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9:1~6  암몬에 대하여   2014. 12. 31

1 암몬 자손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이 자식이 없느냐 상속자가 없느냐 1)말감이 갓을 점령하며 그 백성이 그 성읍들에 사는 것은 어찌 됨이냐 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전쟁 소리로 암몬 자손의 랍바에 들리게 할 것이라 랍바는 폐허더미 언덕이 되겠고 그 2)마을들은 불에 탈 것이며 그 때에 이스라엘은 자기를 점령하였던 자를 점령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 헤스본아 슬피 울지어다 아이가 황폐하였도다 너희 랍바의 딸들아 부르짖을지어다 굵은 베를 감고 애통하며 울타리 가운데에서 허둥지둥할지어다 말감과 그 제사장들과 그 고관들이 다 사로잡혀 가리로다 4 패역한 딸아 어찌하여 3)골짜기 곧 네 흐르는 골짜기를 자랑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재물을 의뢰하여 말하기를 누가 내게 대적하여 오리요 하느냐 5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두려움을 네 사방에서 네게 오게 하리니 너희 각 사람이 앞으로 쫓겨 나갈 것이요 도망하는 자들을 모을 자가 없으리라 6 그러나 그 후에 내가 암몬 자손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이 2014년 마지막 날입니다. 새로 오신 몇 분이 송구영신 예배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는 말을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절기와 풍습을 소개하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가 조선 후기에 나왔습니다. 이 책에 의하면 섣달 그믐날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웠습니다. 이것을 수세(守歲)라고 합니다. 우리도 어릴 때 그 날 밤에 누워 자면 눈썹이 희어 진다고 해서 밤을 새려고 하다가 잠을 못 이겨 자곤 했습니다. 이 날은 온 집안에 불을 환하게 켜 놓고 신령을 기다립니다. 신령이 들어오면 복을 빌기 위함이며 그렇게 함으로 한 해 동안 운수 대통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거의 다 하는 송구영신 예배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12월 31일 11시부터 1월 1일 새벽까지 예배 중에 시간을 보내며, 특별 감사헌금 봉투에 기도제목을 쓰고, 온 가족이 목사의 기도를 받고 성경구절을 하나 뽑아갑니다. 그것이 올해 우리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마치 소중한 가보처럼 벽에 액자를 만들어 걸어둡니다. 그 성경구절 내용들은 앞뒤 문맥 다 자르고 단지 사람 듣기에 좋은 말만 선별해 놓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한 해 동안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이런 날 감사헌금 봉투가 두둑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종교성을 노린 무당 짓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알지 못하고 따라가는 것은 샤머니즘적이며 기복적인 내용들을 예배라는 용어로 포장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배란 사람이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성만 바치면 예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 옥한흠 목사가 은퇴 후에 교역자들 다 모아놓고 한 말이 있습니다. 이것을 어느 권사가 녹음하여 파일을 올려놓은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인터넷 검색하면 나올 것입니다. 수십 명의 부목사들에게 목사노릇 똑 바로 하라는 말을 하면서 목사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기에 자녀들과 소원하였다고 하면서 그런 부분은 신경을 쓰지만 다른 잡다한 것들에 신경 쓰지 말고 다락방 교육을 할 때에 정말 전력으로 말씀보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목사들이 교안 대충보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고 전심전력으로 말씀보고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그들을 반드시 변화시키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준비하였는데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무엇이 문제라고 여겨지지 않습니까? 바울사도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정말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3:6~7절입니다.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정말 목숨을 걸고 씨를 뿌리고 물을 준다고 해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시키셔서 한 일일 뿐입니다. 그렇게 심고 물을 주었기에 자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평신도를 깨워 제자훈련의 전설이 된 목사의 말 속에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사상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대충 하라는 말이 결코 아니지만 제자훈련이 하나님의 나라에 조금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전심전력으로 제자 훈련한 그것이 부인되지 않았기에 오늘날 저런 기형교회가 생산된 것입니다. 우리의 살과 뼈에 흐르고 있는 이런 종교성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을 봅니다. 암몬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유다의 멸망을 시작으로 그 주변의 나라들의 심판예언을 보고 있습니다. 애굽을 시작으로 블레셋과 모압까지 보았습니다. 오늘은 롯과 그 딸들 사이에서 태어난 모압과 암몬 중에서 암몬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암몬족속이 사사시대 때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이 망할 때 까지 괴롭혔습니다. 이러한 암몬의 죄를 드러내며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나라들을 말할 때에 단수 여성명사로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한 여성 인격체로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을 볼 때에 나라의 이름에 누구를 넣으면 됩니까? 자기 자신의 이름을 넣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늘 착한 주인공에 자신의 이름을 대입하는데 오히려 성경을 볼 때에는 자신을 악인에다 대입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49:1절입니다. 암몬 자손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자식이 없느냐 상속자가 없느냐고 합니다. 이 말씀은 마치 이스라엘을 무주공산(無主空山)처럼 여기면서 암몬이 점령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감이라고 하는 말은 그들의 왕이라는 뜻인데 이 말감은 암몬의 신인 밀곰을 그들의 왕으로 부르기에 이렇게 부르는 것으로 봅니다. 즉 암몬이 이스라엘을 주인 없는 땅처럼 점령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땅인데 이방 나라가 점령함으로 이들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랍바는 암몬의 수도입니다. 이 수도가 전쟁 소리가 들리게 할 것이며 폐허더미를 만드신다고 합니다. 그 마을들이라는 단어 앞에 2)라는 각주를 보시면 ‘딸들은’ 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나라를 한 개인의 이름으로 적용해 보라는 것입니다. 암몬이 이스라엘을 점령하였기에 이제 암몬이 점령을 당하고 그 딸들이 불에 탈 것이며 이스라엘은 자기를 점령하였던 자를 점령할 것이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비록 그 땅의 백성들이 언약을 배반하여 나라가 망하여도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함을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3절입니다. 헤스본과 아이와 랍바는 암몬의 성읍들입니다. 이들을 향하여 슬피 울고 부르짖으라고 합니다. 굵은 베를 감고 애통하며 울타리 가운데에서 허둥지둥하라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말감과 그 제사장과 그 고관들이 다 사로잡혀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일어났기에 암몬이라는 나라는 지금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오늘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믿는 것들이 무너질 것으로 알고 슬피 울고 부르짖으라는 말씀입니다. 왜 이 암몬이 우리의 모습인가는 다음 절에 나옵니다. 

