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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6:1~5 담보와 보증 2017. 2. 22

 

1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1)보증하였으면 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3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4 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고 5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지난주일 오전에 성경은 인생 사용설명서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상상도 못한 내용들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문자대로만 보아도 아주 실제적인 교훈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주변에 보면 친구나 친척에게 담보나 보증을 섬으로 낭패를 당한 경우를 종종 보고 듣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목사 때에 어려운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은 사위에게 보증을 선 것입니다. 사위란 딸에게 해 준 것이기도 하지요! 그 결과 하나 뿐인 집을 잃어버리고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한 아들이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는 줄 알았다면 보증을 서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담보(擔保)의 뜻은 법적인 용어로 이렇습니다. 채무 불이행 때 채무의 변제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미리 채권자에게 제공하는 것으로서 물적 담보와 인적 담보의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보증(保證)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하여 틀림이 없음을 책임을 지고 보증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법적인 의미는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그를 대신해서 채무를 이행할 것을 부담하는 일입입니다. 그러므로 담보나 보증을 선다는 것은 내가 상대방을 책임진다는 뜻입니다. 회사에 취직을 하려고 해도 신용보증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보증 하는 사람의 재산세가 얼마이상 되어야 한다는 것도 있습니다. 이처럼 담보나 보증은 책임이 큽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은 빚을 권하는 사회입니다. 경기 회복시킨다고 빚을 내어서라도 집을 사라고 정부가 말합니다. 그렇게 빚을 내어 집을 샀는데 이자만 높아지면 갚아낼 수 없는 자들이 수두룩합니다. 이뿐 아니라 돈 빌려가라는 광고가 얼마나 많은지 저에게도 수시로 문자나 전화가 옵니다. 텔레비전 선전에도 돈 빌려가라는 광고가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도 없을 것입니다. 마치 공짜로 주는 것처럼 빌려가라고 합니다. 전화만 한 통하면 수 백 만원에서 수 천 만원까지 빌려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 얽히게 되면 그야 말로 패가망신(敗家亡身)을 당하는 일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담보와 보증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합니까?

 

오늘 본문 1절을 봅니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이라고 합니다. 보증이라는 단어 앞에 각주 1)을 보면 네 손을 치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담보를 하고 나서 손을 서로 마주치는 것으로 체결이 된 것을 말합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악수를 하는 것이며 손을 맞잡은 것입니다. 1절을 다른 번역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네가 이웃을 도우려고 담보를 서거나, 남의 딱한 사정을 듣고 보증을 선다면우리 주변에서도 담보나 보증을 서는 것은 딱한 사정을 듣고 그 사람을 도우려고 보증을 섭니다. 때로는 내가 상대방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거절 할 수가 없어서 보증을 서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이유를 막론하고 보증을 섰다면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새 번역으로 보겠습니다. “2 네가 한 그 말에 네가 걸려들고, 네가 한 그 말에 네가 잡힌다. 3 1)아이들아, 네가 너의 이웃의 손에 잡힌 것이니, 어서 그에게 가서 풀어 달라고 겸손히 간청하여라. 너는 이렇게 하여 자신을 구하여라. 4 잠을 자지도 말고, 졸지도 말고 5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듯, 새가 새 잡는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듯, 어서 벗어나서 너 자신을 구하여라.” 보증을 섰다면 걸려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담보와 보증에서 풀어달라고 겸손하게 간청하라고 합니다. 그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잠도 자지 말라고 합니다. 노루나 새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나듯이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잠언 다른 곳의 보증을 봅니다.

 

잠언 11:15절입니다.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좀 이기적인 내용 같습니다. 지난주 오전에 본 말씀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보았는데 이런 말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어떤 해석을 보면 냉정 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비로운 마음 때문에 스스로 망하지 않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비한 마음으로 보증을 선다는 것은 스스로 망하는 길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문장만 보면 타인을 위하여 보증을 서는 순간 나는 망하는 길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잠언 17:18절입니다.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의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손을 잡는 다는 것이 보증이 된다는 약속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증을 하는 자는 지혜 없는 자와 같다고 합니다.

 

잠연 20:16절입니다.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남의 보증을 선 사람의 옷을 취하라고 합니다.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을 서면 그의 몸도 볼로 잡힌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남의 보증을 서는 사람은 가난한 자가 받는 보호도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가난한 자의 겉옷을 담보로 잡았다면 저녁에는 돌려주라고 율법은 명하고 있습니다(22:26,27). 가난한 자가 옷을 담보로 잡히면 밤에 덮고 잘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증을 선자의 옷을 취하라고 하는 것은 가난한 자가 받는 그런 보호조차 받지 못하게 할 정도로 금하고 있습니다.

