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골로새서 1:3-12 기도할 때마다 2011. 8. 17

 

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오늘 말씀도 바울의 기도입니다. 계속하여 바울의 기도라고 하여 번호만 붙여나가기 보다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번호를 부치든 아니 부치든 중요한 것은 그 기도의 내용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바울의 기도라고 해서 바울의 독자적인 기도의 내용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록된 계시의 말씀입니다. 계시이기에 단지 기도하여 우리의 소원을 이루자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보게 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기에 기록된 문체가 역사이든, 찬양이든, 기도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게 됩니다.

 

그래서 1-2절의 인사말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사도가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가 이단의 교주로 알고 그를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열심을 내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에서 만나고서 완전히 바뀌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편지가 단순한 편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사도란 보내심을 받은 자이기에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조차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기도하는 내용이기에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계시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개의 기도로 나눌 수 있습니다. 3-8절까지는 바울사도가 에바브라를 통하여 골로새 교회 성도들의 소식을 듣고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는 내용이며 9-12절은 골로새 교회가 더욱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기를 기도하는데 그 기도의 시작과 끝은 다 감사입니다. 먼저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직접 전도한 것이 아니라 에바브라가 전도한 것으로 봅니다. 7절에 보시면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종이 된 에바브로에게서 너희가 배웠다고 합니다. 에바브라는 에베소에서 바울에게 복음을 들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자신이 직접 전하였든지 아니든지 간에 복음을 듣고 믿게 되었다면 다 같은 성도로 보면서 서신을 보냅니다.

 

3절을 봅니다. 바울사도가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한다고 합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우리가 어떤 사람이나 어떤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기도할 때마다 감사하는 그런 사람이나 교회가 있습니까? 우리가 아주 조금이나마 선교사님들을 후원하면 그들이 조금은 기도하겠지요! 모퉁이 돌 선교회를 통하여 북한에 성경이 들어가면 수십 년을 성경을 얻기 위하여 기도한 자들은 성경을 볼 때마다 감사할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사도는 무엇을 인하여 감사를 합니까?

 

4-5절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게 됨을 인하여 감사를 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떤 열매들이 있습니까? 복음을 듣고 깨달은 날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이라는 것을 수십 년을 들어왔습니다. 어려서부터 들은 분은 오십 년도 더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안에 어떤 열매가 맺어지고 있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열매라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무슨 행함을 또 이야기 하느냐고 말입니다. 좀 오래전에 함께 복음의 교제를 나눈다는 교회에서 몇 시간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복음의 은혜가 어떤지를 말씀드리고 그런 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헌신들이 나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쉬는 시간에 그런 말들에 얼마나 질렸는데 왜 복음전한다면서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따지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문제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과연 열매가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다시 4-5절을 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대하여 가장 중요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빼 버리고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 대하여 사람들은 얼마든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믿는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신실하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소망도 예수 밖에서도 많이 말을 합니다. 통일, 보편복지, 인류의 평등을 이야기합니다. 사랑도 얼마나 많이 말을 합니까? 동화와 소설과 드라마들이 신망애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대하여서 말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안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무엇입니까? 복음의 진리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인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것은 땅의 이야기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땅에 속한 것으로 보면 성경은 얼마나 거북한지 모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이렇게 부조리한 일들이 세계 도처에 일어나는데 방관하시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불만 속에는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나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고생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시편 73편의 기자나 하박국 선지자도 같은 하소연을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세상이 어떻게 이 모양인가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세상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기에 하늘에 속한 믿음과 사랑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골로새서 3:1-18절입니다. “봉독”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는 하늘에 시민권이 있기에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합니다.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 한절 한절이 다 기도의 제목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복음을 듣고 깨달은 날부터 그들이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열매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골로새도 로마의 식민도시로서 이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며 사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열매가 나타났다는 것은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인하여 나타난 열매입니다. 그래서 나온 성도의 사랑입니다. 땅에 소망을 두었다면 성도의 사랑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자기의 소유를 늘려야 안전하다고 하는 정신이 로마시대나 이 시대나 동일한 세상의 정신입니다. 그런데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인하여 나타난 것이 믿음의 형제 안에서 나타난 사랑입니다.

