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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2:13~28 참말과 거짓말 2017. 6. 7

 

13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14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16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17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

 

오늘 본문에서는 말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말에 대한 내용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내용도 사실은 말을 기록한 것입니다. 제가 지금 말을 합니다. 이 말을 기호로 표시하여 기록한 것이 문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에 대한 내용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 기록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문자를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문자를 율법조문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에 네 가지 정도로 구별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말씀, 기록된 말씀, 선포되는 말씀, 성례입니다. 살아있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기록된 말씀은 성경입니다. 선포되는 말씀은 설교를 말합니다. 여기서 선포라는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설교가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설교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가 아닌 목사나 교인들의 야망을 위한 왜곡된 설교가 나온다면 그것은 거짓 선지자가 선포하는 말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성찬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례이든 선포이든 기록된 말씀이든 살아있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되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3:6절입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율법 조문이란 기록된 문자로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율법조문이 문자로 우리에게 적용되면 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조문은 왜 우리가 죽어야 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조문이 몽학선생으로 살아있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지 않으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성령이 임하고 나서 성경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 새 언약의 일꾼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이 주로 말에 대한 내용이기에 말에 대한 내용을 잠시 말씀드리고 나서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 보여주는 것으로 계시하셨습니까? 말로서 계시하셨습니까? 구약에서 수많은 표적과 기적들이 나타납니다만 그런 것으로 하나님 자신을 직접 계시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표적과 기적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떨기나무가 불에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떨기나무는 사막에서 덤불과 같은 나무이기에 불이 붙더라도 곧 꺼져버립니다. 그런데 불이 계속타고 있기에 이상해거 그곳으로 가 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야도 여호와의 말씀을 지진이나 바람이나 불로 들은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이 지나간 후에 세미한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어떠한 형상으로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물속에 있는 것이나 간에 그 어떤 형상으로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창세기 3장부터 타락한 인생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것인지를 구약이 스스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보이는 것을 요구합니다. 출애굽한 시내산 앞에서 언약을 체결하고 나서 40일도 안 되어 보이는 신상을 요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금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언약의 돌 판을 받아오는 모세의 손에 들린 십계명에서는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형상숭배로 인하여 기록된 말씀의 돌판 이 깨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들리는 말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현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로 증거 되는 복음보다 가시적인 현상을 더 실질적인 하나님의 표적과 기적으로 보려고 합니다. 내가 개척을 하여 이렇게 수천 명의 교회로 키웠다는 이야기가 목회자들과 교인들에 먹혀들어가는 것은 보암직한 것을 추구한 것입니다. 회사나 정치나 텔레비전도 눈에 보이는 도표를 신뢰합니다. 치열하게 논증하여 결론을 도출하여 내는 과정보다 효율적인 것이 그래프나 도식화 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빨리 쉽게 마음이 움직여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의 광고는 이미지 전쟁입니다. 그런데 진리를 담아내고 전달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말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의 전달방식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문제입니다. 인간과 말이 같지를 않습니다. 지난주 토요일에 서머나 교회 목사 위임과 은퇴식이 있었습니다. 같은 시찰회이기도 하고 우리교회 행사 때에 두 번이나 나무를 선물하셔서 지금도 창가에서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조를 갚으려고 집사람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경상노회에서 제일 규모가 큰 교회이기에 목사 위임과 은퇴에 많은 순서들이 있습니다. 다들 좋은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위가 다르기에 공허하게 들립니다. 저의 향해서도 어떤 사람들은 틀린 말을 하지 않지만 그래도 당신은 바른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이기에 말과 사람이 같지 않는 모습입니다.

 

마태복음 12:34~37절입니다.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을 받는 자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종교적인 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이들을 향하여 너희는 악하니 선한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 속에 악한 것이 가득하게 쌓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상태에서 나오는 말들이 다 악한 말이기에 심판 날에 심문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배척하면 정죄를 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43~47절입니다.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1)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1)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45 내가 1)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여기서도 말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아비가 마귀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이며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에게 붙들려 있는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줄을 모릅니다. 마귀는 그 속에 진리가 없기에 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아버지께 보고 들은 것을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말씀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31~36절입니다.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마태복음에서 어린아이 같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릴 때에 어린 아이의 특징은 보고 들은 대로 말한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보고 들은 것을 가감하게 되면 이는 이미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위로부터 오신 분이시기에 예수님 홀로 위에서 보고 들은 것을 말씀하십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땅에 속한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가 싫은 것입니다. 자신들이 상상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기에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외에는 다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소속인 된 자들입니까? 하늘에 속한 자라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땅에 속한 자라면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 그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믿지 않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습니다.

 

요한일서 2:18~25절입니다. “18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19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1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2)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2)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거짓말하는 자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자입니다.

 

요한일서 5:9~12절입니다. “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사람의 증거도 말로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증거는 그 아들에 대하여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께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증언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그 아들을 믿습니다. 아버지의 증거가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그 아들 안에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그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아들을 부인하게 만드는 것이 거짓말 하는 사람입니다. 참말과 거짓말은 그 아들에 대한 내용으로 분별이 됩니다.

 

이제 오늘 본문 13을 봅니다.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악인의 입술의 허물이 무엇입니까? 진리에 속하지 않음으로 진리를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리는 것입니다. 진리에 속하지 않는 자는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말하기에 이것이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자기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진리를 말합니다. 이런 자들은 영원한 환난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는 진리를 말함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것입니다.

