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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6:9-11 신원(伸寃) -마지막 기도  2011. 10. 19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2009년 11월 18일 시작한 기도라는 주제의 설교를 오늘 마칩니다. 약 만 2년이 걸렸습니다. 성경에서 기도에 관한 내용들은 사람들의 평소에 자기 소원성취의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기도하고 언약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소원과 간구가 있습니다. 때로는 응답을 하시기고 하시고 응답을 하지 않으시기도 하십니다. 기도하여 응답받았다고 좋아할 것이 아님을 보았습니다. 또 응답 되지 않았다고 좋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자기의 뜻을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기도의 결론이 어떠한지를 보려고 합니다.

 

계시록 6:9절입니다. 다섯째 인을 뗍니다. 다섯째 인을 떼보니 이 세상이 왜 심판을 받아야 하고 종말이 와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였다는 이유로 죽임당한 영혼들이 제단아래에서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부르짖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거룩하시고 참되신 통치자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 까지 하시렵니까? 자기들의 피를 갚아 달라고 간구합니다. 전의 성경에서는 신원하여 달라고 합니다. 신원(伸寃)이란 원통함을 풀어달라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니 심판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땅에 거하는 자들이란 하늘에 속한 자들과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사람들이 다 똑같이 땅에서 발을 딛고 살지만 어떤 사람들은 땅에 속한 사람들이고 어떤 사람들은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사람들은 땅의 것만 생각합니다. 하늘에서 일곱 인이 떼어지든지 말든지 그런 것은 관심사가 안 됩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일곱 인이 떼어지는 것을 남의 이야기로 듣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로 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정말 말씀에 관심이 있습니까? 2009년 4월에 요한계시록에서 이 본문을 설교할 때에 공지영작가의 도가니라는 인터넷 소설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의 복을 좋아하고 성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런 때에는 교회에서조차 세상의 심판을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도가니의 내용은 자애학원이라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비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사장이나 원장이 겉으로는 국가에서 여러 가지 표창을 받고 사회에서 헌신적인 교육자로 대접을 받습니다. 아주 큰 교회에서는 장로입니다. 그런데 온갖 비리를 행하고 아동들을 성추행하고 그런 것을 견디다 못하여 자살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청각 장애인이기에 사고사로 처리되는 것입니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내용을 보면 진실이 언제나 나약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다 한통속이 되어서 진실을 밝히려는 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 것입니다. 권세와 금력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끼리 다 얽혀있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주장들이 묻혀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수의 대중들조차 그들의 알량한 혜택을 받고 살기에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바른 소리 하는 목사는 쫒아내어 버리고 그들을 옹호하는 목사가 자기 아들에게 세습을 시키기 위하여 데려온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2년이 지나서 영화로 만들어졌고 그 당시의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 여론의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연약한 자들, 거부할 수 없는 장애인들의 소리가 이렇게 온 세상에 울려 퍼지게 되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피해자로 있고 가해자들은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드러나는 것은 빙상의 일각입니다. 더 거대하고 추악하고 더러운 음모들이 이 땅이 멸망당하는 그날까지 도도하게 흘러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오시는 그 날에는 모든 것이 다 밝히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이런 모습은 이스라엘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하였지만 언제나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한 선지자들은 핍박받고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미 창세기에서 아벨의 피가 땅에 뿌려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아주신 아벨을 형인 가인이 죽여 버린 것입니다. 그것으로 가인은 끝인 줄 알았습니다. 이 세상은 죽여 버리면 끝이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피가 하늘로 향하여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는 자를 이 세상은 가만히 두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신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신은 절대로 하늘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8-19절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세상에 속한 사람과 예수님의 택함을 입어 예수님께 속한 자가 대비됩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세상이 사랑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속한 사람을 세상의 미움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을 확인해 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해 보면 압니다. 여러분들과 평소에 함께 잘 지내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이 죄로 인하여 멸망한다는 것을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죄에 대하여서도 말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좋은 대로 사는 것이 죄라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자기 마음에 좋은 대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 죄라고 하면 반드시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나조차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고 있으니 이런 증거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를 인한 고난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이 땅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를 인하여 고난당하고 핍박당하고 순교하는 자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또한 우리들이 그러한 쪽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아주 사소한 일로 묻혀버리고 잊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계속하여 우리의 피를 왜 갚아주지 아니하느냐고 신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대답이 들립니다.