4절입니다. 패역한 딸이라고 부릅니다. 한 나라를 한 여성 인격체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패역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골짜기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골짜기란 암몬 자손들이 사는 곳이 골짜기로 형성되어 있기에 천연적인 요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재물을 의지합니다. 든든한 요새와 재물이 있다면 사람들은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누가 내게 대적하여 올 것이냐고 합니다. 지금 부동산의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형 고급아파트들은 잘 팔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곳의 이름들이 주로 ‘캐슬’이라고 부릅니다. 영국에서 캐슬의 뜻은 ‘주거·군사·정치상의 목적을 가지고 선택된 지형과 거기에 설계된 방어적 구축물’입니다. 이런 곳에 사는 자들은 당연히 누가 내게 대적하여 올 것이냐 하는 교만을 부립니다. 이들을 대적하는 분이 있습니다. 

5절입니다.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만군(萬軍)의 여호와란 용사의 이름입니다. 여호와는 용사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든든한 요새와 재물을 갖추어도 우리 주 목소리 한번 발하시면 천하에 모든 것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두려움을 네 사방에서 네게 오게 하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너희 각 사람이 앞으로 쫓겨 나갈 것이며 도망하는 자들을 모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든든한 요새와 재물들이 여호와의 심판 앞에 아무른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 어떤 것으로 자기를 무장하고 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사방에 두려움을 주시면 불안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른 걱정 근심이 없어 보이는데도 혼자 불안하고 초조하여 견딜 수 없는 자들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시편 127:1~2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자신이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아무리 수고하여도 여호와께서 지키시지 않으시면 허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송구영신 예배를 잘 드리면 여호와께서 지켜주신다는 말을 합니다. 잠도 자지 않고 밤을 새면서 예배한다는 그런 짓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려는 그 짓들을 멈추시고 평안히 주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는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길 수 있기에 편히 잠을 잡니다. 

