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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설교] [동영상 설교]

에스겔 32:1~32 세상에 대한 애가 2012. 8. 22

 

1 열두째 해 열두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라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로 물을 휘저어 그 강을 더럽혔도다 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많은 백성의 무리를 거느리고 내 그물을 네 위에 치고 그 그물로 너를 끌어오리로다 4 내가 너를 뭍에 버리며 들에 던져 공중의 새들이 네 위에 앉게 할 것임이여 온 땅의 짐승이 너를 먹어 배부르게 하리로다 5 내가 네 살점을 여러 산에 두며 네 시체를 여러 골짜기에 채울 것임이여 6 네 피로 네 헤엄치는 땅에 물 대듯 하여 산에 미치게 하며 그 모든 개천을 채우리로다 7 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어 별을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며 달이 빛을 내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8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둠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2 내가 바로로 하여금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게 하였으나 이제는 그가 그 모든 무리와 더불어 할례를 받지 못한 자 곧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이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부르라고 합니다. 슬픈 노래란 장송곡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왕이 심판을 받았다고 노래를 하라고 합니다. 애굽과 바로 왕에 대한 슬픈 노래인데 저는 애굽을 세상으로 보고 ‘세상에 대한 애가’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애굽이란 이스라엘 역사에서 떼어낼 수 없는 자리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로의 출발이 출애굽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때가 되어 출애굽을 시키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고대의 4대 문명발상지가 다 강을 끼고 있는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인 애굽에서 출애굽을 시키셨다는 것은 세상의 조건이 좋은 곳에 눌러 살게 하시는 것이 구원의 뜻이 아니라 그런 곳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어간 땅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입니다. 이곳은 사람의 능력으로 농사를 짓는 곳이 아니라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적절하게 내려야 농사가 되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땅에서 여호와 의지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늘 의지가 되는 것은 애굽이었습니다.

 

광야에서도 가나안 땅에서도 조금만 어려우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애굽이 살만한 곳이라는 반증이 됩니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에 잠시 산아제한정책으로 사내아이를 강에 던지라는 명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모세의 형 아론이 모세보다 세 살이 많은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 이후에도 그런 정책이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숫자가 늘어난 것입니다. 출애굽 시기쯤에 고역이 가중된 것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출애굽의 때가 되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고대에 피라미드를 만든 것은 강제노역이 아니라 가난한 백성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공공사업이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은 살만한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우면 달려가는 곳이 애굽이었습니다.

 

29장부터 시작된 애굽에 대한 심판과 멸망의 말씀이 32장까지 있다는 것은 온 세상의 심판과 멸망이 애굽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31장에서는 애굽을 거대한 나무로 비유하여 그 그늘아래 쉬려고 하는 자들이 애굽의 멸망으로 인하여 함께 무덤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애굽을 32:1~16절에서는 악어로 표현합니다만 거대한 나무가 신화적인 표현이듯이 이 악어도 거대한 신화적인 존재로 말하고 있습니다.

 

32:2~8절을 봅니다. 애굽의 바로 왕을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는데 실상은 바다 가운데 악어라고 합니다. 바다의 괴물이라는 것입니다. 이 악어가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로 물을 휘저어 강을 더럽혔다고 합니다. 이런 악어를 잡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많은 백성의 무리를 거느리고 그물을 그 위에 치고 끌어올려서 들에 던져버리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새들과 짐승이 뜯어먹을 것이며 그의 살점과 피가 골짜기와 강에 채워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 날에 하늘의 별과 해를 구름으로 가리고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그 위에 어둡게 하여 어둠을 땅에 베풀 것이라고 합니다.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에 9홉 번째 재앙이 흑암이었습니다. 이제 애굽의 멸망을 온 세상으로 확대하면 온 세상이 암흑의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9~10절입니다. 애굽과 바로 왕의 멸망 소식이 여러 나라에 전하여지면 애굽이 알지 못하던 많은 백성들의 마음이 번뇌할 것이라고 합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바벨론의 멸망에 탄식하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애굽을 의지한 자들은 번뇌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여호와께서 애굽을 칼로 치실 때에 많은 나라의 왕과 백성들이 바로 왕의 멸망으로 인하여 두려워할 것이며 바로 왕이 엎드려지는 날에 그들이 각각 자기 생명을 위하여 무시로 떨 것이라고 합니다. 애굽과 바로 왕의 패망을 이 세상의 멸망이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온 모든 사람들은 번뇌하면서 자신들의 생명을 위하여 무시로 떨 것입니다.

 

11~16절입니다. 애굽의 멸망은 바벨론을 하나님의 칼로 사용하셔서 심판하십니다. 모든 짐승을 멸하여 짐승의 굽이 그 물을 흐리지 못하게 하십니다. 애굽을 치셔서 사막이 되게 하시고 풍성한 것이 없게 할 것이며 그 가운데 모든 주민을 치심으로 이렇게 하신 분이 여호와인줄 알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러한 심판의 애굽의 교만이기도 하고 이스라엘의 의지가 되기도 하기에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이런 애굽이 심판을 받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세상의 멸망 소식이 두렵습니까? 즐거운 소식입니까?

