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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5:13-18 병 낫기를 서로 기도하라 2011. 9. 21

 

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여러분 중에 지금 두통 치통, 생리통이 심한분이 계신다면 설교가 귀에 들어오겠습니까? 내 몸이 고통스러우면 아무른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내 고통이 멈추어진다면 그것만이 복음으로 들리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끊어져 있기에 생로병사가 다 고해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이런 고통의 윤회를 끊어버리는 것이 해탈이라고 합니다. 이런 본심이 우리 안에도 있기에 예수를 믿으면 나의 고통이나 환난을 없애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고통 받는 곳에 가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바탕이 있기에 이 지구가 멸망 받을 때 까지 종교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미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로 태어난 우리 인생의 관심사는 모든 세상만사를 나를 중심으로 보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인간이 성경을 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온갖 병자와 환자를 고쳐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병을 고칩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도 예수님을 믿으면 병을 고침 받고 또 기도하면 병이 고침을 받겠구나! 이런 생각이 깔려 있기에 오늘의 분문을 보면 우리도 기도하면 병이 낫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돈을 주고서 성령의 은사를 사려고 한 시몬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런 욕망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 저주받을 모습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도 성경을 보면서 이런 욕망들이 얼마나 많이 나오겠습니까? 목사가 기도를 하면 병자가 좀 나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에 어느 집사님이 초 신자인데 두통이 심하여 뇌 시술을 해야 하는데 미리 좀 기도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였는데 나중에 듣기로 기도 받고 나서 두통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며칠 있다가 혈관 속으로 시술하는 치료를 병원에서 받았는데, 시술을 하기 전에 당신은 시술하지 않아도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이런 진단이 나오기를 은근히 바라지 않았겠습니까? 만약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저의 종이 되겠지요! 그런데 저도 두통으로 가끔 진통제를 먹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타나는 수많은 치유의 기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 되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새로운 나라를 시작하시겠다는 새 창조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도들도 병 고침의 역사들이 나타난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임을 증거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도 그런 치유가 일어나면 예수님을 더 잘 믿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로 예수님을 잘 믿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서 죽은 자가 살아나온다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사도들로부터 병 고침을 받은 자들도 다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질병과 사망은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의 생명, 곧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어 있기에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몸을 입고 사는 한 이 세상에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하나님의 합당한 조치입니다. 이런 인생들에게 근원적인 문제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죄 사함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가장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인간의 애씀이나 노력으로 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육에서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서 영으로 넘어가는 길이 없습니다. 오직 생명 쪽에서 일방적으로 생명의 선물을 주셔야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로 예수님을 믿어도 역시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이것은 우리의 죄의 몸이 멸하여 새로운 몸을 입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몸이 병들면 이제 영원한 새 몸으로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구나!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13-14절을 봅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라고 합니다. 즐거워하는 자가 있다면 찬송하라고 합니다. 우선 이 두 말씀을 먼저 봅니다. 고난당한다는 것은 믿는 자에게 반드시 오는 것이라고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오지도 않을 고난들이 올 때에 기도하라고 합니다. 기도하면 믿음으로 인하여 오는 환난과 고난과 시련들은 인내와 연단과 소망을 이루어내게 하심을 보여주시고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즐거워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으로 자기 기쁨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찬양하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즐거운 일이 있으면 자기가 잘나서 그런 일이 일어난 줄 알고 자기에게 찬양을 돌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무슨 잔치라는 것이 전부 자기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돌잔치, 생일잔치, 이사집들이, 합격, 승진, 무슨 일이든지 자기를 축하할만한 일들은 전부 자기 찬양입니다. 자기를 찬양하는 일에는 수백만 원이 들어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아니 우리 평생의 삶이 자기찬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를 찬송한다는 것은 이런 것과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자기를 치장하는 것에 즐거워하여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골로새서 3:1-17절을 봅니다. “봉독” 우리가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땅에 속한 것은 악한 정욕과 탐심이라고 합니다. 제가 방금 예를 들었던 인간사에 일어나는 즐거운 잔치라고 하는 것들이 다 사람들 자기 즐거움입니다. 그러면 어떤 찬양을 해야 합니까? 16-17절입니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이런 내용이 찬송이며 감사합니다.

 