본문 6절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내가 암몬 자손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라가 망한 후에 돌이켜 주신다는 말씀은 애굽에도 모압에게도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한 후에 돌이킬 자가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암몬에 우리 자신을 대입하여 보시면 우리가 다 암몬 자손처럼 살아갑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 없는 땅처럼 자신이 먼저 차지하면 자기 것이 되는 것인 양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렇게 하여 캐슬을 만들어 혼자 살아남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그들은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성경이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역사도 그렇게 하여 영원히 이어지는 나라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께서 택하신 백성만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이 세상의 것들을 무너지게 하셔서 돌이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송구영신예배까지 해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더욱 견고한 골짜기를 만들고 더욱 많은 재물을 쌓아서 세상이 다 무너져도 자신은 무너지지 않으려고 오늘 이 밤에 전국에 수많은 교회들이 밤을 새워 예배라는 이름으로 굿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어느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교회를 나가기 전에 어떤 사람의 간증을 읽고 은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을 보고 다른 기독교 관련 책도 보다가 근처 교회에 다니면서 두 날개라는 훈련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말에 송구영신예배라는 것을 보고서 무당 굿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면서 그 때로부터 그 교회를 나가지 않고 있다가 저희 교회를 찾아 왔다고 합니다. 초신 자는 이것이 이상한 줄 아는데 오래 교회를 다닌 사람들은 당연히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성이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게는 반드시 무너뜨리시고 돌이키실 것입니다. 우리 안의 암몬이 어떤 것인지 다른 곳의 말씀을 통하여 더 보도록 합니다. 

에스겔 21:28~29절입니다. “28 인자야 너는 주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과 그의 능욕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셨다고 예언하라 너는 이르기를 칼이 뽑히도다 칼이 뽑히도다 죽이며 멸절하며 번개 같이 되기 위하여 빛났도다 29 네게 대하여 허무한 것을 보며 네게 대하여 거짓 복술을 하는 자가 너를 중상 당한 악인의 목 위에 두리니 이는 그의 날 곧 죄악의 마지막 때가 이름이로다” 

암몬이 심판을 받는 것은 허무한 것을 보며 거짓 복술 때문입니다. 밤을 새워 기도하면서 허무한 것들을 바라보며 꿈꾸게 만드는 거짓 복술(卜術)을 하는 자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복술이라는 말은 점 복자 꾀 술자입니다. 그러므로 무당들이 점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자들이 허무한 것을 바라보게 하는 복술가들이 넘치는지 제대로 보시기 바랍니다. 

에스겔 25:1~7절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네 얼굴을 암몬 족속에게 돌리고 그들에게 예언하라 3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폐할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 4 그러므로 내가 너를 동방 사람에게 기업으로 넘겨 주리니 그들이 네 가운데에 진을 치며 네 가운데에 그 거처를 베풀며 네 열매를 먹으며 네 젖을 마실지라 5 내가 랍바를 낙타의 우리로 만들며 암몬 족속의 땅을 양 떼가 눕는 곳으로 삼은즉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6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며 마음을 다하여 멸시하며 즐거워하였나니 7 그런즉 내가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다른 민족에게 넘겨주어 노략을 당하게 하며 너를 만민 중에서 끊어 버리며 너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패망하게 하여 멸하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여기서 암몬의 죄는 예루살렘의 성전의 파괴와 유다의 멸망과 그 포로 잡혀 가는 것을 보고서 좋아한 것입니다. 암몬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면서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고 마음을 다하여 멸시하며 즐거워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심판은 노략을 당하고 만민 가운데 끊어버리며 여러 나라 가운데 패망하게 하여 멸할 것이라고 합니다. 단지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그 땅의 성전의 파괴를 보고 즐거워한 것인데 이것이 이렇게 멸망당할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을 통하여 이렇게 하신 분이 주 여호와인 줄 알 것 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주님 되심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이스라엘의 그 중심의 성전의 더럽혀짐을 보고 즐거워하는 자를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바로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보고 사람들이 조롱하며 멸시하며 기뻐한 자들이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오늘은 어떤 식으로 조롱합니까? 예수님을 잘 믿어서 세상의 영광을 차지하자는 식으로 조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성공이라는 공식이 된 것입니다. 참된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되는 것인데 사람들의 종교적인 기술을 발휘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적인 감흥에 젖게 만들어 자기들의 소원하는 것을 이루어 달라고 하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마음을 다하여 멸시하는 것입니다. 

