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2부]

 

[음성 설교]

사도행전 4:23-31 초대교회의 기도 2011. 5. 25

 

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고서 어느 부분이 제일 크게 눈에 들어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30절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런 내용이 우리의 마음에 와 닿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세계 최대의 교회의 목사였던 사람이 창원에 와서 세미나 하면서 이야기하더랍니다. 요즈음 전도하기 힘 든다고 하면서 전도하려고 애쓰기보다 기도해서 병자만 몇 사람 고침을 받으면 전도는 저절로 된다고 하더랍니다. 이런 말이 먹히는 세상입니다.

 

과연 초대교회의 기도가 그런 내용이었을까요? 병을 낫게 하는 것과 표적과 기사가 오늘날도 그대로 일어난다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않고 성경이 완성됨으로 그런 표적과 기적은 없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편에 속합니까? 저는 이렇게 봅니다. 병이 낫고 어떤 표적과 기사가 성경에 나타나는 것은 계시를 위한 것입니다. 계시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그런 계시로서 성경은 완전하게 종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에서 기록된 말씀에서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도 비판하는 자들은 요한계시록 보다 후대에 기록된 말씀은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서 자기들의 주장을 세웁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기에 계시입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가지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채워주기 위하여 성경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성경을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대에 병이 낫거나 아니 낫거나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인임을 아는 것이 참된 표적과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늘 기도하여도 자기가 처한 형편이 나아지기를 원할 뿐입니다. 형편이 나아지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이 나아진다고 해서 그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이란 근본적으로 출 세상입니다. 그러면 출 세상을 꿈꾸며 기도하는 자들이 누구이겠습니까? 성령이 임한 자들입니다. 성령이 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인지 아닌지는 그들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압니다. 제가 목사 위임을 받을 때에 어느 장로님이 책을 하나 선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이라는 사도행전의 설교집인데 오늘 본문을 보니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교회가 마음을 합하여 열심히 기도하자는 내용입니다. 그 기도의 목표가 새벽기도회 1천명, 주일학교 교사 1천명, 순장 1천명을 이루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자고 합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합니다. 이런 꿈을 심어주면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보는 말씀이 과연 이런 내용입니까? 23절을 봅니다.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들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립니다. 이 내용은 오순절 성령이 임하여 사도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 하면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이 소식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4:1-22절을 보시면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들과 사두개인들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다가 다음날 대제사장과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여서 이들을 심문합니다.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느냐고 합니다. 예수님께 한 질문을 그대로 합니다. 이때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고 있을 때에 베드로와 요한이 고쳐줍니다. 사람들이 주목하여 보았을 때에 왜 우리 개인의 경건과 권능으로 일어난 것처럼 우리를 주목하느냐며 너희가 십자가 못 박아 죽인 생명의 주를 하나님이 살려내셨고 그 이름의 능력이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하였다고 증거 합니다. 이 사실이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고 병 고침을 받은 사람도 함께 있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들의 말을 듣고도 어쩔 수 없어서 위협하고서는 놓아 보냅니다. 이 말을 지금 그의 동료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하자 이들이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아룁니다. 24절을 봅니다. 대 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이시요! 지금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를 미리 성령은 다윗을 통하여 예언해 놓았다는 것을 성령을 통하여 알았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성경의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 진짜 성령이 임한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4:26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보혜사 성령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십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가르치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지금 초대교회에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이 다 말씀대로 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세상이 두려웠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고 나니 세상만사가 다 하나님의 뜻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 하는 것으로 인하여 핍박이 오고 심지어 죽음이 올지라도 그런 것이 겁이 나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일들이 다 대주재가 되시는 하나님의 손안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언약하신 말씀대로 움직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 것이 성령이 임한 자들의 시각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눈뜸이 없다면 아무리 기도하여도 자기의 환경과 형편이 나아지기를 위한 기도 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습니다.

 

어울림교회 황두용 목사님이 기도문을 인용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찾아오시길 마음으로 바라는 예수님이 어떤 모습입니까? 아픈 몸을 고쳐주실 예수님입니까? 먹을 것을 베풀어 주실 예수님입니까? 능력을 주실 권능의 예수님입니까? 아픈 몸이 낫는 것, 먹을 것을 갖는 것, 능력을 지니는 것은 세상을 살기 위함입니다. 예수님 주위에 모여 그런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세상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이 행하신 것을 보았지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일하심을 사람들은 혜택으로만 받기를 바랐습니다. 사람들은 믿음으로 가지 못하고 혜택으로 머문 채 예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았습니다. 저희도 지금 그럴지 모릅니다. 세상의 조건에 처하여 있으니 도움을 바라며 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예수님을 권능의 예수님으로 먼저 생각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 볼 수 있게 하옵소서.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 충격을 받게 하옵소서. 왜 그렇게 하여야 하는지 묵상하게 하옵소서. 그렇게 하여야만 하는 아버지의 뜻에 머리를 조아리게 하옵소서.)

 

그러면 사도들이 성령이 임하여 깨달은 내용이 무엇입니까? 25-26절입니다. 시편 2편의 내용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나라가 경영하는 일들이 다 허사입니다. 세계 경제기구의 일들도 허사이고, 핵에너지는 이미 허사로 드러났고, 녹색 에너지를 이야기하지만 그것도 다 허사로 돌아갑니다. 그런 허사를 위하여 세상의 왕들과 세력들이 만나서 하는 일이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일입니다. 이런 일들이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들의 어떤 기도를 합니까? 이런 대적들을 한꺼번에 싹 없애달라고 기도합니까? 엘리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일을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불로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아합과 이세벨의 왕궁을 불로 살라 버리기를 원하였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자 광야로 도망가서 죽겠다고 합니다. 자기만 남았다고 하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바위를 부수는 강한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을 통하여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 7천 명을 남겨두셨다고 합니다. 이 7천명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엘리야의 사고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이 대다수 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대적을 무찔러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적들은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러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2편의 대적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27절입니다.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종 예수를 거역하기 위하여 모였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합세하여 그리스도를 대적한 것이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모이고 합세한 것은 우연하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뜻을 이루시는 일에 악한 자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대 주재(大 主宰)라고 부릅니다. 주재란 주와 임금으로서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천지만물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지으신 분의 손 안에 모든 것이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29절을 보시면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고 대적들을 즉시 없애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적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대적들이란 세상 끝 날까지 있을 것이기에 그런 자들을 한꺼번에 심판할 날 까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위협과 핍박을 당할지라도 그런 자들이 사용하는 세상의 힘과 능력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방식으로 가야하는 것이 주의 뜻임을 알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심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는지 성령이 임하자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증거 하신 방식대로 증거 하게 됩니다.

 

그런데 30절을 보면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라고 간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들의 표적과 기적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적과 기적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끝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일하고 계심을 계시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하여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계시가 완성이 되고나서는 그런 표적과 기적을 보고서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기록된 말씀을 믿는 것이 표적과 기적입니다. 앞에서 기도문을 인용하였습니다만 죽은 자도 살리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수많은 표적과 기적을 보고서도 정작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표적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을 통하여 믿게 되는 것이 성령의 보편적인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모인 곳에 진동이 일어났습니다.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기도입니다.

 

여기서 진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런 진동은 장차 이 세상 전체가 진동하게 될 것도 보여줍니다(히12:25-29).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동하지 못할 나라를 받은 자들은 땅이 진동함을 보면서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됩니다. 세상에 진동될 것들을 붙들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며 그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