 

잠언 22:26절입니다. 너는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라여기서는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라고 합니다. 보증을 서는 것은 자신이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잠언에서 담보나 보증을 서지 말라는 말씀들만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까? 사람은 다른 사람의 보증을 서면 안 되구나! 이렇게 끝내면 되는 것입니까? 세상에서도 담보나 보증을 서면 돈 잃고 친구 잃는다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보면서 교회에서 돈 거래하지 말라고 합니다. 저도 교회에서 교인끼리 일체의 돈 거래나 장사 같은 것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미 담보나 보증을 섬으로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파산신청을 하시기 바랍니다. 파산신청을 하면 여러 가지로 힘이 들지만 추심하는 자들에게 시달림을 받지 않도록 법이 보호하여 줄 것입니다. 그러다가 형편이 나아지면 회생할 수 있는 길도 있습니다. 이렇게 설교를 마치면 거저 세상의 처세술 하나 배운 것으로 마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잠언을 읽으면 삶에 지혜를 가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증거가 되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담보나 보증에 대하여 성경 전체를 살펴봐야 합니다.

 

창세기 38:15~18절입니다. “15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16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18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유다가 아내가 죽고 나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갔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네 시아버지가 왔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며느리 다말이 창녀로 변장하고 유다를 맞아들인 이야기입니다. 며느리가 이렇게 한 이유는 유다의 아들 엘과 결혼하였는데 엘이 악함으로 여호와께서 죽이십니다. 그러자 유다는 그 동생 오난에게 형의 씨를 이어주게 하려고 형수에게 들어가게 합니다. 그런데 오난이 형의 씨를 이어주기 싫어서 땅에 설정함으로 하나님께서 오난을 죽이십니다. 유다는 셋째 셀라가 어리다고 하면서 장성하기 까지 다말에게 수절하고 친정에 가 있으라고 합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셀라도 죽을까 하여 다말에게 주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셀라가 장성하였는데도 자신에게 주지 않자 다말이 이렇게 한 것입니다.

 

다말이 창녀로 변장을 하고 너울을 쓰고 있으니 며느리인줄 알지 못하고 다말에게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지나다가 창녀를 만났으니 아무 것도 가지고 간 것이 없으니 창녀가 말하기를 무엇을 몸값으로 주겠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염소 새끼를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염소 새끼를 줄 때 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무엇을 담보로 잡겠느냐고 하니 유다의 신분을 증명할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요구합니다. 그렇게 담보물을 주고 동침을 하고나서 유다의 친구에게 염소 새끼를 주고 담보물을 찾으려고 하니 그 동네에는 창녀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지났는데 어느 날 며느리가 임신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유다는 불살라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자 그 담보물을 내어 놓았습니다. 유다는 다말이 자기보다 옳다고 합니다. 자신이 그 아들 셀라를 다말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더 이상 다말에게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말은 이 일을 꾸밀 때에 자신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유다가 부인하면 다말은 죽는 것입니다. 물론 부인할 수 없는 담보물이 있기는 하지만 다말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유다의 씨를 이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유다와 다말을 통하여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나고 그 베레스의 후손으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이어집니다. 그러면 유다와 다말 사이에서 이런 담보물의 내용은 그냥 담보물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건 담보물을 다말이 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유다도 자기 자신을 담보물로 내 놓습니다.

 

창세기 43:8~9절입니다. “8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베냐민을 데리고 오지 못하면 자신이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요셉 앞에서 베냐민이 은잔을 훔친 도둑으로 몰리자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하겠다고 요셉 앞에 말합니다. 이러한 유다와 다말은 둘 다 담보물로 자신의 몸을 내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마태복음을 볼 때에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제공한 자들입니다. 다말, 라합, , 마리아입니다. 솔로몬의 아내 밧세바는 이름이 없이 우리아의 아내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밧세바 보다 우리아의 희생이 중요합니다. 다윗의 죄로 인하여 우리아가 대신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이름인 나온 다말, 라합, , 마리아는 다들 자기 목숨을 걸었습니다. 라합은 정탐꾼을 숨겨주는 것이 목숨을 건 것이며, 룻은 아무 소망도 없는 늙은 과부가 된 시어머니를 따라 온 것도 목숨을 건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요셉이 자기 씨가 아니라고 하면 돌에 맞아 죽는 것이 마리아입니다. 그런데 주의 사자에게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한 것이 자신의 목숨을 건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일이 어떤 담보와 보증으로 되는지를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기 17:3절입니다.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줄 자가 누구리이까욥이 까닭모를 고난을 당하자 욥의 세 친구들이 위로한다고 왔지만 오히려 욥의 괴로움을 더하는 재앙만 주는 헛된 위로 자들이었습니다. 그럴 때에 욥이 담보물을 달라고 간구합니다. 여기서도 담보물을 준다는 것은 손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욥의 간구에 누가 담보물로 등장합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욥도 책망을 하시지만 결국은 욥의 담보물로 등장하셔서 욥의 손을 들어주십니다.


