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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3:12-21 파수꾼 2011. 11. 23

 

12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리시는데 내가 내 뒤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 찬송할지어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의 처소로부터 나오는도다 하니 13 이는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생물 곁의 바퀴 소리라 크게 울리는 소리더라 14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가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시키시더라 15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 강 가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나아가 그 중에서 두려워 떨며 칠 일을 지내니라 16 칠 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20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21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 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 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지난주에 본 말씀은 에스겔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장면이었습니다.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받아먹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난 후 주의 영이 들어 올려 사로잡힌 백성에게 갑니다. 사로잡힌 백성들이 사는 곳이 그발 강 가 델아빕이라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주의 영에 의하여 들려 옮겨지는 중에 일어난 두 가지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12절입니다. 주의 영이 들어 올리시는데 에스겔의 뒤에 큰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는 ‘찬송할지어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의 처소로부터 나오는 도다’라는 소리입니다. 여호와의 일하심은 모두가 찬송을 받으실 일입니다. 천지의 창조도, 심판도, 구원도 다 찬송 받으실 일입니다. 지금 에스겔을 통하여 심판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찬송 받으실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찬송과 영광을 항상 나를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자는 말은 나도 세상에서 영광스럽게 되기를 원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기위한 엉터리 영광에 대하여 심판하십니다.

 

요한계시록 19:1-3절입니다. “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1절이 에스겔이 들은 음성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런 찬송이 언제 나옵니까? 바로 앞의 계시록 18장에서 바벨론의 멸망을 보고서 찬송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바벨탑을 쌓아놓고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착각합니다.

 

둘째로 14절에서 에스겔이 근심하고 분한 마음이 가득하였다고 합니다.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을 받아먹었으니 근심과 분한 마음이 가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은 선지자들은 세상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들에 대하여서도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로 말합니다. 가난한 자들이 학대 받는 것, 권력층이 부정한 재물로 사치하는 것과 같은 세상의 사소한 일들에 대하여 선지자들은 온 세상이 다 망한 것처럼 고함을 지릅니다. 단 한명의 가난한 자가 억울한 핍박을 당한 것을 보고서도 온 인류가 당하는 것처럼 민감한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들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할 정도로 과민하게 반응합니다.

 

그러나 그런 근심과 분노를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하여 감동시킵니다. 감동시켰다는 말은 여호와의 손이 꽉 잡아 눌렀다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심판의 말씀을 받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기계적으로 받아서 전하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못하겠다고 대항하기도 하고(예레미야), 때로는 백성들이 연약하니 한번만 봐 달라고 하기도 합니다(아모스). 이런 전체적인 선지자의 모습을 보면 지금 에스겔이 근심하고 분노하는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델아빕에 돌아와서 두려워 떨면서 칠 일을 지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얼마나 두려웠는지 벌벌 떨면서 얼이 빠진 모습으로 칠일을 지납니다. 그리고 말씀이 다시 칠 일 만에 주어지는데 파수꾼으로 세운다는 말씀입니다.

 

16-1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고 합니다. 파수꾼의 역할은 경계근무를 하는 사람입니다. 군에서도 작전은 실패하여도 경계에서 실패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적의 진영을 살피면서 망루에 서서 한 순간도 졸지 않고 깨어 지켜야 합니다. 제가 전방의 철책부대 근무를 위하여 훈련을 받을 때에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간첩이 넘어와서 활동하다가 잡혔을 때에 어디로 넘어왔는지 조사하여 그 때 그 시간에 근무한 자가 처벌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보초를 잘 서라는 말이었겠지만 그 정도로 경계근무는 중요한데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파수꾼에 달린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파수꾼은 어떨까요?

 

이사야 56:10-12절입니다. “10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11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12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신천지나 다른 이단들이 이 말씀을 가지고 기성교회 목사들을 공격하는 일에 자주 사용합니다. 이런 공격을 받는다는 것은 이미 이런 꼴이 되었기에 공격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택하신 이스라엘 나라의 선지자와 제사장과 지도자라는 자들이 이런 꼴이 되었으니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움을 입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맹인이며 무지하며 벙어리 개가 되어서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파수꾼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곳에서도 하나님은 다시 파수꾼을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순간도 보내지 아니한 적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노아시대에도 소돔과 고모라시대에도 가나안에서도 바벨론에서도 하나님의 늘 선지자를 보냈습니다.