 

요한계시록 18:19~20절입니다. “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요한계시록의 바벨론 역시 온 세상을 대표합니다. 이러한 멸망에 두 가지 반응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울며 애통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즐거워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우는 자들은 세상에 소망을 둔 사람들이고 즐거워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한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구하며 살아갑니까?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을 많이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는 세상의 신에 속아서 거저 끝없는 욕망을 향하여 달려가는 이 세상을 보면서 우리는 지금 울어야 합니다. 새 누리당 박근혜대선후보가 봉하 마을에 노전대통령 무덤에 분향하고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대통령의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대한민국의 최고의 권력입니다. 세상을 두렵게 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 비참한 죽음을 죽었습니다. 노전대통령도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정치를 하고 최고의 권력을 잡으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을 두렵게 하는 권세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권세를 말할 때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군사 독재시절에 정보부장 정도 되는 사람은 그런 권세가 있습니다. 권세를 잡은 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 기업체도 통째로 공중분해 시키기도 합니다. 세상을 두렵게 하고 싶은 욕망들이 그 마음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욕망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있습니다. 스스로 신이 되려고 선악과를 따 먹은 타락한 인생들의 본성이 이러합니다. 다만 자신이 대단한 권세를 가지지 못하여 그런 힘을 부리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곳에서는 언제나 권세를 잡으려고 합니다. 가정에서도 골목에서도 노숙자들 사이에서도 심지어 세속적이 아니라는 절과 교회에서도 이런 다툼들이 일어납니다. 그 결과가 어떨까요?

 

17~21절입니다. 애굽의 무리를 위하여 슬피 울고 그와 유명한 나라의 여자들을 구덩이에 던지라고 합니다. 애굽의 무리들과 유명한 나라들의 여자들의 아름다움이 어떤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이 구덩이에 지하에 무덤에 내려가서 할례를 받지 아니한 자들과 함께 누울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서 엎드려졌고 칼에 넘어진 것입니다. 용사 가운데에 강한 자가 그를 돕는 자와 함께 스올 가운데서 말합니다. 할례를 받지 않는 자 곧 칼에 죽임을 당한 자들이 내려와서 가만히 누웠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유명하였고 아름다웠고 용사였던 자들이 무덤에서 가만히 누웠다고 합니다.

 

22~23절입니다. 이러한 무덤에 누가 들어와 있습니까? 한때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는 자들이 지하의 무덤에 들어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늘을 신적인 영역으로 봅니다. 그리고 땅은 산자의 영역으로 봅니다. 지하는 죽은 자의 영역으로 보며 이와 함께 구덩이나 스올은 심판받는 자들이 가는 곳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지금 무덤이라고 하는 곳은 곧 스올과 연결이 되며 이곳이 결국 지옥입니다. 그런데 이런 지옥에 들어가 있는 자들이 생존 세상에서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생존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을 두렵게 한 자들이었습니다. 앗수르와 그 온 무리들입니다. 앗수라가 한때 세상을 두렵게 한 자들입니다. 거대한 제국을 이룬 나라이기에 주변의 나라들을 얼마나 두렵게 하였는지 성경에 나옵니다. 앗수르의 수도가 니느웨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요나 선지자를 보냈을 때에 요나가 가기 싫어하였습니다. 앗수르가 그들의 교만과 악으로 인하여 멸망해야 하는데 그런 나라에 회개가 일어나면 망하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요나가 다른 곳으로 도망갈 정도로 세상에서 사람들을 두렵게 한 나라입니다.

 

나훔서 3:1~4절입니다. “1 화 있을찐저 피 성이여 그 속에서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며 늑탈이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2 휙휙하는 채찍 소리, 굉굉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3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살륙 당한 떼, 큰 무더기 주검,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4 이는 마술의 주인된 아리따운 기생이 음행을 많이 함을 인함이라 그가 그 음행으로 열국을 미혹하고 그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아주 강력하고 잔인한 군사력과 권모술수의 수준을 넘어 마술이 된 외교정책들을 사용한 나라가 어디 앗수르만 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나라의 왕들과 무리들이 무덤에 와 있습니다.

 

24~25절입니다. 엘람입니다. 앗수르 동편에 거한 나라인데 역시 생존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을 두렵게 한 나라이지만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습니다.

 

26~28절입니다. 메섹과 두발입니다. 메섹과 두발은 소 아시아의 산지족들입니다. 이 나라들은 두로와 무역을 한 나라의 목록에 나옵니다. 이들도 역시 생존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을 두렵게 한 나라들입니다. 이들이 할례 받지 못한 자 가운데에 이미 엎드러진 용사와 함께 누운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이 용사들이 다 무기를 가지고 스올에 내려가서 자기의 칼을 베개로 삼았으니 그 백골이 자기의 죄악을 졌다고 합니다.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용사의 두려움이 되었던 자들의 결국이 이러합니다.

 

29~30절입니다. 에돔과 시돈 사람들입니다. 이 왕들과 고관들도 역시 강성하였기에 사람들을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부끄러움을 품고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웠고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다고 합니다.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말은 유대인 사회에서 아주 수치스러운 이방인을 말합니다. 이러한 자들이 이미 지옥에 가 있는데 이곳에 최종적으로 바로가 들어갑니다.

 

31~32절입니다. 바로가 스올에 들어가서 위로를 받았다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자기만 망한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위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역사 속에서 한때 강성한 나라가 되어 세상의 많은 나라와 사람들을 두렵게 한 사람들이 그곳에 함께 모여 있는 것입니다. 바로가 망하고 지옥으로 갈 줄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결국이 지옥인데 그 곳에 가보니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두렵게 하면서 왕으로 용사로 세상의 유명한 자로 산 자들이 그곳에 와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오늘의 생존세계라는 이 지구상의 현실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보입니까? 몽땅 지옥으로 보여야 합니다. 온 세상이 힘을 다하여 달려가는 곳이 생존세상에서 힘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 힘으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루라도 살아남으려면 공중 권세 잡은 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 항복하는 자가 세상의 권세를 가지게 됩니다. 이런 세상을 그대로 고정시키면 이것이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이런 세상을 보면서 애가를 부릅니다. 또한 이런 세상에서 날마다 주님과 별세를 의논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눅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