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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8:22~36 선재(先在)하는 지혜 2017. 4. 5

 

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29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2)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

 

잠언에서 지혜가 인격화 되어 나타는 것은 이미 많이 보았습니다. 지난주에도 지혜가 소리 높여 부르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지혜가 태초에 창조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혜라고 하면 내가 주체가 되어 지혜를 얻고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지혜가 천지만물의 창조 이전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지혜는 만물의 창조이전부터 있었으며 당연히 우리보다 먼저 있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선재(先在)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혜가 선재하였다는 것은 지혜가 창조이전에 가장 먼저 창조되었는지 아니면 영원한 자존자인지 하는 문제가 발생됩니다.

 

오늘 본문 22~26절을 봅니다. 22절에서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다고 합니다. 23절에서는 만세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24절에서는 바다가 생기기 전에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났다고 합니다. 25절에서는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다고 합니다. 26절은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혜를 가지셨고, 세우셨고, 나게 하셨다는 이런 표현은 지혜가 여호와에 의하여 창조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살펴본 말씀에서 지혜가 예수 그리스도시라면, 지혜가 되신 예수님이 영원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이 된다는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이런 표현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으로 인하여 이단들이 나옵니다.

 

4세기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리우스가 주장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성자예수는 창조된 존재(피조물)이며, ‘성부에게 종속적인 개념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성부신학이 강하였고 안디옥은 성자신학이 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는 예수님을 창조된 존재로 말하기 위하여 잠언 8:22절과 같은 말씀을 근거로 제시한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아타나시우스가 반박을 하여 결국 니케아 공의회(325)에서 아리우스는 이단으로 정죄가 됩니다. 그런데 아리우스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예수가 참으로 신이냐는 논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이단은 여호와의 증인들입니다. 이들은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님을 제일 먼저 창조된 자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예수님의 증인이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님이 하나님보다 낮은 표현으로 나오는 것은 예수님께서 영원한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스스로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입니다. 이런 이름은 유대인들에게 흔한 이름입니다. 여호수아라는 히브리어가 예수라는 헬라어와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이미 예수라는 이름에도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이라고 천사가 알려줍니다(1:21). 그러므로 신약에서 예수와 그리스도를 따로 언급하기도 하고 같이 언급하기도 합니다. 예수는 낮아지신 모습으로 자주 사용되고 그리스도는 높아지심을 드러내지만 예수가 그리스도입니다.

 

빌립보서 2:6~8절입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앞선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이미 높아지신 그리스도입니다. 그 높아지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본체와 동등하신 분이시지만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가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러한 복종이라는 표현도 여호와 하나님보다 낮아진 표현들입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그가 스스로 낮아지셨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 낮아지심의 끝은 십자가입니다. 그가 자기를 비워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그가 우리에게로 버려짐을 통하여 우리를 품으시고 자기에게로 모아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십자가에 죽은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겠습니까? 하나님과 동등 되신 분이 자기를 비워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그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영원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들만이 이 역사 속에서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성도는 이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어 주와 그리스도라는 고백으로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역사 속에서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지 않는 자들은 자기가 신이 되어 있는 자들이기에 마지막 날, 그 재림의 날에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전해야 하는 복음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예수님의 증인이 됩니다(1:8).

 

본문 22~26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다고 하는 그 지혜가 피조물이 아니라 영원한 자존자임을 말씀을 통하여 보았습니다. 교부들의 성격해석을 보면 잠언 8:22절 한 절에 대한 해석이 아주 많은 분량입니다. 4세기에 이런 논쟁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지 창조이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혜를 가지셨다 거나, 지혜가 있었다는 것은 지혜가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 됨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지만물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지혜는 선재할 뿐만 아니라 자존자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27~31절입니다. “봉독지혜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에 있었다고 합니다. 30절에 보시면 지혜가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시는 바가 되었다고 합니다. 창조자 각주를 보면 장인(匠人)으로 나옵니다. 30절에서 내가 그 곁에 있었다는 이 단어가 출애굽기 3:14절의 여호와의 이름과 같은 단어입니다. 모세가 여호와의 이름을 물었을 때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신 그 말씀입니다. 이것이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나는~이다는 내용임을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새 번역으로 30절을 봅니다. 나는 그분 곁에서 창조의 명공이 되어, 날마다 그분을 즐겁게 하여 드리고, 나 또한 그분 앞에서 늘 기뻐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창세기 1장에서 여호와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연결이 됩니다. 여호와의 창조를 함께 기뻐한 분이 지혜로 나타난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31절에서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새 번역은 이렇습니다. “그분이 지으신 땅을 즐거워하며, 그분이 지으신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창조주와 지혜가 함께 창조하고 함께 기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가 창조주와 함께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시편 104:24~29절입니다. “24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25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2)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26 그 곳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지으신 3)리워야단이 그 속에서 노나이다 27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28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 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29 주께서 낯을 숨기신 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 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시편 104편은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는 내용인데 24절에서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었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지혜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심지어 혼돈과 교만으로 상징되는 바다와 그 속의 리워야단도 주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리워야단도 주님께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주시면 그들이 받고 만족하지만 주께서 낯을 숨기시면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시면 죽어 먼지로 돌아갑니다. 리워야단도 피조물이기에 주께서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보는데 만물의 영장(令長)이라는 인간은 주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인간의 마음입니다.

