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1~3 주 안에 서라 2018. 6. 3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오늘 본문은 1절의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접속사를 잘 봐야 합니다. 접속사를 본다는 말은 앞뒤의 문맥을 연결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가까운 문단은 3:17~21절입니다. 이 본문으로 한 번은 십자가의 원수라는 제목으로 한 번은 하늘의 시민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면 결국이 멸망입니다. 그러나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사람이라면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주님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영광의 날을 소망하는 자들에게 그러므로라는 말로 다시 말합니다. 여기서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우리에게 질문을 해 봅시다. 우리는 과연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사람입니까?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베드로후서 3:8~13절입니다.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면 하늘의 시민권자입니다.

 

이어지는 14~18절입니다. 봉독여기서도 그러므로라고 하면서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접속사를 붙이는 것은 앞의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어지는 말씀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 영광의 날을 바라본다면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하늘의 시민으로 부름 받아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데도 아직 점도 흠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됩니다. 이러한 일에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이같이 썼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나 바울이 같은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억지로 풀지 말라고 합니다. 억지로 푼다는 것은 각주를 보면 교묘하게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교묘하게 풀면 그리스도의 신부를 자기의 종으로 삼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굳센데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합니다. 그 길은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은혜를 알아가는 것이 미혹에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바울도 같은 말을 썼다고 합니다. 같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본문 1절을 봅니다. 봉독바울사도가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라고 합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껴집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세워진 이후로 지금까지 복음의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의 기쁨이며 면류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천국간증을 한다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바울이 전도를 많이 했기에 천국에 제일 큰 집에 산다고 합니다. 천국과 지옥 간증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성경에 없는 이야기를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는 성경을 교묘하게 풀어서 시기하고 경쟁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면류관은 복음안의 형제를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12~14절입니다. “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13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14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 것이 양심이 증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것이 자랑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기에 그 은혜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은혜로 참여되는 것 자체가 자랑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의 날 곧 그 영광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복음으로 인하여 한 형제와 자매된 것이 서로의 자랑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 받은 것이 상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9~20절입니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세상이 보면 미련하고 어리석은 그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데 기쁨으로 받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복음을 전해보면 압니다. 바울의 이 표현이 아주 조금 이해가 됩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과 자랑과 면류관은 예수님께서 강림하실 때에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라고 합니다. 너희가 우리의 영광이며 기쁨이라고 합니다.

 

다시 본문 1절을 봅니다. “봉독처음 읽을 때와 느낌이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 나의 기쁨이며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를 자가 있습니까? 이런 자들에게 주 안에 서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 그리스도의 영광의 날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면서도 이들 안에서 서로 다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반복하여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1:27절과 2:2절에 한 마음, 같은 마음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주 안에 서는 것이라고 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여자이름입니다. 처음에는 같은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에 협력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이들 간에 한마음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 편지를 받는 빌립보 교인들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2:1~2절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권면, 사랑, 위로, 성령의 교제, 긍휼과 자비가 있을 때에 한 마음과 한 뜻을 품으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좋은 교제가 있음에도 다툼이 일어날 수 있기에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한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한 마음을 품는 일은 주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1절에서 주 안에 서라고 하면서 2절에서는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주 안에 서는 것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유오디와와 순두게에게 주 안에서 한 마음을 품으라고 말하고 나서 한 무명의 사람에게 또 부탁합니다. 이 무명의 사람은 바울과 함께 참으로 멍에를 같이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바울과 신실하게 동역한 사람에게 부탁하기를 이 여인들을 도우라고 합니다. 이 여인들이란 유오디와 순두게입니다. 그뿐 아니라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고 합니다. 바울이 복음 전하는 일에 동역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함께 복음 전하는 일에 동역한 여러 사람들을 도우라고 하면서 유오디와와 순두게도 도우라고 합니다.

 

한때는 두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복음에 동역하였는데 무슨 일인지 두 사람이 지금 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얼마든지 이럴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같은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교제하였는데 언제부턴가 남보다 먼 사이가 되어 있습니다. 전에는 같은 복음이라고 함께 기뻐한 사람들이 지금 소원해 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의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소원하여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저도 그렇지만 진리의 문제보다는 자신의 감정적인 문제와 자기주장으로 인하여 다투는 것이 훨씬 많다고 봅니다.

 

바울사도는 함께 복음을 위하여 힘쓰던 여인들을 도우라고 합니다. 글레멘드과 다른 사람들만이 아니라 유오디아와 순두게도 주 안에서 한 마음을 품도록 도우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3:20~21절의 말씀처럼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말입니다.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사람이라면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낮은 몸이란 부활의 영광을 입지 못한 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몸으로 사는 이 육체의 연약함을 함께 말합니다. 이 연약함으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도 심히 다투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더욱더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사야 66:17~18절을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입니다. 같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미운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과 같은 천국에 있다면 천국이 지옥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런 사람이 과연 천국의 시민권이 있는 사람일까요? 그러므로 이런 말씀을 우리가 믿는다면 유오디와와 순두게 같은 우리들도 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이며 주 안에 서는 것입니다.

 

주 안에 선다는 것은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자들이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사람이며 이런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이 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복음을 듣고 믿고 그 복음에 동역하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이 된 자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기에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고전1:21). 왜 전도가 미련한 것이냐고 하면 전도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의 도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반드시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13~14절입니다. “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1)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14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하나님의 택하심과 성령을 보내심과 진리를 믿는 것이 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복음의 결국은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믿는 것이 복음을 믿는 것이며 주 안에 서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 3절을 봅니다. “봉독 주 안에 서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생명책에 기록이 되었다면 그들은 다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한 마음이 안 되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데 이런 자들도 다툼이 있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기록이 된 사람이라면 이 땅에서 복음을 듣고 믿게 될 뿐만 아니라 자기가 부인되는 길을 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생명책이 무엇인지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시내산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고 40일도 안 되어 금송아지를 섬김으로 언약을 배반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들을 진멸하고 다른 민족을 이끌어 주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에 모세는 하나님께 이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용서하지 않으시면 자신의 이름도 책에서 지워달라고 합니다(32:32). 여기서 이름이 기록된 책이 나옵니다. 다윗은 원수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합니다(69:28). 그러므로 책이나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것은 구원을 얻은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다니엘 선지자도 책에 대하여 기록하였습니다(12:1~2). 예수님은 어떤 표적과 기적보다 너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라고 합니다(10:17). 모세, 다윗, 다니엘, 예수님께서 생명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3:8절입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생명책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역사 속에서는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모습으로 가게 됩니다. 도살당할 양처럼 가지만 그런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이 된 자들입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이 된 자들은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 복음을 믿고 복음에 동역하다가 한 마음이 안 되었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생명책에 기록이 된 자들이 왜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미 죽은 자인데 아직 이 역사 속에서 살아있어서 그렇습니다. 아직 자기주장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로 하늘의 시민이 된다면 하늘나라에서도 다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하고 권면합니다. 이것이 돕는 것이며 주 안에 서게 하는 것입니다.

 

유다서 1:20~23절입니다.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이런 모습이 주 안에 서는 것인데 우리는 이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이렇게 서라고 하신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가 세워져야 하는 방향을 알려주시고 이루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환경들은 우리로 하여금 흠이 없이 주 앞에 세우시는 주님의 일하심입니다. 우리를 그 영광의 주님 앞에서 점도 흠도 없이 세우실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 전부터 언약하신 대로 이루어내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하심입니다.

 

이어지는 24~25절입니다. “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