 

9-12절입니다. 에바브로를 통하여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듣고서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한다고 합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나타나는 교회에 무엇을 또 그치지 않고 기도합니까? 9절에서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은 세상의 지혜가 아닙니다. 세상이 볼 때는 참으로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낮아져야 하고 자기의 뜻은 포기되어야 합니다. 나는 죽고 네가 사는 방식입니다.

 

10절입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도록 기도합니다. 어느 하나인들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한 기도가 없습니다. 이런 기도가 바른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란 내가 뜻을 정하여 놓고 가는 방향에 힘을 더하야 달라는 것이 아니라 가는 길에서 돌이켜 주님의 뜻을 채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자라게 하시도록 기도합니다. 누가 우리를 보고 더 자라야 한다고 하면 이미 어른이 된 우리는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18절입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많이 자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은혜를 많이 받고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죄가 어떠한지도 역시 아는 사람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 외에는 달리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더욱 많이 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자라가라고 하면 또다시 무엇을 해야 자라가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그것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교회들마다 온갖 프로그램들로 인하여 지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집중해야 할 것은 사도들이 말한바 말씀과 기도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많이 보고 기도를 많이 한다는 사람이 자기 죄를 알고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가는 것이 아니게 되면 말씀보고 기도한 것이 자기의 공적이 되어 남을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말씀보고 기도해야지! 이런 식으로 나오면 은혜로 자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조차 우리의 힘이 아니라 11절을 보시면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서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은혜로 자라게 되는 사람은 그의 영광의 힘을 증거 합니다. 그 결과로 능력과 기쁨과 오래 참음이란 열매가 나옵니다.

 

12절을 봅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구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기도하는 내용과 전혀 다른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것이 이런 내용들입니다. 이런 내용들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기도의 시작이 감사입니다. 그 기도의 끝도 감사입니다. 우리가 이런 기도의 내용에 아멘이 되시고, 또한 회개가 되시고, 이런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소원하게 된다면 이것이 은혜요 기적입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입니다.

 

골로새서의 나머지 기도에 대한 말씀을 봅니다. 4:2-4절입니다. “봉독”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고 합니다. 말씀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들으면 기도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잘못 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동안 힘들지만 억지로 기도하였는데 복도 자기가 원하는 복도 아니고 그런 기도한다고 해서 복 받는 것도 아니니 잘 되었다 이제 쉬자는 생각이 들기에 기도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그 열매가 나타나는 자들에게 무엇을 요청하고 있습니까? 더욱 깨어서 기도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평소에 기도를 통한 자기 욕망이 들키니 기도하는 것도 죄인데 왜 기도하느냐고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기도에 대하여 말씀을 보니 과연 그렇게 핑계될 수 있습니까? 마치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복음을 아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 은혜를 입고 하늘에 속한 소망을 받은 사람은 더욱 깨어서 기도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들도 자신들을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고 기도를 요청합니다. 제자훈련을 하는 교회가 선교단체들은 훈련을 시키는 자를 목자라고 하고 훈련을 받는 자를 양이라고 합니다. 목자가 양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목자가 양을 보고 나를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고 하는 것은 자신에게 얼마나 기도가 필요한지를 보여줍니다. 그 기도요청은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합니다. 다른 번역으로는 말씀의 문을 열어주어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이 바로 복음입니다. 비밀이라는 말은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없기에 비밀입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끝으로 골로새서 4:12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바울사도가 여러 사람의 이름으로 안부를 전하면서 에바브라의 기도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같은 내용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발 딛고 살기에 이 땅에서 든든히 서면 그것을 성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은 다 무너져 내립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온전하게 세워집니다. 그 뜻은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통일되는 세계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비밀이 더욱 풍성하고 생생하여지도록 깨어 구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