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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설교]   [동영상 설교]

빌립보서 1:1-11 바울의 기도(4) 2011. 8. 10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바울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네 번째입니다. 신약의 서신을 바울이 가장 많이 기록하였으니 바울의 기도가 많은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기도는 기도에 관한 많은 책들과 다릅니다. 기도에 관한 책들을 보면 이렇게 기도하여 이런 응답을 받았다는 내용도 많고 또 대표기도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기도의 예문들도 많습니다. 그런 기도와 바울의 기도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입니까? 바울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고 기도에 관한 책을 쓴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데 무엇이 차이가 나느냐고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성경의 시편과 예수 믿는 많은 사람들의 신앙적인 시와 무슨 차이가 나느냐는 말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계시입니다. 기록된 계시이지만 그냥 읽어본다고 알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야만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다 공개된 말씀이지만 비밀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지난주일 낮에도 잠시 말씀을 드렸지만 오늘날도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9명이 기도하여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다 달랐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과연 누가 들은 음성이 진짜 하나님의 음성이 됩니까? 제가 그분들에게 말했습니다. 다 아니라고 말입니다. 자기가 들었다는 것을 다 포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기도는 단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기도문이 아니라 계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기도문을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기도를 통하여 무엇을 알게 하시려고 바울이 이런 기도를 하게 하셨고 또 성경으로 기록하게 하셨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기록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성령께서 우리에게도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 이 기도의 뜻과 의미를 알게 하여 주시고 우리에게도 이런 기도가 나오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본문을 봅니다.

 

바울사도가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유럽의 첫 교회입니다. 바울이 아시아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하였으나 성령이 막으시고 마케도니아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마케도니아의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하나님께서 자주장사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서 복음을 듣게 하십니다. 복음도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 주셔야 듣게 됩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루디아가 바울과 그 일행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합니다. 이것이 유럽 첫 교회의 시작이 되는 빌립보 교회입니다.

 

바울사도는 복음으로 인하여 감옥에서 편지를 보냅니다. 교회에 안부를 전한 후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 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간구할 때 마다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생각하거나 어떤 교회를 생각할 때에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가 되고 기도할 때 마다 항상 기쁨으로 구하여지는 그런 사람과 교회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전도를 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고 믿음 안에서 잘 살아가는 것을 본다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가 있겠지요! 그런데 우리의 기도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그저 나의 필요와 나의 만족만을 위하여 기도한다면 그것이 과연 감사와 기쁨의 기도가 되겠습니까?

 

기도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내용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여도 여전히 자기중심의 기도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면 이런 감사와 기쁨의 기도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가 달라지려면 삶의 내용이 달라져야 합니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주를 위한 삶이 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은 나의 모든 생각과 의지와 소유를 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굴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굴복이 우리의 힘과 결단과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지 않아야 될 일은 기도하고 정작 기도해야 할 일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나의 뜻은 무너져야 하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을 나를 위한 말씀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말씀인데 오히려 나를 위한 말씀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다고 하여도 그 내용이 자기를 위한 것이면 기도조차 자기 탐심을 위한 우상숭배의 시간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과연 무엇을 기도하는지 내용을 보면 우리가 평소에 기도하는 내용이 고발을 받을 뿐 아니라 무엇을 기도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십니다.

 

5절을 봅니다. 바울사도가 빌립보 교회를 생각만 해도 감사하고 기쁘게 여기는 이유는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 일들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위한 일에 누가 참여를 하고 있습니까?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빌립보 교회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함께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참여한 내용은 빌립보서 4:14-20절을 봅니다. “봉독” 마게도니아 지역에서 빌립보 교회만 바울이 복음 전하는 일이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두 번이나 바울을 위하여 연보하였고 그 일을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냈는데 이 사람을 바울을 도와 함께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연보를 더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17절을 보시면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한다고 합니다. 자신은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하다고 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풍부하겠습니까만 그리스도 안에서 일체의 비결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편을 통하여 보내준 연보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합니다. 연보하였다고 부자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복음을 듣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는 일은 누가 시작한 것입니까? 바울사도가 복음을 전하였고 빌립보의 사람들 중에 복음을 믿는 자들이 복음 전하는 일에 참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6절에서 이렇게 증거 합니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한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게 되고 믿게 된 것도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신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셨기에 이 일이 착한 일이라고 합니다. 착하다는 표현보다는 선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 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이란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이 말씀 때문에 일어납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그제야 끝이 온다고 하셨습니다(마24:14). 약 2천 년 전의 예수님의 이 말씀이 지금도 이렇게 펼쳐지고 있기에 우리도 확신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듣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며 감사와 기쁨인지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세계의 지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복음이 전하여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면 복음이 어떻게 땅 끝까지 증거 되는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보아야 하며 그 복음이 진행되는 일에 참여되었다는 것이 바로 은혜에 참여된 것입니다. 이러한 증언과 빌립보 교회를 위한 감사와 사모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한다고 합니다.

 

이제 구체적인 기도의 제목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빌립보서 1:9-11절입니다. “봉독” 첫째 사랑의 풍성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빌립보 교회에 이미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 참여함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사랑만이 아니라 성도의 교통함에도 나타납니다. 이러한 사랑이 지식과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여 지기를 기도합니다. 왜 사랑에 지식과 총명이 필요합니까? 부모들의 잘못된 자식 사랑이 자식을 망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런 것처럼 교회에서의 사랑도 지식과 총명이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빌립보 교회에도 거짓 선생들이 들어왔기에 지식과 총명을 가진 사랑이 필요합니다.

 

빌립보 교회의 거짓 성생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3:1-3절을 봅니다. “봉독” 우리가 구역공부 시간에 보았습니다. 개들을 삼가라고 합니다. 이들은 율법주의자들입니다. 그러면 복음을 듣고 믿은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3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식과 총명이 필요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지를 더욱 풍성하게 알아가고 그런 사랑이 더하여 지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고 합니다. 바울 당시에도 오늘날도 영적인 싸움은 늘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선한 것인지 아닌지 분별하여야 합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는 이 말씀은 각주에 보시면 '같지 아니한 것을'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복음이라고 하는데도 같이 않는 복음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잘 분별하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으로 자유 하지만 그 자유를 자신의 육체의 기회로 삼는 자들에 대한 경고를 성경 곳곳에서 하고 있습니다(롬3:8,갈5:13). 그러므로 선하다고 하지만 과연 무엇이 선한지를 분별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진실하며 허물이 없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르라는 말씀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는 말씀과 다 함께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진실하다는 것은 다른 것과 섞이지 아니하는 것을 말합니다. 허물이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라고 합니다. 성도의 목표점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습니다. 빌립보서 3:17-21절을 봅니다. “봉독”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입니다. 그들의 신은 배라고 합니다. 욕망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됩니다. 그 영광의 날을 소망하는 것이 기도의 내용입니다.

 

셋째로 11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야 하는데 의의 열매의 출처가 어디냐를 분명하여 증거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온 의의 열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나온 의의 열매는 반드시 자기부인이 들어있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였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서로서로 자기들의 열매를 자랑하게 됩니다. 참된 열매란 그 시선이 반드시 열매의 원천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로 갑니다.

 

끝으로 빌립보서 4:4-7절입니다. “봉독” 주안에서 기뻐하며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의 재림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내신 평강으로 성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이 평화는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평강을 맛 본 자는 더욱 기도하면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런 기도가 우리 안에 더욱 풍성하여 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