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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성 설교]  [동영상 설교]

에스겔 16:1-43 창기보다 못한 예루살렘 2012. 2. 29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3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라 4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5 아무도 너를 돌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네가 들에 버려졌느니라 6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7 내가 너를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더라 8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42 그리한즉 나는 네게 대한 내 분노가 그치며 내 질투가 네게서 떠나고 마음이 평안하여 다시는 노하지 아니하리라 43 네가 어렸을 때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이 모든 일로 나를 분노하게 하였은즉 내가 네 행위대로 네 머리에 보응하리니 네가 이 음란과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다시는 행하지 아니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16장은 63절까지 있는 아주 긴 본문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43절까지만 보려고 합니다. 예루살렘을 한 여인으로 비유하면서 이스라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2절을 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임합니다. 이것은 에스겔 선지자 자신의 말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그 내용은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가증함이란 한 버림받은 여자아이를 구원하셔서 영광스러운 왕후로 만들었더니 한 일이라고는 가증한 우상숭배였다는 고발입니다.

 

3절입니다. 예루살렘의 근본과 난 땅이 가나안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읍이 가나안사람들에게 속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며 어머니는 헷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읍이 이방인에게 속한 것인데 이 예루살렘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다윗시대에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땅을 다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은 가나안 원주민들이 행한 온갖 우상숭배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루살렘을 책망하시기 위하여 그들의 근본부터 따지고 있습니다.

 

4-5절입니다. 태어날 때에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않았고, 소금을 뿌리지 않았고, 강보에 싸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상적으로 출생한 아이라면 반드시 행하여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버림받았습니다. 이런 아이는 요즈음 뉴스에 가끔씩 나오는 화장실이나 쓰레기통에 버려진 신생아와 같이 거리낌을 받아서 들판에 버려진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근본이라고 합니다. 신약으로 말하면 허물과 죄로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피투성이를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셔서 살려내십니다.

 

6-14절입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시고 피투성이라도 살라고 하시면서 살려 주시고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번성한 것입니다. 크게 자라고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머리털이 자랐으나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곁으로 지나며 보시니 사랑을 할 만한 때가 된 것입니다. 결혼할 나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치 신랑이 되시듯이 그 여자아이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려주고 하나님께 속하게 하여습니다. 이것은 아내로 삼는다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룻이 보아스에게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어달라고 한 것이 청혼이듯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아내로 택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신부로 부름을 받은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장식하여 주십니다. 태어날 때부터 꺼림을 받아 버려진 피투성이 된 그 계집아이를 물로 씻기고, 기름을 바르고, 수놓은 옷을 입히고,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와 모시로 입히고 온갖 패물과 화려한 왕관까지 씌웠습니다. 먹는 것도 아주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이것이 예루살렘의 명성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명성이기에 그 영화와 화려함이 온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방인에까지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행한 일이 무엇입니까? 15-22절입니다. 여호와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이렇게 구원하시고 아름답게 하여 주셨다면 이제부터 자신의 영원한 남편으로 모시고 일부종사(一夫從死)하여야 할 텐데 이때부터 한 짓이 바람피우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행음인데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종교적인 음행입니다. 둘째는 정치적인 음행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예루살렘의 남편이요 보호자가 되시는데 예루살렘은 남편이 되시고 보호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온갖 가나안의 우상과 이방의 우상들까지 섬기게 되었습니다. 방자하고 음행하는 여인이 아무 남자에게나 몸을 주는 것처럼 예루살렘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신부로 맞이하면서 주신 의복을 가지고 남편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산당을 꾸미고 거기에서 행음을 하였습니다. 가나안의 산당들은 우상숭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실제로 음행도 행하는 곳입니다. 이런 일은 이방의 우상을 섬기는 자들도 자기들의 신을 함부로 바꾸지 아니하는데 여호와의 구원을 그렇게 크게 받고서도 하는 일이 이 모습입니다. 그래서 전무후무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금과 은의 장식품으로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고 수놓은 옷은 그 우상에게 입히고 좋은 음식들은 우상에게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위하여 낳은 자식마저 우상의 제물로 불살라 바친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배은망덕할 수가 있습니까? 그 이유는 22절입니다. 네가 어렸을 때에 벌거벗은 몸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마다 하는 공식적인 고백과 같은 문구가 무엇입니까? 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영원한 형벌을 받아 마땅한 본질상 진노의 자식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주셔서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른 것이 있습니까? 나는 그런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탐심이 우상숭배인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의 탐심이 아닌 것이 도대체 무엇이 있습니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면 그것이 다 우상숭배입니다.

