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구약의 마지막 성경인 말라기 마지막 절을 지난 번에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께로 돌이키기 위하여

엘리야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세례요한이라고 보았습니다.

 

엘리야가 외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선포는

자기가 증거 하게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들의 마음이 아버지께로 돌이키게 되는 것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말라기 선지자로 부터 세례요한까지 약 400년간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스스로 법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장로들의 유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율법만이 아니라 장로들의 유전까지 지키는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인정사정없이 책망하신 것입니다.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입니다.

심지어 그들의 아비가 마귀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왜 이런 책망을 받은 것입니까?

 

바울사도는 한 마디로 말합니다.

롬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다른 말로 하면 심령이 가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의가 가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천국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까?

 

법정스님처럼 무소유로 살면 마음이 가난한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 스님은 무소유로 산 것이 자기 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어떻게 일어납니까?

성령이 임하여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자기 죄와 비참함을 알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셔야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심령이 가난하여지는 것도 주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것이 무엇인지 계속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