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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8:1~28 지혜는 어디서? 2016. 7. 13

 

12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 13 그 길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는 찾을 수 없구나...... 27 그 때에 그가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탐구하셨고 28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욥기서는 지혜서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혜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이 말하는 지혜와 욥이 말하는 지혜가 서로 충돌합니다. 때로는 서로 공통되는 말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분명한 차이는 까닭모를 고난의 유무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이 아무리 그들의 전통과 체험과 지식으로 욥을 공격하지만 욥이 당한 고난이 그들에게 없기에 그들은 욥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그들은 입을 닫게 됩니다. 이제 욥은 독백처럼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언급을 합니다. 하나님이 지혜가 도대체 어디서 얻으며 하나님의 명철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본문 1~11절입니다. “1 은이 나는 곳이 있고 금을 제련하는 곳이 있으며 2 철은 흙에서 캐내고 동은 돌에서 녹여 얻느니라 3 사람은 어둠을 뚫고 모든 것을 끝까지 탐지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있는 광석도 탐지하되 4 그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떠나 갱도를 깊이 뚫고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사람이 없는 곳에 매달려 흔들리느니라 5 음식은 땅으로부터 나오나 그 밑은 불처럼 변하였도다 6 그 돌에는 청옥이 있고 사금도 있으며 7 그 길은 솔개도 알지 못하고 매의 눈도 보지 못하며 8 용맹스러운 짐승도 밟지 못하였고 사나운 사자도 그리로 지나가지 못하였느니라 9 사람이 굳은 바위에 손을 대고 산을 뿌리까지 뒤엎으며 10 반석에 수로를 터서 각종 보물을 눈으로 발견하고 11 누수를 막아 스며나가지 않게 하고 감추어져 있던 것을 밝은 데로 끌어내느니라

 

옛날이나 지금이나 은과 금이 최고의 보물입니다. 이러한 은과 금을 많이 소유하여야 부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부자들이 최고로 투자하는 곳에 사람의 지식이나 지혜라는 것들이 동원이 됩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도 최고의 지혜라는 것을 동원하여 하는 일이 은과 금을 채굴하여 내는 것입니다. 철을 흙에서 캐내고 동은 돌에서 녹여내고 귀한 광석들을 탐지하여 내는 지혜를 말합니다. 오늘날은 첨단 기계로 탐지하지만 욥의 시대 때에 어떻게 깊고 깊은 땅속에 있는 광물을 탐지하여 내는지를 말합니다. 갱도를 깊이 뚫고 내려가 줄에 매달려 일합니다. 그리고 식물이 땅에서 자라지만 그 밑은 불처럼 변한다고 합니다. 새 번역은 용암이 끓고 있다고 표현을 합니다. 그러한 지하에서 청옥과 사금을 채취하여 내는데 그 길은 시력이 좋은 솔개와 매의 눈도 보지 못하며 용맹스러운 짐승도 접근 할 수가 없는 곳입니다. 그런 곳까지 사람들은 탐색하고 굴을 뚫고 수로를 내고 감춰진 보물들을 캐내는 지혜를 말합니다.

 

오늘날은 부자들이 어디에 투자하겠습니까?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통하여 인공지능에 대하여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지혜롭다는 자들은 이미 이런 일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합니다. 이런 일에 투자를 하는 것은 세상 최고의 지식과 지혜를 동원하여 미래에 무엇이 보물이 될지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최근까지 땅이 많고 시설이 많으면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소유로 부를 측정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제레미 리프킨 이라는 사람이 소유의 종말이라는 책도 출간하였습니다. 또 클라우스 슈밥의 4차 산업혁명이라는 책에서는 지금 초등학교 학생들이 취업을 할 정도의 세상은 지금 직업의 70퍼센트가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당장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교육을 시켜야 미래에 살아남을 것인가를 생각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보다는 세상의 지혜를 추구하는 자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욥은 그 당시에 지혜가 대단한 사람입니다. 지혜만이 아니라 대단한 부자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거짓이나 부정으로 부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욥이 하루아침에 망할만한 잘못을 한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인정한 내용입니다. 다만 욥과 그 친구들이 모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욥 당시의 세계 최고의 지혜자라는 자들이 욥과 세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지혜 논쟁으로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온갖 지혜라는 것으로 욥을 공격하였지만 욥의 지혜는 그들의 지혜보다 낫습니다. 드디어 욥의 친구들이 입을 닫게 될 때에 욥은 독백처럼 지혜가 어디서 나오며 명철을 어디서 구하는지를 말합니다.

