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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2:7~16 여호와의 눈 2018. 2. 28

 

7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8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9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10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11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12 여호와의 눈은 지식 있는 사람을 지키시나 사악한 사람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 13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14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 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16 이익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합니다. 성경으로 계시하신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다 살펴보십니다. 우리마음의 생각과 뜻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고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십니다. 자기 언약에 신실하시고 그 언약을 이루시는 일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여호와의 눈입니다. 여호와께서 어떻게 다 보시는지 시편을 봅니다.

 

시편 139:1~19절입니다.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1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이 말씀을 보고 불안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안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안한 사람은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면 불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존재론적으로 죄인일 줄 아는 사람은 안심하게 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선과 악을 판단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것은 선한 것이 있고 어떤 것은 악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의 행위를 저울질 하면서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여 자신이 전적인 죄인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의지하게 되기에 안심합니다.

 

본문 7절입니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된다고 합니다. 이 본문의 어떤 주석을 보니 빚지지 말고 살라고 합니다. 사람이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빚을 지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음에도 구조적으로 빚을 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땅에서는 율법으로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자가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된다고 하면 이것은 이미 율법을 어긴 나라가 됩니다. 율법으로 아무리 명문화 시켜 놓아도 그 법을 이루어낼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이 책망을 하여도 율법을 어기는 그들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선포를 함께 합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이런 문제도 해결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사야 61:1~3절입니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1)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약속대로 메시아가 왔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이 말씀이 오늘날 너희에게 성취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고향사람이기에 믿지를 않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엘리야 시대 때에 이스라엘의 수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이방 땅의 사렙다 과부만 돌봄을 받았고, 엘리사 시대 때에 이스라엘의 수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지만 수리아 사람 나아만이 고침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시자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선민의식으로 무장한 자들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은 걸림돌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이 복음이 들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란 경제적인 가난한 자도 포함이 되지만 자기 의가 없는 죄인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이 복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신 것입니까?

 

고린도후서 8:9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세상의 나라는 부자가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을 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부요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 내용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탕감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은혜를 입은 자들은 가난한 형제를 위하여 연보함으로 평균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많이 거둔 자도 남은 것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다는 만나 사건의 연장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8절입니다.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고 합니다. 악을 뿌린다는 것은 바로 앞의 말씀과 연결하여 보면 부자가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고 착취하는 것도 악을 뿌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모스의 말씀을 보면 부자들이 얼마나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지 잘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악을 뿌리는 자는 결국 재앙을 거두게 됩니다. 그 악한 자의 기세들이 쇠하여질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말라고 합니다.

 

본문 9절입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준다고 합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란 선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양식을 준다고 합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양식을 줌으로 더 많은 복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가나한 자들에게 양식을 주는 그 선한 눈을 가진 것 자체가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베풀 수 있는 것이 복을 받았고 그 복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고린도후서에서 본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악한 눈도 있습니다. 잠언 23:6절입니다. “6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지어다 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8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악한 눈을 가진 자와는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언 28:22절입니다.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우리의 눈은 선한 눈입니까? 악한 눈입니까?

 

본문 10절입니다.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친다고 합니다. 거만한 자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은 모든 인간이 다 거만하다고 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인간이 거만합니다. 사탄의 유혹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거만해지라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이론들이 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입니다. 세상에서 거만한 자란 무언가 있는 자들입니다. 재산, 권력, 지식, 지위를 가지면 가질수록 거만해 집니다. 이러한 자들이 모였기에 다툼과 싸움과 수욕이 그쳐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요란하고 교회도 요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거만한 자를 쫓아내실 때가옵니다. 거만한 자가 다 쫓겨난 곳이 천국입니다.

 

이사야 2:11~12, 17~22절입니다. “11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12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17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18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19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20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21 암혈과 험악한 바위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이 말씀의 성취가 어디서 일어납니까?

 

요한계시록 6:15~17절입니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 심판의 날이 어린 양의 진노의 날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역사 속에서 자신의 거만함이 깨어집니다. 그렇게 되어야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된다고 합니다.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지금까지 살펴본 말씀만 보더라도 우리가 어떠한 죄인인지를 알고 그런 죄인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실 것을 충분하게 보았습니다. 이러한 말씀 앞에서 죄를 깨닫게 되었다면 무엇을 구하여야 하겠습니까?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여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이 정결하게 된다면 그 입술에는 덕이 나올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영원하신 임금 곧 그리스도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15:15).

