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deo streaming by Ustream

 [음성 설교]  [동영상 설교]

에스겔 20:1-9 애굽에서의 우상숭배 2012. 4. 4

 

1 일곱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에 이스라엘 장로 여러 사람이 여호와께 물으려고 와서 내 앞에 앉으니 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3 인자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내게 물으려고 왔느냐 내가 나의 목숨을 걸고 맹세하거니와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 인자야 네가 그들을 심판하려느냐 네가 그들을 심판하려느냐 너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들의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5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옛날에 내가 이스라엘을 택하고 야곱 집의 후예를 향하여 내 손을 들어 맹세하고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맹세하여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하였노라 6 그 날에 내가 내 손을 들어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그들을 위하여 찾아 두었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 7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눈을 끄는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고 애굽의 우상들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하였으나 8 그들이 내게 반역하여 내 말을 즐겨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눈을 끄는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지 아니하며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의 분노를 쏟으며 그들에게 진노를 이루리라 하였노라 9 그러나 내가 그들이 거주하는 이방인의 눈앞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눈앞에서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행하였음이라

 

먼저 1-4절을 봅니다. “봉독” 일곱 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이란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온 해를 기준으로 7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때 포로로 잡혀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로들이 에스겔에게 묻기 위하여 왔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에스겔에게 임하여 백성의 장로들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그들이 나에게 묻는 것에 대하여 목숨을 걸고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물으려고 온 것은 언제 포로에서 돌아가게 되는가를 묻기 위하여 온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조상들의 가증함을 알게 하라고 합니다.

 

에스겔 20장은 비유로 말씀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거역하며 우상을 섬겼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기별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있는 기간과 출애굽하여 광야의 기간과 약속의 땅에 들어간 기간과 포로로 잡혀간 기간을 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을 거역하지 아니한 적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이스라엘 역사전체를 통하여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역사를 우리 각자의 인생에 대입하여 보면 우리도 반역의 역사임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반역의 결과를 로마서 3:9-18절에서 미리 봅니다.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고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을 하시는 분은 아직 인간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실상이 이러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 구약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에스겔 20:1-9절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동안 어떻게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반역하였는지를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오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동안 우상을 섬겼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모세 오경에는 없고 오늘 본문인 에스겔과 여호수아에서만 언급이 됩니다. 그런데 출애굽을 다루는 모세오경에서는 왜 애굽에서의 우상숭배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 없을까요? 아예 우상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여호수아 24:14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여호수아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을 갱신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든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고 합니다. 강 저쪽이란 유프라테스 강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살던 곳의 우상을 말합니다.

 

여호수아 24:2절입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 즉 유프라테스 강 저쪽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기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기에 아브라함도 그런 우상의 영향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불러서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언약하시기를 씨와 땅에 대한 약속을 주시면서 타국에서 사대 만에 돌아와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차지할 것이라고 언약하셨습니다.

 

그 언약대로 야곱의 때에 애굽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나온 곳도 우상숭배지인 바벨론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간 애굽도 우상의 나라였습니다. 바벨론이나 애굽이나 온 세상이 다 우상숭배가 만연한 곳입니다. 이런 애굽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젖어든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모세 오경에서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이렇게 여호수아서와 오늘 보는 에스겔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우상숭배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본문 5-6절입니다. “봉독”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자들에게 특히 에스겔에게 묻기 위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로들에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게 묻기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너희가 에스겔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묻기 위하여 나온 그 마음의 상태가 무엇인지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통하여 그들의 마음 상태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답답한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또 기도 많이 한다는 사람에게 무엇을 묻기 위하여 갑니다. 그러나 그렇게 묻기 위하여 가는 그 마음자체가 이미 우상으로 가득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너무나 명백하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오기 전에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아주 명백하게 말씀을 받았습니다.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70년이 차야 돌아온다는 말씀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에스겔에게 묻기 위하여 나온 것은 그런 말씀보다 나에게 이익 되는 답을 얻기 위하여 간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당에게 묻기 위하여 가는 이유가 무당을 사랑해서 가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무당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호와께 묻기 위하여 나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에서 묻기 위하여 온 그들에게 너희가 내게 묻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시면서 그들의 조상들의 죄를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조상들의 마음이 너희의 마음과 같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애굽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그들을 불러내신 것을 말씀합니다. 그들에게 맹세하시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그들을 위하여 찾아 두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 이르게 하시겠다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우상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7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7 내가 또 그들에게 일러주었다. 각자 눈을 팔게 하는 우상들을 내던지고, 이집트의 우상들로 그들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고 하였다. 나는 주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말하였는데도” 전에 성경은 ‘눈을 드는바’ 지금 성경은 ‘눈을 끄는바’ 새 번역은 ‘눈을 팔게 하는’ 공동번역은 ‘눈을 홀리는’입니다. 즉 우상이란 보암직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애굽, 그 당시에 세계를 지배하는 대 제국, 지금도 세계의 몇 대 불가사의하면 언제나 순위를 놓치지 않는 피라미드가 출애굽하기 이전에 이미 지어진 제국이었습니다.

