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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18~22 인자가 머리 둘 곳 2015. 9. 6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그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흔히 말하는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합니다. 예수 믿고서 구원을 받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난주 뉴스 엔조이 보도에서 구원파의 박옥수 목사가 신도 속여 250억 가로챈 혐의로 검사가 징역 9년 형을 구형하였다고 합니다. 이 뉴스를 전하면서 박옥수 목사 세미나 포스터를 올려놓았습니다. ‘죄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았다. 감동적인 음악 공연 및 박옥수 목사 성경세미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뉴스를 보면 우리교회는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리교회가 빚을 다 갚아단다고 하니 예수 믿지 않는 남편이 목사가 사기를 많이 친 모양이라고 했답니다. 백 명이 넘는 교인들이 7년에 걸쳐 15천 빚 갚는 것도 사기로 보이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보는 것은 사기 치는 곳으로 보입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신 것입니다. 무리가 에워싸는 것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신 소문이 갈릴리 지역에 넓게 퍼지니 수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을 받고자 몰려온 것입니다. 또는 그런 기적을 보기 위하여 구경삼이 온 자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기다리던 자들은 혹시 메시아가 온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도 몰려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리가 몰려오는 것을 보시고 늘 피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호응이 만아야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몰려오는 무리들과 분리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건너편으로 건너가라고 하시는 것은 갈릴리 호수를 배타고 건너가라는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온 우편물 중에 하나를 또 말씀드립니다. ‘3차 부산 경남 복음화를 위한 윤석전 목사 초청 연합대성회라는 포스터입니다. 강서체육관에서 105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전과 저녁 두 번씩 하는 집회인데 주최는 실천목회 부산경남 연합회이고 후원은 온갖 기독교계통의 신문사와 방송사가 후원을 하고 부산 성시화운동본부과 경남성시화운동본부도 후원을 한다고 합니다. 경남성시화운동본부 사람들의 인터뷰가 경남기독신문에 나왔는데 이 목사를 강사로 택한 이유가 강사료를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경품으로 모닝 2대와 자전거 10대를 걸어놓았습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짓은 복음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만 그 방법부터 다른 복음입니다.

 

요한복음 6:14~15절입니다.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혼자 산으로 떠나가십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시면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건너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많은 무리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셔서 천국백성을 만들어 내시겠다는 그런 뜻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먹고 배불러 따라오거나 병 고침을 위하여 오거나 자신의 소원성취를 위하여 오는 자들을 피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입니다.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겠다고 합니다. 서기관은 율법선생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기는 자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서기관은 예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고서 이 분을 따르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유대사회에서 제자가 선생을 선택하여 따라가는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자기들의 선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일하심을 보고서 자기가 따르던 선생이나 학파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할 정도로 예수님의 특별함을 본 것입니다. 이 분이 혹시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디든지 가면 따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서기관의 의도를 아십니다.

 

본문 2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라서 어디든지 가겠다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거처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노숙자로 산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집이 있습니다. 목수의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집도 있고 배와 그물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난했다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배를 가지고 고기를 잡은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중산층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인자가 무엇인지 머리 둘 곳이 무엇인지 말씀을 찾아 봐야 합니다. 먼저 인자에 대한 말씀을 봅니다.

 

다니엘서 7:13~14절입니다. “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다니엘서의 인자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그에게 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다 그를 섬길 것이며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나라입니다. 이러한 다니엘의 인자가 사람이 되어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13~19절입니다.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5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인자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호칭하실 때에 주로 인자라고 사용합니다. 인자라는 뜻을 제대로 언급을 하려면 논물을 써도 부족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아주 간단하게 다니엘과 요한계시록만 보았습니다. 다니엘서와 요한 계시록 사이에 인자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시고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천국복음을 전하시고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에서는 인자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세세토록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시며 처음과 나중이시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인자가 되신 분이 이 땅에 머리 둘 곳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 뜻은 지금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그 의도 안에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가 원하는 것들을 주기 위한 인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따른다는 것은 이 세상에 거처가 없다는 것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따른다고 하면서 교회라고 모인 곳에서 과연 무엇을 위하여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고 있습니까?

