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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14-25 성령 받기를 기도함 2011. 6. 1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24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오늘 말씀을 보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성령이 임하는 것이 따로 나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한국교회도 크게 두 가지 이론으로 나누어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성령이 임한 것이라고 보는 쪽과 예수 믿는 것이 성령이 임하는 것이 맞지만 그것은 부족하고 다시 성령의 체험을 해야 더 큰 능력을 행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앞쪽의 이론은 주로 보수적인 입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절에서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 없기에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성령의 세례라고 같이 봅니다.

 

그러나 다르게 말하는 사람들은 오순절계통인데 주로 근거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빌립이 전도하고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아도 사도들이 안수하니 성령이 임하였다고 하면서 특별한 은사를 받은 자들에게서 안수를 받거나 제 2의 성령 체험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도 아볼로가 세례요한의 세례만 전하고 다녔을 때에 바울사도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말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성령의 체험을 다르게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왜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성령이 따로 임하는지 말씀을 드리고 성령의 은사를 돈 주고 사려고 하는 모습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약속하신 것이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나서 사도들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만 복음을 전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벗어나지를 않습니다.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어야 할 자들이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이 어떻게 됩니까? 이들이 가지 않는다고 해서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기에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일에는 인간의 믿음 없음과 불순종이 드러나면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전하여 지는 것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전하여지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여도 민족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핍박이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8:2절을 봅니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스데반집사의 순교가 일어나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납니다. 사도 외에는 예수 믿는 자들이 다 흩어집니다. 흩어지는 곳이 유대와 사마리아의 온 땅으로 흩어집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모습입니다. 스스로 유대와 사마리아로 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박해를 피하여 여러 곳에 두루 피하여 도망가는 중에 복음을 전합니다.

 

5-8절을 봅니다. “봉독” 박해를 받아 피하여 가는 무리들 중에 빌립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초대교회에서 세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갑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가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사마리아에 우물가에서 한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앗수르가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면서 혼혈정책을 썼기에 남 유대인들은 북 이스라엘 사람들을 개같이 여깁니다. 북 이스라엘의 수도가 사마리아이니 이곳에 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박해를 피하여 간 곳이 사마리아입니다. 이렇게 된 것도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사마리아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니 믿는 일이 일어납니다. 빌립을 말도 듣고 그가 행하는 표적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도 또 많은 중풍병자들과 못 걷는 자들이 일어납니다. 이런 역사들을 보면서 빌립의 말을 믿고 따릅니다. 그러자 이 성에 큰 기쁨이 임하였습니다.

 

9-13절입니다. “봉독” 이 성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마술을 행하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면 자칭 큰 자라고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시몬을 따르며 하나님의 큰 능력이라고 합니다. 사마리아는 피만 혼혈이 된 것이 아니라 종교도 혼합종교로 인하여 이방의 사술을 하나님의 큰 능력이라고 봅니다. 이런 마술을 행하는데도 사람들이 시몬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행하는 것을 보니 시몬은 그저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이 행하는 그런 능력을 받고 싶어서 따라나섭니다.

 

그러나 빌립은 그런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자기의 사욕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어진 것을 믿게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지금 살아계심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믿고 세례를 받습니다. 그런데 시몬이라는 사람도 믿고 세례를 받고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나섰지만 그 속마음은 표적과 능력에 있었다고 봅니다. 근거는 사도들이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돈을 주고 그 능력을 사려고 하였습니다.

 

18-24절입니다. “봉독” 사도들이 빌립의 전도를 받고 믿는 자들에게 안수를 하니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때는 분명히 어떤 외적인 현상들이 나타났습니다. 이 모습을 본 시몬이 사도들에게 돈을 주고서 자기도 기도하면 성령이 임하도록 해 달라고 합니다. 마술사로 돈 벌던 버릇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므로 빌립의 표적과 능력을 보고 믿고 따라다닌 것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에 대하여 믿고 따라다닌 것이 아니라 표적과 기적을 행하여 더 큰 장사를 하기 위하여 따라다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사려고 하였으니 네 은과 함께 망할지어다. 저주를 선포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게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다고 합니다. 베드로의 이 책망을 보면 빌립을 따라다니며 세례를 받은 것도 딴 마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 시몬의 이름이 성직매매(simony)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중세시대 때 성직매매는 성행을 하였습니다. 돈이 되는 교구는 아주 많은 금액으로 교구장이 결정됩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 이 시대는 없습니까?