 

11절입니다.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고 하십니다. 흰 두루마기를 주신 것은 이미 승리한 자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7:13-14절을 보시면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고 합니다. 19:8절에서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인데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신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를 인하여 죽임 당한 자들이 이미 승리의 흰옷을 입고 쉬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쉬고 있으라고 하는 것입니까?

 

순교의 수가 차기까지 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직 순교의 수가 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를 인한 순교를 꼭 목이 베이고 화형을 당하고 짐승의 밥이 되는 것만이 순교가 아닙니다.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순간부터 이미 순교의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순교를 할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너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고 있으니 어찌 순교라는 귀한 복이 찾아오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순교당한 자들의 신원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늘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소리는 예수님을 유혹한 마귀의 소리만 들리지 않습니까? 세상의 영광을 위하여 나에게 절하라는 소리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상관없이 지금 하늘에서는 일곱 인이 다 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읽고 들으면서 그 가운데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런 말씀을 읽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지키지도 않는 사람이라면 이런 심판의 말씀이 달게 들릴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성경의 말씀을 증거 하면 사람들은 싫어하고 치우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너무나 명백하게 이 세상이 심판을 당하여 멸망한다고 하는 말씀을 왜 그리 부인하고 싶은 것입니까? 심판의 말씀을 싫어하기에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자들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스데반집사를 보십시오! 성령과 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증거 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듣기에 싫었으면 이를 갈며 돌을 던져 죽여 버렸던 것입니다. 이 시대에 돌을 맞을 설교를 누가 하고 있습니까? 그저 사람들에게 좋게 말하여 인기를 얻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종말의 특징입니다. 사람들마다 자기 귀에 좋은 소리를 듣고자 자기들의 사사로운 욕심을 좇을 거짓 선생을 많이 두는 것입니다(딤후4:3).

 

에스겔 33:30-33절은 이렇게 증거 하고 있습니다. “30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 보자 하고 31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32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33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

 

예배를 드리는 모습처럼 나아오지만 그 속에는 쇼를 구경하러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입술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마음으로 이익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속의 죄악을 고발하면 그런 자는 반드시 배척을 받고 미움을 받습니다. 그들이 그러함에도 이런 말씀을 선포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의 초석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서 있었음을 알리라고 합니다. 심판의 때에 그들이 핍박하고 배척한 선지자들이 증인이 될 것입니다.

 

그 최종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계시록 6:12-17절입니다. 다섯째 인에서 순교자들의 신원의 기도로 인하여 여섯째 인이 떼어집니다. 그 결과는 어린 양의 진노가 쏟아집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그 증거로 인하여 죽임 당한 자는 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일찍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의 그 큰 진노가 마지막 순교자의 수가 차서 그 기도의 응답으로 신원이 이루어질 때에 무서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든든하기 위하여 수고하여 애를 쓰면서 지켜온 그 높은 자리들이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데 어디서 안전을 구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굴과 바위틈에 숨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고 하게 됩니다. 결국 최종 심판은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8:3-4절입니다.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성도의 기도가 금향로에 담겨 향으로 올라갑니다. 그 기도가 오늘 본문의 기도와 같습니다. 하나님께 향으로 올라간 기도는 비워지고 그 빈 향로에 제단의 불을 담아서 땅에 쏟아버립니다. 그래서 일곱 대접이 땅에 쏟아지는 것으로 이 세상의 심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 날에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살아있는 동안 심판을 받습니다. 어떤 심판을 받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저주와 심판이 바로 자신의 저주와 심판임을 알고 믿게 됩니다. 마치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외칠 때에 제단 숯불에 입술이 지져진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심판받아야 마땅한 자임을 알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믿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 깊이 알게 하여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