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에스겔 12:1-28 묵시가 응하리라   2012. 2. 1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주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 3 인자야 너는 포로의 행장을 꾸리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끌려가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 4 너는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네 포로의 행장을 밖에 내놓기를 끌려가는 포로의 행장 같이 하고 저물 때에 너는 그들의 목전에서 밖으로 나가기를 포로 되어 가는 자 같이 하라............................ 22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사라지리라 하는 너희의 이 속담이 어찌 됨이냐 23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속담을 그치게 하리니 사람이 다시는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이 속담을 사용하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고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날과 모든 묵시의 응함이 가까우니 24 이스라엘 족속 중에 허탄한 묵시나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 있지 못하리라 하라 25 나는 여호와라 내가 말하리니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 반역하는 족속이여 내가 너희 생전에 말하고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2012년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1일입니다. 새해라고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을 텐데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대부분 사람들은 왜 내 뜻대로 안 이루어지는가 할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자신의 뜻대로 잘 안 되는 일들이 많을 텐데 왜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능력의 한계라고 말하기도 하고 노력부족을 말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스스로의 힘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존재를 역사내 존재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유한적인 존재이기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과 온 우주만물은 누구 뜻대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로마서 11:36절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만물의 주인이 따로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묵시라고 합니다. 묵시는 사람의 힘으로 알아 낼 수가 없고 감추어진 비밀을 열어주어야 알게 되는 것이기에 묵시를 계시라고도 합니다. 이런 묵시가 역사를 창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온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뜻대로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통하여 계시가 되었고 그 계시대로 이루어지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또한 그 계시의 완성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그의 말씀대로 온 세상이 결론 내려지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묵시는 이미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 묵시가 지금 이 역사라는 시간과 공간 안에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에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이미 하늘의 뜻이 확정이 되었고 완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설교제목대로 묵시가 응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에스겔 12장 전체의 말씀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1-20절은 두 개의 상징행위와 그에 대한 해석입니다. 그리고 21-28절에서는 에스겔이 상징행위와 해석을 통하여 선포되는 하나님의 묵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묵시는 반드시 이루어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12:1-2절을 봅니다. 에스겔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합니다. 에스겔을 인자라고 부르시면서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한다고 하십니다. 반역하는 족속이란 하나님의 묵시의 말씀을 보고 듣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볼 눈이 있고 들을 귀가 있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무시하는 것입니다.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으면서도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현혹이 되어서 헛된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3-7절입니다. 에스겔이 상징행위를 합니다. 누가 보아도 포로로 잡혀가는 모습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포로의 행장을 꾸려서 포로로 잡혀와 있는 자들의 앞에 내어 놓고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라고 합니다. 처소가 옮겨지고 그들의 목전에서 성벽을 뚫고 그리고 짐을 옮기며 캄캄할 때에 그 짐들을 어깨에 메고 나가며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말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목적은 3절 끝에 보시면 혹 그들이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에스겔의 상징행위를 보면 혹 생각이 있으리라고 하신 것은 그 중에 몇 명이라도 깨닫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8-16절입니다. 첫째 상징행위에 대한 해석입니다. 10절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묵시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의 왕이 도망가다가 잡혀서 바벨론에 끌려와서 죽임을 당하는 것에 대한 징조입니다. 지금 포로로 잡혀와 있는 자들이 아직도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예루살렘의 성전이 건재하기에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하나님의 묵시를 상징행위와 해석으로 분명하게 전달하기를 왕과 백성들이 다 사로잡히게 될 것이라고 전합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15절에서 심판하시는 분이 여호와인줄 알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16절입니다. 그러한 멸망과 심판 중에도 몇 사람을 남겨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하여 그들이 이르는 이방인 가운데에서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자백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다 죽이시지 않고 남기셔서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 가게하십니다. 이렇게 하심을 통하여서도 여호와인줄 그들이 알리라고 하십니다.

