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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7~19 내 아들아 2016. 12. 7

 

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8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9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10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11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12 스올 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들 같이 통으로 삼키자 13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을 채우리니 14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지라도 15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16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17 새가 보는 데서 그물을 치면 헛일이겠거늘 18 그들이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19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7절의 말씀은 지난주의 결론도 되지만 오늘 말씀의 서론도 됩니다. 물론 잠언서와 성경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그런데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합니다. 지혜와 훈계를 누가 전달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에서 일차적인 전달자는 부모입니다. 물론 제사장들과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이 있었지만 그 중심은 가정에서부터 여호와 경외하기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내 아들아 하면서 부릅니다. 이 잠언을 기록한 솔로몬도 자신이 다윗의 아들임을 잠언서 시작에서 가장 먼저 언급을 합니다. 이것은 다윗 언약과 연결도 하였습니다만 이스라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여호와 경외를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만 내 아들이라고 부르는 말이 4회 나옵니다. 잠언서 전체에서는 23회 나옵니다. 내 아들이라고 부른다고 아들만이 아니라 딸도 다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교육은 부모가 자식에게 말씀을 가르칩니다.

 

출애굽기 12:21~27절입니다. “21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23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24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25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26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첫 유월절을 말씀하시면서 유월절을 규례로 삼아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키라고 하십니다. 유월절이은 이스라엘민족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래서 달력도 기존의 달력대신 유월절을 1월 달로 삼게 하십니다(12:2). 그러므로 유월절이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정체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의 의미를 알게 하시려고 영원한 규례로 삼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자손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유월절을 지킬 때에 왜 이렇게 하느냐고 물으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어가심으로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다는 말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부모가 이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6:4~9,25절입니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25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합니다. 집에 앉을 때, 길을 갈 때, 누워 있을 때,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을 강론(講論)할 것이라고 합니다. 설교(說敎)를 다른 말로 강론(講論)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부모는 자녀들에게 율법선생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고 미간에 붙여서 표를 삼고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도 기록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완벽하게 행하면 그것이 우리의 의로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열심히 율법을 지켜온 그 후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규례를 왜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의 장자 만들기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계시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4:22~23절입니다.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모세가 여호와의 보내심을 받을 때에 바로 왕에게 할 말은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고 하시면서 내 아들을 보내어 나를 섬기게 하라고 하여도 바로 왕이 거절하니 내게 네 아들 장자를 죽일 것이라고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이 유월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장자가 되는 길은 유월절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 또는 장자 만들기는 율법이 주어지기도 전에 성립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자란 단지 혈통의 순서로 장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희생하는 자가 장자가 됨을 야곱의 열두 아들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혈육의 순서로는 장자가 르우벤이지만 그 자격을 상실하고 요셉이 장자가 됩니다. 그 이유는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갔지만 나중에 그 가족들을 살려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요셉의 일을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연단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열두 아들 중에서 유다지파를 통하여 메시아가 오는 것도 유다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베냐민을 데려 오겠다고 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은 장자의 희생으로 되는 것을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출애굽기 19:4~6절입니다.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애굽 한 것은 이스라엘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장자가 되는 길 제사장이 되는 길은 언제나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아들 곧 장자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구약의 역사입니다.

 