 

14절입니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福祿)에 족하다고 합니다. ()이란 원래 제사를 지내고 나서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녹이란 녹봉(祿俸)이라고 해서 임금으로부터 계절마다 받는 물품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복이란 높은 자에게서 낮은 자가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복록이 입의 열매라고 하니 무조건 좋은 말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참말과 거짓말에 대하여 살펴본 대로 하면 입의 열매가 참말을 하는 것입니다. 바른 진리를 전하는 것이 영원한 복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이 입의 열매에서 손이 행하는 대로 받는 다고 합니다. 평행구절로 보면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는다는 것도 그 입의 열매대로 받는다고 봐도 됩니다. 그 입의 말이 거짓된 것이라면 결국 헛된 것을 받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지만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이 말씀도 결국은 말에 대한 내용으로 봅니다. 권고(勸告)라는 것은 말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련한 자는 자기의 행위가 옳다고 여기기에 어떠한 바른 말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는다는 것은 자기의 행위가 옳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본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자의 권고를 받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16절입니다.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이 말씀도 말과 연결이 됩니다. 미련한 자가 당장 분노를 표출할 때에 표정으로도 나타나지만 결국 험악한 말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분노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말이나 행동으로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자는 수욕(受辱)을 참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당할 때에 지혜로운 자는 자신을 돌아보기에 그러한 수욕을 견뎌내는 것입니다.

 

17절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냅니다. 이런 내용은 이미 앞에서 충분히 살펴보았습니다. 진리를 말하는 자라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야 합니다. 인간에게서는 의가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가 없음을 말할 뿐만 아니라 유일하고 참된 의를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다는 말을 하는 자가 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말하지 않는 자가 거짓 증인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속이는 말을 합니다.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 거짓 증인입니다.

 

18절입니다.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함부로 말한다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자기의 것으로 말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증인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서 두 반응이 나옵니다. 어찌 할꼬 하면서 회개하는 자들이 나오는가 하면 이를 갈며 돌을 던지는 자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다고 합니다. 참된 복음은 비록 말씀의 검에 의하여 찔림을 받지만 그 보다 더 완벽한 치료를 받는 것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오늘도 두 곳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호주와 국내에서 전화가 왔는데 그 중에 국내에서 전화가 온 분은 약 2년 전에 심한 질병으로 의사도 포기할 정도였다고 하였습니다. 모태신앙이라고 하였지만 복음을 듣고 보니 천국에 갈 확신도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질병과 죽음에 대한 염려보다 자녀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바른 복음을 전해주고 가야 한다는 것이 염려라고 하였습니다.

 

19절입니다.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진실한 입술을 영원히 보존된다고 합니다. 입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을 말하는 그 사람이 영원히 보존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리가 담겨진 사람입니다. 이러한 자는 영원히 보존 되지만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것입니다. 거짓 혀도 역시 그 사람 전체를 말합니다. 거짓말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잠시 동안 잘 먹고 잘사는 것처럼 보여도 영원히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말과 거짓말이란 단지 몇 마디 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말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입에서는 무슨 말이 나옵니까?

 

20절입니다.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이 말씀도 참말과 거짓말이라는 앞의 내용으로 연결하여 보면 됩니다. 그 사람 속에 길과 진리와 생명과 의가 되시는 예수님이 없는 사람은 늘 마음에서 악을 꾀하고 속임이 가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생명이 있는 자는 화평과 희락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의와 희락과 평강의 나라입니다.

 

21절입니다. 의인에게는 어떤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리라오히려 의인이 재앙을 당하고 악인이 형통한 것이 이 세상의 겉모습입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의인에게는 영원한 재앙이 없습니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영원한 재앙이 가득할 뿐입니다.

 

22절입니다.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거짓 입술과 대칭되는 단어가 진실하게 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참된 입술을 가진 자가 됩니다. 거짓 입술을 가진 자는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기에 자기의 것 곧 마귀에게 속은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서 나오는 말이란 거짓일 뿐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것을 말해도 그것이 영원과 진리의 빛에 비추어보면 거짓으로 드러날 뿐입니다.

 

23절입니다.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슬기로운 자가 지식을 왜 감추겠습니까?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제 속에 있는 미련한 것을 전파합니다. 그것이 거짓에서 나온 것 인줄도 모르고 전파합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그 거짓말을 따라 갑니다. 이것이 이미 구약을 통하여 다 보여주신 내용입니다. 그러함에도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24절입니다.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세상은 오히려 이 말씀과 거꾸로 보입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이 사람들의 다스림을 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가장 많이 등장하는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교훈하는 내용입니다. 지난주 오후에 성화에 대한 질문을 한 분이 있습니다만 은혜에서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 안에 있는 자가 가장 열심을 낼 것입니다. 그러한 열심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기의 의나 공적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인한 열심인 것입니다.

 

25절입니다.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마음속에 있는 근심이 사람을 번뇌하게 합니다. 바울사도는 세상 근심은 멸망에 이르게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하여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합니다(고후7:10).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 선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사람의 근심이 변하여 찬송이 되게 합니다.

 

26~28절입니다. “26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 27 게으른 자는 그 2)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3)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28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의인은 진리를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자는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지만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합니다. 자기 자신이 미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와 부지런한 자를 대비합니다. 마지막 절에서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으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가는 이 길이 생명의 길인지 사망의 길인데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생명에 속한 말이 나오는지 사망에 속한 말이 나오는지를 보시면 됩니다. 부디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하여 모든 삶의 현장에서 생명의 말, 참된 말이 나오는 자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런 자들은 이웃의 인도자들이 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는 사람이 참말을 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