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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10~13 싸움의 상대 2014. 3. 2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모든 운동이나 전쟁은 기초체력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전투에서의 기초 체력은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는 것임을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완성하신 그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만의 능력이 아니라 주의 영이 임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고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혀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영적인 전투를 할 수 있는 강건함입니다. 이미 완료된 승리를 믿는 것이 영적인 전투의 강건함입니다. 그러므로 그 강건함을 입은 사람은 혈과 육의 강건함이 아니라 혈과 육으로 보면 오히려 약함으로 나타납니다.


고린도후서 1:8~9절입니다.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바울사도가 세상의 썩어질 것을 위하여 일하다가 이런 환난을 당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다가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전투자의 모습입니다.


고린도후서 12:9~10절입니다.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사단의 가시를 빼 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하였지만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진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이 이러하지만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싸운다고 하면서도 늘 혈과 육에 속한 것들로 무장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혈과 육이 무엇입니까? 혈과 육이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능적인 실존을 말합니다. 우리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혈과 육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을 다 갖추어도 사탄을 상대하여 이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행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의 힘이라는 수와 돈을 모아서 무엇을 이루어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신비주의도 동원하고 금욕주의도 동원하고 고지론도 동원하여 사람들을 모으고 헌신하게 하여 영적인 싸움을 싸우자고 하지만 이런 것들이 바로 혈과 육의 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싸움은 이러한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인 악의 영들입니다.


마태복음 16:16~17절입니다.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하여 바른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이 고백이 베드로의 혈육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께서 알려주셨기 때문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고백을 한 베드로이지만 곧 이어 사탄이라는 책망을 듣습니다.


21~24절입니다. “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가로막아 선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합니다. 베드로의 이 생각이 곧 사탄이 심어준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책망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사람의 일로는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불교적인 자기 부인이 아니라 자기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임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가지 않으면 예수님을 위한다고 하는 일이 사탄의 일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15:47~50절입니다.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첫 사람 아담의 후손들은 다 흙에 속한 자들입니다. 둘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흙에 속한 자는 땅만 생각할 것이고 하늘에 속한 자는 하늘의 것을 생각합니다. 흙에 속한 자를 혈과 육이라고 합니다. 이 혈과 육은 결코 하나님 나라를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전쟁을 한다고 하면서 그 전쟁이 혈과 육에 속한 싸움들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23~27절입니다.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이 말씀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여 상을 받으라는 말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이란 복음에 참여한 것이 상입니다. 썩지 아니할 상인데 우리는 혈과 육으로 생각하여 이 세상의 경쟁에서 이긴 자들이 승자독식 하듯이 천국의 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시기와 경쟁을 유도하여 많은 일을 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자는 것이 바로 혈과 육의 모습입니다.


야고보서 3:13~16절입니다.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며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하면서 시기와 경쟁과 다툼을 일으키는 일을 하면서 선의의 경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시기와 다툼이라는 경쟁들은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땅 위의 것이며 정욕의 것이며 귀신의 것입니다. 혈과 육을 동원하기 위하여 온갖 경쟁을 붙이는 것이 혈과 육의 싸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혈과 육의 싸움을 마치 영적인 전투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하나님을 위하여 영적인 싸움을 싸웠다고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혈과 육을 상대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혈과 육을 이기기 위하여 금식하고 철야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영적인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면 배가 더 고파서 먹고 싶은 욕망이 더 생기고 잠자고 싶은 욕망이 더 생깁니다. 그래서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 밥도 챙겨주지 못합니다. 그런 아내를 보고 남편이 뭐라고 하면 아내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내가 지금 영적인 전쟁을 하는데 혈과 육에 속하여 썩을 양식만 구한다고 구박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다 당신과 자식들 잘 되라고 하나님께 정성을 바친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혈과 육을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가 바로 혈과 육에 속한 모습니다.


골로새서 2:1~5절입니다. “봉독” 바울사도가 골로새서를 쓴 것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함으로 교묘한 말에 속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탄이 어떻게 속이는지 계속하여 봅니다.


6~12절입니다.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게 함으로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탄의 간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과 세례로 연합되어 함께 장사되고 함께 일으켜 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와 함께 살리시고 모든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고 제하여 버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고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못 박하심은 모든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자리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습니다.


여기서 통치자와 권세들이란 에베소서 6:12절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통치자와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이기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알고 믿는 것이 영적인 전투의 대상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승리가 무엇인지 모르면 아직도 그림자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리스도를 붙들지 못하도록 속입니다.


16~19절입니다.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구약의 모든 것들이 다 그림자로 그리스도를 증거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그림자에 붙들고 있다면 신비주의와 금욕주의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을 보았다는 것을 과장 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교회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사탄의 궤계입니다.


20~23절입니다. “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율법주의는 신비주의와 금욕주의로 나가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의 결국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모습이 아주 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들이 바로 육체를 따르는 혈과 육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하는 간계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혈과 육에 속한 것들로 속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혈과 육에 속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히브리서 2:14~18절입니다.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우리가 다 혈과 육에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혈과 육에 속한 자들의 특징은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평생 죽음의 종노릇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나는 죽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실패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나의 존재감이 사라지면 살맛이 없다고 여깁니다. 자존심이 상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든 모습들이 다 혈과 육에 속하여 죽음의 종노릇하면서 사는 모습입니다. 이런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혈과 육을 지니신 것입니다. 혈과 육을 지니신 것은 죽을 수 있는 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죽음으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시고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평생 종노릇 하는 자를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주님의 이 구원을 받은 자는 이제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을 싸우는 자들이 아닙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그 영과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우리의 혈과 육의 능력으로는 결코 이길 수가 없습니다. 주의 영이 임한 자는 마귀의 간계를 압니다. 마귀의 유혹은 항상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를 믿지 못하게 합니다. 혈과 육의 일들을 동원하여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도록 만듭니다. 신비주의와 금욕주의로 몰아갑니다. 또는 세상의 실패라는 두려움을 줍니다. 심지어 죽인다는 협박도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로 승리하신 주님의 그 승리 안에 있는 자는 나는 이미 죽은 자라고 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기에 나의 죽음이 더 유익하다고 하는 자가 사탄을 대적하여 싸우는 자들입니다.


고린도후서 10:1~6절입니다. “1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2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3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십자가의 완성과 그 십자가의 복음을 자랑하는 바울을 향하여 바울의 대적들이 육신에 따라 행한다고 한 것입니다. 율법주의자와 금욕주의자와 신비주의자들이 말하기를 바울은 육신대로 행하는 자라고 합니다. 날과 달과 절기도 지키지 않고 이방인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보면서 육신대로 행하는 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지만 육신에 따라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육신에 속한 것이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모든 금식과 구제와 경건과 고행과 순교도 행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과 모든 생각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것이 영적인 싸움입니다. 우리의 이론과 생각들이 얼마나 사탄의 속임수에 속아있는지 십자가의 완성된 복음으로만 이 사실들을 드러내면서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합니다. 이러한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은 벌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싸움의 상대가 누구인지 바로 알고 싸우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아주 영적인 싸움을 하는 것처럼 속여서 혈과 육의 싸움만 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미 십자가로 승리하신 주님은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이 모든 것들을 밝혀 주시기에 영적인 싸움을 싸우게 하십니다. 이러한 싸움은 십자가로 이미 승리한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