 

선지자들이 파수꾼의 역할을 하는데 일반적인 파수꾼은 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알리는 역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지자는 적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쳐들어오시는 것에 대하여 파수를 하여야 합니다. 17절을 다시 봅니다. 이미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왔기에 바벨론이 쳐 들어오는 것에 대한 파수가 아니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듣고 여호와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전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파수꾼이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들의 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날을 기다린다고 하였지만 그 여호와의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외치는 일이 파수꾼의 일입니다.

 

에스겔 22:23-31절을 봅니다. “봉독”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께 이같이 말씀하셨다고 하고 백성들은 포악하고 강탈을 일삼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파수꾼이 해야 할 일은 여호와께서 심판하러 오신다고 전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 여호와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찾다가 찾지 못하였기에 하나님의 진노의 불로 멸하셨다고 합니다.

 

18-19절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왔지만 이들이 아직 주께로 돌이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파수꾼의 자세로 전하여야 합니다. 이 부분은 악인에 대하여 돌이키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에스겔이 악인에게 전하여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죽을 것이지만 그의 피 값을 에스겔에게서 찾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악인에게 에스겔이 깨우쳤지만 그가 그의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가운데 죽을 것이지만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할 것이라고 합니다. 파수꾼은 그 파수꾼의 역할을 제대로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생명이 달린 문제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오늘날은 전도에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이방인들에게 전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적용을 하려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전하여야 할 말씀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주께로 돌이키지 아니하면 당신은 꼭 죽게 되었다고 말해야 합니다. 아니 교회 다니는 것이 주께로 돌이킨 자들이 아니냐고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과연 예수님을 사랑하느냐고 말입니다. 다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예수님을 세상에서 제일로 사랑하느냐고 말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주께로 지금 돌이켜야 합니다.

 

20-21절입니다. 앞부분에 악인에게 돌이키라고 한 말씀인 반면에 이 말씀은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 전하라고 한 말씀입니다. 앞의 부분은 처음부터 악인을 말하는 것이고 이 부분은 처음에는 의인이 공의롭게 살다가 돌이켜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런 부분은 에스겔서의 뒷부분에서 다시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오늘은 파수꾼의 역할과 그에 대한 반응의 결과를 보는 것입니다. 의인이 악을 행하면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고 합니다.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그가 의를 행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자기의 의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장애물을 두시면 아무도 의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과거의 의를 의지하고서 지금 악을 행한다면 그것이 아무른 유익이 없이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에 대하여서도 파수꾼이 깨우치게 하라고 합니다. 그를 깨우치지 아니하면 그가 죽게 되면 그의 죄악을 인하여 죽지만 에스겔에게 피 값을 묻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를 깨우치게 하여 그가 돌이키면 그도 살고 에스겔도 사는 것입니다. 이 경우가 가장 좋은 예가됩니다. 오늘 우리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목사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주기 위하여 당신은 그렇게 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말을 하지 않고 거저 거짓 평안을 빌어주면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라는 곳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시장 조사를 하듯이 고객의 선호도를 조사하여 그 지역에 필요를 채워주겠다고 합니다. 그러한 교회 컨설팅이 미국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해 왔고 이런 것이 한국에서도 벌써 행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조사하여 그 지역에 도서관이 없으면 교회에 도서관을 만들라고 합니다. 지금 계속하여 문자가 옵니다. 10평의 공간만 있으면 도서관을 꾸미고 1년만 운영하면 구청에서 연 200만원인가 지원이 나온다고 세미나에 참석하라고 합니다. 또는 백화점의 문화센터 같은 것을 만들어 사람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가 여력이 있으면 그런 취미생활을 해도 되겠지만 과연 그런 문화 활동들이 지금 심판 하러 다가오시는 주님 앞에 세울 수 있는 일입니까?

 

사도행전 20:24-28절입니다. “봉독” 바울사도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 하였기에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다고 합니다. 에스겔이 파수꾼의 역할을 못하면 그 피의 책임을 묻겠다는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제대로 전하였기에 자신은 그 복음을 거부하여 심판을 받는 자들에 대하여 자신은 할 일을 다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교회의 감독인 목사들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산 교회를 보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에 이 피 외에 다른 것을 전한다면 어찌 그 사람을 파수꾼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피에 대한 파수꾼으로 세워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