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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4:20~27 네 마음을 지키라 2017. 2. 8

 

20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22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4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25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26 네 발이 행할 길을 1)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27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오늘 본문에서 네 마음을 지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에 마음이라고 하면 무엇을 생각하게 됩니까? 마음이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을 보면 의식, 감정, 생각 따위의 정신적인 작용의 총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는 힘으로도 말합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의미들을 담고 있는 것이 마음입니다. 그러면 이 마음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흔히 마음이라고 하면 가슴에 손을 댑니다. 그 이유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심장을 마음의 장소로 표현을 합니다. 어느 부족은 목을 마음으로 보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기쁘다고 하면 그 부족은 목이 기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뇌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뇌로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마음이란 지정의(知情意)라는 인간의 마음의 요소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전인(全人)으로 봐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마음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마음을 검색하면 구약과 신약에서 총 1058회가 나옵니다. 이 내용들을 다 살펴보면 성경에서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라는 단어도 그 쓰임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용례를 다 살펴보려면 마음이라는 한 단어로 한 일주일 동안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 살펴보아도 부족할 것입니다. 언제 가는 이렇게 해보고 싶습니다만 마음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그 용례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심중, , 콧김, 가슴, 감동, 간담, 결심, 생각, 진심, 기력, 관념, 인심, 심장, 염통, 한마음, 성심, 전심, , 충심, 총명, 지혜, 지식, 의사, 생각, 명철, 지각, 굳센 자, 말하다, 간곡하다, 낙심하다. 염려하다. 깨닫다, 간교하다. 살피다. 기억하다 등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런 단어들의 용례만 살펴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최초로 나타나는 마음이라는 단어가 어디서 사용되는지 보겠습니다.

 

창세기 6:5~8절입니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성경에서 처음 나오는 마음이라는 단어가 아담의 타락 이후의 마음입니다. 타락한 마음은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합니다. 이러한 상태는 사람들이 자기 좋아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을 전부 자기 마음에 좋은 대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좋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모두 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에 근심하시고 한탄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데 노아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성경은 오늘날도 이 세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이나 다니는 사람이나 간에 모든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좋은 대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냥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자기 좋은 대로 살아갈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면 방주를 예비한 노아처럼 세상의 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좋다고 하는 것들을 추구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타락한 이후의 삶의 조건에서 특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멸망할 세상에서 구원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은혜라는 것이 어떻게 사용됩니까? 세상의 생존에서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혜택을 받는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이런 것들이 통용되는 것은 우리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마지막에 나오는 마음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8:7절입니다.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바벨론의 멸망이란 온 세상의 멸망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멸망하는 이유가 노아 홍수 때와 같습니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그가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타락한 이후의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세상이 멸망하기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나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이 바벨론이라는 멸망할 세상에 빼앗겨 있다면 스스로 그 마음을 돌이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이 멸망할 세상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조치를 하십니다. 예방주사를 맞듯이 미리 조치를 당하는 자들이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이들을 노아 홍수 때에 방주를 예비하는 자들이며,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천사의 손에 끌려 나오는 자들입니다. 천사의 손에 끌려나오다가도 뒤를 돌아본 롯의 처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롯의 처가 몸은 천사의 손에 끌려 나왔지만 마음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 있는 곳을 돌아보다가 멸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요한계시록 18:20절입니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하늘에 속한 자들 곧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에 마음을 둘 수가 없어서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이런 자들이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속하여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기에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속한 자들이라면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자기 백성들을 세상에서 분리시켜 내신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주님은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세상을 심판하셨다고 합니다. 성도는 세상의 심판 받을 것들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기뻐합니다.

 

오늘 본문 20~22절을 봅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고 합니다. 지혜 자가 전하는 말에 주의하여 귀를 기울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네 마음속에 지키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마음속에 지키라고 합니다. 귀와 눈으로 듣고 보는 것이 마음에 새겨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을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고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건강이 된다는 말은 그 마음에 말씀이 새겨지면 그 말씀의 생명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으로 건강을 강의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안식교인인 어느 박사는 채식을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의 건강법을 강의하고 성경의 건강식을 만들어 판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건강을 말할까요?

 

고린도후서 4:16~18절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성경의 한 구절만 따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건강해진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전체를 봐야 합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집니다. 모든 사람의 겉 사람은 다 낡아집니다. 그러나 성도는 속사람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속 사람이 새로워집니다. 이 속사람을 새 마음이라고 해도 됩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의 환난을 통하여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 이루어지는 자들입니다.

 

에베소서 3:14~21절입니다.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 본문은 제가 목사고시 칠 때 설교한 본문입니다. 바울의 기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이 먹고 살만하니 가장 신경 쓰고 돈을 많이 투자하는 것이 건강식품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기를 기도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계시기를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의 엄청남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이 우리에게 충만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디에 이러한 충만함이 채워지는 것입니까?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는 것이 성도의 마음입니다(13:9).

