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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7:1-27 끝났도다! 2011. 12. 28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너 인자야 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땅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끝났도다 이 땅 사방의 일이 끝났도다 3 이제는 네게 끝이 이르렀나니 내가 내 진노를 네게 나타내어 네 행위를 심판하고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리라 4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네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5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볼지어다 그것이 왔도다 6 끝이 왔도다, 끝이 왔도다 끝이 너에게 왔도다 볼지어다 그것이 왔도다 7 이 땅 주민아 정한 재앙이 네게 임하도다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으니 요란한 날이요 산에서 즐거이 부르는 날이 아니로다 8 이제 내가 속히 분을 네게 쏟고 내 진노를 네게 이루어서 네 행위대로 너를 심판하여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네게 보응하되 9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때리는 이임을 네가 알리라.................... 27 왕은 애통하고 고관은 놀람을 옷 입듯 하며 주민의 손은 떨리리라 내가 그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고 그 죄악대로 그들을 심판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월요일에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한번 다녀가겠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경로당에 회비 낸 것으로 점심을 드신다고 오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발 하나님께서 빨리 데려가시도록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자신이 기도해도 되는데 아들에게 부탁한 것은 아들이 목사라서 목사가 기도하면 빨리 들어줄 줄 알고 기도를 부탁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가 예 그렇게 기도 하겠습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렇게 말했습니다.

 

화요일 라디오 뉴스에서 102세 된 할머니가 대장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하였습니다. 기네스북에 오를 전망이라고 합니다. 저의 어머니는 80세가 다 되어 가는데 끝을 맞이하고 싶다고 하고, 한 할머니는 100세가 넘었는데 더 살려고 수술을 하였다고 합니다. 왜 이럴까요? 저희 어머니는 사는 것이 괴롭고 100세가 된 할머니는 의사가 보기에도 80세 정도의 나이로 보이며 건강하다고 합니다. 결국 사람은 다시 시작을 하든지 끝이 왔으면 좋다고 하든지 간에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언약을 중심으로 시작과 끝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고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서 끝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옵니다. ‘끝났도다!’ ‘끝이 왔도다!’는 말씀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고 대명사로서 끝 날에 대하여 말하는 것 까지 하면 이 본문 전체가 끝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끝이 났다는 말씀입니까?

 

1-2절을 봅니다.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셨는데 이스라엘 땅이 끝났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땅이 끝났다는 말씀은 단지 이스라엘 지역의 땅만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땅’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아다마’입니다. 무엇이 생각나는 단어입니까? 아담입니다. 아담이 흙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땅이 끝났다는 것은 이스라엘 땅의 멸망이라기보다 이스라엘에 사는 아담들이 끝났다는 말입니다. 즉 사람들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이스라엘의 끝은 이스라엘만을 보여주는 끝이 아니라 온 세상에 대한 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에스겔이 예언하는 이스라엘의 남 유다의 예루살렘을 말하지만 약 150년 전에 북 이스라엘을 향하여 끝이 왔다고 예언한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아모스 8:1-2절입니다. “1 주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보이셨느니라 보라 여름 과일 한 광주리이니라 2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히브리말로 ‘여름 과일’이란 말과 ‘끝’이란 말의 음이 같습니다. 이 끝은 심판을 말합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아서 멸망을 하였습니다. 심판 받아 멸망한 이유는 4-14절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이 베풀어져야 할 약속의 땅에서 온갖 속임수만 가득하여 월삭과 안식일을 형식적으로 지키기는 하지만 마음은 빨리 안식일이 끝나서 장사하여 이익을 볼 마음만 가득합니다. 그것도 정상적인 상거래가 아니라 속임수가 가득합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이렇게 된 것은 영적인 기근으로 인하여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함에도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모스 5:18-27절입니다. “봉독” 여호와 날을 기다렸는데 그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모스 8장에서도 보았습니다만 5장에서도 나옵니다.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하면서 그 안에는 우상이 가득한데도 그들은 여호와의 날을 구원의 날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호와의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이렇게 멸망하였듯이 남 유다도 심판을 당하고 말았다는 것이 오늘 에스겔 본문의 말씀입니다.

 

에스겔 7:3-4절을 봅니다. 네게 끝이 이르렀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네 행위를 심판하고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신다고 합니다. 그들의 행위가 우상숭배였기에 가증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심판을 유예하여 온 것은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선지자들을 보내면서 기다렸는데 끝끝내 돌아오지 않고 선지자를 핍박하고 죽이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더 이상 불쌍히 여기지 않고 행위대로 벌하심으로 여호와인줄 알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에스겔7:5-7절입니다.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그것이 왔도다! 끝이 왔도다!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으니 요란한 날이요 산에서 즐거이 부르는 날이 아니라고 합니다. 잔치로 인한 요란한 소리가 아니라 심판을 인하여 요란한 날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날을 기다렸지만 그 날이 캄캄한 심판의 날이었던 것처럼 남 유다도 여호와의 날이 구원과 잔치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종말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하지만 그 날에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라고 할 자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에스겔7:8-11절입니다. 3-4절을 반복하여 말씀합니다. 지금까지 심판을 유보하신 것은 하나님의 긍휼인데 이제는 그 긍휼을 베풀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심판하시고 때리는 분이 여호와임을 알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이제는 그 날입니다. 심판의 날 재앙의 날이 임박하였다는 말씀입니다. 몽둥이가 꽃이 피며 교만이 싹이 났다고 합니다. 포학이 일어나서 죄악의 몽둥이가 되었기에 그 무리도 그 재물도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심판하셔서 그 중의 아름다운 것도 없어지게 하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아름답다고 하는 것들이 과연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남아 있을까요?

