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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8:1-32 속담(俗談) 금지 2012. 3. 21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 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3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31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오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하는 속담에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그 속담이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하는 속담입니다.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시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고 합니다. 도대체 이 속담이 무엇이기에 여호와하나님께서 이렇게 분노하시면서 자기 이름으로 맹세하면서 이 속담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속담이란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오랜 세월동안 경험하고 체득한 이야기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내용이 됩니다. 우리나라의 속담들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내용들이 속담이 되는 것입니다. 몇 가지만 말하면 ‘지성이면 감천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이런 속담은 인간이 주체가 된 인과율이며 권선징악과 고진감래와 같은 교훈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속담들이 마치 성경의 진리인양 교회에서 말해지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지극한 정성을 바치면 하늘이 감동하여 그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속담은 하나님께서 시비 걸고 나오시면서 다시는 사용하지 못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의 속담을 마치 성경의 진리인양 말하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비 걸고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이 나라의 속담에 하나님께서 시비 걸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이런 속담을 진리인양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시비를 거십니다. 그런데 이런 속담과 같은 설교가 횡행하고 그런 교회가 번성을 하는데도 그대로 두시는 것은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기 백성은 그런 가운데서 빼 내시는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빼 내시는가 하면 내가 지성을 바쳤는데도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이런 하나님을 내가 과연 계속 믿어야 하는가 하는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 온 몇 사람과 이야기를 해 보고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내가 원하는 복을 얻기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정성을 바쳤는데 복이 오지 않고 오히려 어려운 일이 닥쳤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것 같아서 버텼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정성의 강도를 더 높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정성을 바치면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는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의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본성 속에 있는 인간의 탐심과 상상이 만들어낸 우상의 하나님인데도 그것이 성경의 하나님인양 어려서부터 그렇게 들어왔고 또 우리의 속담과도 맞는 말이기에 의심 없이 진리인양 믿어온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속성에서 나오는 하나님에 대하여 포이에르바하 라는 신학자는 신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신이란 인간의 투사(透寫)다’ 우리가 프로젝션을 사용하여 필름의 내용을 화면에 비추어냅니다. 그처럼 우리 인간의 내면을 투사시켜 내면 그것이 신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신이 성경의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이지만 대부분 종교의 신이란 것이 이런 식으로 말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본문 1-4절을 봅니다. “봉독” 오늘 본문의 속담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하십니다. 그 내용은 조상의 죄로 인하여 자기들이 벌을 받아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죄가 아니라 조상들의 죄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다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잘되면 자기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유대인이나 우리나 간에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말하는 것이 속담이 된 것입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부터 이렇게 되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기 전에는 아담이 하와를 처음 보았을 때에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악의 지식을 알게 하는 금지된 열매를 먹은 후에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하실 일인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이 일을 스스로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결과 자기에게 유리하면 당기고 불리하면 밀어버리는 속성이 모든 아담의 후손들에게 다 들어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잘못은 남의 탓이고 무언가 잘한 것이 있으면 자기 탓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에 대하여 책망하시면서 다시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것이 여호와의 삶의 두고 맹세한 내용입니다. 모든 영혼이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영혼이 하나님께 속한 것 같이 아들의 영혼도 하나님께 속하였기에 범죄 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하십니다. 연좌 죄로 묶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군사독재시절에 아버지가 간첩혐의를 받으면 아들은 아무 상관이 없더라도 신원조회로 인하여 취업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때 아들은 아버지 때문에 취업이 되지 않았다고 억울해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런 속담을 사용하는 것은 율법에서 아버지의 죄를 자식 삼사 대에 이르게 하신다는 말씀(출20:5)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대사회에서 삼사 대는 대가족으로 함께 살아갑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당대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 텐트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아간의 범죄로 인하여 자녀들이 함께 죽임을 당하는 것은 그들도 다 아비의 범죄에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동조한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을 거역한 고라와 다단이 심판을 받을 때에 그들과 동조하지 아니한 자는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하였습니다(민16:24). 모세의 말을 거역하고 함께 한 자들은 땅이 함몰할 때에 그들과 함께 심판을 당한 것입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자들이 이스라엘에서부터 사용하던 속담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잘못이 없는데 조상들의 잘못으로 이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모든 일상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부부간에, 부모자식 간에, 형제간에, 교인 간에도 항상 무슨 다툼이 일어날 때에 자기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잘못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본성적으로 튀어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라면 이런 속담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5-9절입니다. “봉독” 의인이 어떤 사람인지 율법을 요약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음행을 하지 않고, 긍휼을 베풀며, 이웃을 사랑하며, 정당한 재판을 하는 것들을 말하면서 여호와의 규례와 율례를 지켜 진실히 행하는 자는 의인이며 그는 반드시 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누가 주의 규례와 율례를 다 행할 수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탐심이 우상숭배인데 우상숭배 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5절에서 만일이라고 합니다. 만일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자기의 의로 살 것입니다.

