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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설교] [동영상 설교]

에스겔 28:1~19 나는 신이라 2012. 7. 4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 3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4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5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였으니 7 그런즉 내가 이방인 곧 여러 나라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치리니 그들이 칼을 빼어 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네 영화를 더럽히며 8 또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를 바다 가운데에서 죽임을 당한 자의 죽음 같이 바다 가운데에서 죽게 할지라 9 네가 너를 죽이는 자 앞에서도 내가 하나님이라고 말하겠느냐 너를 치는 자들 앞에서 사람일 뿐이요 신이 아니라 10 네가 이방인의 손에서 죽기를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죽음 같이 하리니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셨다 하라.......................... 19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말미암아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공포의 대상이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하셨다 하라

 

지난주에는 두로에 대한 심판과 애가를 보았습니다. 오늘은 두로의 왕에 대한 심판과 애가의 말씀입니다. 두로가 무역으로 인하여 부요하게 된 나라입니다. 그 부귀영화를 화려한 선박으로 비유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두로가 하루아침에 말간 반석이 되도록 심판하신 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심판을 받는 이유는 단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자기 이익의 기회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 결과 자신들이 온전히 아름답다고 한 그 나라가 완전히 심판을 당한 것입니다. 이러한 나라 전체를 한 덩어리의 개인으로 응축을 하면 두로 왕이 됩니다. 이러한 두로 왕이 왜 심판을 받는지 보겠습니다.

 

28:1~5절에서 두로 왕이 자신을 신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역으로 부요하여진 나라의 왕이 자신을 신으로 여기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부요함을 자신의 지혜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마음이 교만하여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고 한 것입니다. 두로 왕의 마음이 하나님 같은 체 할지라도 사람일 뿐이며 결코 신이 아닌데도 그의 지혜와 총명이 다니엘보다 지혜롭다고 합니다. 다니엘은 그 당시의 세상이 알아주는 지혜자인지 성경의 다니엘인지 모르지만 은밀한 것을 깨닫는 다는 것은 성경의 다니엘을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자신의 지혜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 2:20~22절입니다. “20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21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22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다니엘은 지혜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말함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로 왕은 다니엘보다 더 지혜롭다고 하면서 자신의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여 교만하여 졌습니다.

 

28:6~10절입니다. 이러한 두로 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입니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하였으니 내가 이방인 곧 여러 나라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칼을 빼서 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고 네 영화를 더럽히며 너를 구덩이에 빠뜨리고 너를 바다 가운데서 죽임을 당한 자의 죽음 같이 바다 가운데서 죽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바다에서 무역하여 영광을 얻은 왕이 바다 가운데서 죽게 됩니다. 자기의 자랑이 자기의 무덤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게 될 때에 나는 하나님이라고 하던 그 두로 왕이 신이 아니라 사람일 뿐임이 드러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은 이방인의 손에 죽기를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죽음 같이 할 것이라고 합니다. 두로 사람들도 할례를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주변의 국가들이 할례를 행하였는데 블레셋 사람들만 할례를 행하지 않았답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지 않는 자에게서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아주 수치로 여겼습니다. 사울 왕은 할례 받지 아니한 자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 것이 싫어서 자기 부하에게 자신의 목을 치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신이라고 하던 자가 세상의 일반 사람들의 죽음보다 더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여호와이시기에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28:11~19절입니다. 두로 왕에 대한 애가입니다. 지난주에 보았던 두로의 심판과 애가가 따로 나온 것처럼 두로 왕의 심판과 애가도 따로 나옵니다. 두로는 화려한 선박으로 비유를 하였지만 두로 왕은 에덴동산의 천사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상태를 에덴동산으로 비유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3:10절에서 아브라함과 롯이 서로 갈라설 때에 아브라함이 롯에게 먼저 선택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롯이 바라본 소돔과 고모라가 물이 넉넉하여 여호와의 동산 같았더라고 합니다. 이사야 5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이스라엘의 회복을 사막을 하나님의 동산 에덴 같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처럼 에덴은 완전한 아름다움으로 말하여집니다.

 

두로 왕의 아름다움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11~14절을 봅니다. 애가를 부르는데 두로가 처음에 어떤 영광이었는지를 말합니다.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여 온전히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으로 단장을 하였습니다. 지음을 받던 날에 악기가 준비 되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심으로 하나님의 성산에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으며 지음을 받던 날에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두로 왕이 정말로 에덴동산에서 지어진 자라는 말은 아닙니다. 두로를 화려한 배로 비유하듯이 두로 왕을 에덴동산의 아름다움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은 천사의 타락을 말할 수도 있고 아담의 타락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부족함이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사탄의 유혹을 받아서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 유혹은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됩니다. 이때로부터 인간은 신이 아니면서도 자신은 자신이 신 인줄 착각하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난 주일날 어느 사람의 예화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부인이 메일이 왔습니다. 청년 때에 복음의 교제를 말하면서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 사람은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제가 답을 하면서 이렇게 보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가장 힘들 것입니다. 애들이 전부 신이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렇게 노골적이지 않았는데 예수님 오실 때가 다 되었는지 온 천지에 나는 신이라고 외치는 자들로 가득합니다.” 사실 초등학교 아이들만이 아니라 온 세상이 이렇게 살기 힘든 이유는 모두가 나는 신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의 후손들이 다들 자신들이 신이라고 살고 있는 이곳을 영원히 고착시켜버리면 지옥입니다.

