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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21~23 불법을 행하는 자들 2015. 8. 2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지난주 열매에 대한 부분을 좀더 말씀드리고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미국에서 한 나무에 40여종의 열매를 맺는 나무에 대한 뉴스를 보신 분이 계십니까? 이 나무는 봄에 꽃이 필 때에 40종류의 꽃이 피고 열매도 40종류의 열매를 맺습니다. 한 그루에서 복숭아 살구 체리 올해는 아몬드까지 열매가 나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 나무의 가지마다 다른 가지를 접붙인 것입니다. 제가 열매로 알리라는 말씀을 드릴 때에 감나무 접붙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종류의 감나무인데 가지를 접붙여 놓으니 두 종류의 감을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이 나무는 40종류의 열매 맺는 가지를 접붙인 것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매를 제대로 맺을 수 없었음을 지난주에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되신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열매라는 것들이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일들은 열매가 아닙니다. 그런 것을 육체의 일이라고 하지 열매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할 수 없는데 나오는 열매를 성령의 열매라고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한 나무에게서 나오지만 그 열매의 모양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40가지의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성령의 열매는 반드시 하나의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고백은 바울사도의 고백처럼 내가 어떤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지만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 열매입니다.

 

갈라디아서 5:16~26절입니다.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16~17절을 보시면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고 합니다. 육체의 욕심과 육체의 소욕이라는 것이 성령을 거스릅니다. 성령은 육체의 소욕을 거스르게 됩니다.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소욕이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율법 아래 있게 합니다. 18절에서 성령이 인도하시면 율법 아래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욕심과 육체의 소욕이란 율법 아래 살면서 율법의 행위로 자기들의 의로움을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육체의 일이 어떻게 나타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성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과 인간적인 관계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음행과 호색, 우상숭배와 주술, 그리고 여러 가지 인간관계속에 나타나는 것으로 구별하여 육체의 일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모든 육체의 일이 나타나는 것은 율법 아래서 율법의 의로 자기 의로움을 삼으려고 나오는 것으로 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는 것이 음행이며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온갖 세상의 악이라는 것들이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인간들이 스스로 살려고 하니 나오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음행과 우상숭배라는 것이 세상 사람들도 이해하는 그런 내용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인생들이 스스로의 자원과 노력으로 애를 쓰는 것이 음행이며 우상숭배 입니다. 나뭇가지가 잘리면 처음에는 싱싱하게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말라 죽게 됩니다. 이렇게 뿌리에서 잘린 가지들이 그 제한된 자원으로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이 다 육체의 소욕이며 육체의 일들이며 율법 아래 있는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라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져서 땅의 것으로 만족하고 땅의 영광과 땅에 속한 것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면 그 땅에서 잘려지는 것입니다. 뿌리가 잘려나가게 됩니다. 내가 믿는 것들이 날아가게 됩니다. 내가 자랑하는 것들이 배설물이 됩니다. 이러한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집니다. 이제 평생토록 아니 영원토록 생명의 근원이신 그 분에게 붙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에게 붙어서 사는 것을 열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열매는 세상에서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업적과 같은 열매들이 아니라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열매들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 교회에서 여러 가지 봉사의 일들을 통하여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가 어떻게 나옵니까? 그 모든 일들 속에 시기와 질투와 경쟁이 나온다면 그 일이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일이라고 하여도 그것은 육체의 일입니다. 그런데 정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이라서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일이지만 그 사람에게서 성령의 열매가 나온다면 이런 것은 사람이 만들어 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사람이 막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의 크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일이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것이 나온다면 이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것을 흉내 내어 꾸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입니다. 육체의 일이라면 자기의 자랑으로 가지만 성령의 열매는 나 같은 죄인을 이렇게 사용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가 나올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을 보시면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씻기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고 그 발에 향유를 붓고 그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않은 여인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유대인 남자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죄 많은 여인이 예수님께서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수군거립니다. 그 식탁에 초대된 사람들은 예수님이 선지자라면 저 더러운 여인이 만지는 것을 왜 가만히 두느냐고 속으로 말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자기를 초대한 바리새인 시몬을 향하여 질문합니다. 500데나리온 빚진 자와 50데나리온 빚진 자가 둘 다 갚을 것이 없어서 탕감해 주면 누가 더 탕감해 주신 분을 사랑하겠느냐는 질문을 한 것입니다. 당연히 많은 탕감 받은 자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많이 용서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용서를 받고 나니 사람의 눈치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 눈에는 예수님만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라는 열매가 성령의 열매이기에 사람이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용서 받은 사랑이 없는 봉사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라는 곳이 봉사를 많이 하면 땅에서 복을 받고 하늘에서 상이 크다는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없는 열심을 억지로 만들어 내는 곳이라면 그런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라는 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산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란 예수님의 피로 대속 받은 자들만 모여야 합니다. 물론 지상의 교회란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가라지를 봉사하게 하여 알곡으로 만들어 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 나오기 싫으면 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봉사하기 싫으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보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는 맺는데 열매가 없다고 제자훈련을 하고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열매 맺자고 하는 것은 육체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목사나 성도나 간에 그 일하는 동기와 방향과 목표가 사람의 정욕과 탐심인지 보시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정욕과 탐심을 하나님의 거룩한 일이라고 포장하여 사람들의 열심을 짜내는 곳은 사람의 땀과 피의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정말 성령이 임한 사람이 맞습니까?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행하는 것은 육체의 일과 반대입니다. 육체의 일이란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헛된 영광은 사람들이나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헛된 영광을 구하는 곳에는 서로 노엽게 하고 서로 투기하는 일이 반드시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자들은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합니다. 이런 자들은 이 역사 속에서 반드시 자신이 부인당합니다.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지만 아직 육체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이 묵시적인 사건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으로 살아갈수록 점점 나아지는 자신이 아니라 점점 더 죄인의 괴수로 드러나는 과정입니다. 세월 지나갈수록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은혜의 정점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확정이 바로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에서 완전히 부인당하는 자리가 죽음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죽음은 복된 죽음입니다. 이런 자들에게서 어떠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났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일하심인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통하여 불법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다시 본문을 21~23절을 봅니다. “봉독