고난당하는 자는 기도하고 즐거운 자는 찬송하라는 말씀이 이만큼 길어졌습니다. 이제 14-16절을 봅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신다고 합니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함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기도하라고 합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이 보면 어떻게 보입니까? 장로님들이 환자에게 가서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로 죄를 고백하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는지 두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하나는 부산에서 있어든 일입니다. 서울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담임목사로 왔습니다. 그런데 심방을 갈 때마다 기름을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식용유가 없으면 참기름이라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심방 받는 사람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문제가 되어 사임을 하면서 기독신문에 사과문을 실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제가 부목사 때 담임목사가 가라고 해서 훈련한 예수 전도협회에서 공개적인 죄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스파르타식 전도훈련인데 그 과정 중에 하나가 개인적인 기도 짝을 통하여 죄를 고백하게 하고 또 공개적으로도 고백하게 합니다. 온갖 교회 안의 죄악들이 다 공개됩니다. 다 이런 말씀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 말씀이 방금 예를 든 것처럼 이렇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어야 합니까? 성당에서는 지금도 기름을 바르고 기도를 합니다. 그것을 환자의 임종 시에 종부성사라고 하여 기름을 바르고 기도합니다. 요즈음은 병자성사라고 합니다. 환자나 죽은 자의 눈, 코, 귀, 손, 발에 기름을 바르고 기도해 주는 의식으로서, 이러한 신부의 종부성사로 일평생 그 지체로 지은 죄를 용서해주는 의식입니다. 이것도 역시 야고보서의 이 말씀을 가지고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라는 말씀대로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14절의 “병든 자(아스데네이)”에 대하여 복음서에서 육체적인 질병에 대하여 말하지만 문자적으로는 “연약한”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사도행전과 서신서 에서는 연약한 믿음이나 연약한 양심을 지칭하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행20:35, 롬6:19, 고전 8:9-12). 야고보서 5:15절의 “병든 자(캄논타)”라는 단어도 문자적으로는 “지친”이라는 뜻인데 히브리서 12:3절에서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여기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자는 말씀이 앞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의 병든 자는 육체적인 질병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에 지친 자들을 말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라고 한 것은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데살로니가 전서 5:14절을 봅니다. “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육체적인 질병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구약의 제사장이 거룩한 물건이나 사람을 구별하기 위하여 기름을 바르는 의식적인 행위가 아니라 손님을 접대하기 위하여 기름을 머리에 붓는 행위와 같은 기름부음입니다. 이렇게 기름을 바르고 기도함으로 그들의 심신의 활력을 회복시켜준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라는 것은 믿음으로 드려진 장로들의 기도는 낙심하고 영적으로 지쳐있는 자들을 구원한다는 것은 주께서 일으키실 것이라는 말씀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근원적인 질병, 그리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고 영원한 심판에 들어가는 질병은 바로 죄입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낙심 중에 지치고 연약하게 된 자들이 장로들을 청하여 오라고 하는 것은 의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회복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16절을 보면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도 함부로 죄를 고백하여 오히려 아니함만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죄를 고백할 정도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허물을 덮어줄 수 있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이에서 서로 죄를 고하며 기도를 요청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서로 죄를 고하라고 하였기에 장로들과 연약한 자들 사이의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자신들의 죄를 고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자신은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신이 가장 큰 죄인임이 드러납니다. 죄인 중의 괴수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런 자들이 서로 죄를 고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입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용서를 입은 자로서 또한 용서하는 일이 허다한 죄를 덮은 것이며 이것이 사랑을 구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16절에서 병이 낫기를 기도하라고 하는 단어도 육체의 치유가 아니라 영혼의 치유입니다. 헬라어로 ‘이아데테’입니다. 이 단어가 쓰인 곳을 몇 곳만 봅니다. 마13:15절입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은 마음이 고침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병에 걸린 자인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으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이런 근원적인 병이 고침을 받습니다.

 

히브리서 12:12-13절입니다.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방금 앞에서도 보았습니다만 히브리서의 고침이나 여기의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과 저는 다리는 다 영적인 연약함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다 영적인 질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질병보다 더 근원적이고 심각한 질병이 영적인 질병입니다. 오히려 육체적인 질병이 있는 사람은 주를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급한 기도란 영적인 건강을 위한 기도입니다. 사도바울도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하기를 기도한 것을 에베소서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베드로전서 2:24-25절입니다.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14절부터 병 낫기를 기도하라는 말씀의 결론이 16절입니다. 그러면 이 병이란 결국 영적인 병입니다. 주께로 돌아와서 고침을 받아야 하는 육체적인 질병이 아니라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는 치유입니다. 이런 기도는 믿음의 기도이며 의인의 간구라고 합니다. 믿음과 의라는 것은 인간에게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기에 동일하게 이런 믿음과 의라는 선물을 받은 자는 이런 기도를 하게 됩니다.

 

방금 보았던 히브리서 12장의 말씀도 하나님의 징계를 통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말씀의 결론이 바로 고침을 받는 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기도를 한 사람의 예로 엘리야를 말합니다. 엘리야도 우리와 성정이 같다고 한 것은 그도 연약한 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향한 열심을 내었다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 죽었으면 좋겠다고 낙심하여 로뎀나무 그늘 아래서 죽기를 청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니 삼년 육 개월 비가 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하니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다고 합니다.

 

엘리야의 이런 기도도 결국은 배반한 이스라엘로 하여금 주께로 돌이키게 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로 하여금 비가 오지 않도록 기도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하면 우상을 숭배하면 하늘이 놋이 되어 비가 내리지 않아야 하는데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셔서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데도 비를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면 이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바알이라는 풍요의 신과 아세라라는 쾌락의 신을 섬기기에 비가 내리지 않아야 된다고 언약대로 기도하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게 하시겠다고 하시자 그 전에 처리하여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대결하여 그들을 처치하는 일입니다. 이러고 나서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비가 올 때 까지 기도하는 것은 역시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기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언약하신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자를 처리하고 나자 비를 내리심으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고침을 보여주기 위한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땅을 위하여 기도하신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이 땅에 흉년이 들고, 경제가 어려움을 당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기도를 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계속하여 번영만을 구합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이스라엘처럼 다루지 않습니다. 언약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특정 지역이나 혈통의 나라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값 주고 산 백성들만 주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하나님의 자기 백성만을 다루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는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바알과 아세라, 풍요와 쾌락의 신을 섬기다가 영원한 멸망으로 갈 것이기에 버려둡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들에게는 징계를 하십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하고 병이 듭니다. 이 병이란 육체적이 질병도 됩니다만 근원적으로는 영적인 질병입니다. 주께로 돌아가야 할 자가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이 병입니다. 이 보다 더한 심각한 병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데 우리는 예수님보다 바알과 아세라를 사랑하고 있으니 이런 자리에서 고쳐달라고 정말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