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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1~13 영적전투 2014. 2. 23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에베소서는 참으로 광대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광대하신지 창제선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3~6절을 봅니다. “봉독”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뜻은 영원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그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복음으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처럼 영적인 전투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창세전의 언약과 영원함과 영적인 전쟁들에 대한 것들을 생각할 할 틈도 없이 그저 이 땅의 문제들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이제 잠시 멈추고 그 광대하심을 봅시다.


시편 34:1~3절입니다. “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여호와를 찬양하는데 그 찬양의 내용이 여호와는 광대하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너무 넓고 크시기에 우리가 측량할 수도 감지할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셔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이 성육신이며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입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가 그 광대하신 분을 알고 믿는 것이 영생입니다. 그런데 이 광대하신 분을 알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높이다가 결국 심판을 당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사야 2:17~22절입니다. “17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18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19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20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21 암혈과 험악한 바위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여호와의 광대하심을 모르고 셈할 가치도 없는 인생을 넓히고 높인다고 평생을 보낸 자들은 그 광대하신분이 나타날 때에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6:14~17절입니다. “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혈과 육에 속한 인생의 가치를 높이다가 참으로 광대하신 분 앞에서 숨어 도망가는 일이 일어날 것을 선지지가 예언하였습니다. 그 광대하신 분이 바로 일찍 죽임당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러한 말씀들이 다 영적인 전투를 위한 지피지기입니다. 영생이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17:3).


본문 10절을 봅니다. ‘끝으로’ 이 말은 지금까지의 에베소서 결론을 마무리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편지의 끝 인사말은 21~24절에 나오기에 10절부터 20절까지는 영적인 전투가 무엇인지 그 영적인 전투를 위하여 어떤 무장을 해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1장부터 시작된 그 광대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이 이제 대단원의 마무리가 어떻게 되는지를 사도 바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대하드라마인 성경도 창세전의 언약을 따라 이 역사세계를 창조하시고 자기의 뜻을 다 이루신 후에 그 마귀를 영원히 멸하시는 것입니다. 그 대하드라마의 요약본이 에베소서라고 보셔도 됩니다. 그래서 끝으로라고 말씀합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라고 합니다.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져야 하는 이유는 영적인 전투를 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전투를 하는 일에 우리의 혈과 육으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져야 합니다. 주안에 그 힘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1:16~23절입니다. “봉독” 바울사도가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내용 중에 그 힘의 능력을 19절 이하에서 언급합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알게 하시기를 구한다고 합니다. 그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분이 바로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영적인 전투는 우리의 대장이 누구신지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우리의 머리가 누구신지 알고 이분의 힘과 능력이 어떠함을 아는 것이 주 안에서 그의 힘으로 강건하여 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11절입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한 구체적은 내용은 14절 이하에 나오기에 그때 보기로 하고 오늘은 마귀의 간계가 무엇인지 보려고 합니다. 마귀의 간계를 알고 또 우리 주님의 힘과 능력을 알아야 영적인 전투를 하는 것입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말이 있습니다. 손자(孫子)의 모공편에 나오는 말인데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몇 마다 더 봅니다. 적을 모르되 나를 알면 한번 이기고 한번은 진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움마다 위태하다. 그런데 우리가 영적인 전투를 하면서 주님의 능력과 마귀의 간계를 모르면 어떻게 영적인 전투를 하겠습니까? 마귀의 간계를 봅니다.


에베소서에서 마귀(魔鬼)라고 하는 것은 헬라어로 ‘디아볼로스’입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을 ‘디아블로’가 생각날 것입니다. 디아블로3편까지 나온 것으로 되어있는데 그 제목이 영혼을 거두는 자 이렇습니다. 몇 가지 소제목을 보면 지옥문이 열리고 대 혼란이 시작된다는 이런 말들이 나옵니다. 아이들이 이러한 게임을 하면서 마귀는 거저 게임의 도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귀가 없다는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것도 마귀의 아주 중요한 간계(奸計)입니다. 한글개역에서는 궤계(詭計)로 번역하였습니다. 간계나 궤계란 둘 다 속인다는 뜻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로 속인 자입니다. 이러한 마귀로 번역된 구약의 단어는 사탄입니다. 


구약성경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에서 ‘사탄’을 ‘디아볼로스’로 번역하였습니다. 구약에서는 사탄이라는 말이 신약에서 사탄과 마귀라는 말로 같이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사탄이나 마귀의 뜻은 대적하는 자, 고발 자, 헐뜯는 자를 뜻하는데 그 어원이 되는 동사는 뒤죽박죽으로 만들다. 서로 갈라지게 하다. 둘로 나누다. 적이 되게 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 곧 마귀가 하는 일이란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하늘에서 쫓겨 내려 와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 하고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간질 하는 것이 사탄과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성경에서 이러한 사탄과 마귀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겠습니다.


계시록 20:2절에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고 합니다. 옛 뱀 곧 마귀요 사탄은 바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그 뱀입니다. 그 뱀의 유혹은 선악과를 따 먹으면 너도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되리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이것이 처음부터 속인 말입니다. 이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이며 거짓의 아비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며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 그들의 아비가 마귀라고 하였습니다(요8:44). 그러므로 마귀가 하는 일이 분명해 집니다. 율법적인 자기의 행위를 믿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못하게 하는 일이 바로 마귀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스가랴 3:1~5절입니다. “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여호수아가 불에서 그슬린 나무 같을 자라도 주께서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고 사탄을 책망하십니다. 이 옷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만들어진 의의 세마포입니다.


마태복음 4:8~11절입니다.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이 마귀에서 시험받은 마지막 시험입니다. 그런데 그 마귀를 예수님은 사탄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곧 사탄입니다. 이 거짓말하고 대적하고 참소하는 자가 예수님을 유혹하려고 하는 그 유혹이 아담과 하와의 받은 유혹입니다. 옛 뱀 곧 마귀요 사탄의 유혹을 받은 하와가 선악과를 보았을 때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 유혹에 하와도 아담도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은 이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오늘도 마귀의 간계는사람들로 하여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이 세상의 자랑이 될 것으로 유혹합니다.


요한일서 2:15~17절입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마귀와 사탄을 이 세상의 신이라고 하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게 합니다. 그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이런 것들을 구한다면 그 사람은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께 기도하고 정성 바쳐 얻어내자고 가르치는 자가 있다면 이 사람이 바로 사탄에 사로잡힌 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탄이 얼마나 교묘한지 광명의 천사로 나타납니다.


고린도후서 11:1~15절입니다. “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바울사도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자기를 낮추고 고린도 교회를 섬겼습니다. 다른 교회들에서 연보를 받아 고린도 교회에 값없이 복음을 전하였는데 거짓 선생들이 와서는 바울사도는 자격이 없어 그렇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전한 것은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중매 장이의 역할을 하는데 이들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자기들의 종으로 삼고 잡아먹고 빼앗고 뺨을 치는데도 용납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 선생들의 특징입니다. 사탄이 광명의 천사로 위장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9~12절입니다.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이 무엇을 따릅니까? 사탄의 활동을 따른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 여러 모양으로 변형되어 이 땅에 나타난 것들이 번영신학, 신비주의, 금욕주의, 신사도운동등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특징들을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 행위 즉 혈과 육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전투를 하려면 무엇으로 무장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10절 말씀처럼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강건함이란 나의 혈과 육의 힘, 나의 가능성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약할 그 때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합니다(고후12:10). 영적전투를 위하여 나의 혈육의 힘이 아니라 주 안에서 주의 힘으로 강건하여 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