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예레미야 2:1~3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2013. 4. 10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3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절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합니다. 예루살렘의 귀에 외치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을 한 인격으로 봅니다. 그래서 ‘너’라고 합니다. 이 ‘너’는 3절에서 이스라엘을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잠시 정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새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을 부를 때에 이스라엘과 야곱을 같이 사용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12아들로 인하여 국가가 되기에 이스라엘이 국가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지고부터는 북을 이스라엘 남은 유다라고 합니다. 북이 멸망하고 나서는 남 유다만을 말할 때도 이스라엘이라고도 합니다. 예레미야 시대는 이미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하고 남 유다만 남았지만 오늘 말씀대로 ‘너’, ‘예루살렘’, ‘이스라엘’을 같이 부릅니다.

 

외쳐야 할 내용은 2~3절입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의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너’는 여성 형으로 쓰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남편이며 ‘너’로 불리는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은 아내의 역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인애란 히브리어의 ‘헤세드’입니다. 이것은 언약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신실함과 의로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신혼 때에 너희 인애와 사랑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 신혼 때가 광야시대입니다.

 

그 청년의 때와 신혼의 때를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나서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따랐다는 것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한 적이 있습니까? 남편 되신 하나님께 아내 된 이스라엘이 바람피우지 않고 신실하게 남편을 사랑한 적이 없다는 것이 구약 성경 전체의 증거입니다. 더구나 오늘 말씀하고 있는 신혼이라는 그 광야의 시대도 어떻게 신실하지 못하였는지 성경은 증거 합니다.

 

민수기 14:22~23절입니다.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에 모세의 인도로 약속의 땅 입구까지 와서 12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받고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애굽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이때 여호와의 말씀이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여호와의 기적을 보고서도 열 번이나 반역하였다고 합니다.

 

시편 78:12~42절을 봅니다. “봉독” 시편 78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과 광야와 가나안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반역한 내용들을 죽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여 여호와의 긍휼과 신실하심으로 인도하셨다고 찬양합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의 내용처럼 광야의 신혼시절이 어떠하였는지를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 내용들은 애굽 땅에 쏟아진 열 가지 재앙을 목격하고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고 광야로 들어섰습니다.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반석에서 물을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17절을 보시면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 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 자를 배반하였다고 합니다. 37절에서는 그들이 하나님께 향하는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늘 본문에서는 그 광야에서 청년 때의 인애와 신혼 때의 사랑 즉 언약에 신실하였다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38절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은 긍휼하심으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노를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는 39절에서 그들이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육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바사르’인데 몰락하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이 몰락하는 인간을 또한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바람은 ‘루아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냥 일반적인 바람이라는 말로도 사용합니다. 고대로 갈수록 언어가 많이 분화되지 않아서 문맥에 따라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바람은 말 그대로 이리 저리 부는 바람처럼 인간의 덧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40~42절입니다. “40 그들이 광야에서 그에게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가 41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하였도다 42 그들이 그의 권능의 손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그들을 구원하신 날도 기억하지 아니하였도다” 시편 78편에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단 한 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인애와 사랑 즉 언약적인 사랑의 신실함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레미야서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그 신혼 때에 인애와 사랑이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2절을 다시 봅니다. 광야시절을 신혼의 기간으로 말씀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민수기와 시편의 말씀을 통하여 보면 전혀 여호와께 인애와 사랑을 보이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여호와께서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를 저는 이렇게 보았습니다. 물이 없는 곳, 양식이 없는 곳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였을 때에 그들은 늘 불만과 원망을 하였지만 광야이기에 구름기둥 불기둥이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는 수 없이 불만과 불평을 품고서도 그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애와 사랑으로 따라간 것이 아니라 따라가지 않으면 광야에서 죽을 수 밖에 없으니 마지못해 따라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따르는 것을 여호와께서 나를 따른 것이라고 인정하여 주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따랐는데 그것을 그들의 신의로 기억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이렇게 기억하여 주시는 것은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성물이기 때문입니다. 성물(聖物)이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으로 만들어내신 첫 열매가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나 짐승이나 곡식이나 과일의 처음 것이 여호와의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첫 열매로 구하여 내시는데 이들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삼키는 자는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대로 출애굽에서 가나안 입성까지 그 광야에서 적들의 공격을 막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언약에 신실함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모습을 호세아 2:6~7절에서 봅니다. “6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7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호세아 선지자와 음란한 고멜의 결혼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이스라엘의 지조 없음을 고발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로 우상숭배 하기에 바쁜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막으시고 우상들도 제거하여 버리면 그제야 하는 말이 내가 본 남편에게도 돌아가리라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돌아온 것입니다. 광야에서 어쩔 수 없이 구름 기둥 불기둥을 따라 가듯이 돌아온 고멜을 어떻게 대합니까?

 

14~15절입니다. “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어쩔 수 없이 돌아온 바람난 아내를 다시 타이르고 거친 들, 애굽에서 올라오든 그런 광야로 데리고 가서 위로하고 그의 포도원을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애굽에서 올라올 때의 신혼 때의 인애와 사랑을 기억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언약에 얼마나 신실하신 분이신지 알게 합니다.

 

호세아2:19~20절입니다. “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며 긍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애와 사랑이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그들을 물 없는 곳으로 양식 없는 곳으로 인도하셔서 불만과 원망 속에서 어쩔 수 따라 가면서 반석에서 나오는 물과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을 수밖에 없도록 하셔서라도 그렇게 마시고 먹고 따라오는 그들을 향하여 그 인애와 사랑을 너를 위하여 기억하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여호와께 반응하며 따라가는 것이 어느 정도로 불가능한 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그 신혼 때의 인애와 사랑을 기억하신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한 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자기가 이끌어 놓으시고서는 그것을 우리의 인애와 사랑으로 여겨주십니다.

 

에스겔 20:13~14절입니다. “13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반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준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내가 이르기를 내가 내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에게 쏟아 멸하리라 하였으나 14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나라들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에스겔서를 보면서 이미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방금 읽은 말씀은 광야의 반역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도 우상숭배 하였고 광야에서도 우상 숭배하였고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도 우상숭배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진멸하려고 하셨지만 여호와의 자기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 인도하여 내셨다고 합니다.

 

에스겔 16:60~63절입니다. “60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61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접대할 때에 네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62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 내가 여호와인 줄 네가 알게 하리니 63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네가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 언약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들은 언약에 신실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언약에 신실함으로 구원하십니다. 이 모든 말씀은 로마서가 정리합니다.

 

로마서 3:19~26절입니다.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이러한 복음의 말씀은 선악과를 따 먹고 난 아담의 후손으로서는 아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사람에게서 결코 나올 수가 없기에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로 주신 것이 믿음입니다(엡2:8). 그러므로 성경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시고서 나온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기에 선물로 받은 믿음이지만 그 믿음을 하나님은 그 사람의 것으로 인정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의 이 말씀이 오늘 말씀드린 구약의 내용들을 요약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억하시는 것은 우리의 것을 내가 만들어 내어 놓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긍휼과 사랑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