 

눈을 끌게 하고, 눈을 팔게 하며, 눈을 홀리는 우상들이 지금 대한민국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제품이든 사람이든 보암직한 우상들의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의 일상이 전부 눈을 홀리고 있는 것들입니다. 보암직한 것을 제공하지 않으면 텔레비전 채널은 1초안에 옮겨버립니다. 회사에 취직을 하여도 외모를 보기에 남자도 성형수술을 하는 것이 취업에 유리한 시대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보암직한 것들을 추구하지 말라는 말씀을 거부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은 수천 년에 애굽에서 살든지 지금 대한민국에 살든지 우상이 끄는 대로 끌려가는 인생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2:2절입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간 인생들입니다. 이런 인생들에게 여호와께서 우상에게 눈을 돌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이들의 본성이 어떤지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즉 죄로 심히 죄 되게 하시기 위하여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에스겔 20:8절을 봅니다. “봉독” 여호와 하나님께서 눈을 끄는 우상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고 하셨으나 그들이 반역하였습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즐겨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눈을 끄는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지 아니하며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의 분노를 쏟으며 그들에게 진노를 이루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애굽에 진노를 쏟으시는 것은 바로의 고집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고집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분노를 쏟으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바로의 강퍅과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함께 심판하시는 것이 애굽의 10재앙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애굽의 바로 왕의 고집만을 심판하신다면 10가지 재앙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땅에는 전혀 임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10가지 재앙 중에서 처음의 피, 개구리, 이의 재앙은 동일하게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구별되는 것은 파리의 재앙부터 구별이 됩니다(출8:22-23). 이렇게 구별하시는 것은 이런 재앙이 히브리 민족의 여호와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임을 애굽으로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앞에 함께 일어나는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10가지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언약이나 출애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애굽에서 종으로 살지만 먹고 배부른 것으로 만족하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나타남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고역이 가중되자 하나님께 모세와 아론을 책망하여 달라고 하는 것이 애굽에서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로 만족하는 모습이 우상숭배에 끌려 사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은 분노와 진노를 쏟으신 것입니다.

 

에스겔 20:9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를 쏟으시면 보암직한 제국인 애굽과 함께 진멸당하여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이 거주하는 이방인의 눈앞에 나타나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그 이방인의 눈앞에서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결코 이스라엘을 위함이 아니라 여호와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구원하여 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10번째의 재앙은 이스라엘과 애굽의 구별이 없이 오직 어린 양의 피를 바르는 집만이 처음 태어난 남자와 짐승의 처음 태어난 수컷이 산다는 재앙이었습니다.

 

에스겔서 20장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구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살던 바벨론 지역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던 애굽이나 광야나 약속의 땅인 가나안이나 오늘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창원이나 간에 모두가 우상이 끄는 대로 끌려가는 그런 세상에서 끌려가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그곳에서 빼어내시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어린양의 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사로잡아 내어 오시는 것입니다. 사로 잡혀 오면서 원망과 불평을 하지만 그러나 그 사로잡은 손길이 영원하기에 결코 놓지 않으시고 끝까지 끌고 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