 

본문 12~13절입니다. “12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 13 그 길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는 찾을 수 없구나

 

욥 당시에 세계 최고의 지혜로 땅 깊은 곳에 감추어진 금과 은을 캐내는 지혜가 있었지만 그러나 그런 지혜로는 욥의 고난을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욥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욥의 친구들의 말을 자신도 평소에 알고 있었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인과율로 풀어 낼 수가 없는 현실이 닥친 것입니다. 까닭모를 엄청난 환난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줄 지혜와 명철을 구하기 위하여 정말 많이 찾아 헤맨 것입니다. 친구들과의 논쟁으로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의 최고의 지혜라는 것들로도 욥의 문제에 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지혜를 찾아 나섭니다.

 

본문 14~19절입니다. “14 깊은 물이 이르기를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다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 15 순금으로도 바꿀 수 없고 은을 달아도 그 값을 당하지 못하리니 16 오빌의 금이나 귀한 청옥수나 남보석으로도 그 값을 당하지 못하겠고 17 황금이나 수정이라도 비교할 수 없고 정금 장식품으로도 바꿀 수 없으며 18 진주와 벽옥으로도 비길 수 없나니 지혜의 값은 산호보다 귀하구나 19 구스의 황옥으로도 비교할 수 없고 순금으로도 그 값을 헤아리지 못하리라

 

참된 지혜라는 것을 사람이 얼마나 찾기 어려우면 지하에서 광맥을 찾는 그런 지혜로도 알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깊은 물을 의인화 하여 묻고 답하는 형식을 취합니다. 그런데 깊은 바다도 지혜가 나와 함께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순금으로도 바꿀 수가 없고 은을 달아주어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최고의 보석들을 다 주어도 찾을 수도 없고 값을 지불 할 수도 없는 것이 지혜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최고의 지혜로 땅의 보석들을 다 캐내어도 그 모든 보석이라는 것을 다 주어도 참된 지혜를 구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지혜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잠언에 지혜에 대한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 보다 나으며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16:16). 사람들은 지혜를 가지고 은과 금을 찾아 나서지만 그러나 은과 금으로 지혜를 얻는 것이 더 낫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일한 잠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미련한 자는 무지하거늘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 함은 어찌함인고(17:16) 그러므로 지혜란 은과 금을 주고 살 수도 없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지혜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본문 20~22절입니다. “20 그런즉 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이 머무는 곳은 어디인고 21 모든 생물의 눈에 숨겨졌고 공중의 새에게 가려졌으며 22 멸망과 사망도 이르기를 우리가 귀로 그 소문은 들었다 하느니라

 

12절에서도 말한 것을 다시 말합니다. 지혜가 어디서 오는지 명철이 머무는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모든 생물의 눈에 숨겨졌고 공중의 새에게도 가려졌다고 합니다. 매의 눈이 얼마나 밝은지 공중에서 지상의 작은 들쥐 한 마리의 움직임도 포착합니다. 그런 시력으로도 찾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모든 인생들이 가야 하는 멸망과 사망조차도 지혜에 대하여 소문만 들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보다 더 확실한 사실은 없습니다. 죽음 앞에 인간의 모든 지식이나 지혜나 부귀영화들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최종 도달해야 하는 그 죽음 앞에서도 참된 지혜는 거저 소문으로만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며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는 말씀이 있지만 사람들은 참된 지혜를 찾지 않습니다.

 