 

23-29절입니다. 이러한 예루살렘이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모든 악을 행한 후에 즉 온갖 종교적인 우상숭배를 행한 후에 이제 정치적인 우상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누각을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높은 대를 쌓았습니다. 이런 누각과 대를 거리 모퉁이마다 세워놓고는 지나가는 자에게 다리를 벌려 심히 음행하였다고 합니다. 그 들 중에 애굽은 아예 노골적인 성적 비유로 하체가 큰 애굽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예루살렘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일용할 양식을 감하고 블레셋에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음욕이 차지 않아서 앗수르 사람과 행음하고 아직도 부족하여 장사하는 땅 갈대아에 까지 심히 행음하고도 아직도 족한 줄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마치 섹스중독에 빠진 사람이 대상을 구하듯이 다른 나라를 의지합니다.

 

월요일 경주에서 동문회 모임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저녁에 안압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야경을 멋있게 해 놓았는데 그 곳이 귀빈을 접대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연못과 누각들과 나무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옛날의 건물을 축소하여 조형물로 만들어 놓았는데 얼마나 정교하고 아름답게 누각을 장식하였는지 신라 천년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것을 만들었습니까? 귀빈을 모셔다가 연회를 열기 위한 것입니다. 신라는 그렇게 해야만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예루살렘은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음행입니다. 그러므로 애굽과 앗수르와 바벨론과 동맹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는 것이 음행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십니다. 30-34절입니다.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즉 종교적인 우상숭배로 인한 음행과 정치적인 우상숭배인 외국의 힘 있는 나라들을 의지하려고 하는 것이 다 음행인데 이것은 방자한 음녀의 행위라고 합니다. 이렇게 방자한 음녀의 행위가 나오는 것은 그 마음이 너무나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라고 말씀하십니다. 안압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만 누각을 세운 이유는 외국사절을 맞이하여 연회를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그런 대를 쌓고도 값을 싫어하니 창기와도 같지 않다고 합니다. 창기가 몸을 파는 것은 몸값을 받기 위한 것인데 예루살렘은 오히려 남자들에게 돈을 주면서 음행을 하기에 창기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남편 대신에 다른 남자들과 내통을 하면서 간음을 하는데 오늘날 이 땅의 현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기 남편 대신에 다른 남자들과 내통을 하는 것은 성적인 욕구나 경제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한 것인데 어떤 아내는 돈을 주면서 그런 음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듣습니다. 얼마나 삶이 권태로웠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돈 있고 시간 있고 건강있는사람들이 이런 짓을 합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도 이런 것이 다 갖추어지면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우리에게 그런 조건들을 주시지 않음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멸망한 예루살렘의 모습이나 이 땅의 현실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인간의 죄가 시대를 막론하고 가득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루살렘과 이러한 세상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35-40절입니다. 그러므로 너 음녀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네가 행한 그 모든 음행들을 인하여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너의 즐거워하는 정든 자와 사랑하던 모든 자와 미워하던 모든 자를 사방에서 모아서 너를 대적하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벌거벗겨서 네 몸을 다 보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린 여인을 심판함 같이 너를 심판하여 진노의 피와 질투의 피를 네게 돌리고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게하며 불로 집을 사르며 돌로 치고 칼로 쳐서 벌하신다고 합니다. 이런 심판은 음행한 여인에 대한 율법의 심판입니다. 이렇게 벌하시는 것은 단지 보복을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41-43절입니다. 이렇게 심판하심을 통하여 음행을 그치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제 음행하기 위하여 남자를 사올 돈이 없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함으로 인하여 다시는 애굽이나 앗수르나 바벨론에 돈을 보내어 군대를 사올 수가 없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16:7-11절을 보시면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에게 여호와의 성전 왕궁 곳간의 은금을 내어다가 예물로 보내어 원병을 요청합니다. 이때 앗수르의 우상제단을 보고서 그 모양을 그려 보내서 성전에 세우고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는 우상숭배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그러한 음행을 그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심판하심을 통하여 여호와의 분노가 그치며 질투가 떠나고 평안하여져서 다시는 노하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질투입니다. 질투는 사랑의 다른 말입니다. 계속하여 우상숭배를 하면 더 이상 우상숭배를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어렸을 때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이 모든 일로 여호와를 분노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음란하고 가증한 일을 다시는 행하지 아니하게 하시기 위하여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언약으로 인한 것임을 60-6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 에스겔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야 합니까? 고린도전서 6:9-11절입니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고린도 교회 안에 이런 자가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음행은 에스겔 시대나 바울시대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도 가득합니다. 종교적인 음행과 정치적인 음행으로 말하였지만 우리가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하며 사는 것이 다 음행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예루살렘을 멸망하게 하셔서 더 이상 음행하지 못하고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듯이 오늘도 주님의 사랑은 자기 백성들에게 신실하게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서 돈이 날아가고 건강이 날아가고 시간도 없게 되었다면 주님만 의지하라는 사랑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