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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13~17 믿음의 방패 2014. 4. 20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진도 앞바다에서 전복된 ‘세월호’를 보면서 온 국민이 충격에 빠져있습니다. 이런 사고가 일어난 수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들이 뉴스를 통하여 나오고 있습니다만 그 중에 한 가지만 언급하려고 합니다. 배가 침몰하는 것을 가장 먼저 안 사람들은 선장과 선원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직책을 맡은 선장과 선원들을 다 빠져나오면서 승객들에게는 배 안에 있어야 안전하다고 그대로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야 탈출하라는 방송을 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저는 그 ‘세월호’를 지구자체로 보았습니다. 우리가 지구라는 한 배를 타고 갑니다. 이 배가 언젠가는 반드시 침몰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안에서 각자의 계획과 꿈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몇 시간 후에 배가 침몰할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가는 세월 호의 승객들처럼 오늘 우리가 이 지구라는 배에서 각자의 인생계획과 이해타산을 따져가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증언합니다. 눈에 보이는 이 하늘과 땅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은 하나도 틀림이 없이 다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구가 영원할 것처럼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천년만년을 살 것처럼 살아간다면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9:27절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며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이 반드시 죽는 것과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의 삶이 지금 이렇게 살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자신에게는 죽음과 심판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몇 분 후에 침몰될 것을 모르는 세월호의 승객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 개인의 죽음만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이 다 무너져 내린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의 계시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무너질 세상에서 늘 구명조끼를 입고서 탈출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단락은 영적 전쟁을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는 아무른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진리, 의, 복음, 믿음, 구원, 성령의 검, 기도 이런 내용들이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추구하는 일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상의 신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이생의 자랑이 될 만한 것들로 유혹하는 것들을 이겨내는 무장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만이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이러한 영적인 무장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은 믿음의 방패입니다. 우선 전투에서 방패란 자기 몸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전투에서 방패란 작은 손 방패도 있고 조금만 숙이면 온 몸을 가릴 수 있는 큰 방패도 있습니다. 작은 방패는 한 손으로 들고 적의 칼날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오늘 본문의 방패란 적의 화살을 막아내는 방패이기에 전신을 가릴 수 있는 큰 방패입니다. 이런 방패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대적 사단이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불화살을 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단의 불화살을 막아내는 보호 장치가 바로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무엇인지 그 믿음이 왜 방패가 되는지를 말씀을 통하여 찾아보겠습니다.


창세기 15:1~6절입니다.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이 아브라함의 방패와 상급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상을 씨와 땅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직 아브람입니다. 바벨론에서 불러내시고 하란에서 불러내셔서 약속의 땅까지 왔지만 아직 땅 한편 마련하지 못하였고 자녀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에게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주되심을 보여주십니다. 바로 왕에게 아내를 동생이라고 팔아넘겼다가 하나님의 보호를 입은 일과 소돔과 고모라의 전투에서 조카 롯을 구하여 오다가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을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은 자기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방패와 상급이라는 사실을 믿게 하셔서 이제 네 씨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으리라고 하시자 이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땅도 주신다고 하는 약속을 짐승을 쪼개어 그 사이라고 하나님께서 타는 횃불의 형상으로 지나가십니다. 아브람은 구경만 합니다. 쪼개진 짐승사이로 지나가는 것은 언약을 어기면 쪼개진 짐승처럼 자기의 생명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언약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행하신 은혜의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생명을 걸고 약속하신 것이 아브라함의 방패와 상급이 되어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의 방패요 상급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신실하게 이루어지는지를 성경 전체를 통하여 보여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일에 인간이 한 일이라고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비웃었습니다. 아브람과 사라에게 이스마엘이 아닌 자기들의 몸에서 태어날 씨를 주신다고 하였을 때에 아브라함도 사라도 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말씀하신 때에 이삭을 주셨습니다. 인간의 비웃음을 하나님은 참된 웃음인 이삭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이루어내시는 모습입니다.


신명기 33:29절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여호와 하나님이 방패이시며 영광의 칼이십니다. 방어만 아니라 공격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대적이 우리에게 복종하게 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방패이며 영광의 칼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의 방패란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신다는 믿음입니다.


사무엘하 22:3절에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방패라고 찬양합니다. 이어지는31절입니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시기에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다에게 방패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방패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그 다 이루심을 그의 영으로 자기 백성에게 넘겨주십니다(요19:30). 이것이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방패입니다. 이 믿음이 어떤 믿음인가 하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고후 1:20).


