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deo streaming by Ustream

 [음성 설교]  [동영상 설교]


에스겔 14:1-23 재앙이 위로인가?            2012. 2. 15

 

1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나아와 내 앞에 앉으니 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3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4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로 가는 모든 자에게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수효대로 보응하리니 5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 그 우상으로 말미암아 나를 배반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이 마음먹은 대로 그들을 잡으려 함이라 6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21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아니하겠느냐 22 그러나 그 가운데에 피하는 자가 남아 있어 끌려 나오리니 곧 자녀들이라 그들이 너희에게로 나아오리니 너희가 그 행동과 소행을 보면 내가 예루살렘에 내린 재앙 곧 그 내린 모든 일에 대하여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23 너희가 그 행동과 소행을 볼 때에 그들에 의해 위로를 받고 내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모든 일이 이유 없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본문 22절과 23을 보시면 위로를 받는다는 말씀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내린 재앙으로 인하여 위로를 받으리라고 합니다. 재앙이 어떻게 위로가 된다는 말씀입니까? 사람들이 신을 찾고 종교를 찾는 이유는 재앙을 면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세에서 환난과 재앙을 피할 뿐 아니라 복도 받고 또한 내세에서도 영원한 복을 받기 위하여 신이나 종교를 찾습니다. 물론 이런 것을 천박하다고 여기고 좀 더 고상하게 선행을 행하며 정신적인 수양을 위하여 찾는 자들도 있습니다만 그런 사람이라도 막상 집안이 망하고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면 그런 마음편한 소리를 하지 못하고 재앙을 면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가 망한 재앙이 위로라고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나라가 멸망한 재앙이 위로가 되는지 오늘 말씀을 보겠습니다.

 

14:1-5절입니다.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에스겔에서 묻기 위하여 나왔습니다. 이때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합니다. 이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조금인들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우상을 마음에 들이고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과 삶이 우상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도 왜 선지자에게 온 것입니까? 다다익선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신들 가운데 하나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마음에 우상들이 많은 것입니다.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상황에서도 우상을 섬기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힘이 없기에 바벨론이 섬기는 신에게 졌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고대의 전쟁들은 신들의 전쟁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그들 마음에 힘이 있다는 것은 다 섬기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마음과 같지 않습니까? 나의 삶에 힘이 되고 도움이 된다면 이것저것 다 수집하여 갖다 놓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의 집안에 일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번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물건들을 비좁은 집안에 들여놓았습니까? 살아가는데 언젠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에 온갖 신들을 다 담아두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저주를 받는다고 맹세를 한 백성입니다. 5절을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으로 말미암아 여호와를 배반하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음먹은 대로 그들을 잡으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얼마나 우상숭배가 가득한지를 잠시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할 때부터 금송아지를 섬긴 자들입니다. 금송아지를 보고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낸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졌을 때에 북 이스라엘은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신전에 모시고 하나님이라고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하였습니다. 이것을 본 남 유다가 정신을 차린 것이 아니라 이미 에스겔서에서 본 대로 성전 안에까지 우상이 가득하였기에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고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지만 아직도 그들의 마음에는 우상이 가득 들어있다는 말씀입니다.

 

6-8절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전하라고 합니다.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상을 떠나지 않고 그들의 마음에 우상을 품은 채로 선지자에게 묻기 위하여 나오는 자들은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심판은 내 백성 가운데에서 끊어버리신다고 합니다. 그 심판이 얼마나 혹독한지 놀라움과 표징과 속담거리가 되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심을 통하여 그렇게 심판하신 분이 여호와임을 알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선지자에 묻기 위하여 나가는데 누구를 위하여 묻고자 하는 것입니까? 7절을 보시면 자기를 위하여 묻고자 합니다. 오늘도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이 기도한다는 사람들에게 묻기 위하여 가는 것 자체가 자기를 위하여 나갑니다. 개인의 신수사와 원화소복(遠禍召福)을 바라고 나간다면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결국은 나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상이란 나를 위하여 만들어 내는 것이 다 우상입니다(출20:4). 그러므로 성도는 이제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는 사람입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 된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롬14:8).

 

9-11절입니다. 그런데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아서 묻기 위하여 온 사람에게 말을 하면 여호와께서 그 선지자와 묻기 위하여 온 자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유혹을 받은 선지자가 무엇을 위하여 말해 주겠습니까? 지난주에 보았던 대로 자기 마음에 나오는 대로 거짓 평안과 복을 빌어주고 복채를 받는 것입니다. 여인들은 두어 움큼 보리나 콩을 위하여도 거짓 점을 쳐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하셨다는 것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2절입니다.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구약이나 신약이나 동일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가 과연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주님을 찾는지 보아야 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예수님을 믿는지 예수님을 위하여 믿는지 돌아보자는 말씀입니다.