아모스 1:13~15절입니다. “1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14 내가 랍바 성에 불을 놓아 그 궁궐들을 사르되 전쟁의 날에 외침과 회오리바람의 날에 폭풍으로 할 것이며 15 그들의 왕은 그 지도자들과 함께 사로잡혀 가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암몬 자손의 죄는 자기의 지경을 넓히려고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다고 합니다. 이것이 끔찍하게 보입니까? 오늘날 자본주의가 이런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칼로 하는 전쟁보다 더 무서운 돈으로 하는 전쟁들이 이 땅의 현실입니다. 카트라는 영화를 보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의 배경이 이랜드 기업의 비정규직 문제였습니다. 이 회사의 회장이 서울 사랑의 교회 장로였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교회 앞에 가서 시위도 하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교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회사의 지경을 넓히고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교회의 영역도 넓히는 것을 성공이라고 축복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아이 밴 여인의 배를 칼로 가른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스바냐 2:8~11절입니다. “8 내가 모압의 비방과 암몬 자손이 조롱하는 말을 들었나니 그들이 내 백성을 비방하고 자기들의 경계에 대하여 교만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내 백성의 남은 자들이 그들을 노략하며 나의 남은 백성이 그것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10 그들이 이런 일을 당할 것은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을 훼방하고 교만하여졌음이라 11 여호와가 그들에게 두렵게 되어서 세상의 모든 신을 쇠약하게 하리니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이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

모압과 암몬의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비방과 조롱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을 보면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경계가 든든함으로 교만하여 졌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심판은 소돔과 고모라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 심판이 바로 소금 구덩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런 멸망을 당하는 것은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을 훼방하고 교만하여 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심판을 통하여 이방의 모든 신들이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하시고 이방의 모든 사람들이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경배하는 자들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비웃은 자들이 심판 당함을 본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모든 말씀들의 성취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어떻게 보십니까? 유대인들에게는 아무른 표적이 아니라서 거리끼는 것입니다. 헬라인들에게는 논리적인 내용이 아니라서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유교적 권위주의와 샤머니즘적인 기복주의에 물들어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곡된 율법주의에 붙잡혀 아들로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종으로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종은 유업을 이어받지 못합니다. 이런 모습들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판의 근거입니다. 

히브리서 10:26~29절입니다.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암몬과 주변의 나라들이 심판을 받는 이유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을 보고 조롱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 언약에 해당됩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법도 어기면 두세 증인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이러한 아브라함과 모세가 증언한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언약의 완성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이 모든 것을 증거 하는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받을 벌이 얼마나 무서운지 생각하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30~39절을 봅니다.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33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ㄹ)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이 복음을 받은 자들을 세상이 비방합니다. 환난을 당하고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됩니다. 이러한 자들과 사귄다는 것은 주류에서 왕따를 당합니다. 이러한 일로 갇힌 자를 동정하며 자신의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하는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을 줄 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담대함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받을 때 까지 서로 격려하면서 자주 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격려는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실 것입니다. 지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뒤로 물러가지 않습니다. 뒤로 물러간다는 것은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지 않으려고 다시 암몬이 추구하고 심판받은 나라들이 추구한 자기의 요새 만들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들은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라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여 송구영신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