그런데 이런 여호와 하나님을 방패로 삼지 않으면 무엇으로 살아가게 됩니까? 아벨을 죽인 가인과 그 후손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성을 쌓고 무기를 개발하여 자기를 지키는 자들이 됩니다. 에서가 축복하여 달라고 할 때에 이삭은 에서에게 말하기를 너는 칼을 믿고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 칼을 믿고 사는 자들이 하나님의 미움을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칼을 믿고 사는 것은 곧 자기 힘과 능력을 믿고 삽니다. 자신의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행위로 살아갑니다. 율법적인 자기 의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자들은 아무리 자신의 성벽을 높이고 무장하여도 결코 사단의 불화살을 막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불화살을 막아내는 것은 어떤 인간의 행위나 노력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방패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방패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다 이루시고 그 이루신 의를 자기 백성에게 넘겨주심으로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는 것이 사단의 불화살을 막아내는 믿음의 방패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히브리서 11장을 통하여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1:1~3절입니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이 말씀을 가장 많이 오해하는 이야기가 4차원 영성을 말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을 마음으로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고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믿고 말하면 그 믿음대로 실상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인간의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믿음이라는 말을 차용한 거짓말입니다. 이런 말에 속아 넘어가는 것이 바로 사단의 불화살에 맞은 것입니다.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는 말씀은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이며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유에서 유가 아니라 무에서 유라는 사실입니다. 그 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묵시의 세계입니다. 그 묵시로 인하여 이 눈에 보이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역사가 창조되었기에 이 보이는 것들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보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은 반드시 보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사모하며 살게 되는 것이 모든 믿음의 선진들의 모습임을 히브리서 11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구약의 많은 인물들을 말하지만 이들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주체가 되어 이들을 이렇게 이끌어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믿음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주어진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4절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이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하는 것은 아벨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믿음이 아벨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이 주체가 아니라 믿음이 주체라는 말입니다. 한글에서 ‘믿음으로’가 문장 제일 앞에 옵니다. 헬라어도 믿음이라는 ‘피스테이’가 문장 제일 앞에 옵니다. 킹 제임스 번역에도 ‘By faith’가 문장 제일 앞에서 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믿음이 좋았다는 말이 아니라 믿음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선물로 주어진 최초의 사람은 그런 믿음이 선물로 주어지지 아니한 가인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아벨을 죽인 가인은 성벽을 쌓고 칼을 만들고 자기를 지키는 자들의 조상이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방패를 가진 아벨은 이 세상에서 일찍 살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에 의하여 드려진 제물로 인하여 지금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에 의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은 에녹은 다른 사람들의 삼분의 일도 세상에서 살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에서 옮겨버림으로 다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요절한 인생입니다. 그런데 이 에녹이 65세에 하나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그 65세 때에 므두셀라를 낳으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므두셀라의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임을 알고서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다가 하늘로 옮겨짐을 당하였습니다.


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는데 그 결과 무슨 상을 받았습니까? 아벨은 형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에녹은 그 당시의 사람들의 평균 나이의 삼분의 일만 살았습니다. 이어지는 노아는 방주를 예비하느라 사람들에게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을 겁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기 바쁜 세상에서 방주 만드는 노아를 미치광이 취급하였기에 그 방주에는 노아 가족 외에는 아무도 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믿음의 사람이 앞에서 말씀드린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방패와 상급이 되어 주신다고 하셨는데 실상 아브라함이 이 세상에서 받은 것이 무엇인지 봅니다.


8~16절입니다.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닌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근심하며 염려하며 살아갑니까? 무엇으로 두려워하며 불안 해 합니까?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들로 인하여 근심하고 염려하며 두려워하며 불안 해 합니다. 텔레비전의 광고를 보시면 온갖 상품들을 선전합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만이 아니라 노후를 대비하라고 합니다. 암이 얼마나 많은지 의사들의 통계를 내면서 암보험을 들라고 합니다. 이런 광고를 보면서 불안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수많은 대비를 하며 온갖 보험을 들어도 그래도 염려가 되지 않습니까? 이러한 세상에 대한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라는 불화살을 우리의 대적 사단은 쉴 새도 없이 쏘아 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7~11절입니다.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 권능이 세세 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염려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으로 인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마13:22). 이러한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합니다. 그가 돌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세상을 염려하고 내일을 염려하기에 재물을 쌓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월호가 뒤집어지는데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너희도 언제든지 저런 일이 닥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 똑 바로 믿고 살라는 말 외에 해 줄 말이 없습니다.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어떤 자를 삼키겠습니까?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염려와 두려움이라는 불화살을 사단이 날리고 있습니다. 너 그렇게 해서 어떻게 살래? 노후 대비를 그 정도로 해서 품위 유지하며 살겠니? 예수 믿는다고 해도 다들 예수 보다는 재물을 준비하며 살던데? 너는 그렇게 살아서 어떻게 하겠니? 이런 불화살이 하루에서 수도 없이 날아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합니다. 믿음을 굳건하게 하라는 말은 믿음의 방패를 제대로 취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말씀으로 통하여 똑똑히 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 곧 믿음으로 사는 모든 자들이 동일한 고난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고난에도 불구하고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권능이 세세 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