 

본문 11절을 봅니다. 왜 하나님께서 거짓 선지자와 그에게 묻기 위하여 나오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까? 이런 자들을 둘 다 심판하심으로 이스라엘 족속이 다시는 미혹되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며 다시는 모든 죄로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여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위하여 일하시는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우상을 섬기면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신명기 28장에서 이미 찾아보았습니다. 온갖 기근과 전염병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 까지도 다 언약의 저주 속에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심판하시는 것은 자기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2-20절입니다. “봉독” 여호와께서 우상숭배로 가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십니다. 언약의 저주대로 심판을 하시는데 양식을 끊어버립니다. 사나운 짐승을 보냅니다. 칼을 보냅니다. 전염병을 보냅니다. 이러한 언약의 저주가 율법에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엄중한 심판을 하실 때에 그 안에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있어도 자기의 자녀도 구하지 못하고 겨우 자기 자신만 구원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노아와 다니엘과 욥은 성경에서 의인으로 드러난 사람들입니다.

 

노아는 모든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모든 삶의 목표를 두고 사는 시대에 여호와의 재앙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온 세상이 물로 심판하신다는 재앙의 소식을 듣고 믿었기에 노아에게는 여호와의 재앙의 말씀이 위로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간에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예수님 오실 때에 노아의 때와 같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불로 심판을 받으리라는 재앙의 소식이 위로가 되는 사람만이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기다릴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거대한 제국주의 바벨론에 모두가 함몰되어 가는 중에 다니엘은 그 바벨론의 영광에 함몰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보암직한 세상의 영광에 취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를 섬기기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겠다고 사자 굴에 들어간 사람입니다. 어떻게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이미 그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을 주로 섬겼기에 다른 신을 섬길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다니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는 재앙 속에서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로 인하여 위로를 받은 사람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자랑한 의인이었습니다. 욥이 당한 재앙은 그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사탄의 내기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욥이 어떤 재앙을 당하였습니까? 하루아침에 그 많은 재산이 다 날아갔습니다. 열 명의 자식들이 한꺼번에 죽었습니다. 이때 욥의 고백이 주신이도 하나님이시오 취하신 이도 하나님이시라고 하면서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의 시험은 욥의 온 몸에 악창이 들었습니다. 욥의 아내는 이런 남편을 보고서 여호와를 욕하고 죽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아내를 향하여 어리석다고 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께 복도 받았으니 화도 받지 않겠느냐며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기에 언급된 세 사람이 다 재앙 가운데서 위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본문 21-23절입니다. “봉독”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네 가지 중한 벌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으로 심판하시고 그 가운데 피하여 남은 자를 끌어서 바벨론에 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의로워서 남은 자들이 아니라 여호와의 언약의 신실함을 보이시기 위한 증인으로 바벨론에 데리고 옵니다. 바벨론에 이미 포로로 잡혀와 있는 사람들은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완전히 예루살렘이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재앙입니다. 그런데 이 재앙이 어떻게 위로가 됩니까?

 

재앙이 하나님의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은 자신이 날 때부터 우상숭배 하는 자기밖에 모르는 죄인이며 하나님의 언약이 신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에게만 위로가 됩니다. 이것은 유대인이나 오늘 우리나 간에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이 일어나야만 하는 일입니다. 23절을 봅니다. 너희가 그 행동과 소위를 볼 때에 그들에 의해 위로를 받는다고 합니다. 마지막 기대마저 무너져서 포로로 끌려온 자들을 보면서 예루살렘에 일어난 이 모든 일이 이유 없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알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고 계심을 아는 사람만이 포로로 잡혀온 재앙의 순간에도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시대인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주의 백성들에게 환난이 많습니다. 이것은 저주나 재앙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징계의 차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의 환경에 어려움이 오는 것을 마치 저주와 정죄로 여깁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데도 환난을 정죄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야 환난조차도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13절을 봅니다. “봉독”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환난 가운데 주의 위로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녀마다 징계하십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입니다. 징계가 마치 재앙처럼 보이기에 즐거워 보이지 않지만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을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재앙이라고 하는 사건과 환경 속에서도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진짜 재앙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는 것이 재앙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닥치는 재앙은 주님을 더 의지하게 하시는 위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