어제 최근에 등록한 분이 심방을 요청하여 심방하였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설교시간에 그 내용을 인용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는 교회를 찾아다닌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교회를 찾아다녔는지를 아내 되는 분이 말하기를 문제해결을 위하여 다녔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술을 자주 마시기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교회를 찾아다닌 것입니다. 남편이 술만 마시지 않으면 너무나 잘해줍니다. 남들에게는 천사표입니다. 그런데 술만 마시면 아내를 괴롭힙니다. 이런 모습은 저의 삼촌모습을 보았기에 좀 압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다 좋은 사람입니다. 술을 마셔도 다른 사람들에게 정말 잘합니다. 그런데 아내만 보면 싸웁니다. 이런 삼촌을 보았기에 그 말에 이해가 좀 되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교회를 다니다가 믿음이 좋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김해에서 서울까지 이사를 갔습니다. 큰 믿음교회를 한동안 다녔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아니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다가 서울에 간 김에 두레교회까지 다니기도 하였답니다. 여기서는 그래도 조금 다닐 만 하였답니다. 그러다가 다시 김해로 내려와야 할 일이 있어서 내려왔습니다. 그 뒤로도 근처의 교회들마다 다녀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아서 좀 유명하다는 곳은 다 다닌 것입니다. 흰돌산 기도원은 여름과 겨울 집회 때에 몇 번씩이나 갔답니다. 그리고 새 물결 선교회에 다니느라 서울과 광주로도 다녔고, 순회선교단의 복음학교도 한 주간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마땅찮아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남편은 치료차 병원에 입원하여 있을 때에 아내가 인터넷에서 허운석 선교사님의 설교를 들은 것입니다. 마음에 와 닿은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선교사님 초청한 교회를 찾아서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두 번 전화를 하고서 금요 성경공부에 찾아왔습니다. 얼마 전에 남편까지 함께 와서 등록했습니다. 남편이 첫날 와보고서는 다닐 만 하다고 하였답니다. 어제 심방을 하면서 남편의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여러 곳을 전전하였지만 자기 마음에 무언가 얻는 것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내의 종교성은 열심히 그런 곳을 찾아다닌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여자가 종교성이 더 많다고 봅니다. 어느 종교든 여자가 많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남편이 그 정도로 많이 따라다닌 것도 아내를 사랑하였기에 따라다닌 것으로 보였습니다. 심방을 마치고 왔을 때에 남편의 반대로 자신이 그런 종교에 깊이 빠지지 않게 되어서 이제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우리교회 와야 한다는 말로 들릴 수 있어서 조심스럽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돌아다녀 봐도 결국 저의 설교를 들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하고서도 또 떠나는 것이 사람입니다. 또한 제 자신이 어떠한 죄인인지 알기에 그런 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사람들이 간혹 있는가 하면 우리는 각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생활의 문제만이 아니라 성경의 문제도 내가 원하는 답을 찾아 얻게 되면 속이 시원 한 것입니다. 그래서 혹 저의 설교를 듣고서 속이 시원하다면 자신이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된 것이지 그런 것으로 지혜를 찾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지혜를 찾고 만나는 것은 내가 찾아서 얻어내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안에는 다들 요구와 욕구가 있습니다. 요구는 생물학적인 요구들입니다. 이것을 구하는 것이 욕구입니다. 그런데 요구와 욕구의 불일치가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언어가 개입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마다 언어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불일치에서 욕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욕망 또한 타인의 욕망들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자끄 라깡이라는 사람이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욕망이 또한 삶을 살게 하는 힘이라고도 합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찾아 나선 욕망의 대상으로서 지혜와 명철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왜곡되게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진리를 찾아 나서지만 자신들의 입맛에 꼭 맞는 진리를 찾을 수가 없기에 인류역사는 참된 진리에 대하여 계속하여 미끄러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것이 지혜이다. 저것이 명철이라고 하여도 사람들의 말로서는 참된 지혜를 증거 할 수가 없습니다. 참된 지혜는 지혜 스스로 자기 백성을 찾아 오셔야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지혜를 만나는 것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나의 문제 해결만 원하는 자들입니다. 진리를 찾고 지혜를 찾는다고 하여도 나의 구미에 맞는 진리와 지혜를 찾아 나서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진리논쟁은 지적유희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무너져 내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라는 지식으로 남을 이기는 것을 복음 전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본문 23~28절입니다. “23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24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며 25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며 물의 분량을 정하시며 26 비 내리는 법칙을 정하시고 비구름의 길과 우레의 법칙을 만드셨음이라 27 그 때에 그가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탐구하셨고 28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이 본문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혜가 있는 곳에 이르는 길을 아신다. 그분만이 지혜가 있는 곳을 아신다. 오직 그분만이 땅 끝까지 살필 수 있으며,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을 보실 수 있다. 그분께서 저울로 바람의 강약을 달아 보시던 그때에, 물의 분량을 달아 보시던 그때에, 비가 내리를 규칙을 세우시던 그때에, 천둥 번개가 치는 길을 정하시던 그때에, 바로 그 때에, 그분께서 지혜를 보시고, 지혜를 칭찬하시고, 지혜를 튼튼히 세우시고, 지혜를 시험해 보셨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주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멀리하는 것이 곧 슬기다.”