 

요한일서 2:15~17절입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을 보고 믿는다고 하면서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여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한 것이라면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 돌아서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잘 계산해보고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4:25~33절입니다. “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서기관만이 아니라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함께 갈 때에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나를 따른다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 결과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한다면 잘 계산해보고 따라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에 전해지는 대부분의 복음은 예수님의 말씀과 다른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이라는 말입니다. 지금 오늘 여기에 모인 우리도 다시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앞으로 예수님을 믿어서 이 세상에서 나의 소유가 늘어나거나 세상의 영광이나 자랑들이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지금이라도 그만 두는 것이 좋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자기의 땅에 오셨지만 아무도 영접하는 자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머리 두실 곳이 없다는 말씀이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인 성전은 도둑의 소굴이 되어있습니다. 그런 곳에 예수님이 머리를 두실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거처를 그곳에 정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도둑의 소굴이 된 성전을 무너뜨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삼일 만에 일으키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 때문에 성전을 허는 자라고 예수를 죽일 죄목으로 만들어 냅니다만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예수님 자신이 성전 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머리 둘 곳이 없는 이 땅에서 자기 거처를 친히 만들어 내십니다. 그 거처가 무엇이겠습니까?

 

요한복음 14:1~3절입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예수님께서 마련하신다는 거처는 성령을 말씀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가 된 그 관계 속에 성령을 보낸 자들도 하나가 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거처가 천국의 황금보석 꾸민 집이 아니라 성령이 거처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4:16~20절을 봅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예수님께서 머리 둘 곳이 없는 곳에서 자신의 머리 둘 곳을 친히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자기 거처를 만드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요한복음 19:30절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무엇을 다 이룬 것입니까? 아버지의 약속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통하여 예수님의 거처도 마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셨다고 되어 있습니다만 이것은 번역을 할 때에 동양식의 표현입니다. 헬라어로 보면 그 머리를 숙이시니 그 영혼을 넘겨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영혼이라는 말은 프뉴마입니다. 영이라고도 하고 예수님의 말(6:63)이라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영 곧 성령이 임하게 되면 그 사람이 곧 하나님의 성전인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고전3:16, 고전 6:19).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이 세상에 거처를 마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을 어디든지 따르고자 하는 서기관에게 인자는 이 땅에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라 갔는지 돌아섰는지에 대한 말씀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과연 무엇을 위하여 따르는지를 잘 생각하고 계산하고 따라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을 넘겨주심으로 자신의 거처를 삼은 교회가 어떤 것인지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5:22~27절입니다.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강론 때 자세히 말씀드린 내용이라서 간단히 말씀드리면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교회이기에 우리의 머리가 잘려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머리는 우리 몸을 지시합니다. 머리가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머리고 평소에 생각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10:5절을 보시면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이론과 생각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의 머리가 되시다는 것은 이런 것들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머리가 잘린다는 말은 나의 머리가 나를 결정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머리가 되셔서 나를 이끌어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인자가 머리를 두시는 자들이 주의 거처가 됩니다. 이러한 주의 거처가 된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어떻게 우리의 소원과 뜻을 이루어달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나의 뜻이 부인되고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골로새서 1:15~20절입니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모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를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이 머리가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머리가 잘려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가 되는 것이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머리를 두시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서기관만이 아니라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할 때에 이 말씀을 꼭 생각해 보고 따라 가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여우나 새처럼 이 땅의 거처를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과 함께 이 땅에서 잘려서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지를 생각해 보고 따라오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1~22절입니다.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주님께 요청하기를 자기가 먼저 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율법에도 아버지를 공경하라고 하였고 유대인 전통에 의하면 아버지를 장례 치르는 것이 가장 큰 아버지 공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오늘날 열심을 낸다는 자들이 명절에 자기들끼리 집회를 한다고 모이는 자들이 많습니다. 명절에 시댁에 안 가고 처갓집에 안 가는 것으로 핍박을 받으면 이 말씀을 위로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산 자이고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은 죽은 자라고 이야기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을 적용하는 자들은 오히려 구원욕구가 더 강한 자라고 봅니다. 오히려 그런 교리를 만들어 자신들이 최고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린다는 그런 생각조차 죽은 자의 생각이라고 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심판하시고 우리의 머리가 되어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내가 예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해 드리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직 머리가 잘려지지 않은 죽은 자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는 죽은 자들에게 맡기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로 넘겨지지 아니한 자들의 법에 매일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자도 예수님을 따라 갔는지 아닌지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머리 둘 곳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거처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가 된 교회라면 그리스도의 지시와 인도를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처럼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머리가 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예수님이 머리를 두신 곳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머리가 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머리가 됩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이 교회의 결정권을 가지게 되면 그리스도의 몸이 아닙니다. 오늘도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예수님이 머리를 두시는 곳이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날마다 자기가 부인되어지고 그리스도의 뜻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곳이 인자가 머리를 두신 곳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여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