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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6:1~26 하나님을 위하여 2016. 9. 7

 

1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 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그대에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이라 3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얻고 나를 지으신 이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 4 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

 

엘리후의 말이 32장에서 시작하여 37장까지 이어집니다. 엘리후는 욥이 한 말들을 통하여 욥이 하나님을 단정하듯이 말한 그런 표현들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엘리후 자신도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다 헤아릴 수가 없으니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며 찬송하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누가 하나님을 위하여 말하는지 보겠습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엘리후가 욥에게 계속하여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다른 번역은 하나님 편에서 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지식은 먼데서 얻었다고 합니다. 먼데란 자신이 아주 먼 곳을 찾아서 지식을 얻었다는 의미도 되지만 성경에서 먼데서 왔다는 표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말하는 것을 통하여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으신 이에게 의를 돌려보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말을 반박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엘리후에 대하여는 책망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욥의 세 친구와 차이가 나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엘리후만 하나님을 위하여 말을 한 것입니까? 욥의 세 친구들도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욥도 욥의 친구들의 말을 반박한 것도 너희가 아는 그런 하나님은 나도 안다고 하면서 자신이 고난 받음으로 인하여 알게 된 하나님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엘리후도 말합니다만 누가 과연 하나님의 높으심을 다 알겠느냐고 합니다. 엘리후가 자신은 먼데서 지식을 얻었으며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을 지으신 이이게 의를 돌려드린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한 말이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36).

 

지난주에 계시 인식의 문제에 대하여 질문한 내용과 답변을 그대로 인용하여 드렸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시는 것이 계시입니다. 계시란 말 그대로 베일에 가려진 것을 열어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계시가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성경이 계시로 주어졌지만 이 성경을 사람이 연구하고 노력하여 참되신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인간이 아담 이후로 타락하였기에 아무리 성경을 연구하여 그 내용을 해석하고 지킨다고 하여도 계시의 완성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살해하여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지 않으시면 어떤 인간도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거나 자연을 연구하여 하나님을 알 아 낼 수가 없습니다.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계시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성경을 해석하고 또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하여 한다고 하는 그 하나님에 대한 내용이 사람들마다 다 다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안다고 섬긴다고 한 것들이 우상숭배였음을 성경이 증거 합니다.

 

로마서 1:18~25절입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압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섬긴다고 하였는데 그 결과가 우상숭배가 되었습니까? 이것이 바로 인간이 타락한 증거입니다. 그 마음의 생각이 허망하여 진 것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에 모든 인간이 다 이러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생을 내버려 두시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말은 하지만 오히려 그런 하나님을 말하고 섬긴다고 하면서 썩어질 것들을 구하고 있다면 이 사람은 아직도 계시가 열리지 않은 것입니다.

 

다시 본문 1~4절을 봅니다. 엘리후가 욥에게 자신이 하나님에 대하여 말한다고 합니다. 자신이 말하는 하나님이 진실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의 높으심을 누가 다 알 수 있으며 누가 하나님의 길을 정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계시하신 내용이 성경입니다. 그러면 성경의 모든 내용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기 뜻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성경전체가 계시하는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보는 욥기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은 자기 계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들은 지금까지 본 대로 욥이 당한 낯선 고난의 해석입니다.

 

욥이 당하는 낯선 고난은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고난과 그리스도에게 붙은 성도들에게 임하는 고난으로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계시를 보여주기 위하여 엘리후만 하나님을 위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욥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사건과 환경과 심지어 사탄조차 하나님을 위하여 동원된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욥의 자녀와 그 재산들이 다 날아갑니다. 스바 사람들이 욥이 가축을 약탈하고 종들을 죽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양과 종들이 태워집니다. 갈대아 사람들이 약탈합니다.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몰아와 욥의 자녀들이 있는 집을 침으로 다 죽었습니다. 욥의 몸까지 침을 당합니다. 욥의 아내는 욕을 합니다. 나중에 세 친구들이 공격합니다. 욥의 종들조차 욥을 무시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결국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들이기에 이들도 결국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탄과 악조차도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드러내시는 일에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선악과 이후의 인간들이기에 나를 중심으로 세상만사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일들만이 아니라 사후의 세계나 보이지 않는 세계 까지도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기를 욕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성경을 보아도 나를 중심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게 되면 자신의 중심성이 해체되면서 그리스도 중심의 가치관으로 바뀌는 것이 계시를 받는 자들의 모습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망친 자임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욥이 당하는 일과 같은 것들이 성도에게 닥칩니다. 참으로 해석되지 않는 일들이 날마다 일어납니다. 이럴 때 마다 영점조준이 일어납니다.