 

이어지는 30~31절입니다. “30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31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죽어서 먼지로 돌아간 것을 주의 영을 보내시면 그들을 창조하여 지면을 새롭게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짐승들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타락하여 죄를 범함으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죄악이 관영함으로 사람이 육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할 수가 없어서 떠나심으로 인간은 육체가 되었습니다(6). 그런데 주의 영을 보내시면 새롭게 창조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지혜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여호와의 영광이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십니다. 창조의 기쁨을 지혜와 주의 영으로 이루어내십니다.


요한복음 1:1~4절입니다. “1 태초에 1)말씀이 계시니라 이 1)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태초에 말씀이계셨습니다. 이 말씀이라는 단어 대신이 오늘 본문의 지혜라는 단어를 넣어도 됩니다. 지혜가 선재한 것처럼 말씀이 선재한 것입니다. 이 지혜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지혜가 곧 하나님이시라고 해도 됩니다. 그 이유는 잠언과 시편에서 이미 지혜의 선재성과 창조주가 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13절입니다.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2)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3)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참 빛이 세상에 있었고 이 빛이 세상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빛이 말씀이며 지혜입니다. 그런데 그 빛이 세상의 자기 백성에게 왔지만 영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허물과 죄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빛을 영접하는 자가 나온다면 이것은 혈통과 육정이나 사람의 뜻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만이 영접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시편 104편에서 본 대로 주의 영을 보내어 지면을 새롭게 하시는 새로운 창조가 됩니다. 이런 일을 주께서 하시면 주께서 하시는 일로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창조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그 영을 넘겨주시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1:29~31절입니다.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나보다 앞섰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先在)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세례요한보다 늦게 출생하였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자신도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말씀하시기를 물로 세례를 베풀 때에 누구 위에든지 성령이 임하면 그가 성령으로 세례 베푸는 이인 줄 알라고 하여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증거 하면서 그 분이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 자신이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셨다고 하셨으며 아브라함이 자신을 보고 기뻐하였다고 합니다(8:56). 다윗이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22:43). 그러므로 예수님이 지혜이시며 말씀이시며 창조자이십니다.


본문 32~36절입니다. “32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33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34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35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36 그러나 3)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선재하는 지혜가 누시신지를 지금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선재하는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라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지 지식을 얻는 정도가 아니라 지혜를 얻는 것이 곧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는 것입니다. 지혜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를 넣으면 정확하게 해석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습니다. 이것이 여호와께 은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를 잃어버리는 자는 자기 영혼을 해하는 자가 되며 지혜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지혜의 자라에 예수님을 넣으면 됩니다. 이러한 지혜를 듣기 위하여 온 자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2:42절입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남방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하여 땅 끝에서 왔습니다. 이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소문으로 듣고 와서 직접 보고서는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지혜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솔로몬의 말을 듣는 자들이 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솔로몬에 나타난 부귀와 영화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나타난 왕권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참된 지혜는 세상의 시각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참된 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을 통하여 앞에서 살펴본 대로 유대인들에게 거리끼는 것이며 헬라인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혜는 사람이 스스로 찾아낼 수 없는 지혜입니다. 만약 사람이 이런 지혜를 찾아서 확보하여 자기 소유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이 지혜란 천지를 창조하신 그 지혜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지혜가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여야 되는 것임을 시편 104편을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지혜가 그 영을 부어주심으로 새롭게 만들어내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7:33~35절입니다. “33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34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35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예수님을 믿지 않는 그 세대의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세례요한이 떡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니 귀신이 들렸다고 하더니 예수님께서 먹고 마시니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하면서 배척합니다. 그러자 이러한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결국 지혜가 낳은 지혜의 자녀들만이 예수님의 모든 행사를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17~20절입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칠십 인의 제자들이 주의 이름의 능력을 보고 기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 말씀도 십자가로 승리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0:21~24절입니다.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제자들의 보고를 들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기도를 합니다. 제자들은 주의 이름의 능력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시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지혜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는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듣는 바를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왕들은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기다린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과 연결하면 지혜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혜의 말을 듣고 보는 자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이들이 보고 듣는 것은 곧 지혜의 말을 듣고 보는 것입니다. 이들은 지혜가 창조자가 되어 하나님과 함께 창조하실 때의 그 기쁨을 지금 제자들을 통하여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미 타락한 인생이기에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땅의 먼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땅의 먼지를 그 지혜가 새롭게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예수님은 성령으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것은 지혜가 되신 예수님이 창조자가 되어 일하신 결과입니다. 이것을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