 

에스겔 7:12-13절입니다.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다고 합니다. 무슨 날과 때입니까? 끝날 입니다. 그러므로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고 파는 자도 근심하지 말 것은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임한다고 합니다. 13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판 사람이 아직 살아 있다 하여도, 팔린 것을 얻으려고 돌아갈 수가 없을 것이니, 이 땅의 모든 무리에게 보여 준 묵시는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죄를 짓고서는, 어느 누구도 자기 목숨을 굳게 부지할 수가 없다” 물건을 사고팔아서 서로 이득을 챙긴다고 하여도 이미 하나님의 묵시가 선포되었기에 그런 것으로 기뻐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으로 자기 목숨을 부지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이 분명하게 선포되어도 인간들은 늘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온갖 준비를 다 합니다. 그런 모습을 14-22절을 보시면 크게 두 가지로 준비합니다. 14절에서는 전쟁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전쟁을 준비하여도 전쟁에 나갈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은 여호와의 진노로 임함이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진노가 임함으로 그들은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 죽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19절에서는 금과 은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도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는 다 오물이 됩니다.

 

23-27절입니다. 쇠사슬을 만들라고 합니다. 이는 피 흘리는 죄가 그 땅에 가득하고 포악이 그 성읍에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공의가 흘러넘쳐야 할 예루살렘의 성읍이 이러하였기에 이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잡혀 왔지만 아직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품고 있는 예루살렘의 성벽과 성전마저 파괴되어 잡혀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방인들이 그 성소마저 더럽히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두신 거룩한 성소마저 이방인에게 유린당하게 하실 정도로 이스라엘의 악이 찰대로 차서 그 끝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인하여 평강을 구하여도 평강이 없습니다. 환난에 환난이 더하고 소문에 소문이 더할 뿐입니다. 이때 선지자들에게 묵시를 구하여도 헛됩니다. 제사장에게 율법이 없어지고 장로들에게 책략이 없어집니다. 왕은 애통하고 고관을 놀램을 옷 입듯 하고 주민의 손은 떨리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행위대로 갚고 그 죄악대로 심판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하여 이렇게 심판하시는 분이 여호와임을 알게 하시겠다는 말씀은 요한계시록 6:12-17절의 어린 양의 진노와 연결하여 볼 수 있습니다.

 

끝이 났다고 하는데도 사람들은 사고팔면서 은과 금을 소유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자신을 살리는 줄 착각하면서 그렇게 속고 살아갑니다. 노아 홍수 때에도 사람들은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 까지 먹고 마시며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만 온 마음을 다 두었습니다. 노아가 배를 만들면서 홍수를 준비하는 것은 미친 사람의 일로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끝이 난 세상을 가지고 사람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본다고 온갖 노력들을 다 기울이지만 더욱더 망치기만 할 뿐입니다.

 

4대강 공사를 한 것이 과연 강을 살리는 것일까요? 벌써 부실공사와 온갖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더 나은 교육을 위한다고 경쟁을 시킨 교육의 현실이 아이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무역 1조 달러를 기록하였다고 자랑하지만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국방을 위한 비용의 절반만으로도 남북한의 가난한 사람들 다 먹이고도 남을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은 이미 세상이 끝이 난 것임을 알지 못하니 계속하여 눈에 보이는 세상을 전부인양 여기며 전쟁을 준비하며 은금을 쌓아가며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줍니다.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남 유다가 멸망하였습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로마에 의하여 또 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때 사람의 손에 의하지 않는 나라가 이미 2천 년 전에 세워졌습니다. 이 나라는 사람의 손으로 세울 수도 없고 사람의 손으로 망하게 할 수도 없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 곧 아들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어떻게 이루어내신 것입니까?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으로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 다 이루심은 세상의 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은 종말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령은 종말의 영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세상의 끝이 온줄 몰랐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지금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혈과 육에 속한 그런 나라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세상의 종말이 온 것을 알았습니다. 끝이 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미 끝이 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인생의 끝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담의 끝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끝을 아는 사람은 십자가에 앞에서 깨어진 자들입니다. 세상의 욕망도, 종교적인 영웅심도, 복음 안다는 교만도 다 깨어지고 부수어지는 자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 인생의 끝을 십자가에서 미리 맛 본 사람만이 십자가 안에 감추어진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7:29-31절입니다.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이것이 성령이 임하여 끝을 아는 자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까? 이미 끝이 난 것을 잡으려고 가지 마시고 이미 모든 것을 끝내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보이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