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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6:25~33 모든 결정은 주님께! 2017. 10. 18

 

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26 고되게 일하는 자는 식욕으로 말미암아 애쓰나니 이는 그의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 27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같은 것이 있느니라 28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29 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좋지 아니한 길로 인도하느니라 30 눈짓을 하는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 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33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얼마 전에 신세대들이 사용하는 답정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답은 정해졌으니 너는 그 답에 맞는 대답만 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정해진 답에 대한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이런 말들은 이미 내가 신이 되어 있다는 반증이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다 자신의 뜻대로 굴복시키겠다는 타락한 인간의지의 발산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33절 말씀을 보면 모든 일의 작정 또는 결정은 여호와께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의 결정과 하나님의 결정은 충돌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사람의 계획으로 결정하여 가는 길이 바르게 보일지라도 필경은 사망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결정이 진리가 아닙니다.

 

민주주의(民主主義)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기에 모든 권력도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국민의 다수가 원하면 그것이 진리이든 진리가 아니든 간에 결정합니다. 전제군주(專制君主)시대는 군주가 마음대로 행하는 정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의 대다수의 나라가 민주주의정치를 합니다. 심지어 북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주인 된 세상에서 나오는 절대다수의 결정은 진리가 아니라도 진리로 여기며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자신의 결정이 소수결정이라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테러를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언제나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무엇이 정말로 바른 길입니까?

 

본문 25절부터 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눈에는 바르게 보이는 길이라도 마침내 사망에 이르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는 무엇이 바른 길입니까? 제가 어려서 학교에서 배운 바른 길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 사람의 바른 길이라고 배웠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도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충효사상과 하나님의 영광이 충동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도 가지고 있는 바른 길이라는 것을 흔들어버리기 위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7:13~14절입니다.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이 많습니까? 생명의 길로 가는 사람이 많습니까?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자신들이 멸망의 길로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길로 간다고 여깁니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가기 때문입니다. 설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는데 이것이 틀린 길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은 수가 모이는 곳에서는 자기들이 진리의 길이기에 이렇게 사람이 적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가치 판단에 따른 길이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주님께 달린 것입니다.

 

로마서 11:36절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골로새서 1:16~17절입니다.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말씀입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갑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에게서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모든 것들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모든 하나님의 일을 바르게 이루어내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다 틀렸고 예수님만이 바른 길로 가신 분이심을 믿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믿지 않고 행하는 모든 것이 죄가 됩니다.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다 옳은 길이라고 하여도 바른 길이 아닙니다.

 

본문 26절입니다. 고되게 일하는 자는 식욕으로 말미암아 애쓰나니 이는 그의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라고 합니다. 다른 번역으로 보면 허기진 배가 일하게 만들고 그 입이 사람을 몰아세운다고 합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입으로 무엇을 먹어야합니다. 이러한 욕구가 사람으로 하여금 일하게 만듭니다. 만약 사람이 배가 고프지 않다면 먹을 것을 위하여 일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식욕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네페쉬입니다. 이 단어는 식욕으로 번역이 되었지만 다른 용례를 살펴보면 목구멍, , 욕구, 영혼, 생명, 사람으로 사용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갈망하는 인간을 말합니다. 인간이 갈망하기에 행동을 합니다만 그 갈망이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구약에서 네페쉬755회나 나옵니다만 잠언에서만 몇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잠언 7:23절에서는 음녀의 유혹에 끌려가는 소년이 새가 그물에 걸려들 듯이 그 생명(네페쉬)을 잃어버릴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적유혹의 갈망에 넘어가면 생명을 잃게 된다는 말입니다. 16:24절에서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그 마음(네페쉬)에 달다고 합니다. 19:8절에는 지혜를 사랑하는 자는 그 영혼(네페쉬)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7:7절입니다.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여기서 네페쉬배부른 자입니다. 배가 부르면 꿀이라도 싫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채워지면 그 욕망하는 것도 싫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암몬이 배다른 누이동생 다말을 사모하여 상사병이 들었지만 자기 욕망을 채우고 나니 미워하는 마음이 처음 사모한 마음보다 더 미워하여 쫓아내버리는 것이 인간의 욕망과 충족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갈망들이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데 무엇을 위한 갈망이냐는 것입니다.

 

전도서 6:7절을 봅니다.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여기서 식욕이라는 말이 네페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기의 식욕을 위하여 열심히 수고하지만 그러나 그 수고로움이 자기의 입을 다 채울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갈망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기본적인 갈망과 욕구들인 식욕과 성욕과 수면욕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것들도 아무리 채워도 사실 만족이 없습니다. 이런 갈망만이 아니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이 갈망은 끝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만족은 오직 말씀이시면 만유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아모스 8:11~13절입니다.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무엇에 대한 기근입니까?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이 없는 기근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을 얼마나 경험해 보았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못 살겠다는 그런 갈망이 일어나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갈망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성상 우리의 영원하지 않을 것에 대한 것들만 욕망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시며 우리는 다 멸망의 길로 가는 자들이기에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그 욕망의 길로 가게 버려두시지 않고 인생의 전복(顚覆)을 일으키셔서 생명의 말씀이 들리게 하십니다.