 

하나님만이 지혜를 아십니다. 이것을 욥이 고백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욥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욥이 이 말씀을 듣기까지 인내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말씀을 사람들에게 하셨지만 아직 그렇게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단지 지혜와 명철이란 하나님이 아신다는 정도로 욥이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이 들은 지혜는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멀리하는 것이 명철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논쟁에서 욥의 친구들의 말보다 욥의 말이 옳다는 것입니다. 욥처럼 까닭모를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혜가 없는 욥의 아내는 어떻게 말합니까? 그런 하나님이라면 욕하고 죽어라고 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세련되게 말하지만 욥의 아내와 같은 입장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을 벌하지 않고 악한 사람을 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이제 다르게 반응을 합니다. 비록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주를 경외함이 지혜라고 합니다. 악을 멀리하는 것이 곧 명철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욥의 아내의 말이나 욥의 친구들의 말이 어리석은 말이며 명철하지 못한 말이 되는 것이며 그것이 악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시는 참된 지혜와 명철은 무엇입니까?

 

잠언 8:1~13절을 봅니다. “1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2 그가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3 성문 곁과 문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가로되 4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5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찌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찌니라 너희는 들을찌어다 6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7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8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9 이는 다 총명 있는 자의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의 정직히 여기는 바니라 10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11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12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사람이 지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주체가 되어 사람을 찾습니다. 욥이 말하는 참된 지혜의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는 욥의 고백이 잠언서 8장에도 나옵니다. 그러므로 참된 지혜란 사람이 찾아 나서서 찾는 것이 아니라 참된 지혜가 주체가 되어서 자기 배성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체가 되어 지혜를 찾고 지식을 찾고 명철을 찾아서 내가 소유하게 된다면 그 지혜와 명철이라는 것은 나를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친히 주체가 되어서 자기 백성을 찾아오게 되면 그렇게 지혜에 의하여 찾아짐을 당한 자들은 그동안 자신이 지혜라고 말하고 명철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엉터리임을 알고 회개하게 됩니다.

 

잠언 8:22~36절입니다. “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 만세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29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32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33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34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35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36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이제 지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혀집니다. 지혜란 창조주이십니다. 말씀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가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바울사도는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으라고 합니다(고전16:22). 그런데 이런 지혜가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구약에서는 아직 그림자로 나타납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지혜로운 말씀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예수님을 천지를 창조하신 그 지혜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이사야 29:13~14절입니다. “13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14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사람들이 주를 경외한다고 하고 지혜를 찾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입술로만 하는 말이며 그 마음은 자기의 이욕을 따르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가장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데 그것은 그들 중에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스스로 지혜와 명철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가 됨을 지난주일 오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21~24절입니다.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십자가의 지혜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찾아올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의 명철입니다. 그런데 찾아오는 자들이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지혜가 되시는 주님께서 사람으로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십니다. 부활하신 그 영을 우리에게 넘겨주시면 그제야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를 알고 오직 지혜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지혜가 되신 주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일을 봅니다.

 

히브리서 2:10~13절입니다. “10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다시 볼찌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예수님께서 온전하신 분이신데 고난으로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을 형제로 연합하시기 위한 고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온전하게 되셨다는 것은 죄인인 자기 백성들을 그 십자가의 고난으로 연합하셔서 형제로 만들어내시는 고난입니다. 이러한 고난을 구약의 성도들과 신약의 성도들을 위하여 대신 받으시는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고난을 아는 것이 참된 지혜를 만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고난 중에 있는 자기 백성들을 능히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한 도움을 입은 자들이 참된 지혜를 만난 것입니다.

 

히브리서 5:7~10절입니다.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2장에서는 예수님께서 고난으로 온전하게 되셨다는 말씀을 합니다. 5장에서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의 경외하심으로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고 합니다. 오늘본문 마지막 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들이시지만 그 받으신 고난으로 인하여 순종함을 배웠다고 합니다. 죄 없으신 아들이 왜 고난을 받아야합니까? 맏아들의 희생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지혜이시며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만나는 길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까닭모를 고난을 통하여 심한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을 아뢰게 됩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참된 지혜가 되시는 분의 고난인 십자가를 통하여 참된 지혜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 자들은 십자가의 신비를 알게 됩니다. 이러한 참된 지혜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감추어져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만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거리낌을 받고 미련하다고 여기는 그 십자가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2:2~3절입니다. 바울이 편지를 쓰는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것이 참된 지혜를 찾은 자들의 증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