 

10-13절입니다. “봉독” 5-9절의 사람이 아들을 낳았다고 가정하였을 때에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한 대로 행하지 않고 정 반대로 온갖 악을 행하였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13절에서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기에 아들의 이 가 시다는 속담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죄로 인하여 심판을 당하는 것입니다.

 

14-18절입니다. “봉독” 10-13절의 악한 아비가 아들을 낳았을 때에 그 아비의 악행을 보고서 두려워하여 그대로 하지 않고 모든 하나님의 규례를 행하였을 때에 이 사람의 그 아버지의 죄악으로 죽지 않고 반드시 살겠다고 합니다. 그 아버지는 그의 죄악으로 죽을 것입니다. 3대를 걸친 예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범죄 하는 그 영혼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19-20절입니다. “19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버지의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는도다 아들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반드시 살려니와 20 범죄 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이것으로 결론이 내려진다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전혀 소망 없이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21-24절입니다. “봉독” 1-20절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악인이 악에서 떠나 주의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이런 자는 그 범죄 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은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이라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의인이 돌이켜 악을 행하면 그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않고 그가 그 범한 허물과 죄로 반드시 죽으리라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베드로후서에서 속담을 인용하여 말씀합니다.

 

베드로후서 2:20-22절입니다. “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거짓 선생들의 유혹을 받아서 자유를 외치면서 세상의 더러움에 다시 빠지는 자들을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25-32절입니다. “봉독” 하나님이 이렇게 공평하신 분이 신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다고 합니다. 악인이 죽고 의인이 산다는 말이 왜 공평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이나 오늘 우리나 간에 사실 다 이렇게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다고 합니다. 나보다 더 악을 행하고 나보다 교회에 열심이지도 않은 사람이 평안하고 복을 받고 살고 나는 그 보다 선하고 교회 일에도 열심인데 왜 이렇게 힘든 일을 당하는가 하면서 불평을 합니다. 다른 사람을 탓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가 아직 주께로 돌이키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범사에 감사가 나오려면 31절의 말씀대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마음과 영을 어떻게 새롭게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율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명하시면서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합니다. 신명기 10:16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몸에 할례는 행할 줄 알지만 어떻게 마음의 할례를 행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십니다. 신명기 30:6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하나님이 이루어내십니다.

 

마음의 할례 즉 마음과 영이 새롭게 되는 것은 에스겔서 36장에서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의 이름을 위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영이 새롭게 되어 회개하고 주께로 돌이키는 길은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내시고 그 완성된 혜택을 자기 백성에게 부어주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믿게 되는 사람은 다시는 이런 속담을 사용하지 못하게 됩니다.

 

디도서 3:1-11절을 봅니다. “봉독” 우리도 전에는 다 3절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행위로는 지금도 저주를 받아야 마땅할 뿐 아니라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피로 영원한 속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은 이런 속담을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세상의 속담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주의 긍휼을 말할 뿐입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