 

본문 23절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오늘의 주제구절입니다. 다른 번역으로 봅니다.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본 지혜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생명이 됩니다. 그런데 이미 앞에서 보았습니다만 우리의 마음은 이미 타락한 이후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합니다. 이런 마음에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서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그대로 두고서 24~27절을 봅니다.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고 합니다. 네 눈을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서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모든 길을 든든하게 하라고 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라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서 지키려고 하면 앞에서 본 대로 듣고 본 바를 마음에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말과 눈과 발이 바른 길을 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귀, , , 발 이 모든 신체기관들이 마음을 지키는 일에 동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지켜져야 이것들도 온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 중에 우리가 자주 언급하는 말씀이 마음을 지키라는 것만이 아니라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죄벌과 용서 그리고 유아세례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죄지은 육신의 모습으로 죄 없이 나신 분은 한 분 뿐입니다. 그분은 죄 없이 우리 죄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오른 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마라. 오른 쪽으로 벗어나는 것은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왼쪽으로 벗어나는 것은 벌을 받지 않았으니 내 행동이 얼마나 사악하고 타락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고 하면서 자신의 죄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좌우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만 이 해석은 생각해 볼만하여 인용하였습니다. 아까 미루어둔 질문을 다시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능력으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바른 길로 갈 수가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우리가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예레미야 17:9~10절입니다.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만물보다 거짓되고 심이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앞에서 창세기와 요한 계시록의 마음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마음을 사람들이 알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 살펴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시면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면 그 앞에 설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의 용서하심을 바라게 되는 것이 이런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마음을 지키고 바른 길로 갔다고 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편으로 치우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1:1~5절입니다. “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잠언을 누가 남겼습니까? 다윗의 아들 솔로몬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마음을 지키라고 하면서 그것이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였지만 정작 자기 자신도 그 마음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통혼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조차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서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취하였습니다. 그 여인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돌아서게 한 것입니다. 솔로몬이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왕들이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마음을 스스로 지킬 능력이 없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마태복음 15:11절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살펴보다가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느냐고 예수님께 따집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장로들의 유전과 사람들의 가르침을 폐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십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의 뜻을 풀어주십니다. 17~20절입니다.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타락한 인간의 마음이 이렇습니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과 비방이라고 합니다. 나는 이런 죄를 안 짓는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간음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 마음으로 지킨다고 하여도 엉터리로 지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말씀을 자주 드렸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하여도 사람의 마음으로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예레미야 31:31~33절입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가 됩니다. 비가 흘러내리는 것 같지만 그 비가 식물들을 자라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그 말씀이 다 성취가 됩니다(55:10,11).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는 인간의 불가능을 폭로하시면서 성취가 됩니다. 그러므로 옛 언약이 돌 판에 기록되었지만 이 언약을 이룰 자가 없음이 이스라엘 역사가 증거를 합니다. 몸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와 옷을 찢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라는 것을 율법에서 말씀하지만 인간은 마음의 할례와 마음을 찢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옛 언약이 아닌 새 언약을 말씀하십니다. 새 언약은 그들의 마음에 기록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이 내 백성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킨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내신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왜 새 언약입니까? 마음의 할례와 마음을 찢는 것을 이미 구약에서 말씀하지만 인간이 마음의 할례를 할 수가 없습니다. 옷은 찢어도 마음을 찢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원수를 사랑하라고 해도 마음이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미움, 분노, 시기, 질투, 이런 것들이 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앞에서도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내십니다. 그리고 그 새 언약의 혜택을 입은 자들은 자신이 마음을 지키지 못함을 제대로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을 맡아서 주관하여 주시도록 기도하게 됩니다. 이런 자는 큰 소리를 치지 못합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해석처럼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할 수도 없고, 나는 벌 받은 적이 없기에 죄가 없다고도 하지 못하는 자가 됩니다.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게 되는 것이 새 언약의 백성입니다.

 

요한복음 14:16~20절입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예수님의 이 말씀을 십자가로 이루어내십니다.

 

누가복음 22:20절입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요한복음 14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자기 피로 새 언약을 체결하신 것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할 때에 우리의 마음에 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인 그 성령의 관계 속에 그 십자가로 우리도 넣어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의 언약 곧 십자가로 세우신 새 언약이 기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마음을 지키라는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다 이루심으로 자기 백성의 마음에 새겨주시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갈라디아서 2:19~20절입니다.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이 율법에 대하여 살아있을 때에는 새 언약의 백성들을 죽이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새 언약의 백성이 되고 보니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고 합니다.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은 돌 판에 기록된 옛 언약의 체계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로 그 마음에 기록된 새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기에 이제 자신이 사는 것은 자신의 행위를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그 마음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네 마음을 지키라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이루어주셨기에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의 행위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 3:1절처럼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을 지키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