오늘본문 8~9절을 봅니다. 봉독아들이 아비의 훈계를 듣고 그 어미의 법을 떠나지 않으면 그것이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 될 것이며 네 목의 금 사슬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아들의 지위만이 아니라 다윗이 왕이기에 다윗의 아들들도 왕의 지위에 있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훈계를 솔로몬이 다윗에게 이미 들었습니다(왕상2:1~4). 그러나 솔로몬 자신도 이 훈계를 제대로 순종하지 못하였습니다. 솔로몬으로 인하여 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러함에도 솔로몬은 이러한 말씀을 전한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이 인간의 악함과 약함 속에서도 어떻게 신실하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그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함을 받을 수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10~14절입니다. “봉독악한 자가 너를 꾀어도 따르지 말라고 합니다. 악한 자들이 우리와 함께 가자고 하면서 가만히 엎드려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고 하는 것입니다.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무덤처럼 산채로 통째로 삼키셔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을 채우자고 하는 것입니다. 어제 국회 청문회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회장들이 나왔습니다. 전두환 정권 때에 일해재단에 돈을 낸 아버지들의 아들들이 이번 청문회에 불려왔습니다. 그 아버지가 하는 짓을 그 아들들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경련을 통하여 온갖 로비와 비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전경련을 해체하라고 하니 몇 사람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몇 사람은 그렇게 못하겠다고 합니다. 전경련을 통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기 때문입니다. 잠언서의 도둑과 강도처럼 빼앗은 것을 전대 하나만 두자고 하는 것은 공동의 이익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본문 15~19절입니다. “봉독 내 아들이 그들과 함께 다니지 말라고 합니다. 시편 1편에서도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가 이와 정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 길로 가지 말라고 하는데도 그 발이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데 빠르다고 합니다. 인간이 죄를 향하여 달려가는 어리석음은 새보다 어리석다고 합니다. 새가 보는 데서 그물을 치면 헛일이 되는데 인간은 남을 해치는 악한 일을 행하는 곳으로 빨리 달려갑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결국 자기의 피를 흘리는 것이며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것입니다.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합니다. 탐심이 우상숭배이며 여호와의 진노가 임하는 것임을 알고도 피를 흘리는 데 그 발이 빠른 것은 율법의 교훈을 아비로부터 부지런히 받아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난주 보았던 로마서 3:15절만 다시 봅니다.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로마서 3장의 각주가 달린 모든 내용들은 다 구약의 말씀들입니다. 그 중에 15절은 오늘 본문 16절의 피 흘리는데 빠르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의 인용은 이사야 59:7절입니다. 그 단락을 봅니다.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3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 4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실하게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행을 잉태하여 죄악을 낳으며 5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6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릴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포악한 행동이 있으며 7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생각은 악한 생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있으며 8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로마서 3장과 이사야 59장의 일부만 보아도 인간이 어떤 죄인인지를 명백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아비가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쳐도 악을 행하는 일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인간의 죄가 어떠한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율법 자체가 인간의 죄를 막을 수가 없음도 보여줍니다. 율법이 가입함으로 죄로 심히 죄가 되게 합니다.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그 반대로 행하려고 하는 속성이 죄인의 속성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대로 내 버려두시면 인간이 스스로 율법을 지켜서 의에 이를 수 있는 인간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불순종의 역사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기 언약을 어떻게 이루어 내실 지를 계시하고 있는 것이 구약입니다.

 

시편 40:6~7절입니다. “6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다윗이 고난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찬양한 시편입니다. 주께서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구약에서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때에 어떻게 이런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까! 시편 51편에서도 제사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다고 합니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나가 누구이겠습니까?

 

히브리서 10:1~18절입니다.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1)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상당히 길게 인용을 하였습니다만 우리가 지금까지 간단하게 찾아본 말씀들의 결론과 같은 부분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는 바리새인들이 이런 율법조문을 열심히 지키는 표시를 내기 위하여 옷의 술을 길게 하고 이마에 붙이는 경문을 크게 하고 다녔습니다. 이런 자들이 율법을 완성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에 앞장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율법과 제사가 무엇을 말하는지 히브리서는 아주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주신 것은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는 것이기에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구약은 새 언약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9~39절입니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33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내 아들아하는 이 한 말씀으로 여기까지 추적하여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그러므로 그 부모를 공경하게 하였으며 그 부모를 거역하는 자를 죽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렇게 엄격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자기 아들들에게 전하였지만 마음에 기록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구약에서 새 언약이 예언된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본문에서도 예레미야 31장의 새 언약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옛 언약의 완성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의 아비가 된 자들은 그 자녀들에게 무엇을 전해야 하겠습니까?

 

바울사도도 새 언약의 일꾼이 되었다고 하면서 디모데나 디도를 아들이라고 부릅니다(딤전1:2, 1:4).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전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신 새 언약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장자의 희생으로 인하여 양자로 입양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면 이러한 말씀들이 분명하게 보이고 들릴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 땅에서 고난과 비방과 환난과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자들과 사귀게 됩니다. 그래서 갇힌 자를 동정하게 된다는 것은 복음으로 갇힌 자들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일이 없지만 세계 도처에 복음으로 갇힌 자들이 있습니다. 가까운 북한에도 예수님을 믿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이런 자들과 사귐으로 또는 그 복음으로 인하여 자신의 소유들이 빼앗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도 기쁘게 당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소유를 빼앗기는데 기쁘다고 한다면 이것이 사람의 능력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이런 일로 인하여 기뻐한다면 이 사람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 곧 하늘에 간직된 소유가 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아들의 영을 받아 하나님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아들 됨을 인간의 본성으로는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놀라서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일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루어내십니다. 우리는 배제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을 십자가로 이루어내심으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신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자기에게로 모아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아들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놀라지 말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큰 상을 얻습니다. 그 큰 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낮은 몸이 그 영광의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 약속을 받기까지 인내가 필요합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실 것입니다. 지체하지 않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