음은 같은 영이 임하여야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한 마음으로 연결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들은 서로를 보면서 그들의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같은 마음, 같은 믿음, 같은 뜻이 생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무엘하 13:3 절입니다.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다윗의 아들 암논이 다윗의 딸 다말을 짝사랑합니다. 배다른 형제이긴 하지만 율법이 금하는 근친상간이 되기에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암논의 친구이며 사촌이기도 한 요나답이라는 심히 간교한 자가 다말을 범할 꾀를 가르쳐줍니다. 심히 간교하다는 말은 창세기 3장의 뱀에 대한 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간교한 자를 친구로 두었다는 것은 암논도 그러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을 듣고 범행을 실행합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을 비추어주는 것은 그 사람과 함께 같이 있는 자를 통하여 드러납니다. 전혀 마음이 맞지 않으면 함께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맞지 않은데도 함께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은 서로가 추구하는 이익이 있을 때에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되는 것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의 마음을 서로 비추어 볼 친구가 있습니까? 사람도 거울이 되지만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볼 참된 거울이 성경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우리의 속을 비추어줍니다.

 

유다서 1:7절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소돔과 고모라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만이 아니라 구약 전체가 우리의 본보기가 됩니다(고전10).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길을 가는지 멸망의 길을 가는지는 오직 성경의 계시로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보아도 잊어버리기에 새 언약이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1:22~25절입니다.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야고보서 하면 행함이며 믿음이냐의 논쟁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본문에 답이 나옵니다. 율법을 보고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율법을 보고 듣고 외워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을 만큼 완벽하게 율법을 지켰는데 그 결과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버렸습니다. 이런 모습이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다고 합니다. 거울로 얼굴을 보지만 돌아서서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라 실행하는 자라고 하는 것은 새 언약을 말합니다. 새 언약은 마음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1:31~34절입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옛 언약을 보고 듣고 외워서 실천을 한다고 하여도 그 언약을 깨뜨린 것입니다. 이것이 거울을 보고 자기 얼굴을 보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은 우리의 마음에 기록을 하는 것입니다. 이 새 언약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이루시고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신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말씀을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이나 신약이나 간에 성경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의 말씀이기에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하여 성경을 보게 되면 자기 자신이 어떤지 드러납니다.

 

히브리서 4:12~13절입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읽게 되면 자신의 실상을 알게 됩니다. 이들은 자기를 스스로 가리는 것이 아니라 피할 곳으로 갑니다.

 

이어지는 14~16절입니다.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여자는 거울을 자주 봅니다. 요즈음은 남자도 자기 외모를 많이 꾸밉니다. 그러나 성도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인 성경을 봄으로 자기 자신의 내면이 어떤지를 보게 됩니다. 그렇게 보는 자는 우리의 큰 대제사장, 곧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굳게 잡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그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서 담대히 나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