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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설교] [동영상 설교]

에스겔 30:1~26 그 날이 가깝도다! 2012. 7. 25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통곡하며 이르기를 슬프다 이 날이여 하라 3 그 날이 가깝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구름의 날일 것이요 여러 나라들의 때이리로다 4 애굽에 칼이 임할 것이라 애굽에서 죽임 당한 자들이 엎드러질 때에 구스에 심한 근심이 있을 것이며 애굽의 무리가 잡혀 가며 그 터가 헐릴 것이요 5 구스와 붓과 룻과 모든 섞인 백성과 굽과 및 동맹한 땅의 백성들이 그들과 함께 칼에 엎드러지리라 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애굽을 붙들어 주는 자도 엎드러질 것이요 애굽의 교만한 권세도 낮아질 것이라 믹돌에서부터 수에네까지 무리가 그 가운데에서 칼에 엎드러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6 내가 애굽 사람을 나라들 가운데로 흩으며 백성들 가운데로 헤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였습니다. 일곱 개의 신탁 중에 유일하게 날짜가 나오지 않는 신탁이 1~16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앞뒤의 시간과 거의 비슷한 때로 봅니다. 일곱 개의 신탁 전체가 애굽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본 말씀에서 애굽이 멸망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애굽의 교만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의 의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0:1~3절을 봅니다. 에스겔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은 예언하라고 합니다. 그 예언하라는 내용의 시작이 먼저 통곡하라고 합니다. 통곡하며 말하기를 ‘슬프다 이 날이여’라고 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날에 대하여 많이 나옵니다. 이 날이 슬픈 날이며, 이 날이 가까우며, 이 날이 여호와의 날이며, 이 날이 구름의 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날이 여러 나라의 때라고 합니다. 이 날을 하나로 압축하면 여호와의 날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적들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에는 승리와 구원을 주시는 날입니다. 지금도 육적인 유대인들은 그러한 날을 기다리고 있기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이 기다리는 날이 여호와의 날입니다. 그런데 이미 구약에서 여호와의 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됨을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5:18~20절입니다. “18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19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20 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그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형식적인 종교적인 절기와 성회와 희생의 제사를 지내면서 공의와 정의가 사라진 북 이스라엘의 상황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면서 기다리는 자들에게 그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얼마든지 심판의 날이 됩니다.

 

마태복음 7:22~23절입니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날도 여호와의 날입니다. 이 날을 아모스의 말씀처럼 구원의 날로 사모하고 기다렸지만 오히려 그날이 심판의 날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요엘서 2:1~2절입니다. “1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여호와의 날이 어떤 날이라고 합니까? 어둡고 캄캄한 날,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고 합니다. 이런 여호와의 날은 곧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나라에 여호와의 날을 이야기 할 때는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요엘서 2:12~14절입니다.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여호와의 날을 준비하는 것은 마음을 찢고 주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옷은 사람이 찢을 수 있지만 마음은 어떻게 찢는 것입니까?

 

요엘서 2:28~32절입니다.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이 말씀이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에 성령이 임함으로 성취가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구약에서 여호와의 날에 대한 말씀을 보면서 지금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재림 시에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이 날이 됩니다. 거저 교회당에 다니며 교회의 몇 가지 일들을 하는 것으로 안심할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날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오늘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스겔 30:4~5절입니다. “봉독” 여호와의 날에 애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봅니다. 애굽에 칼이 임하게 됩니다. 이 칼은 바벨론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의 칼로 사용하십니다. 이러한 심판은 애굽의 전역으로 시행이 됩니다. 애굽 전역만이 아니라 애굽과 동맹한 땅의 백성들도 함께 칼에 엎드러질 것입니다. 구스와 붓과 룻과 모든 섞인 백성과 굽과 및 동맹한 땅의 백성들이 그들과 함께 엎드려질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동맹한 땅의 백성’이란 ‘언약의 땅의 아들들’로 번역이 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백성들도 애굽에 동맹군으로 와 있다는 말입니다. 이들은 애굽에 온 이스라엘의 용병들로 봅니다. 이들조차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6~9절입니다. “봉독” 애굽을 붙들어 주는 자도 엎드러질 것이며 애굽의 교만한 권세도 낮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주에도 보았습니다만 애굽의 왕이 나일 강을 보고서 자신이 만들었다고 자신의 것이라고 하는 것이 교만임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나일 강을 어떻게 심판하시는지 12절을 봅니다. “내가 그 모든 강을 마르게 하고 그 땅을 악인의 손에 팔겠으며 타국 사람의 손으로 그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황폐하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자기가 만들었다고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던 나일 강이 마르고 그 땅을 악인의 손에 팔아버리게 될 때에 바로 왕의 교만이 꺾어지는 것입니다.

