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바로듣기]  [음성설교 다운받기]

 

잠언 12:1~12 훈계를 좋아하는 자 2017. 5. 31

 

1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2 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 3 사람이 악으로서 굳게 서지 못하거니와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4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5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 6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7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8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 9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니라 10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11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12 악인은 1)불의의 이익을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본문 1절을 봅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다고 합니다. 훈계와 징계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훈계와 징계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훈계를 받고 징계를 받는 것을 좋아합니까? 저도 굉장히 훈계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어떤 지적을 받거나 책망을 받으면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고 상당히 애를 썼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착해서가 아니라 다시는 그런 지적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짐승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짐승들은 재갈이나 굴레로 길들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제어할 수가 있겠습니까?

 

시편 32:8~10절입니다. “8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9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하나님께서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훈계를 받지 않으면 무지한 말이나 노새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훈계를 받는 자는 주의 인자함으로 두르시지만 악인 곧 여호와의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많은 슬픔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잠언서와 맥락이 같습니다.

 

본문 2절입니다. 선인은 1절과 연결하면 훈계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는 은총을 받을 것입니다. 악인도 1절과 연결하면 징계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정죄함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훈계와 징계를 지금 받아들이는 것은 은총을 받는 자이지만 지금 훈계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한 사람입니까? 한 교회에서 20년 가까이 설교를 하다 보니 여러분의 다양한 반응도 접하게 됩니다. 동일한 내용의 설교인데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을 표적삼아 책망했다고 합니다. 제가 그 사람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데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교훈과 책망을 합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하는 자도 듣는 자도 다 같이 책망을 받는 시간입니다.

 

디모데후서 3:16~17절입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1)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2)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자체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것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다 이런 기능이 있습니다. 이런 성경의 말씀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을 자기 취향대로 취사선택하거나 왜곡되게 해석하고 적용합니다. 이런 모습은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한 고난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6:8절입니다.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를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는 땅으로 만들리라여호와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훈계를 받는 것입니다. 율법도 잠언도 시편도 훈계를 받으라고 합니다. 선지자들도 여호와의 훈계를 받으라고 합니다. 훈계를 받지 않으면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은 짐승과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짐승들은 사람이 도구를 사용하여 길들이면 길들여집니다. 그런데 사람은 여호와의 훈계를 싫어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인 것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왜 이렇게도 싫어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이미 선악과 이후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선악과의 유혹은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이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 조율하면서 살아가는 주체가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타락이라고 합니다. 이런 인간은 이제 누구의 간섭도 싫어합니다. 그 대상이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라고 하여도 이미 타락하였기에 그 창조주의 말도 거역합니다. 오히려 창조주 하나님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우리의 기도도 대부분 하나님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들으면 그런 기도가 죄인 줄 알기에 기도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정말 기도할 내용이 성경전부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으로 저를 교훈하시고 책망하시고 바르게 하시고 의로 교육하여 달라고 기도해야 할 내용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합니다. 악으로 세운다는 것은 하나님의 훈계를 싫어하면서 살아온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고 이 세상의 풍속을 따라 그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아온 것으로 자신의 존재기반을 삼은 사람이라면 굳게 서지 못하고 결국은 영원히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훈계를 받아들이는 의인은 그 뿌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존재기반은 자신의 삶의 철학이나 가치가 아니라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의 말씀의 바탕위에 세워지는 인생입니다.

 

시편 1:1~6절입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편 1편은 오늘 잠언 본문 특히 3절의 해석과 같은 내용입니다.

 

예레미야 17:5~8절입니다. “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잠언과 시편과 선지서를 연결만 해도 우리가 서야할 자리가 어디인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9~11절을 봅니다.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11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사람들의 마음이 만물보다 심히 거짓되고 부패하였기에 하나님의 훈계를 싫어하고 왜곡합니다. 어느 정도로 왜곡하는가 하면 자기 좋은 대로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해놓고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듣고 순종하였다고 착각합니다. 이런 모습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사람의 속을 다 아십니다.

 

