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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5:16-28 쉬지 말고 기도하라 2011. 8. 24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또는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27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 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교회를 좀 다니신 분들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주로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모든 성경의 말씀이 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같은 성경을 보는 사람들인데도 하나님의 뜻이 다 다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사도는 성경을 사사로이 풀면 안 되고 성령의 감동으로 풀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사로이 푼다는 말은 개인적인 소원이나 욕망으로 푸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문을 소개합니다. “오 000이시여. 우리에게 삼치를 주소서, 어장에 매달린 낚시마다 삼치가 물어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삼치 낚시를 하는 어부가 하는 기도문입니다. 이 동그라미 속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넣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밤새 그물질을 하였는데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여 그물을 씻어 정리할 때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리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이때 베드로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무엇이 다릅니까? 앞의 기도가 사사로이 하는 기도라면 베드로의 고백은 고기가 많이 잡힌 것을 보고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사사로이 성경을 풀지 않는다는 것은 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베드로후서 1:19-21절입니다.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마음에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이것에 주의하라고 합니다. 이것이란 바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보았던 변화산의 그 영광을 목격한 것 보도 더 확실한 예언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도 예수 그리스도가 밝히 드러나면 됩니다. 성경의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요5:39).

 

이제 데살로니가서 에서 기도에 관련된 말씀을 보겠습니다. 살전 1:1-2절입니다. 1절에서 안부를 전하면서 2절에서 기도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소식을 인하여 감사의 기도를 합니다. 그 감사의 내용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한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기도하는 내용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지난주에도 잠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단어가 아닙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믿음에 역사가 따릅니다. 그 역사란 사랑과 소망으로 나타나는데 사랑이란 형제 사랑을 위하여 수고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 사랑의 수고란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는 모습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수고입니다. 사랑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한 수고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는 소망 때문에 나타납니다. 소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그 인내로 인하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처음 창조에 속한 것이 다 불에 태워져 없어진다는 것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도 처음 창조에 속한 것을 놓지 못하고 더욱더 굳세게 붙들고 더 늘이려고 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보면 구별이 됩니다.

 

골로새서 3:1-6절입니다. “봉독”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기에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미 죽었고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다고 합니다. 죽었다는 말은 땅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위의 것을 찾는 자들은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날 것입니다. 땅의 것을 구하는 것이 탐심이며 탐심이 우상숭배입니다. 이런 우상숭배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우리의 구하는 것이 땅의 것이라면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구하면서도 무엇을 붙들고 기도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기도할 때마다 붙들고 기도한다는 그런 말씀들에 대하여 이미 앞에서 다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만 보면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악한 아비라도 자기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천부께서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이런 말씀을 가지고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위하여 자기가 좋은 것을 구합니다. 그러나 좋은 것이란 성령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자신의 기도가 죄임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이 아버지께서 주시는 좋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 말씀 중에 어느 한가지인들 우리가 이루어 낼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 하루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습니까? 항상 기뻐하였습니까?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까? 범사에 감사하였습니까? 잠시라도 기뻐하지 못하고 기도를 쉬었거나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였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을 구약이든 신약이든 누가 지켜낼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다시 본문 18절을 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가 빠진다면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말씀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고린도후서 1:20절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뜻은 얼마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아멘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다 이루어내시고 자기 백성들에게 선물을 주시는 것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도록 지금도 예수님께서 살아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까? 오늘 제목을 따라 쉬지 말고 기도하는 내용만 보겠습니다. 그동안 기도에서 보았습니다만 기도란 자기부인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살아 갈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기도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시라도 외면하시면 우리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면 과연 무엇을 쉬지 말고 구하며 살아가야 합니까? 썩는 양식을 구하지 말고 썩지 않는 양식을 쉬지 말고 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하는가 하면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다 생명나무에서 잘려졌기 때문입니다. 생명나무에서 잘려졌다는 것은 마치 포도나무의 가지가 잘려진 것과 같습니다. 우선 보기에는 푸른 잎도 보여서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가지 속에 있는 영양분이 소진되면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시들어 버립니다. 풀과 같은 것은 뿌리에서 베어짐을 당하면 저녁에 불살라 질 정도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생명의 근원에서 끊어진 줄도 모르고 그저 육신을 위하여 평생 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는 것도 순전히 세상의 죽을 목숨을 위하여 생존에 필요한 것만 쉬지 않고 구하지 정작 구하라는 생명에 대하여서는 구하지 않습니다. 이런 습관이 태어나면서 타고 났고, 또 교회 와 봐도 역시 기도가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기도가 뭔가 이상하게 여겨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보면서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들의 반응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기도하고 다른 교회도 다 그렇게 기도하니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합니다. 목사님도 장로님도 기도 많이 한다는 권사님도 저렇게 기도하니 나도 이렇게 기도하면 되겠구나 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는 언제라도 기도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구하지 않아서 문제이지 기도하기만 하면 응답하실 준비가 되어 있기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이것 또한 자기의 필요를 위한 것 외에는 달리 구할 것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생명에서 끊어져있었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참 포도나무에 접이 붙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진액을 공급받아야 살아가는 것을 기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놀거나 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도 없이 기도하여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네가 무엇을 하든지 나로부터 생명의 공급을 받아야만 살아간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참된 생명의 공급을 받으면서도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런 것을 공급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명령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가 과연 그러한지 데살로니가 전후에서 기도에 관한 말씀을 봅니다. 오늘 본문의 최소 단락이 12절부터입니다. 바울사도가 구한다고 하는 것은 이런 일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간구입니다. 오늘 본문도 이 단락에 포함이 됩니다. 그 구하는 것을 이루시는 분이 5:24절을 보시면 너희를 부르시는 분이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25절에서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사도들이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도와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신실하심이 이루어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1:11절을 봅니다. 사도들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늘 공급받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선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시는 일도 주님께서 하시기에 이것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후서 3:1-4절이 마지막 기도입니다. “봉독”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기도를 부탁합니다. 이런 내용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루시기 위하여 지금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기도하고 계십니다(시121:4, 롬8:34).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롬8:26-28).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일으키십니다. 땅에 대하여 실망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구하도록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분이 계시기에 우리에게도 쉬지 않고 기도하게 하시며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도록 조치하시는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은혜를 알고 더욱 풍성하게 알아가며 살아가도록 기도 하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