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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6:20~35 통간(通姦)하는 자 2017. 3. 15

 

20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21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22 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네가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네가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 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24 이것이 너를 지켜 악한 여인에게,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잠언 5장에서 음녀의 유혹을 주의하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잠언 5장 전체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는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앞에서 이런 말씀을 보았기에 이것을 그냥 넘어가야 합니까? 그런데 다음 주에 볼 7장의 내용도 음행에 대한 내용입니다. 잠언에서만이 아니라 성경에서 자주 나오고 많이 나오는 말씀이라면, 그 말씀을 자주 나온다고 생략할 것이 아니라 그대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몇 주 전에 잠언 5장 전체를 통하여 음녀를 주의하라고 하였지만 이미 우리가 다시 음녀의 유혹에 넘어가 있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 끝 날까지, 우리의 목숨 다하는 날까지 유혹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수고롭지 않다고 바울사도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이런 말씀이 나오면 다시 보고 들어야 합니다.

 

전에여우는 같은 덫에 두 번 걸리지 않는다라는 웹툰을 보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여우고개라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거의 대동소이합니다. 어떤 남자가 장사를 하러 갔던지, 다른 볼일을 보러 갔든지 간에 좀 오랜 기간 출타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여우에게 홀려서 가진 돈을 다 털리고 옷도 벗겨진 채로 겨우 살아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여우가 둔갑하여 사람을 유혹한 것이 아니라 남자가 타처에 나갔다가 기생집에 들어가서 홀랑 껍데기 벗겨져서 기생집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돌아오는 길에 지어낸 이야기가 산 고개를 넘다가 여우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우고개가 많다는 것은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 것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20~24절입니다. 잠언서는 계속하여 지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 전달자는 이스라엘에서 특별한 지혜 자가 있어서 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지혜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도 지혜의 말씀입니다. 모세오경도 여호와의 지혜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지혜를 전달하는 것이 공적인 장소에서는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있겠지만 가정에서는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부모가 전하는 명령은 사사로운 명령과 법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은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목에 매어 달고 다니라고 합니다. 목에 맨다는 것은 중요한 인장반지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고 목에 걸고 다니는 것처럼 말씀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말씀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잘 때에 보호하고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길을 가든지 자든지 깨어 일을 할 때에든지 언제나 주의 명령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 앞에 등불이며 빛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훈계와 책망이 생명의 길이라고 합니다. 이런 지혜의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의 샘이며 생명나무임을 이미 앞에서 보았습니다. 이러한 지혜의 말씀이 너를 지켜 악한 여인에게서,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25절입니다. 네 마음에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지혜가 전하는 명령을 마음에 새기고 목에 매고 다니라고 하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네 마음에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라고 합니다. 성적인 부분에서 여자는 주로 유혹을 하는 자로 보이지만 여기서는 남자가 그 마음에 아름다움을 탐하게 되는 것을 주의하라고 합니다. 남자가 그런 탐욕에 넘어가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봅니다.

 

26절을 봅니다. 음녀로 인하여 한 조각 빵만 남게 되고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한다고 합니다. 다른 번역으로 보면 창녀와 음란한 여인으로 구별합니다. 남자가 창녀에게 들어가면 여우고개 이야기처럼 홀랑 벗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색(酒色)에 빠지면 결국 재산 탕진하게 되고 한 조각 빵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음란한 여인으로 언급되는 것은 결혼한 여인입니다. 그래서 기생집에 들어가는 것과 통간하는 자를 구별하고 있습니다. 둘 다 금하는 것이지만 통간을 하게 되면 그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간통이란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로 생명을 잃는다는 것은 그 여인의 남편이 복수심으로 어떤 보상도 원치 않고 그 간통 자를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7~29절입니다. “27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28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29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그를 만지는 자마다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남여의 관계를 적절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행, 간음, 통간이라는 것은 마치 불을 품에 품은 것과 같고 숯불을 밟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문화에서도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성이 서로 만나서 교제하면 불꽃이 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것은 이와 같이 불이 붙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를 만지는 자마다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30~34절입니다. “30 도둑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둑질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하지는 아니하려니와 31 들키면 칠 배를 갚아야 하리니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주게 되리라 32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33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34 남편이 투기로 분노하여 원수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35 어떤 보상도 받지 아니하며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아니하리라

 

