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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24~27 반석위에 세운 집 2015. 8. 9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지난주에 불법을 행하는 자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도 주의 이름으로 능력도 행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왜 불법을 행한 자들이 됩니까?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의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받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도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이 사실은 이미 구약 전체를 통하여 증명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먼저 보여주신 후에 430년 지나서 율법을 주신 이유는 왜 인간이 율법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율법의 일점일획까지 십자가로 다 이루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며 대단한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능력과 표적과 기적을 쫓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기에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2절을 봅니다.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진리를 믿지 않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능력들을 행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성을 믿지 못하기에 계속하여 세상 사람들이 능력이라고 하는 것들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저주 받아 죽으신 십자가는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신 능력의 자리가 아니라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여 업적을 만들어 내자는 식으로 나오게 됩니다. 이런 시각으로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위에 집을 짓는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모래위에 짓는 것이라고 하면서 말씀을 듣고 행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는 책망을 듣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한 자들입니다. 어느 정도로 열심히 행한 자들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다 이루어야 한다고 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들입니다. 율법을 듣고 흠이 없도록 지킨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의 결론인 오늘 본문에서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한 자라고 할 때에 분명히 율법을 듣고 행한 것과는 다른 말씀입니다. 율법을 듣고 행한 자들이 그동안 행한 일들이 무엇입니까?

 

자기들은 율법을 지켰다고 생각한 내용들을 예수님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살인, 간음, 맹세, 보복, 원수사랑 등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율법을 따라 행하여 온 내용과 전혀 다른 차원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형제에 대하여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간음에 대하여 마음에 음욕만 품어도 간음한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자선도 하고 금식도 하고 전도도 구제도 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집을 지은 것과 같다고 합니다. 도대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24절입니다. 그러므로는 산상수훈의 모든 말씀들을 연결시키면서 결론적인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므로에 연결되는 가장 가까운 본문은 지난주에 본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일을 하지 않은 자들이 아니라 대단한 일들을 행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들을 향하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떠나가라고 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그 사람의 일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주초가 무엇이냐는 문제입니다. 그 사람의 행위가 반석이신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행위인지 자기 자신의 자원에서 나온 것인지 보라는 말씀입니다. 열매로 알리라는 말씀을 볼 때에 유대인들은 행하지 않아서 잘린 것이 아니라 믿지 않아서 잘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결론을 말씀드리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것은 사람의 능력으로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야만 믿게 됩니다. 이렇게 믿게 되는 것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2:8).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십니다(고전 2:12).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은 성령이 임하여야만 알게 됩니다(16:9).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11:6).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14:23). 산상수훈을 듣고 그 들은 말씀대로 행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집을 짓는 자와 같다는 말씀의 뜻을 이해하기 위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보면 다짜고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면서 마구 열심을 냅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은 다 하나님의 일인 줄 알고 열심히 시키는 대로 행합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6:29).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믿음이 없기에 우리가 행한 일을 하나님의 일로 여기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우리들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일에 부족하였겠습니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의를 따라 가라면 우리는 그들의 발꿈치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행함은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배척하는 잘못된 행함이었습니다(10:2~3).

 

그런데 오늘 말씀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산상수훈의 말씀을 문자대로 지키는 자들이 행하는 자들입니까? 이렇게 행하기 위하여 수고한 사람이 간디와 슈바이처와 같은 사람이라고 종종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들을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상당한 효과가 있었기에 위인전기에 오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산상수훈을 통하여 자신의 죄인 됨을 알고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들의 의를 더욱 세워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세상의 위인이며 위대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으며 지옥에 갑니다. 앞으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이런 말을 하면 불법이라서 감옥에 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인권을 말합니다. 인권을 주장하는 인간들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시 본문 24~25절을 봅니다.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의 뜻은 율법의 조문을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말은 내가 행하는 것이 다 죄라는 것을 인식해야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의 능력 밖의 일입니다. 우리의 모든 원망과 불평과 다툼의 뿌리에는 나의 옳음에 있습니다. 이런 인생들이 어떻게 자신의 모든 행위가 죄라는 인식을 하겠습니까?

 

로마서 3:9~18절입니다.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이 말씀이 믿어지는 것이 기적입니다. 구약 성경 전체를 요약한 인간의 실상입니다. 유대인이니 이방인이 다 이러합니다. 이러한 인생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다고 하면서 실천한 그 행위의 결론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이나 이방인들의 윤리나 도덕이라는 것을 지켜 행하여 세운 집이라고 하는 것들이 다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더욱더 자신들의 터전을 든든히 하려고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듯이 더욱 자신과 타인을 닦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터전들이 결국은 다 무너져 내릴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집의 문제가 아니라 터에 대한 문제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집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일평생을 하나의 집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마다 각양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인생의 존재(存在) 기반(基盤)이 무엇인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존재가 절대적인 기반이나 되는 것처럼 인정하고 살아갑니다. 나라는 존재자체가 무너져 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각자가 진리가 되어있고 각자가 신이 되어 있는 것이 선악과 이후의 인간들의 실상입니다. 이러한 인생들이 열심히 집을 지어놓은 것들은 비와 창수와 바람에 무너져 내릴 것들입니다.