 

10~19절입니다. 애굽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으로 심판을 행하십니다. 바벨론의 강포한 군대가 애굽을 쳐서 죽임 당한 자로 땅에 가득하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한 심판으로 우상들을 없애며 신상들을 부수며 애굽의 왕들도 끊어지게 합니다. 그리고 각 지명이 나오는 것을 간단하게 말하면 애굽의 정치적인 중심 성읍들과 요새가 된 성읍들과 신전들이 있는 성읍들을 다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애굽과 그 돕는 나라들까지 전체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이 바로 여호와의 날로서 애굽에 시행되는 것입니다.

 

20~21절입니다. “봉독” 애굽의 바로 왕의 한 쪽 팔을 하나님께서 꺾으셨습니다. 그래서 칼을 잡을 수 있도록 싸매지도 못하고 약도 붙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치명적인 심판을 당하였는데도 그들의 교만이 꺾어지지 아니한 것은 아직 한 쪽 팔이 남아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애굽의 호브라 왕 때의 일로 봅니다. 호브라 왕이 예루살렘의 원병요청을 받아들여서 군대를 파병하였습니다. 애굽의 출병소식을 듣고서 바벨론 군대가 잠시 예루살렘의 포위를 풉니다. 이것은 바벨론 군대가 애굽을 막기 위하여 예루살렘의 포위를 잠시 풀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에 새로운 희망을 가집니다.

 

예레미야 37:7~10절입니다. “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의 왕에게 아뢰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8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10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자들에게도 이 소식이 전하여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하여 애굽 왕의 두 팔을 다 꺾어버리신다고 하십니다.

 

에스겔 30:22~26절입니다. “봉독” 여호와께서 바로왕의 성한 팔 하나마저 꺾어버리십니다. 그래서 아예 칼을 들지도 못하게 하십니다. 애굽 사람은 뭇 나라 가운데 흩어버리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격투기의 심판처럼 바벨론 왕의 팔은 들어 올리고 바로의 팔을 내려뜨리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을 통하여 이렇게 하신 분이 여호와임을 알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에스겔 29장에서는 애굽이 갈대지팡이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을 의지하면 어깨가 찢어지고 허리가 휘청하게 되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도움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입니다. 그 결과로 바벨론에 끌려왔지만 여전히 애굽을 의지하기에 하나님께서 애굽의 두 팔을 완전히 꺾어버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실까요?

 

오늘 새벽기도회 내용인 시편 33:13~19절을 봅니다. “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14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15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17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18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19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이 말씀을 오늘날 말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생을 살펴보시는데 세상의 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라고 모였다는 곳조차 세상의 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힘으로는 결코 사망에서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힘으로는 사망으로 가는 길을 재촉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사망에서 건지시며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신다고 합니다.

 

그 날이 가깝습니다. 그 날은 여호와의 날입니다. 그 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이 날을 아는 사람들은 여호와를 경외합니다. 이런 자들은 애굽이라는 세상의 힘을 의지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한 이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러한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갈대지팡이에 찔리게 하시고 허리를 상하게 하십니다. 그래도 계속하여 의지하기에 이 세상 자체를 하나님께서 불 태워버리시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1~18절입니다. “봉독” 이 날이 가깝습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늘 밤에 내 영혼은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면서 삽니다. 이런 성도에게는 이런 말씀이 두려운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투하시는 사랑으로 보여 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에 눈 뜨여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