 

영점(零點)조준(照準)은 군에 다녀온 사람들은 잘 압니다. 가늠자와 가늠쇠를 조절하여 총알이 목표점에 정확하게 맞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점조준이 정확하게 되어있지 않으면 아무리 목표를 향하여 조준하여 쏴도 빗나갈 뿐입니다. 흔히 죄로 말하는 하마르티아도 화살이 목표점에 맞지 않고 빗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영점조준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영점조준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 영점조준이 되어 있기에 하나님을 위하여 말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먹고 마시고 살아야 하는 인생들이 전부 자기를 위하여 먹고 마시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다 이러합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 전에 택함을 입은 자들이라면 욥에게 동원되는 그런 모든 일들이 임하여 결국 영점으로 만들어내시는 것입니다. 영점은 시험점수에서 빵점을 맞을 때 사용되지만 다른 뜻으로는 평가할 만한 점이 전혀 없음을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욥이 갑자기 영점이 되는 것은 까닭모를 낯선 고난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주신이도 하나님이시며 취하신 이도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몸을 쳐도 받아들였습니다. 아내가 욕하여도 견뎌내었습니다. 그런데 욥기 3장부터 욥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합니다. 욥의 이러한 원망의 말을 듣고 욥의 세 친구들이 너의 죄로 인하여 이렇게 되었다고 정죄합니다. 이제 엘리후가 등장하여 욥을 책망하는데 욥은 어떤 대답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살펴보았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의 말의 연장선상으로 보기에 대답하지 않을 수도 있고, 너무나 옳은 말이라서 대답할 수가 없었다고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세워져야 자기 자신이 영점임을 확인당합니다.

 

본문 5~16절입니다. “5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사 6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7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 8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9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10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11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12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13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14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 15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16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의로운 자에게 상을 주시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신다고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다스림은 전능하시며 지혜가 무궁하신 하나님의 마땅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악인에게도 환난을 주시는 것은 그런 환난을 통하여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돌이켜 순종하면 형통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칼에 망하여 지식 없이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악인이지만 돌이키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13절을 보시면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형벌을 내리시는데도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신전의 남창들처럼 일찍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엘리후는 욥에게 지금이라도 돌이키라고 합니다. 욥이 한 말들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없는 것으로 말했기에 이것을 책망합니다.

 

17~26절입니다. “17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그대에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정의가 그대를 잡았나니18 그대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많은 뇌물이 그대를 그릇된 길로 가게 할까 조심하라 19 그대의 부르짖음이나 그대의 능력이 어찌 능히 그대가 곤고한 가운데에서 그대를 유익하게 하겠느냐 20 그대는 밤을 사모하지 말라 인생들이 밤에 그들이 있는 곳에서 끌려가리라 21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그대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22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높이 계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23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 24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 25 그의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나니 먼 데서도 보느니라 26 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느니라

 

엘리후는 지금 욥에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지 말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그가 행하시는 일을 우리 인간이 사사로이 평가한다는 그 자체가 잘못이라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욥에게 환난을 주시는 것은 욥이 더 악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시는 조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기억하고 찬양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욥에게는 지금 이 말이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엘리후는 욥의 고난을 당하지 않았기에 욥의 그 속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엘리후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인간은 찬양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을 이렇다 저렇다고 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하나님을 위하여 말한다고 합니다.

 

22~26절을 다시 봅니다.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높이 계십니다.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토를 달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을 이래라 저래라 할 수가 있겠습니까? 누가 주께서 불의를 행하였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욥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조용히 죽도록 내버려 달라고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을 듣고서 엘리후가 하나님을 위하여 말한다고 한 것입니다. 엘리후의 이 말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누가 하나님의 길을 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후는 욥에게 이런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그 높으신 하나님을 우리가 다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후 자신도 여기에 포함이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 40:12~14절입니다. “12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13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16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이라 17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이사야 선지자가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책망하면서 한 말씀입니다만 오늘 본문과 연결하여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지만 과연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온 세상을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는 주님 앞에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을 위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모두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지만 과연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는 하나님을 위한다는 자들조차 입을 닫고 회개할 뿐입니다.

 

로마서 11:32~36절입니다.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엘리후가 하나님을 위하여 말한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너무 높으신 분이시기에 사람이 그의 길을 정하여 주거나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 할 수가 없는 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일하심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그런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을 우리가 어떻게 헤아리고 그의 길을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누가 주의 마음을 알고 그의 모사가 되었습니까?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만물이 다 주로 말미암아 나왔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갑니다. 지금 이 순간도 만물이 다 주의 손에 의하여 붙들려 가는 것입니다. 나는 악악거려도 주님의 주님 되심을 쉬신 적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2:16절입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너무 높으신 하나님의 일을 살마이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사도는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고 하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 높으신 하나님을 위하여 말하겠다고 한 엘리후도 다 알지 못한다고 한 그 하나님을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에 담겨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6~11절입니다.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사람의 마음을 그 사람의 영 외에는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은 만세 전에 위의 영광을 위하여 정하신 그 비밀한 것은 사람들이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것입니다. 그 비밀한 일들이 어디에 나타난 것입니까? 욥의 고난을 통하여 그림자로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고난을 통하여 밝히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아야만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12~15절입니다.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 곧 율법아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의지 하는 자들에게는 복음이 어리석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야 하나님을 위한 말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그 내용만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을 의지하거나 자신을 자랑할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말하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