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2:
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다윗의 이 사건은 너무나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밧세바와 간음하고 밧세바의 남편을 죽게 한 후에 나단 선지자가 책망하기 위하여 비유로 한 말에 대한 다윗이 반응입니다.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면서 부자가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가난한 자가 가족처럼 기르는 양을 빼앗아 대접하였다는 자에 대하여 마땅히 죽을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율법에 의하여 네 배를 갚아주면 됩니다.
율법도 알고 공의로운 분노도 발합니다.
그런데 그 죄인이 바로 자신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에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죄를 지적하자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며 회개합니다.
다윗은 그동안 자신이 죄인 인지 몰랐습니다.
너무나 훌륭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간음과 살인을 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다윗의 본 모습입니까?
선하고 바른 일을 한 것이 다윗의 본 모습입니까?
살인과 간음을 하고서도 죄인 인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 다윗의 본 모습입니까?
저는 후자라고 봅니다.
선하고 옳은 모습은 다윗 본인의 자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름부으심과 언약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간음과 살인을 통하여서는 무엇을 보여주십니까?
다윗의 고백(시32)을 바울사도는 이렇게 인용합니다.
로마서 4: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자기 죄도 모르는 다윗을 통하여 이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용서 받은 자만이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것입니다.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