 

17-20절입니다. 두 번째 상징행위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임하여 음식을 먹을 때 떨면서 먹고 물을 마실 때는 놀라고 근심하면서 마시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주민과 이스라엘 땅에 대한 말씀인데 이 땅의 모든 주민이 포악으로 땅에 가득하게 하였기에 황폐하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그들을 포위하고 있을 때에 일어날 일입니다. 성이 포위가 됨으로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두려움과 공포가운데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21-28절입니다. 여호와의 묵시를 에스겔의 상징행위와 해석을 통하여 분명하게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포로로 잡혀와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늘 하는 말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이 쳐들어온다고 할 때에 거짓 선지자들은 쳐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쳐들어와서 성을 포위하니 곧 물러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포로로 잡혀가게 되자 2년 안에 돌아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자들이 포로로 잡혀왔으니 여전히 거짓 희망에 붙들려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전한 심판의 묵시가 그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22절입니다.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사라지리라고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나 에스겔 선지자의 묵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용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참된 선지자의 말은 이루어지지 않고 결국 사라질 것이라고 여깁니다. 반면에 거짓 선지자의 말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본성입니다. 자신이 보호받고 살아남는다는 이야기가 좋은 것이지 심판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날도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은 자기들의 이욕을 채워주는 거짓 선생들의 말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단호하십니다. 23-25절을 봅니다. “봉독” 여호와께서 이 속담을 그치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묵시가 이루어지지 않고 사라지리라고 한 이 속담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오히려 그들이 사라지리라고 한 여호와의 묵시의 응함이 가깝다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는 묵시가 응하여짐으로 인하여 허탄한 묵시와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 있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을 심판하시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더디지 않고 이루어지는데 그들의 생전에 말씀하시고 이루신다고 하십니다.

 

26-28절입니다. “봉독” 에스겔 선지자가 여호와의 묵시를 이렇게 분명하게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들은 자들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에스겔이 본 묵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가 멀리 있는 때의 일을 예언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의 말이 하나도 더디지 아니하고 내 한 말이 이루어지리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이 말씀대로 그들의 생전에 이 묵시가 응하게 됩니다.

 

예레미야 52:4-11절입니다. “봉독” 에스겔 선지자가 여호와의 묵시를 받아 상징행위를 통하여 보여준 포로로 잡혀가는 모습과 떨면서 음식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며 물을 마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바벨론 왕이 쳐 들어와서 삼년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중에 양식이 떨어집니다. 성벽이 무너지고 왕이 성벽 사이로 도망가다가 잡혀서 바벨론 왕 앞에 끌려갑니다. 자기 눈으로 두 아들이 죽임 당하는 것을 본 후에 두 눈이 뽑힌 채로 바벨론에 끌려가서 죽임을 당합니다. 시드기야도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 왕에게 순종하라는 말을 믿지 않았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자들이 그들의 생전에 예루살렘의 멸망소식을 듣게 됩니다.

 

여호와의 묵시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역하는 족속이라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는 것이 어려서부터 습관이라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묵시가 그대로 응하게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이 얼마나 적은지 말씀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 핍박을 받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왜곡하여 사람들에게 좋게 하여 주는 자들은 언제나 다수였고 그 사회의 주류였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묵시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박국 2:2-4절입니다. “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선지자가 어떻게 악인이 형통한지에 대한 질문을 여호와께 합니다. 그에 대한 답변이 오늘 말씀입니다. 그 묵시는 정한 때가 있다고 합니다. 지체하지 않고 반드시 응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라고 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볼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가 되는 것 같습니까? 아니면 세상이 여전히 옛날처럼 세상의 원리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연일 분주합니다. 바른 정치를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정치가 바른 정치입니까?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정부를 말합니다. 이런 정부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온 세상은 사람에 의하여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말씀의 말씀에 의한 말씀을 위한 피조세계입니다.

 

베드로후서 3:1-14절입니다. “봉독” 에스겔 시대나 하박국 시대나 베드로 사도가 살아있던 시대나 바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나 간에 동일한 현상이 무엇입니까? 세상만물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묵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응하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만 몇 곳을 봅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도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13:18).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는 말씀이 예수님께 응합니다(15:25). 아버지께서 주신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시고 다 구원하시는 것도 말씀을 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18:19). 십자가의 고난과 그 옷을 제비 뽑는 것과 목마르다 하신 것과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한 것도 다 말씀을 응하게 하심입니다(19:24,28,36).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묵시를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가 되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이 역사 송에 응하여집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 보이는 하늘과 땅이 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온 세상은 늘 요란하고 흔들립니다. 그리고 우리의 개인사도 늘 흔들리고 요동을 칩니다. 그 이유는 히브리서 12:24-29절입니다. “봉독” 모세 때는 시내산이 진동하였습니다. 이런 모세의 말을 듣고 순종하지 아니하다가 멸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새 언약의 피를 뿌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고하십니다. 이제 하늘과 땅을 흔들어버리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흔들림이나 개인사의 흔들림에 두려워 떨지 않습니다. 흔들릴 것들을 흔들어버림으로 흔들리지 아니할 영원한 묵시의 성취만 남기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