 

이사야 28:14~18절입니다. “14 이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15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17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18 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

 

성경에서 비와 창수와 바람은 심판의 이미지입니다. 이사야서는 우박과 물이라고 나옵니다. 인간들이 사망과 언약하고서 자신들이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거짓을 피난처로 삼고 허위 아래 자신들을 숨깁니다. 인생들이 다 이러합니다.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사망이며 무덤이며 거짓이며 허위인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의와 공의로 이들을 심판하시는 것이 우박과 물입니다. 비와 바람과 창수로 심판을 해 버리면 그 모든 인생들의 언약들과 그 행위들이 다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지금 자신의 존재 기반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무너져 내려야 합니다. 내가 든든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말씀에 의하여, 환경에 의하여,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을 통하여 무너져 내려야 합니다.

 

그런 자들은 이제 자신의 행함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있었으면 든든하겠다는 것들을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저의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저도 여러분의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재산도 우리의 능력도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존재기반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만 예수 그리스도위에 자기의 주초를 세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집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들 곧 인생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위에 자신을 세우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입니다. 이들이 곧 반석위에 집을 짓는 자들입니다.

 

본문 26~27절을 봅니다.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자와 같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듣고 행하거나 행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산상수훈 전체의 말씀입니다. 산상수훈 전체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와 행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구별이 됩니까?

 

산상수훈 전체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이것은 실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런 것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반석위에 집을 짓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산상수훈을 보면서 이 말씀대로 실천하려고 나서게 되면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간디나 슈바이처 같은 존경받은 사람은 되겠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모레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습니다. 인생이 땅의 티끌입니다. 그런 땅의 티끌에 기반을 둔 어떤 행위들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견딜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왜 자신들의 행위를 기반으로 한 모래위에 집을 짓게 되는 것입니까?

 

에스겔 13:9~16절입니다. “9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0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어떤 사람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 11 그러므로 너는 회칠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그것이 무너지리라 폭우가 내리며 큰 우박덩이가 떨어지며 폭풍이 몰아치리니 12 그 담이 무너진즉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것에 칠한 회가 어디 있느냐 하지 아니하겠느냐 13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분노하여 폭풍을 퍼붓고 내가 진노하여 폭우를 내리고 분노하여 큰 우박덩어리로 무너뜨리리라 14 회칠한 담을 내가 이렇게 허물어서 땅에 넘어뜨리고 그 기초를 드러낼 것이라 담이 무너진즉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망하리니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5 이와 같이 내가 내 노를 담과 회칠한 자에게 모두 이루고 또 너희에게 말하기를 담도 없어지고 칠한 자들도 없어졌다 하리니 16 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평강이 없으나 평강의 묵시를 보았다고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131절부터 보시면 이스라엘에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계시를 받은 자가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들에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들에게 그 말이 확실히 이루어지를 바라게 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꿈과 비전을 말하고 그것이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단순반복을 계속하면 세뇌가 되어 정말 그렇게 믿게 됩니다. 그러나 주께서 보내신 자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짓 선지자들과 그들의 말을 들은 자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10절부터 이어집니다. 그 심판이 폭우와 우박과 폭풍으로 몰아칠 것입니다. 그러면 담이 무너지고 그 기초가 드러나면 회칠한 자들도 사라질 것입니다. 이러한 회칠한 무덤이 된 자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열심히 지켜 행한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도 야고보서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이 생각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야고보서 2:10~13절을 봅니다.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온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만 범하여도 모두 범한 자가 됩니다. 이것이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로 율법을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모든 율법을 다 행하여야 합니다. 무엇을 하라와 하지 말라는 모세 율법의 613가지의 율법 중에 하나만 어겨도 다 어긴 것이 됩니다. 그런데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어쭙잖은 몇 가지의 행함 들을 들고 나오시겠습니까? 그러한 자들은 갈라디아서 3:10절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자신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한다면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2:10~13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하나라도 어기면 다 범한 자가 됩니다. 이런 말씀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행하였다고 주장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엇으로 나의 집을 지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고 합니다. 자유의 율법이 무엇입니까? 모든 율법은 자유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자유의 율법이란 복음입니다. 복음이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그 복음의 기준은 13절의 말씀대로 긍휼입니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합니다. 율법의 행위로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하는 자들은 절대고 긍휼을 원하지 않습니다. 긍휼이란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긍휼을 입은 자들은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3:11~14절입니다.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예수님의 십자가는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받는 복입니다.

 

반석위에 세운 집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견뎌냅니다. 반석위에 세운 집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곧 자신의 전적인 죄인 됨을 알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임하여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모래위에 세운 집은 심판을 이기지 못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였기에 부딪칠 돌에 부딪힌 것입니다. 이것이 심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을 누가 가장 싫어할까요? 사람들의 열심을 독려하여 자기의 영광을 취하고 싶은 자들일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 의하여 그 단체에서 쫓겨난 자들이 버림받은 모퉁이 돌에 가서 붙어서 새로운 집에 만들어집니다.

 

베드로전서 2:1~10절입니다.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5절에서 신령한 집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령한 집의 모퉁이 돌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돌입니다. 여기에 붙어서 집이 되려면 역시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자들이 됩니다. 어떤 방식으로 버림을 받아야 합니까? 인간의 행위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된 그 의를 의지하는 자들이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그 반석이신 모퉁이 돌에 붙어서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런데 그 돌을 믿지 않는 자는 그 돌이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는 바위가 됩니다. 이렇게 걸려 넘어지는 것은 8절에서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걸려 넘어지는 자들인데 이는 그들의 선택권이 아니라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의 세계 곧 자기 행함의 가치체계에 빠져있는 선악과 아래에 사는 모든 인생들 중에서 창세전에 택하신 자들을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것은 그분의 그 아름다운 덕을 자랑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기들의 행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긍휼을 자랑합니다. 이러한 자들이 반석위에 세워진 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