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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15-19 바울의 기도(1)   2011. 7. 13

 

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사도가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주 예수 안에서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듣고 기도합니다. 믿음과 사랑이란 그들의 독자적인 열매가 아니라 주 예수 안에서 나온 믿음과 주 예수 안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사랑이란 함께 나오는 것입니다. 주 예수 안에서의 믿음이란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으로 나옵니다. 이런 소식을 바울이 듣고서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먼저 에베소에서 전도한 상황을 사도행전에서 보면 바울이 에베소와 그 여러 지역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8:18-23절을 봅니다. “봉독”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변론을 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더 있기를 원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올 것이라고 하고서는 가이사랴에 가서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 자기를 파송한 안디옥에 내려가서 얼마 있다가 전에 전도한 지역을 돌아서 에베소로 다시 옵니다. 그 동안 에베소에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가 에베소에 와서 전도를 하는데 세례요한의 세례만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에게 복음을 더 정확하게 전하였습니다. 아볼로는 고린도 지역으로 가고 바울이 에베소 지역에 다시 왔습니다. 이 때로 부터 약 삼년간 에베소에서 사역을 합니다.

 

에베소 사역의 한 장면을 사도행전 19:26-29절에서 봅니다.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에베소는 로마의 식민지 아시아주의 수도였습니다. 이미 아데미의 신전은 기원전 6세기부터 어마어마한 규모로 세워져 있었기에 이곳으로 순례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여러분도 사진으로 잠시 보았습니다만 그 도시의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약 2천 년 전에 2만 명이 넘게 들어갈 극장이 있었고 도서관과 공중목욕탕과 수세식 화장실과 대리석으로 포장된 도로가 항구로 연결된 참으로 크고 엄청난 도시였습니다. 지금은 토사가 밀려와 바다와 멀어졌지만 그 당시에 항구며 주요 도로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상업적으로 번성한 도시입니다. 이런 도시의 가장 큰 신전이 풍요와 다산을 준다는 가슴이 여러 개인 여신을 섬기고 있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고 전하였습니다. 소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복음입니다. 이런 곳에 있는 성도들에게 바울이 무엇을 기도하는지 오늘 보려고 합니다. 에베소의 영광이란 그 당시 가장 영광스러운 도시로 세상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신화의 세계를 눈에 보이는 신전과 신의 형상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보이는 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건축술과 음악과 학문과 법들은 그 당시에 어마어마한 도서관이 세워지고 극장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 도시에서 보이는 것, 사람이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복음을 전하였으니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며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기도가 무엇이겠습니까? 로마의 식민지 수도의 영광을 가진 그런 세상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의 기도의 내용들은 세상이 추구하는 영광보다 더한 영광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바울의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오늘날 폐허가 된 에베소가 바울 당시의 세계 최고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그런 에베소에서 살고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내용은 그들이 추구하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영광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이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1:1-14절을 봅니다. 편지를 쓰면서 인사말을 마치지 말자 3절에서 찬송이 터져 나옵니다. 찬송하리로다. 무엇에 대한 찬송입니까?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이 복을 생각만 해도 찬송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 신령한 복이 무엇입니까?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택하신 이유는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죄와 사망의 종노릇하다가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할 하나님의 원수 된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어찌 찬양하지 아니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 좋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고 하십니다. 이러한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고 믿게 된 것은 우리의 실력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심으로 그 뜻의 비밀을 알리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10절에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죄는 이런 질서를 어그러지게 하여 범죄 한 인간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통일시키고 싶은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종교를 통일하여 평화의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문선명처럼 모든 사람이 다 자기중심으로 통일되기를 바랍니다. 문선명교주의 아들들이 서로의 이권을 쟁취하려고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국민일보와 순복음 교회에서도 가족 싸움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욕할 것이 못 됩니다. 우리도 다 똑같이 나를 위하여 통일시키고 싶지만 그런 능력과 재산이 없을 뿐입니다.

 

모두들 자기를 중심으로 통일시키고 싶은 마음이 선악과 이후의 모든 인생에게 들어있는 죄악 된 인간의 모습입니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이 추악한 이권에만 관련된 주도권이 아닙니다. 착하게 사는 사람들 속에서는 누가 더 착하게 사는지의 주도권을 쥐고 싶어 합니다. 운동에서도, 공부에서도, 절에서도, 교회에서도, 복음을 전한다는 현장에서도, 내가 통일시키고 싶고 내가 종결 자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임 집사님이 많은 댓글을 달다가 다 삭제하여 버렸는데 그런 글들 속에서 자기 의가 나오더라는 말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나를 중심으로 통일시키고 싶은데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통일 시키신다고 하시니 이제 큰일이 났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통일하신다는 이 말씀에 아멘이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11-14절입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주일 설교에서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시는 하나님의 이름의 계획을 따라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십니다. 어떻게 이런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다 되었는가? 하나님의 솜씨가 대단하시다는 찬송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복음의 내용을 듣고 믿어진 것은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으며 또한 성령이 보증이 되셨기에 때문입니다.

 

너무 엄청난 사실이라서 잘 믿어지지 아니할 만큼 엄청난 하늘의 신령한 복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에 대하여 사람들은 실감이 나지 않기에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늘 어떤 분이 어떻게 기도하여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일 년을 넘게 기도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창세기로부터 기도가 무엇인지 보면 평소에 우리의 기도란 온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통일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대적이 되려는 기도였다는 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소모품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족합니다.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 무익한 종입니다. 이런 기도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한 기도가 무엇인지 봅니다. 첫째 내용이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달라고 합니다. 이런 지혜와 계시의 정신은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7절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이 영생인데(요17:3)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지 않으면 아무도 알 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계시를 누구에게 주십니까? 25절에 보시면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아서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자는 결코 자기의 지혜나 슬기가 아니라는 고백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방금도 말씀을 드렸지만 하나님을 아는 것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0:8절에서는 교회를 하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샀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살해한 증거가 됩니다. 왜 하나님을 살해하였습니까? 선악과의 유혹입니다.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그 유혹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면 하나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됩니다.

 

둘째로 마음의 눈을 밝혀서 부르심의 소망과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과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알게 하시기를 구한다고 합니다. 먼저 부르심의 소망을 봅니다. 로마서 8:23-25절입니다.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이 소망은 몸의 속량을 기다립니다. 그 날에 주님의 영광의 몸처럼 변화될 날을 소망하며 기다립니다. 그래야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어떠한지를 알도록 기도합니다. 역시 로마서 8:18절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장차 나타날 영광이 그 아들의 영광이며 그 아들의 기업이기에 영광의 기업입니다. 이 영광의 기업이 얼마나 좋았으면 모세는 애굽의 금은보화와 바로의 아들이라는 것을 버리고 주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길로 갔습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유익한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 영광의 기업이 황금보석 꾸민 집의 영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창세전의 영광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생명에 참여되는 것을 말합니다.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인지 알기를 기도합니다. 이 능력의 지극히 크심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20-23절을 봅니다.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이 어마어마한 신령한 복을 어떻게 다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도합니다. 이 영광이 어떠함을 알게 하여 달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등극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인데 예수님만 죽고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도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서 함께 하늘에 앉혀졌다는 말입니다. 에베소서 2:4-7절을 봅니다. “봉독”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앉히셨다고 합니다.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이 엄청난 내용들을 알게 하여 달라고 바울사도는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가 우리에게도 풍성하여져서 하늘의 신령한 복들을 맛보아 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