시편 119:122절입니다. 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하시고 교만한 자들이 나를 박해하지 못하게 하소서잠언에서 보증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욥이나 시편기자는 주님께 담보와 보증이 되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들은 사람에게 보증을 구하지 않습니다. 욥의 고난은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시편 119122절 전후를 보아도 환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 환난 가운데 있는 자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보증을 요청합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자신들의 담보와 보증이 되어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가 되려면 그동안 의지하였던 모든 것들이 다 무너진 것입니다. 사람의 보증과 담보물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0~22절입니다.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말씀에 아멘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를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름을 부으신 것이 곧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담보와 보증에 대한 내용들이 신약에 와서 보니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5절입니다.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몸의 부활의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분이 하나님 이십니다.

 

에베소서 1:11~14절입니다.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2)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3)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4)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입고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된 자들은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성령이 담보물로 보증금으로 지불 된 자가 성도입니다. 제가 이 내용에 대하여 예를 들어들 때에 부동산을 살 때에 보증금을 얼마나 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그 물건을 살 의지가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보증을 하신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근거로 성령을 보증금으로 주셨습니다. 이런 자들은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는 자들입니다. 이 말씀은 죄인이 의인이 되는 그 놀라운 일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이루어내심으로 찬양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6:13~20절입니다.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맹세로 보증하셨기 때문입니다. 맹세는 모든 다투는 일의 최후확정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맹세는 얼마나 엉터리인지 국회 청문회에서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서약하고서는 거짓말해서 지금 감옥에 가 있는 장관들과 고위 공무원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맹세는 결코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의 머리카락 하나 희고 검게 하지 못하는 존재가 무슨 맹세를 하느냐고 하셨습니다(5:34). 오직 하나님의 맹세만이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바를 이루어 내신 것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이방인인 우리에게 까지 증거 되고 믿어지게 된 것도 하나님의 맹세와 보증으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성도는 큰 안위와 소망을 가지게 되며 그 소망이 흔들리지 않고 견고합니다. 배가 닻을 내리면 안전하듯이 성령이 임한 자들은 영혼의 닻이 내려진 것입니다. 그 소망이 견고합니다. 그런 자들은 휘장 안으로 들어갑니다. 지성소로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그 길로 가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휘장을 찢어놓으신 새로운 길입니다. 그 지성소는 언약궤가 있던 곳입니다. 그 언약의 완성을 예수님께서 이루셨기에 우리가 그 언약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맹세로 보증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어디든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히브리서 7:11~15절입니다. “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레위 지파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 아니라 유다 지파로 그리스도 오신 것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본 창세기에서 유다와 다말의 담보에 대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유다가 아버지 야곱 앞에서 자신이 담보가 되어 베냐민을 구하여 오겠다고 하고서는 요셉 앞에서 자신이 베냐민 대신에 담보가 되겠다고 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제사장 지파인 레위지파가 아니라 유다지파로 나오는 것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어지는 16~21절입니다. “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20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구약의 제사장들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여집니다.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더 좋은 소망이 생긴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닙니다. 21절의 인용 구절이 시편 110:4절입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편 110편은 주의 오른 편에 계신 주님에 대한 찬양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좋은 언약 곧 새 언약의 보증은 하나님의 맹세로 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맹세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맹세로 이루어내신 것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입니다. 이 다 이루심을 성령을 통하여 자기 백성에게 부어주신 것이 성령의 보증이며 담보물입니다. 저는 이런 말씀 앞에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납니다. 도대체 나 같은 죄인에게 이러한 은혜가 주어진 것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러한 맹세와 그 언약을 이루심과 담보물이 되심이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맹세와 보증이라는 것은 다 헛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자기 이름으로 맹세하신 그 언약만이 영원한 보증이 되십니다. 그 놀라운 은혜가 임한 자라면 이 세상이 그 어떤 배신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물론 쓰라리고 아프겠지만 성도라면 반드시 하나님의 맹세와 담보와 보증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런 것이 예수님을 믿는 내용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믿고 살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