 

본문 27~30절입니다. 이 단락은 악인에 관한 내용입니다. 생명의 길을 가지 않고 자기 욕망에 끌려 사는 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불량한 자들이며, 패역한 자들이며, 강포한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악을 꾀하고 그 입술에 맹렬한 불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합니다. 말쟁이란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자는 칭찬보다 흉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한 벗을 이간질 시킵니다. 이런 자들은 이웃을 꾀어 좋지 않은 길로 인도합니다. 눈짓을 하고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필경이 사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 이런 길로 가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이 악한 자들의 행태를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켜보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의 이야기로 들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악인의 모습이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의 말로만 들린다면 그 사람은 아직 주께로 돌이킨 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돌이켜 주신 자들은 이러한 악인의 모습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자들은 비로소 자신의 본성적인 갈망이 멸망의 길임을 알게 되기에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의지하게 됩니다.

 

31절입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며 공의로운 길에서 얻는다고 합니다. 백발은 단지 머리색깔이 희다는 의미가 아니라 장수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장수는 공의로운 길에서 얻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의롭게 산 사람이 오히려 일찍 죽임 당하는 것이 성경의 기록입니다. 그러면 백발이 공의로운 길에서 얻는 영화의 면류관이라는 말씀은 성경의 일반적인 진술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의롭게 살면 장수한다는 말씀이지만 나이가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그것은 아무리 백발이 되어도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백발이라는 나이의 유무보다 지혜의 유무가 중요합니다.

 

호세아 7:8~11절입니다. “8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9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 10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들이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11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 호세아가 전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러 민족 가운데 혼합되었다고 합니다. 혼합된 것을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고 합니다. 전병(煎餠)을 뒤집지 않으면 밑은 타고 위는 생것이라서 도저히 먹을 수 없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이 백발이 되어도 여호와를 찾는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백발이 무성하면 나이가 많은 자들입니다. 이들이 여호와의 징계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애굽이나 앗수를 의지하기에 지혜가 없다고 합니다. 백발이라고 해서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집이 더 세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유무가 영광의 면류관의 유무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32절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인간이 최초로 분노한 사건은 가인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생의 제물을 받아주시고 자신의 것은 받아주시지 않으니 그것에 분노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의 것을 받아 주시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받아주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용납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의 제사를 통하여 믿음의 제사가 무엇인지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히브리서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 분노로 인한 죄가 도사리고 있음을 가인에게 알려주셨지만 가인은 그 죄를 다르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자기 자신이 주님 앞에서 어떤 죄인인지 알게 되는 자들이 분노가 다스려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말씀에 의하여 자신의 실상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런 자는 들었던 돌을 내려놓게 됩니다.

 

본문 33절입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아직도 제비뽑기를 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제사장이 우림과 둠밈 이라는 판결법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방법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만 어떤 일의 결정을 할 때에 제사장이 제비를 뽑는 방식이지만 그 결정은 하나님께서 한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27:21절입니다.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로써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따라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모세가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면서 우림의 판결로서 여호와께 물으라고 합니다. 제사장이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여 가부간에 결정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교부들의 성경주해에서 본문 33절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제비는 옷 폭에 던져지지만 결정은 온전히 주님에게서만 나온다.” 여기서 옷 폭에 던져진다는 것은 아래까지 내려뜨려지는 옷을 입고 앉으면 한복의 치마폭과 같은 부분이 생기는데 그 위에 제비를 던졌다는 설명을 합니다. 곧 제사장들의 겉 옷 위에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여 결정을 정하는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확대하면 어떤 계획과 뜻을 사람이 세우더라도 그 결정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잠언 19:21절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사람의 마음에 수많은 계획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설 것입니다. 월요일 서울에 갔다가 화요일 내려왔습니다. 서울 시내가 얼마나 막히는지 내비게이션이 다른 길로 인도하여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오는 길에 하늘에 비행기가 오색 연기를 날리며 편대비행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녁에 뉴스를 보니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작은 한 나라의 일도 무슨 일이 일어지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한 나라의 일보다 더 많은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우리 안에 일어납니다. 그러나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섭니다.

 

이사야 40:6~8절입니다.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외쳐야 할 내용이 이 말씀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며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한번 불어버리면 풀이 마르고 꽃이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이 실로 풀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풀이라는 말씀입니다.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듭니다. 우리도 다 이렇게 시들고 말라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의 수많은 계획과 뜻들이 무너져도 괜찮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우리 안에 세워지려면 우리의 뜻과 계획이 무너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결정은 주님이 하신다는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일을 우리와 의논하지 않으시고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23~25절입니다.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고 계획하였던 것들은 결코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원한 것은 썩어질 세상의 영광이었습니다. 내세를 생각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나의 영광이 영속되기를 원한 것이지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의 영광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명에 관한 모든 결정을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과 성령께서 하신 것입니다. 만약 이런 결정을 우리에게 맡기셨다면 우리는 다 멸망의 길로만 달려갈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결정을 주님께서 하신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복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우리에게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