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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8:1~7 말씀하시는 하나님 2016. 9. 21

 

1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욥이 그동안 가장 답답하였던 부분은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신 것에 대하여 답답하였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죄를 지었기에 이런 재앙이 온 것이니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욥의 세 친구들도 욥을 위로한다고 한 말입니다. 그러나 세 친구들의 그런 말들이 오히려 욥에게는 괴로움이었습니다. 재난을 주는 위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시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최후진술을 하였습니다. 그 부분을 다시 보겠습니다.

 

욥기 31:35~40절입니다. 35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라노라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고소장을 쓰게 하라 36 내가 그것을 어깨에 메기도 하고 왕관처럼 머리에 쓰기도 하리라 37 내 걸음의 수효를 그에게 알리고 왕족처럼 그를 가까이 하였으리라 38 만일 내 밭이 나를 향하여 부르짖고 밭이랑이 함께 울었다면 39 만일 내가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출을 먹고 그 소유주가 생명을 잃게 하였다면 40 밀 대신에 가시나무가 나고 보리 대신에 독보리가 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고 욥의 말이 그치니라

 

욥의 최후진술은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고발 해 보라고 하면서 말을 마치자 엘리후가 등장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욥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엘리후의 말에 대하여 욥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지난주 까지 엘리후의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엘리후가 욥의 세 친구들과 다른 면은 동일한 사건으로 한쪽은 심판이지만 한 쪽은 긍휼을 베푸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일하시는 하나님은 너무 높으시기에 우리가 다 헤아려 알 수 없기에 욥에게 순종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엘리후의 말에도 욥은 답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엘리후의 말에 욥은 아무른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드디어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살펴볼 내용은 여호와라는 명칭입니다. 욥기 1장에서 2장까지 천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욥이 재앙을 당한 중에 고백하는 말에는 여호와라는 명칭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3장부터 37장까지 여호와라는 명칭이 딱 한번 욥의 말에서 사용됩니다(12:9). 그 외에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하나님으로만 나옵니다. 히브리어로 하나님은 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그냥 엘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해서 엘샤다이로 부릅니다. 욥이나 욥의 세 친구나 엘리후도 전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다는 38장에서 하나님이라고 하시지 않으시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어떤 분이심을 이름으로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기 약속에 전능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약속 외에는 전능하지 않으셔서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과 욥의 세 친구들과 엘리후까지 등장하여 그들이 알고 이해하는 하나님에 대하여 다 말하게 하신 것은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들도 다 드러나게 합니다. 그리고 나서 폭풍우 가운데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대한 계시를 한 곳만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13~15절입니다.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1)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1)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고 합니다. 거절하던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항복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기는 하겠는데 자기를 보내신 분의 이름이 무어냐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할지를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라고 하십니다. 이 단어의 발음을 여호와 또는 야훼라고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의 뜻은 바로 이어지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언약하신 그 내용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언약한 것을 이루어내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욥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 나타나는 인물이 아닙니다. 욥의 시대를 아브라함과 같은 족장들의 시대로 봅니다. 그런데 에스겔 선지자가 경건한 자를 거론할 때에 노아와 다니엘과 함께 욥을 말합니다(14:14). 그리고 야고보서에서도 욥의 인내에 대한 말이 나옵니다(5:11). 그러므로 욥기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을 어떻게 신실하게 이루어 내실 지를 이미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미 욥기를 통하여 살펴본 대로 욥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까닭모를 고난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죄로 인한 고난이 아니라 대속적인 고난을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성도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그 신비를 알게 하십니다. 결국 욥은 고난의 끝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데 결국 욥은 고난을 통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다시 본문 1절을 보시면 욥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폭풍이 가운데서 말씀하십니다. 폭풍우는 번개와 우레를 동반합니다. 여호와께서 현현하실 때에 이런 모습이 나타납니다. 시내 산에 강림하실 때에도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가득하였습니다(19:16). 바벨론 포로에 잡혀간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도 이러한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욥에게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폭풍우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어느 인간도 이런 폭풍우 앞에 설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폭풍우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번개와 우레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욥에게 분명한 음성으로 들린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것 자체가 욥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욥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고난이 해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의 해석은 도움은커녕 괴로움만 더하였습니다. 엘리후의 말은 세 친구들의 말보다 고난의 깊이와 넓이가 있는 말이지만 그래도 수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욥이 그렇게 알고 싶어 하던 답을 바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욥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이 질문들 앞에서 욥은 아무른 말도 못하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은 여호와 하나님의 질문하시는 내용의 앞 부부만 보겠습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무지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고 합니다. 그동안 욥이 한 말들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는 그런 말들입니다. 욥도 인과율 속에 살던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권면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까닭모를 고난을 당하고 보니 그런 말로서는 답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답으로서 대답이 안 되는 데 욥의 친구들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답변을 하려고 하니 욥은 답답하여 하나님께 호소한 것입니다. 그것이 불평과 불만의 형태라고 하여도 결국은 하나님께 호소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자신이 당한 이런 일에 대하여 속 시원하여 설명을 하여 주시든지 그렇지 않으려면 조용히 죽도록 내버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괴로운지 침 삼킬 동안도 가만히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욥에게 드디어 폭풍우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 처음 말씀이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고 합니다. 이 말에는 욥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욥의 친구와 엘리후와 오늘 우리도 다 포함을 시켜야합니다. 우리가 안다고 말하는 그 하나님이 정말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이 맞습니까? 예수님께서 아버지라고 부르신 그 여호와 하나님이 맞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고정된 하나님에 대한 생각들이 폭풍 같은 고난을 통하여 무너져 내려야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하나님을 고정시켜 붙들고 있다면 그것이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입니다. 살아계신 분을 어떻게 교리나 종교적인 전통이나 나의 얄팍한 신지식으로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게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하라고 하십니다.