 

본문 12절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지식 있는 사람을 지키시나 사악한 사람의 말은 패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눈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여호와의 눈으로 모든 것을 살펴보신다는 시각으로 오늘 본문을 살펴본 것입니다. 여호와의 눈이 지식 있는 사람을 지키신다고 되어 있지만 여기서 사람이라는 단어는 없는 단어인데 뜻을 보충하려고 넣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눈은 지식을 지키신다고 보면 됩니다. 여호와의 눈이 지식을 지키신다는 말은 여호와의 말이 지식의 말씀이시기에 단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성취가 되도록 지켜내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사악한 사람의 말은 패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야 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그 지식의 말씀을 지키시기에 그 말씀이 담긴 자를 또한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지식의 말씀이 담기지 않은 자들 곧 사악한 자들의 말은 패하게 하실 것입니다.

 

본문 13절입니다.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고 합니다. 게으른 자는 온갖 핑계를 다 됩니다. 사자가 사람들이 왕래하는 길거리에 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핑계를 대면서 게으름을 부리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세상의 게으름을 부리는 자들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게으름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일에 얼마나 게으른지 아십니까? 아이들이 폰으로 게임을 몇 시간씩 하면서도 성경 한 장을 제대로 읽지 않습니다. 이것은 부모들이 그런 본을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텔레비전이나 폰으로 몇 시간 보내면서 성경을 보지 않는데 아이들이 성경을 보겠습니까? 그러면서 성경을 읽으라고 하면 온갖 핑계를 다 됩니다. 무엇에 부지런하고 무엇에 게으른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진다고 합니다. 음녀란 낯선 여인, 창녀, 이방 종교 신전의 여 사제들 이기도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입은 깊은 함정이라고 합니다. 미디안 여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혹하여 그들의 우상숭배에 참여하게 한 것처럼 그러한 미혹에 빠지는 것은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들입니다. 그리하여 그 진노를 멈춘 사건은 여호와의 질투로 질투한 비느하스로 인하여 재앙이 멈추어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2절입니다.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하나님의 진노를 당한 자들이 이런 미혹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고 합니다. 잠언과 성경은 아이를 징계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이의 마음에도 미련한 것이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합니다(6:5,8:21)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이 어려서부터 습관입니다(22:21). 그런데 아이의 마음에만 미련한 것이 얽힌 것이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징계가 필수입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으로 책망하십니다. 인생채찍과 사람 막대기로도 책망하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징계는 아들이기에 받는 것입니다(12).

 

본문 16절입니다. 이익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라고 합니다. 이익을 얻으려고 가나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이익을 얻으려고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 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이익을 얻기 위하여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이익을 얻기 위하여 부자에게 뇌물을 주는 자들이 부자로 잘 살아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조물주보다 높은 사람이 건물주라는 말을 하는 세상입니다. 건물주가 세를 올리는데 조물주에게 기도해도 해결이 안 되니 이런 자조 섞인 말을 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경기도의 어느 목사는 교인들에게 우리교인들이라도 전세금을 올리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우리가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일이 가난한 자를 학대하거나 더 큰 이익을 얻으려고 부자에게 무엇을 주는 일을 여호와께서 어떻게 보실 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여호와의 눈길을 의식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다시 봅니다. 여호와의 눈은 지식을 지키십니다. 자신의 말씀을 지키신다는 것은 자신의 말씀을 이루어내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영원하신 분의 말씀은 말씀하시는 순간 성취라고 보셔도 됩니다. 그러나 이 역사 속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인식되기에 아직 여호와의 말씀이 다 성취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 중에 성취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과 돌아올 것과 그 과정에서 제국들이 무너질 것과 그리스도의 오심이 다 성취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자기 백성의 구원과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과 재림까지 묵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출애굽시에 어린 양의 피 아래 있는 자들을 구원하셨듯이, 이 세상의 마지막 심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아래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이미 심판을 받은 세상입니다. 또한 여호와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이 임한 자가 보는 시각입니다.

 

갈라디아서 6:14절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새 번역으로 봅니다.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죽은 세상 속에서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볼 때에 세상이 죽은 세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이 나를 볼 때에 죽은 자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여호와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이 세상과 그 약속의 나라를 보며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