마태복음 7:21~27절입니다.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민족이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분을 배척합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이미 타락한 이후의 인간이기에 여호와의 말씀을 바르게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것을 이스라엘 통하여 보여줍니다. 주의 이름으로 대단한 능력을 행하였다고 하여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이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됩니다. 구약성경이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인데도 자신들은 여호와의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오히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을 살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 위에 세워지지 않은 모든 것들은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신앙생활입니까? 그동안 내가 들어온 세상의 종교적인 경험에 근거한 신앙생활입니까? 사람들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생활 한다고 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그런 확신도 없이 다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는 이 신앙의 바탕이 영원히 무너지지 아니할 내용입니까? 무너질 내용입니까? 사람이 주체가 되어 사람에 의하여 사람을 위하여 세워진 것은 결국 다 무너져 내립니다. 그러나 성도는 예수님이 주체가 되어 예수님에 의하여 예수님을 위하여 세워지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날마다 주님의 훈계를 받음으로 흔들릴 것들이 무너져 내립니다. 이렇게 무너져 내리는 그 빈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내용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본문 4절입니다.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한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교훈을 받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를 말하다가 갑자기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여호와의 교훈을 받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의 맥락으로 아내와 남편을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로 봐도 됩니다.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남편이 아내를 데리고 나옴과 같이 하였습니다(31). 또는 이스라엘을 탯줄도 자르지 않고 버려진 여자아이로 비유합니다. 그런 아이를 살리시고 아내로 삼았더니 하는 짓이 바람피우는 일만 합니다(16). 그러므로 여인이란 이스라엘로 보고 남편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보면 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말씀을 잘 들으면 여호와의 영광이 되지만 듣지 않으면 하나님의 속이 상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5~6절입니다.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이본문의 문맥은 믿는 아내와 믿지 않는 남편의 관계를 말하고 나서 믿는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과 연결하여 보면 아내의 단장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부된 교회가 남편 된 그리스도의 말을 들으면 이것이 어진 여인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단장은 대단한 업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남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자기의 피로 의롭다고 하여주심을 믿는 것이 신부의 단장입니다. 지난주 등록하신 분이 제가 청년 때에 설교를 들은 분의 교회를 다니셨다고 합니다. 그 분의 설교는 신부가 옳은 행실로 세마포를 지어 입어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벌거벗은 모습으로 신랑을 맞이할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이 목회는 곳에서는 그 의의 옷이 수동태로 입혀주는 옷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주 오신 분의 말을 들어보면 오히려 더욱 행위로 치우치게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만약 우리의 행위로 그 옷을 마련한다면 어느 누구도 주님 앞에 설 자가 없습니다. 신부 곧 어진 신부가 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본문 5~6절입니다.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속임에 잘 넘어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정직한 자의 말보다 악인의 말에 잘 속는 것은 악인의 말은 언제나 달콤한 유혹으로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악인들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합니다. 이것은 다음 주에 말에 대한 부분과 함께 볼 것입니다만 그 사람의 입으로 나오는 말은 그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말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전체를 봐야 합니다. 외모로 나타나는 세상의 업적이 아니라 그 사람의 중심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육신적인 본성들은 정직한 자의 말보다 악인의 말에 솔깃하기 마련입니다.

 

7~8절입니다. 악인은 엎드려져서 소멸됩니다. 의인의 집은 서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시편 1편과 연결하여 보면 됩니다. 악인이 아무리 세상에서 형통하게 보여도 결국은 엎드려져 소멸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것들이 다 무너질 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악인은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지만 의인은 무너지지 아니할 그 나라와 그 의를 사모하며 살아갑니다. 결국은 칭찬을 받는 자와 멸시를 받는 자로 결론 내려집니다. 칭찬을 받는 자는 그 지혜를 따라 산 자들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굽은 자는 지혜의 말씀도 굽게 보기에 결국 멸시를 받을 것입니다.

 

본문 9절입니다. 비천하게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고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낫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실상을 버리고 허상을 추구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겉으로 외식하고 꾸미지만 속으로는 아닌 자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 2:9절입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환난과 궁핍을 당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시는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합니다. 이들은 핍박하고 비방하는 유대인들의 실상이 유대인이 아니라 사탄의 회당이라고 합니다. 실상과 허상을 구별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삶입니다.

 

요한계시록 3:17~19절입니다.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실상과 허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주의 훈계를 받아들이고 징계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의인은 자기 가축의 생명을 돌보지만 악인의 긍휼은 잔인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의 많으심을 보이시기 위하여 안식을 계명에서 짐승도 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의인이라면 가축의 생명도 돌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육되는 가축들은 인간의 탐심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짐승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말할 수 없는 탄식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루왁 커피가 비쌉니다. 그러자 사향고양이가 먹고 배설한 자연산 커피콩이 아니라 사향고양이를 우리에 가두어 커피열매만 먹게 하여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사향고양이는 십년을 넘게 사는데 사유하는 이곳에 잡혀오면 영양부실로 3~4년 만에 죽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탐욕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이 긍휼을 베푼다고 것이 잔인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다고 합니다. 농사를 짓는 시대에 부지런히 자기 땅을 경작하면 먹을 것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방탕한 것을 따르면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부지런함만 말하는 것이 성경의 목적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에 관하여 부지런함과 게으름으로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더 풍성하게 하십니다. 생명의 풍성함을 받아 누리는 자는 시편 1편의 말씀대로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마르지 않고 시절을 쫓아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악인은 불의의 이익을 탐하지만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한다고 합니다. 악인이 불의로 이익을 탐한다는 것은 불한당입니다. 불한당(不汗黨)은 땀을 흘리지 않고 이익을 가로채는 자들을 말합니다. 타락한 이후의 인생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땀을 흘리지 않고 먹고 살려고 하는 자들이 많기에 세상은 이렇게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한다고 합니다. 의인의 뿌리는 어디로 향하는 것입니까? 생명을 향하여 찾아갑니다. 우리의 뿌리가 어디에 내리고 있는지를 말씀으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뿌리 내리지 않으면 우리는 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사라질 것들을 바라보며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주의 훈계를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0:28~32절입니다.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3)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에서 삼년을 밤낮으로 눈물로 교훈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내용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피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흘러야 합니다. 사람의 땀과 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흘러야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나고 나면 외부에서만이 아니라 같은 가르침을 받은 자 안에서도 어그러진 말을 하는 자들이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삼년이나 밤낮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무엇을 훈계하였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고 자랑한 것입니다. 바울이 떠나면서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한다고 합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며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 그 십자가의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