 

두로 왕이 심판을 받은 이유를 봅니다. 15~17절입니다. “봉독” 무역이 많고 아름다우므로 교만하여 졌습니다. 무역이 많아짐으로 재물이 풍부하였습니다. 여기다가 지혜도 있어서 온갖 영화로운 것들을 다 만들어내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영화로운 것들을 만들었습니다. 정말 신의 경지라고 할 정도로 영화롭게 만들었습니다. 고대의 유물들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마어마한 유물들이 있습니다. 거대한 사원이나 사후를 준비한 무덤들의 규모와 화려함을 보면 과히 신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것들입니다.

 

두로 왕의 영화로움이 지금까지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다면 대단한 관광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어떠한지를 보이시기 위하여 그런 영화로운 두로 왕의 모든 것들을 다 심판하셔서 말간 반석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말간 반석이 된다는 다른 표현을 열왕기하 21:13절에 봅니다.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유다왕 므낫세의 악행으로 인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릇을 씻어 엎음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린다고 하십니다.

 

28:15~19절을 봅니다. “봉독” 에덴동산의 천사와 같이 아름답게 만들어진 두로 왕이 마침내 불의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무역으로 인하여 부와 영광이 가득하여짐으로 마음이 교만하여 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시는데 두로 왕을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불살라 너를 보고 있는 모든 자들 앞에서 두로 왕을 땅의 재가 되게 하였다고 합니다. 땅의 재와 티끌 이것이 인간의 원래자리입니다. 두로 왕이 이렇게 심판 당한 소식을 듣고서는 너를 아는 자가 놀랄 것이며 네가 공포의 대상이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원래자리가 땅의 티끌입니다. 이런 땅의 티끌을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아름다움으로 채워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에 넘어가서 타락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모든 아담의 후손들이 다 신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온통 신들의 전쟁으로 가득합니다. 나의 신 됨을 지키기 위하여 죽도록 노력하고 경쟁합니다. 다른 신들을 정복함으로 더욱 위대한 신들이 되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신들의 전쟁이 오늘날에는 경제라는 이름으로, 정치라는 이름으로, 종교와 문화라는 이름으로 정복하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온전히 아름다고 온전히 지혜롭고 온전히 영화롭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 이후의 인류역사입니다.

 

신이 되고 싶은 인간의 모습을 사도행전 12:21~23절에서 봅니다.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배경은 이렇습니다.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자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조차 죽이려고 감옥에 가두었지만 천사가 베드로를 탈옥시킵니다. 그러자 헤롯이 간수들을 죽이라고 하고서 가이사랴로 내려갔습니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싫어합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왕의 신하를 설득하여 화목하자고 왔습니다. 이에 헤롯왕이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합니다. 이때 백성들이 신의 소리라고 하였습니다. 왕의 화려함을 보며 백성들이 헤롯에게 아부하기도 하는 발언이었겠지만 헤롯이 기분좋아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옷을 찢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분 좋은 소리를 듣고 난후 주의 사자가 침으로 벌레가 먹어서 죽었다고 합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벌레가 몸을 파먹는데 그 악취로 인하여 아무도 가까이 가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간이 신이라고 한 자들이 이렇게 심판을 받았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신 됨을 포기하지 못하고 달려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세상이 참 신이 오셨습니다. 그 영광의 보좌를 버려두시고 사람의 형체로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신이 되기를 원하였기에 이런 신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배척하여 몰아낸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하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은 나의 신 되고자 함이 참 신을 살해하였다는 신앙의 고백이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시 자신의 신 됨을 위하여 빌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달 구역공부 내용 중에 보았던 빌립보서 3:17~21절을 봅니다. “봉독” 하나님의 원수는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이들의 결국은 멸망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신이 무엇입니까? 배라고 하였습니다. 배란 세상적인 욕망을 말합니다. 그 욕망이란 두로 왕처럼 스스로 온전히 아름답고 지혜롭고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부귀영화이든 자신의 종교적인 공적이든 간에 자신을 신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욕망으로 교회를 다닌다면 그 사람은 자신을 신으로 만들기 위하여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영광이 아니라 부끄러운 것이며 땅의 일에 불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 스스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지 않습니다. 오직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그분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