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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9:23~24 무엇을 자랑하는가? 2013. 9. 18

 

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추석전날이군요! 옛날 어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추석이라 먹어보자’ ‘설이라 놀아보자’ 배고프고 고단한 시절의 이야기가 묻어있습니다. 보릿고개를 지나고 가을 추수기가 왔으니 추석날 음식을 많이 해서 배부르게 먹어 보자는 말입니다. 그리고 늘 고된 농사일에 힘들었던 사람들이 설은 농한기이기에 며칠 푹 쉬고 놀아 보자는 말입니다. 농한기라도 산에서 나무를 해야 하고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야하는 다른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명절을 빌미로 먹고 놀아보자는 이야기인데 저는 슬픈 이야기로 들립니다.

 

오늘날의 명절은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먹고 살만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명절에 모이는 불편함보다 해외여행을 많이 가는 시절입니다. 반면에 가족과 친척이 모여서 화목하게 지내는 가정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명절 스트레스를 호소합니다. 이런 스트레스는 여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에게도 만만찮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에 모이게 되면 의미 없는 대화들만 오고가는데 그 중에 가장 많이 차지하는 내용은 자랑입니다. 노골적으로 자랑하기도 하고 은근히 자랑하기도 합니다. 자랑할 것이 없으면 남을 비난하는 것으로 자신은 상대적으로 그 보다 낫다는 자기 자랑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자랑하지 말 것과 자랑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랑하지 말 것은 지혜와 용맹과 부함입니다. 자랑할 것은 명철하여 여호와를 아는 것과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임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것을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자랑과 전혀 다른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슨 자랑을 하기 위하여 살아왔습니까? 하나님께서 자랑하지 말라는 것들을 자랑하기 위해서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자랑’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할랄’입니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단어로 ‘할렐루야’의 원형입니다. 이 단어가 문법에 따라 조금 다르게 읽혀집니다. 예를 들어 직설법으로 사용하면 찬양하다. 명령형이면 찬양하라. 수동태면 찬양받다. 이런 식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자랑이란 단어가 자랑하다. 찬송하다. 칭찬받다. 송축 받다. 유명하다. 빛나다. 등으로 사용됩니다. 사람들은 각자가 이런 찬송과 칭송을 받아 빛이 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사야 43:21절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외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이 되는가 하는 설교를 합니다. 이 말씀 한절 읽어놓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무엇인지 예를 드는데 거의 다 하나님을 잘 섬겨서 복을 받아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들을 하나님 잘 섬긴 대가로 받아서 하나님을 찬송하자는 이런 말들에 아멘 하는 자들은 이미 그들 마음속에 세상 영광에 대한 욕망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43장의 내용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 하여 포로로 잡혀가 있는 상황입니다. 에스겔 36장을 보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을 다시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사야 43:7절입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십니다. 이들이 여호와를 찬양할만한 조건을 갖춘 자들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여호와의 영광을 가린 자들입니다. 범죄 함으로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자들을 구원하여 내심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찬송과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찬송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는 말은 오직 하나님의 자기 언약의 신실하심과 그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나타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찬송과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23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지혜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아니라 세상의 지혜를 말합니다. 세상의 지혜란 인간의 능력과 가치를 찬양하는 지혜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지혜로는 결코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지혜를 하나님께서 미련하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5~27절입니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은 세상에서 율법을 가르친다는 스승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들에게 알려주신다는 말씀은 자기 지혜와 슬기가 없는 자들을 은유적으로 말합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를 주신 분을 자랑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18~31절을 봅니다. “봉독” 오늘 설교의 결론과 마찬가지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안에 사람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였다는 말씀만이 아니라 어리석음과 약함에 대하여서도 말씀합니다. 그리고 31절 끝에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기 하려 함이라고 하는 이 말씀을 오늘 본문 예레미야 9:23절에서 인용하였다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랑하지 말라고 한 지혜와 용맹과 부함이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지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미련하고 어리석게 볼 뿐입니다.

 

시편 147편입니다. “10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11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두 번째 자랑하지 말라는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용사는 자신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용맹이란 자신의 힘이기도 하지만 말과 병거의 수와 힘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구원 얻은 자가 없습니다.

 

시편 20:7절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병거와 말을 의지하는 자들이 있지만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병거와 말과 용사들의 용맹을 믿었기에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게 까지 되었습니다. 이들이 포로에서 돌아올 때는 그들이 평소에 믿고 자랑하였던 것들이 다 부수어졌습니다. 그래서 패잔병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이들이 자랑할 것은 주의 긍휼만을 자랑하게 됩니다.

 

세 번째 자랑하지 말 것은 부자의 부함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나라에서 가장 큰 자랑은 부함입니다. 그래서 명절에 모여서 이야기를 하여도 결국 누가 더 부자인가를 자랑합니다. 누가 지혜가 있다고 하거나 용기가 있다고 하거나 간에 그 지혜와 용기들을 가지고 얼마나 부자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 결론으로 내려집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이런 것들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자랑이란 다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1:10절입니다.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찌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부함이라는 것들이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잠시 있다가 지나갈 것만을 붙들고 있다면 영원한 생명을 붙들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은 낮추어주십니다. 지혜로, 용맹도, 부도 낮추어주심을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으로 봅니다. “부요한 형제는 하느님께서 낮추어 주시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아무리 부요한 사람이라도 들에 핀 꽃처럼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부한 자들에게 오히려 울고 통곡하라고 합니다.

 

야고보서 5:1~3절입니다.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울고 통곡해야 할 것을 우리들은 자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허탄한 자랑들이 다 죄가 됩니다.

 

요한1서 2:15~17절입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자랑하지 말라고 하신 이 세 가지 안에 다 들어있습니다. 이 헛된 자달들은 다 지나가기에 하나님을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말이 오늘 본문에서 마땅히 자랑 할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본문 예레미야 9:24절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자랑하는 자는 명철하여 여호와를 아는 것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내가 많이 학습하여 여호와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많이 학습하여 알았다면 다시 자기자랑이 나옵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은 그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여호와를 알되 힘써 여호와를 알려고 합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이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분인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의와 공의대로 세상을 심판하신다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견뎌낼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세전에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예정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일방적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은혜를 입은 자들은 자기를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지혜도 자신의 용맹도 자신의 부함도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를 자랑할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이와 동시에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게 됩니다.

 

시편 39:4~7절입니다.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사람이 든든히 서 있다고 생각하는 때는 자신의 지혜와 용맹과 부함이 가득할 때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허사임을 아는 자들은 주님께 소망을 둡니다.

 

고린도후서 12:9~10절입니다.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그러므로 갈라디아 6:14절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은 자신이 믿었던 세상의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 믿었던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약하심인 십자가만이 우리의 구원과 자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