도둑이 주려서 배를 채우려고 도둑질을 하면 멸시를 하지는 않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렇게 했겠느냐고 정상참작이라도 해줍니다. 그러나 도둑질이 들키면 율법에서는 소면 다섯 배, 양은 네 배입니다(22:1). 그런데 여기서 일곱 배라고 하는 것은 온전하게 다 물어내어야 한다는 뜻으로 봅니다. 그런데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고 합니다. 남의 아내를 도둑질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가 고파 도둑질 한 것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남편의 투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남편이 그 아내를 사랑하였는데 그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면 어떤 보상도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율법에서는 통간하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합니다. 그러함에도 이스라엘 안에서 이러한 통간의 문제가 멈추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미 간통죄가 폐지되었습니다. 2015년에 간통죄가 위헌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간통죄가 폐지 된 것은 결혼의 시대적 상황이 달라졌고, 여성의 신분도 동등하여 졌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동안 간통죄가 나오면 거의 여자가 손해를 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 그런 법을 옳지 않다고 본 것입니다. 이런 결정의 바탕은 사람의 행복이 제일이라는 인본주의입니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하여 결혼하였는데 좀 살다보니 권태로운 것입니다. 이런 배우자와 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은 불행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감정이 떠난 사람과 사는 것보다 감정이 일어나는 사람과 함께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졸혼(卒婚)이라는 신조어도 나옵니다. 학교만 졸업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관계도 졸업한 것처럼 살자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상을 보면서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고 있습니까? 이미 잠언 5장에서도 성경의 여러 곳을 살펴보면서 음행이 무엇인지를 보았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모든 음행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 음행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그러한 모든 음행들을 제거하라고 율법이 명합니다. 그런 음행하는 자를 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유대 사회에서도 그런 음행이 멈추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의 이런 말씀이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음행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이 음행이라는 미혹이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에서는 어떻게 이런 문제를 말해야 하는 것입니까? 어떤 가정 사역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물론 문자화 되어 보도된 내용이기에 보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목사인 가정 사역자가 말하기를 부부간에 애정이 식고 감정이 식어서 그런 것이라면 새로운 체위를 익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식은 부부관계가 좋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기러기 아빠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이성의 생각이 나면 땀 흘리는 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런 말씀의 결론으로 음행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간통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려면 이런 저런 방법을 사용하시기 바란다는 결론을 내리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결론을 내려버리면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행위만이 아니라 그 마음에 생각만 하여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합니다. 주일 오전에 보는 마태복음 5장에서 오래전에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그렇게 간음하지 않고 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음욕을 품고 보는 것은 간음이지만 음욕을 품지 않고 보면 간음을 한 것이 아닙니까? 물론 어떤 남자는 남자를 좋아해서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를 봐도 아무른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음욕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잠언이나 율법에서 음행이나 간통의 문제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원주민들이 행하고 있는 그 자연스러운 음행이라는 것들을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가나안 원주민들만이 아니라 이방의 여러 나라에서 행하여지는 수많은 음행들은 그들의 육체적인 탐욕만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는 그들이 신을 섬기는 제의 의식으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일들을 따라가면 결국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음행이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잠언 2:16~19절입니다. “16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17 그는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며 그의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18 그의 집은 사망으로, 그의 길은 스올로 기울어졌나니 19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 길을 얻지 못하느니라지혜가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음행은 결국 여호와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고 합니다. 그 결국이 스올로 들어가는 것이며 생명의 길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행이라는 것이 단지 육체적인 음행만이 아니라 여호와와 맺은 언약의 관계를 버리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민수기 25:1~11절입니다. “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5 모세가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6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 7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8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9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올 때에 모압의 왕 발락이 발람을 향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저주를 해도 저주가 임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이 쏟아진 것입니다. 이때 발람이 모압 왕에게 힌트를 준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외부에서 저주를 해서 통하는 백성이 아님을 알고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방법이 음행이었습니다. 모압 여인들이 이스라엘 남자를 유혹하여 그들의 제사에 참여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 이방의 제사는 음행과 연결이 됩니다. 이러한 음행으로 여호와의 심판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이스라엘의 한 사람이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그의 막사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비느하스가 따라가서 창으로 찔러 죽입니다. 그러자 염병이 그쳤지만 그 염병으로 인하여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나 됩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비느하스를 향하여 하신 말씀이 내 질투로 질투하여 내 노를 돌이켰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 잠언의 남편의 질투로 인하여 통간하는 자는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을 할 수가 없기에 생명을 잃는다는 말씀이 단지 남녀 간의 문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1:31~34절입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음행을 하면 어떻게 될지를 말씀하셨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행을 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민수기 25장을 통하여서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그들의 음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이 예언되는 배경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남편을 배반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언약은 그들의 마음에 기록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 잠언에서 나의 명령을 네 마음에 새기라는 명령의 말씀을 결국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친히 이루어내시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요한복음 8:3~11절입니다.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모세를 통하여 간음하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여도 예수님 당시에도 간음하다가 현장에 붙잡혀 온 여인이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올무에 걸려고 이렇게 하였습니다. 이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아무른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을 쓰셨습니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아니하자 예수님은 너의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시자, 마음에 가책을 느껴 어른부터 젊은이까지 다 가고 여자만 남았습니다. 이 여자를 향하여 예수님은 너를 고발하고 정죄하는 자가 어디에 있느냐고 하십니다. 아무도 없다고 하자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여인의 음행의 죄는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대신 담당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여자에게 정죄를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새 언약으로 자기 백성을 삼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이 여인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길이 무엇입니까? 죽음에서 살아났기에 이런 음행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는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을까요? 다른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않았을까요? 잠언 5장을 볼 때에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간음이라는 야고보서 4장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어내시는 새 언약 곧 그 피 안에 머물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6:9~11절입니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고린도 교인들이나 무엇이 다 나오고 있습니까? 음행, 우상숭배, 간음, 탐색, 남색, 도적, 탐욕, 술 취함, 모욕, 속여 빼앗음,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이 목록 가운데 음행이 가장 많이 나옵니다. 우상숭배도 음행과 바로 연결이 됩니다. 직접적인 단어로도 음행, 간음, 남색이 나옵니다. 이러한 일들을 일상적으로 행하는 자들이 고린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새 언약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은혜를 입은 자들이 다시 음행으로 가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십니까?