 

목회자 후보생 고시를 치는데 같이 시험 치는 어떤 사람이 시험치고 나서 시험 감독으로 나온 목사들에게 돈을 내자고 합니다. 제가 반대했습니다. 노회에서 출제비와 여비가 나오는데 왜 수험생이 돈을 주어야 하느냐고 하자 관례라고 하면서 원하는 사람만 하라고 하였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하였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해서 목사가 되는 것이 성직매매로 보았기에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노회마다 다릅니다. 제가 목사고시 시험을 치를 때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직분 자를 세울 때에 수백 만 원씩 헌금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습니다. 교계의 단체장을 뽑고 총회장을 뽑는데 수억이 사용된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합동 측에서는 돈 선거를 막으려고 제비뽑기를 할 정도로 타락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성직매매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성령의 은사를 구하는데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구하는 경우입니다. 저도 한 때 성령의 능력을 구하였습니다. 신학교 다니면서 밤 12시까지 리포트 작성하고 12시부터 기도 굴에 가서 기도합니다. 큰 소리로 기도하고 이상한 소리로 기도하고 그렇게 기도하는 중에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너 능력 구하여 무엇을 하려고 하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성령의 은사를 구하여 내가 잘되려고 하는 것이구나! 이것이 성직매매가 아니고 무엇인가! 돈을 주지는 않았지만 나의 눈물과 정성과 간절한 기도를 대가로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시몬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참된 성령의 능력이 임한 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다가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죽어갔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표적과 기적이 나타나기도 하였지만 사도들에게도 늘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능력이 많이 나타난 바울은 고난이 훨씬 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된 성령의 능력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구원의 능력이 됨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무엇이라고 합니까? 모세의 글을 믿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살아가서 말해도 믿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알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불가능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자는 자기 죄를 알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갑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왜 빌립이 전한 예수님을 믿는 것과 사도들이 안수하니 성령이 임하는 것이 따로 나타납니까? 그 이유는 사도들이 유대인들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에 파송한 이유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게 되었는지를 조사하러 왔습니다. 그래서 14절을 봅니다.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여기서 ‘도’에 주의해 보아야 합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개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느냐는 식입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에 믿는 것과 성령이 따로 임한 것은 지금 사도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그 말씀의 성취를 사도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였는데도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는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가기를 꺼려합니다. 사도행전 10:44-48절을 봅니다. “봉독” 성령받기를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복음을 증거 하는데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러자 할례 받은 신자들 즉 유대인들 중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놀랍니다. 그 이유는 어떻게 이방인에게도 그들에게 임한 성령이 임하는가 하면서 놀랍니다. 이때 베드로가 이들도 우리와 동일한 성령이 임하였는데 어떻게 세례주기를 금하겠느냐며 세례를 줍니다. 이일 후에 사도행전 15장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것을 사도들에게 확인시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성령이 임함이 따로 나타나도록 조치하신 것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나 사마리아 인들이나 이방인인 우리들이나 똑 같이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성령이 임한 자들의 고백이 됩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를 자랑하지 못하여 예수님만 자랑하고 예수님만 증거 하게 됩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믿게 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서신서에서 성령을 받으라는 말은 없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이미 성령이 임한 자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에베소서 5:18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위하여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하고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앞으로 더 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의 결론은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성령이 임하는 것의 차이가 난 것은 유대인들이 민족주의를 넘어서도록 하기 위한 특수한 경우로 보아야 합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한 증거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되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며, 썩어질 세상의 영광을 피하고 영원한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오늘도 주와 함께 동행 하게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사람이 성령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의 백성들을 주도하여 인도하고 계시기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내십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내시는 것의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함입니다. 결론은 갈라디아서 3:1-14절입니다. “봉독” 성령이 임하심은 십자가가 밝히 보입니다. 성령은 시작도 결론도 십자가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