서울 충현 교회에서 강의를 시작할 때에 제일 먼저 한 말이 이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머니 뱃속부터 교회를 다닌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 정말 성경의 하나님이 맞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 부르신 그 하나님이 맞습니까? 나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실 일이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그 날에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시면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떠나가라는 말씀을 듣는 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멸망의 길로 가는 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며 무엇이 불법을 행하는 것인지 말씀을 봐야 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주님을 부르는지 모릅니다. 길을 가다가 넘어져도 주님을 부르고 윷놀이를 하면서도 주님을 부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주님을 부르는 자들은 그런 자들이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합니다. 많은 권능이란 보통 사람들이 이루어낼 수 없는 일들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자들을 불법을 행하였다고 떠나가라고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좁혀서 보면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는 말씀과 거짓 선지자인지 아닌지 열매로 알리라는 말씀을 통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를 통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육체의 일은 율법적인 행위로 자신의 열매를 드러내는 자들입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그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앞에 보암직한 열매를 내어 놓겠다고 하는 자들이 바로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구약 성경 전체를 통하여 인간이 왜 율법적인 행위가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에베소서 1:17~23절입니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소망과 그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으로 일하심이 무엇인지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이 하나님의 강력한 일하심이며 또한 이 안에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참여시킨 것입니다. 이것은 에베소서 2장에서 나옵니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가 에베소서를 볼 때에 자세하게 살펴본 내용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알 수 있는 곳이 유일하게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머리가 된 성도들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는 것은 주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 주님의 일하심이 있는 자들이 교회이며 이들이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알게 하시고 믿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율법의 행위를 따라 자신들의 의를 세우는 불법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서는 자신이 목숨을 바치는 순교를 할지라도 결코 그것이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거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드러냅니다.

 

마태복음 13:24~38절입니다.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이 비유의 말씀에 대한 해석을 봅니다.

 

마태복음 13:36~43절입니다. “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천국비유를 좋은 씨와 가라지로 비유합니다. 예수님께서 앞의 비유를 제자들에게 설명하여 주십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분은 예수님이시고 밭은 세상입니다.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며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입니다.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라고 합니다. 여기서 씨 자체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가라지를 좋은 씨로 훈련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두었다가 추수 때에 골라내어 풀무 불에 던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라지를 무엇으로 말씀하고 있습니까? 41절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7:27~30절입니다. “27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29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30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세례요한이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은 언약의 사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예수님을 친히 증언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이 회개를 요청한 것은 곧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은 자들이 백성과 세리라고 합니다. 자기 죄를 아는 자들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않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하는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입니다. 이들이 세례요한이 전하는 천국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천국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되면 자신들의 공로와 자신들이 평생 쌓아온 율법의 의들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않는 것이 곧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6:38~40절입니다.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오지 않는 이유는 아버지께서 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신 자들은 다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알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만 예수님을 믿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다 살려내시는 것이 예수님의 일입니다. 그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고 율법적인 의로 생명을 얻으려고 하고 윤리 도덕적인 것으로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지 만물의 창조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19~24절입니다.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2)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율법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의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정죄아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의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는 자들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로마서 10:1~3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쌓기 위하여 열심히 달려갈수록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배척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히브리서 10:28~29절입니다.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란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하게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들입니다.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인 무익한 종이라고 해야 마땅한데 어디서 냄새나는 인간들의 의라는 것으로 불법을 행한다는 말입니까! 부디 회개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임을 믿는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