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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6:1~24 목숨을 건 설교 2014. 4. 16


8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9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성전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리라 하느냐 하며 그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레미야를 향하여 모여드니라,,,,,,,,,,


‘설교에 목숨을 걸어라’ 기독교계 신문에 종종 광고로 등장하는 문구입니다. 목사가 다른 일에 바쁘지 말고 설교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설교에 목숨을 걸라고 하면서 자신들이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배우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배우고 설교에 목숨을 걸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성경이 증거 하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기 위하여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라 설교에 목숨을 걸 정도로 설교를 잘 준비하여 교인들을 만족시켜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탐심이라는 우상숭배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정말 설교로 인하여 목숨의 위협을 받고 실제로 죽임 당한 말씀입니다. 도대체 어떤 설교를 하였기에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는 말을 듣게 됩니까?


본문 1~3절입니다.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이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전하되 한 마디도 감하지 말라 3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때에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서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들에게 한 마디도 감하지 말고 전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감해도 안 되지만 더하여도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왜 감하지 말고 전하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면 예레미야의 목숨이 위태롭기에 감해서 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감하지 말라고 하시니 어쩔 수 없이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혹시라도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면 여호와께서 재앙을 돌이키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장면은 예레미야 7장에서 예루살렘 성전 앞에서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모습과 같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여호와께서 예배하러 오는 자들을 예레미야 선지자가 가로막아 서서 이곳이 여호와의 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전합니다. 평소에 도둑질 하고 살인하고 간음하며 거짓맹세하고 바알에게 분향하며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하려고 오느냐고 책망합니다. 이런 짓이 우상숭배이며 여호와의 집을 도둑의 소굴로 만드는 일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예배라는 것도 이 말씀에 비추어보면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생활 속에서 주와 동행하는 예배가 없이 특정한 날과 시간과 공간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그것이 과연 예배이겠습니까? 평소에 주와 동행하지 않는 자들이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예배한다는 하는 것 자체가 예레미야 선지자가 고발한 도둑의 소굴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땅에 많은 교회라는 곳에서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한다고 말하면서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집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본문 4~6절입니다. “4 너는 그들에게 이와 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며 5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6 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주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7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이 말을 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듣더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말씀을 전합니다.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기에 이 성전이 실로같이 되고 이 성읍이 저주거리가 된다고 전하였습니다. 이 설교를 하자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듣습니다. 그런데 이 설교를 듣고 난 반응이 어떻습니까?


본문 8~9절입니다. “8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9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성전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리라 하느냐 하며 그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레미야를 향하여 모여드니라” 설교를 들은 모든 사람들이 예레미야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성전이 실로와 같이 된다는 것과 성읍이 저주거리가 된다는 말 때문입니다. 실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최초로 언약궤를 둔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런 성소가 지금은 황폐하여 졌기에 지금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과 성읍이 멸망하여 사람들의 저주거리가 된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설교를 들은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저의 설교를 듣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죽이고 싶으면 제가 제대로 설교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귀를 즐겁게 하였다면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살기 위해서라도 여러분이 저를 죽이고 싶어 하는 설교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어떤 분은 제가 악마의 모습으로도 보이더라고 하는데 참 감사한 말입니다. 자기를 좋게 하였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겠지요! 자기 속에 감추어진 것들이 드러나니 그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8~19절입니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부름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에 속하였다면 이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 우리의 뜻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이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기에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할 설교자가 오히려 이러한 것들을 정성 바쳐 많이 받자고 하는 현실입니다.


본문 10~13절입니다. “10 유다의 고관들이 이 말을 듣고 왕궁에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올라가 여호와의 성전 새 대문의 입구에 앉으매 11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고관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은 죽는 것이 합당하니 너희 귀로 들음 같이 이 성에 관하여 예언하였음이라 12 예레미야가 모든 고관과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가 들은 바 모든 말로 이 성전과 이 성을 향하여 예언하게 하셨느니라 13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예레미야를 재판하기 위하여 유다의 고관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의 결론은 예레미야가 죽어야 마땅하다고 합니다. 이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변론을 합니다.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전한 이유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여호와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 곧 성소의 파괴와 예루살렘 성의 파괴를 돌이키실 것이라고 전합니다. 예레미야의 설교를 들은 자들이 두 번이나 예레미야가 죽어야 마땅하다고 한 이유는 성전이 파괴되고 예루살렘이 멸망한다는 한 것입니다. 지금 유다의 거짓선지자들은 계속하여 이 성전과 성읍은 여호와께서 보호하시기로 언약하였다는 것입니다.


시편 132:13~18절입니다. “11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하지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왕위에 둘지라 12 네 자손이 내 언약과 그들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그들의 후손도 영원히 네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13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14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15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떡으로 그 빈민을 만족하게 하리로다 16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을 옷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이 외치리로다 17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위하여 등을 준비하였도다 18 내가 그의 원수에게는 수치를 옷 입히고 그에게는 왕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