 

본문 4~6절을 다른 번역으로 봅니다.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네가 그처럼 많이 알면, 내 물음에 대답해 보아라. 5 누가 이 땅을 설계하였는지, 너는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띄웠는지, 너는 아느냐? 6 무엇이 땅을 버티는 기둥을 잡고 있느냐? 누가 땅의 주춧돌을 놓았느냐? 7 그 날 새벽에 별들이 함께 노래하였고, 천사들은 모두 기쁨으로 소리를 질렀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고 하십니다.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하라고 합니다. 욥의 불평과 원망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자신 같이 의롭고 바르게 산 사람이 이런 재앙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원망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이 찾아와서 아무른 말도 못하고 있을 때에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면서 차라리 모태에서 죽어서 나왔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욥의 친구들이 공격하였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서 이러실 수 있느냐는 원망들이 나옵니다. 이러한 욥에게 친절하고 자세하게 욥의 고난의 의미를 설명하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곧 천지를 창조할 때에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이 말씀에 답변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천지 만물을 지을 때에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으십니다. 우리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만드실 때에 대한민국을 어디에서 세워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창원 땅을 만들어 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자기중심으로 해석을 합니다. 세상만이 아니라 우주만물도 다 자기를 중심으로 해석을 하는 것이 타락한 인생의 본성입니다. 나는 정직하고 바르게 살았는데 왜 이런 고난이 오는가 하는 원망들도 다 하나님께서 우주 경영을 잘 못하고 있다는 원망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7절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별들이 기뻐 노래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여기서 별들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평행구절입니다. 그러므로 이 별들은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아니라 다른 번역에서는 천사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시중드는 천사들이 기뻐한 창조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우주 경영은 전혀 하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악이 들어왔느냐고 항의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악조차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는 일에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부실하여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이런 부분은 다음 주에 볼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고 그 천사들이 기뻐한 내용입니다. 무엇 때문에 기뻐하셨을까요? 창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충만함을 드러내십니다.

 

시편 19:1~6절입니다.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천지 창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충만함을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다윗이 찬양합니다.

 

7~14절입니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 납 되기를 원하나이다

 

시편 18편의 앞부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그 내용 속에 말씀의 충만함을 봅니다만 후반부는 구체적으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그 율법으로 인하여 찬양합니다. 율법이라고 하니 율법조문으로만 생각합니다만 그의 교훈이며 그의 말씀입니다. 그러한 말씀이 영혼을 소성시키는 말씀입니다. 또한 그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그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또 자기 백성들에게 친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이 자신의 죄를 알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이것이 영혼이 소성하는 길입니다.

 

에베소서 1:10절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통일교나 신천지는 자기들을 중심으로 세계 종교를 통일한다고 합니다. 종교만이 아니라 세계의 정치도 통일하여 전쟁이 없이 화평한 세계를 이루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환경과 형편이 안 되어서 그렇게 못할 뿐입니다. 우리도 여건만 된다면 우리가 문선명이나 이만희처럼 될 자들인데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그렇게 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세우기 위한 창조입니다. 그런데 욥이나 욥의 세 친구들이나 오늘 우리나 간에 나를 중심으로 가정, 교회, 사회, 대한민국, 우주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증거입니다. 욥도 타락한 아담의 후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신이 의롭게 살았다고 하여도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도 고난 속에서 대속 자를 바라본 것입니다(19:25). 육체 밖에서 주를 보리라고 하였습니다(19:27). 이러한 고백들이 이제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내용을 듣게 됩니다. 천지 창조를 하시고 기뻐하신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위하여 창조하셨기에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13~17절입니다. “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누구를 위하여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위한 창조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창조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다 그에게서 창조되고 그를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들과 보이는 세상 만물도 다 주를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우리들은 우리를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하기에 늘 불평과 불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에게 하나님은 물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욥처럼 의롭지도 않은 자들이며 욥처럼 고난을 당하지도 않았으면서 온갖 불평과 원망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천지만물을 창조할 때에 너 어디에 있었느냐고 말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만들었는지 아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8~20절입니다.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욥에게 질문하신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할 때에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고 하시면서 그 천지 창조 때에 천사들이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천사들조차 몰랐던 하나님의 기쁨은 십자가 속에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의 비밀을 아는 자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만 압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만물의 으뜸이 되시기 위한 것입니다. 원래 천치 창조의 목적이 그러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모든 충만이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시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은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화평이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무엇으로 기쁘시게 할 수가 있습니까? 레바논의 모든 짐승을 잡고 그 산의 나무를 화목으로 삼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여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40:16). 천 천의 수양과 만 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맏아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몸의 열매를 원하지 않습니다(6:6~8).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 하게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것을 욥에게 말씀하시고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