 

이어지는 12~20절입니다.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지만 하나님은 이것저것을 다 폐하신다고 합니다. 사람이 음식을 먹어야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그 음식은 배로 들어가 소화하여 힘을 얻습니다. 이렇게 하여 몸이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저것을 다 폐하여 버리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힘을 얻은 몸으로 음란하게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여도 우리는 늘 세상을 사랑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몸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몸이 죄로 타락한 몸이라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담겨져도 옛 몸의 습관을 따라 계속 세상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몸이 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땅도 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흙 친화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것저것을 다 폐하여버리심으로 다시는 우리가 음란하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성도는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계속하여 음란을 행하기에 하나님은 어떻게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세상 자체를 없애버리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5~17절입니다. “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여기서 음행하는 자를 무엇과 같이 연결하고 있습니까?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연결합니다. 장자의 명분이란 하나님의 언약라인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한 그릇 음식과 바꿔치기 하는 이러한 에서가 여호와의 미움을 받는 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에서가 아무리 눈물을 흘리며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구하였지만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른 곳은 시내산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장자들의 총회라는 곳입니다. 이곳은 어린 양의 피로만 들어갑니다.

 

이어지는 18~21절입니다. “18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이렇게 두렵고 떨리는 여호와의 현현을 시내산에서 경험합니다. 그 두려운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면 죽을 것 같아서 모세가 대신 전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음행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음행만 이기지 못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조문을 말씀의 원뜻대로 지킨 자가 없습니다. 모든 율법은 내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한 말씀에 다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미 간음이라는 자체가 이웃사랑이 아니라 자기의 음욕을 사랑한 것입니다. 그러면 새 언약의 백성들은 어떻게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까?

 

이어지는 22~28절입니다.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2)은혜를 3)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새 언약의 백성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뿌리 피로 인하여 만들어집니다. 땅에서 경고한 이, 곧 모세의 경고를 거역한 자들이 음행으로 멸망한 것입니다. 단지 율법조문의 음행을 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와 결혼관계를 깨어버린 것이 음행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부인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피를 무시하는 자가 받을 벌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이러한 말씀을 우리가 알고 있지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십니까? 미워하십니까?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우리가 더 이상 한 눈 팔지 못하도록 우리가 사랑하는 세상자체를 불 태워버리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변동되고 흔들립니다. 이런 것들에 더 이상 마음 빼앗기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흔들어 버리십니다. 그렇게 흔들어 버리심으로 흔들리지 않을 것만 성도에게 남기십니다.

 

그 흔들리지 않을 것은 내가 만들어낸 것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다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을 믿지 않고 다른 것에 눈 돌리는 모든 것들이 다 간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음행에서 돌이키라고 오늘도 성령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심으로 우리의 지각이 열려져서 그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눈이 열려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