예레미야가 죽어야 한다는 말은 이러한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2절을 보면 여호와의 언약과 교훈과 그 증거를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늘 배반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아서 종교적인 제의만 잘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원히 복을 주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이 땅의 교회들이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한다는 말과 같은 말을 듣고서 부지런히 종교적인 열심을 내었지만 이것이 멸망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설교를 듣고서 사람들이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14~15절입니다. “14 보라 나는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 의견에 좋은 대로, 옳은 대로 하려니와 15 너희는 분명히 알아라 너희가 나를 죽이면 반드시 무죄한 피를 너희 몸과 이 성과 이 성 주민에게 돌리는 것이니라 이는 여호와께서 진실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말을 너희 귀에 말하게 하셨음이라” 예레미야 선지가가 재판 석에서 예레미야를 죽여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 나는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 의견에 좋은 대로 하라고 합니다. 정말로 목숨을 건 설교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호와께서 진실로 나를 보내어 전하였기에 나를 죽이면 무죄한 피를 흘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서 고관 몇 사람과 백성의 마음이 바뀝니다. 백성들의 마음은 조금 전에 예레미야는 죽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또 죽이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론과 군중심리는 믿을 것이 못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믿음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본문 16~19절입니다. “16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일 만한 이유가 없느니라 17 그러자 그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백성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8 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시온은 밭 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19 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언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재판을 받고 나자 반응이 두 가지로 갈라집니다. 예레미야는 죽어야 마땅하다는 쪽과 죽일 이유가 없다고 하는 쪽으로 나누어집니다. 죽일 이유가 없다고 한 사람은 그 지방의 장로 몇 사람이 백성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히스기야 때에 미가의 예를 듭니다. 미가 선지자가 시온이 밭 같이 되며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고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였지만 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의 백성들이 그를 죽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구나 히스기야 왕이 미가 선지자의 선포를 듣고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간구하여 그 선언한 재앙을 돌이켜 주셨다고 하면서 예레미야를 변호합니다.


미가서 3:10~12절입니다. “10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11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2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예레미야 보다 약 백 년 전의 선지자 미가가 이렇게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였지만 그 시대의 왕과 백성들이 미가를 죽이지 않았으면 오히려 그 말씀을 듣고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본문 20~24절입니다. “20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곧 기럇여아림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라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에 경고하여 예언하매 21 여호야김 왕과 그의 모든 용사와 모든 고관이 그의 말을 듣고서 왕이 그를 죽이려 하매 우리야가 그 말을 듣고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하여 간지라 22 여호야김 왕이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되 곧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함께 애굽으로 보냈더니 23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연행하여 여호야김 왕에게로 그를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하니라 24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손이 예레미야를 도와주어 그를 백성의 손에 내어 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예레미야 당시에 예레미야와 같이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가 우리야입니다. 우리야 선지는 이곳에서만 나옵니다. 우리야 선지자를 여호야김 왕과 그의 용사와 고관들이 죽이려고 하자 두려워서 애굽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런데 여호야김이 사람을 보내어 애굽에서 연행하여 와서 결국 칼로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 그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짐으로 그를 더욱 조롱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얼마든지 이렇게 죽여 버릴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사반의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도와 그를 백성의 손에 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아직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은 아직 사명이 남았기에 죽임을 당하지 않고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야나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선포하는 것은 자기들의 목숨을 내어 놓아야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바로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이러한 선지자들에게 임하여 장차 오실 그리스도가 어떤 고난을 받을지를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8~11절입니다.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도 예레미야와 같이 성전의 문제를 말함으로 고발당합니다.


마태복음 21:12~13절입니다.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는 이 말씀이 예레미야 7:11절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성전에 종사하는 자들이 죽이려고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반응입니다.


마태복음 24:1~2절입니다.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18~20절입니다. “18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뒤엎은 후에 유대인들이 무슨 표적을 보여주겠느냐는 말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삼일 만에 일으키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하셨지만 이 당시에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성전 파괴자로 고소합니다(마26:61).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과 성전은 목숨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파괴한다는 자를 그냥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도 죽이려 하였고 우리야는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성전 파괴자로 몰려 고소를 당하고 신성모독 죄로 십자가형에 처합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하나님의 언약을 다 이루시는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서 그 영혼을 자기 백성들에게 넘겨주십니다. 그 영이 임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성전임을 증거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이 성전이라고 전합니다. 이렇게 되면 건물로 된 성전은 당연히 없어져야 하는 건물입니다. 용도가 폐기된 것입니다. 그래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로마의 장군에 의하여 파괴가 됩니다. 그런데도 건물을 성전으로 붙들고 있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스데반 집사가 설교합니다.


사도행전 6:10~15절입니다.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스데반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공격하고 예수님을 죽인 자들과 동일한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7:46~53절입니다.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이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왜 이 설교를 듣고서 돌로 쳐 죽인 것입니까? 유대인들은 성전을 하나님께서 만들라고 하셨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여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성전을 무용지물로 만든다면 그런 인간은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전과 제사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일으킨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기에 더 이상 구약의 제사는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 건물로 된 성전을 붙들고 있는 자들에게는 복음을 용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이려고 하였고 또 죽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들의 종교성의 최고 정점이 거룩한 신전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과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가야 합니다. 거저 장독대 위에 찬물 한 그릇 떠 놓고 비는 것은 자신의 정성만 바친 것이지만 거대한 신전을 짓는다는 것은 얼마나 엄청난 희생을 해야 합니까? 먹을 것 먹지 않고 입을 것 입지 않고 절약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거대한 신전을 지어 놓았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신으로부터 자신이 바친 희생과 정성보다 더 나은 것을 원하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정성의 집약체인 신전을 파괴하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결코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은 무엇에 가장 많은 정성과 시간과 물질을 쏟아 붓고 있습니까? 그것이 자녀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자신의 사업체입니까? 자기들이 세웠다는 교회당입니까? 그것을 무너뜨리는 자를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죽이려고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6:19~20절입니다.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자기의 것이라고 하나도 없는 사람이 주의 피 값으로 구속하신 성도입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하며 고집하며 사는 것이 다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며 넘어뜨리는 설교를 하는 것이 목숨을 건 설교입니다. 이것은 자기 힘으로 할 수가 없기에 주의 영으로 됩니다.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며 넘어뜨리는 그곳에서 건설하며 심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일하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