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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4:7-11 근신하여 기도하라 2011. 9. 28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베드로서신에서 기도에 대한 말씀은 오늘 이 본문과 3:7절의 말씀입니다. 3:7절을 먼저 봅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부터 먼저 보고 오늘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에 기도가 막힌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기도가 막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만 3:7절의 말씀에 의하면 아내와의 문제로 인하여 기도가 막힌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남편들아 이와 같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바로 앞의 단락을 받고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아내에 대한 말씀이 3:1-6절까지 나옵니다. 그러므로 남편들도 이런 아내에 대한 말씀과 같은 지식으로 아내를 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아내에 대한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바울서신에서도 이런 부분을 보았습니다. 왜 아내가 남편에 순종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믿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믿지 않는 남편에게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아내의 말이 아니라 그 아내의 행실을 보고 구원을 받게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오래 전에 정종한 강도사가 아내에게 말로서 복음을 전하니 건성으로 듣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내를 섬기니 남편의 말을 건성으로 듣지 않더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교회 나가서 성경 좀 안다고 남편에서 딱딱 거리기보다 믿는 자로서의 행실을 보이라는 말씀입니다. 믿는 아내가 믿지 않는 남편 앞에서 사는 모습이 어떠합니까? 2-4절입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습이겠지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이기에 정결한 행실을 합니다. 그러므로 외모를 꾸미는 것 보다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라고 합니다.

 

5-6절입니다.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다고 합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고 칭하여 순종하였다고 합니다.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말라고 합니다. 남편이 자신을 팔아먹는 자리에도 사라는 순종하며 갔습니다. 왜 그렇게 하였습니까? 남편이 언약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자로서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자가 하나님의 딸이며 이런 모습이 자기를 단장하는 모습니다. 물론 이런 말씀들은 새 언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이 교회된 신부의 단장입니다.

 

7절입니다. 남편들이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라는 말은 아내가 남편에게 대하는 지식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교회와 그리스도의 비밀을 함께 말씀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32-33절입니다.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남편과 아내에 대하여 말씀하면서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비밀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 비밀을 알게 하시지만 또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는 모습입니다.

 

남자는 아내보다 힘이 강합니다. 이런 힘으로 일상적인 삶에서도 아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 시대와 전혀 다릅니다. 베드로서신이 기록될 당시에 여자는 감히 남자들에게 말도 함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유대인 사회는 더욱 여성차별이 심하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가 이와 같이 아내를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은 가히 혁명적인 말씀입니다. 지식을 따라 동거하라는 말은 자기 마음대로 자기 정욕대로 대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이라고 합니다.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여기라고 합니다. 전에 번역은 생명의 유업을 함께 이어받을 자라고 합니다. 아내와 남편이 생명의 유업에서 동등 됨을 말씀합니다. 이것도 유대인 남자들에게 엄청난 내용이 됩니다. 그러므로 귀하게 여기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 너희의 기도가 막히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여자를 남자보다 열등하게 보거나 약하다고 무시하면서 하는 기도가 막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에 그런 식으로 나옵니다. 신명기 24:14-15절입니다. “14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15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약한 자의 소리를 외면하는 것이 죄라고 말씀합니다. 이 땅이 언약의 땅은 아니지만 오늘날 이 땅의 교회들이 약한 자들의 소리를 외면하고 강한 것을 탐하는 기도를 한다면 이것은 기도가 아니라 탐심이라는 우상숭배의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아내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관계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는데 오히려 우리로 인하여 울고 있는 자들이 없는지를 말입니다.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4:7절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이 우리에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음이 다른데 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또 이루질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반증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마지막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심판, 재림, 종말 이런 단어들은 일부 광신도들이나 사용하는 용어로 교회에서조차 기피하는 단어가 되어 버린 실정입니다. 왜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까? 곧 오신다는 예수님의 재림이 역사의 시간으로 무려 2천년이 다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아예 없는 것처럼 여기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베드로가 살고 있는 당시에도 여전히 있었다는 말입니다. 종말을 생각하고 근신하여 기도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종말이 없다고 여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시대만이 아니라 노아 홍수 시대에도 소돔과 고모라시대에도 다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사도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베드로후서 3:1-14절을 봅니다. “봉독”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주의 강림한다는 약속이 어디에 있느냐며 조롱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직접 말로 조롱을 하지 않아도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어느새 세상의 것들이 우리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게 됩니다. 그러면 주의 강림이 어디에 있느냐는 사람들처럼 살게 됩니다.

 

천지 창조가 말씀대로 되었고 땅이 물에서 나와서 성립 된 것을 일부러 잊으려고 합니다. 일부러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려고 하는 우리의 심성에 이 세상의 신들은 잊어버리게 할 만한 요소들을 계속하여 공급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을 불살라 버리시기 위하여 준비 되어 있다는 말씀들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잊어버리려고 노력하여 정말 잊어버린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자기의 언약을 반드시 이루어내십니다. 노아 홍수 때에 단 한 가정만 방주에 타고 아무도 타지 않아도 때가 되면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그러면 주의 약속이 왜 이렇게 더딘 것입니까?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 잡을 수가 없지만 반드시 성취가 됩니다. 그러함에도 이렇게 오래 참으시고 계시는 것은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심으로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한 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오늘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려고 아직 세상의 종말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종말이 없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야 당연하게 그렇게 산다고 하여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보아도 도대체 종말을 준비하며 사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하나님의 뜻에 친밀하여 진 자들은 무엇을 알게 됩니까? 12절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합니다.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진다고 합니다. 이 지구가 불덩어리 위에 놓여있습니다. 지구의 가운데는 핵이라고 하는 엄청난 용암이 들끓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땅이라고 발 딛고 사는 이 땅은 지구 전체를 사과에 비유하면 사과 껍질위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 지진일 일어나고 화산이 터지고 또 현재도 계속하여 마그마가 용출되는 곳이 지구 곳곳에 있습니다. 이런 땅에서 무엇이 영원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는 자들은 무엇을 바라보게 됩니까? 하나님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근신이라는 말은 취하지 아니한 상태를 말합니다. 취하는 것은 술에만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유혹들이 다 사람을 취하게 만듭니다. 교회에서 기도하여도 세상의 영광을 구한다면 그것은 취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이루어진다고 할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한 사람도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왜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비밀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하시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이루어내시지만 그 약속을 자기 백성들에게 보여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들은 세상의 흉한 소식들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평안을 맛보면서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14-16절을 봅니다. “봉독” 그러므로 이 약속을 바라보기에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 여기고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 같이 썼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종말을 대비하며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한 것처럼 바울도 그렇게 썼다고 합니다. 그 바울의 서신을 봅니다.

 

로마서 13:11-14절입니다.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자다 깰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 보다 가까웠습니다.

 

바울이 이 말을 하고부터 약 2천년이 되었으니 정말 우리는 더욱 가까워 졌습니다. 이제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오실 이가 오실 것입니다. 이 약속을 바라보며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의 종말만 종말이 아닙니다. 우리 개인이 오늘 밤에 안녕을 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이라고 하는 이때에 피차 권면하며 서로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면 자연스럽게 다음의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8-11절입니다. 뜨겁게 서로 사랑하고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합니다.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을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여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권능을 세세무궁토록 돌리는 것이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는 자들에게 허락된 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