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10:8-11 여섯째 나팔(3) 2021. 3. 7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여섯째 나팔 세 번째입니다. 지난주에 본 내용은 여섯 번째 나팔이 불었을 때 일곱 우레의 소리를 봉인하여 두라는 말을 요한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봉인된 내용이 언제 열립니까?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열립니다(10:7). 일곱째 나팔은 이미 십자가로 불어졌습니다. 그 내용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을 하는 겁니다(11:15). 이 내용이 구약에서 예언되었고 십자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내용을 전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본문 8절입니다.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선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5장을 보면 이 책은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던 두루마리였습니다. 요한은 그 책을 받아서 펴 볼 자가 없어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장로 중 한 사람이 요한에게 알려줍니다.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책을 받아 일곱 인을 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책을 받아서 이루어내시는 분은 일찍 죽임당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책이 천사를 통하여 사도 요한에게 주어집니다.

 

9~10절입니다. 요한이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갖다 먹어버리라고 합니다. 그 책을 먹으면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한이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받아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는 일이 입에서 달지만, 배에서 쓰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구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은 자들도 같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먹는 일은 단맛과 쓴맛을 함께 봅니다.

 

인생의 여러 역경을 겪은 사람이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시면 말씀에 단맛과 쓴맛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인 된 우리 인생이 쓴맛만 가득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하나님의 진노 중에 신속하게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칠십이며 강건하여도 팔십인데 그 일생이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시편 90편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런 인생살이에서 단맛이 있다고 합니다. 그 단맛이 무엇일까요?

 

시편 19:10절입니다.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시편 19편을 보면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하나님의 말씀이 낮과 밤으로 전달되어 세계 끝까지 이른다고 합니다. 이 말씀이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며 그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한다고 합니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가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허물을 깨닫게 하시고 그 허물에서 벗어나게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송이 꿀보다 더 달다고 합니다.

 

시편 119:103절입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편 119편은 시편 중에서 가장 긴 시편인데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중에 주의 말씀은 내 입에 꿀보다 더 달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게 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알아야 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는 고백이 나오는 자들에게 복음이 꿀과 같은 단맛입니다. 그 죄를 죽임당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단번에 영원히 해결하셨다는 복음이 생명이 살아나는 단맛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그 말씀을 받아먹는데 입에서는 달지만, 배에서는 쓰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에스겔서를 봅니다.

 

에스겔 2:8~10절입니다. “8 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9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중에 계시를 받습니다. 포로로 잡혀 와 있는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여도 듣지 않을 것임을 아심에도 말씀을 전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간에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다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두루마리 책의 말씀을 먹이시는데 그 안팎에 애가와 재앙의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전하면 에스겔이 쓴맛을 보게 됩니다.

 

에스겔 3:1~3절입니다. “1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두루마리의 책을 먹는데 입에서 달기가 꿀과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배에서 쓰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2장에서도 재앙의 말을 선포하기에 온갖 고난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입에서 단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는 것은 구원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구원이 은혜로 일어나는 일이기에 달콤한 복음이 됩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 나의 자아를 확대하고 영속화 시키는 구원이 아니라 나의 자아가 부인되고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는 구원이기에 배에서 쓰게 됩니다. 이러한 복음을 미리 전한 자들이 구약의 선지자들입니다.

 

이어지는 4~7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4 그가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어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가 하는 바로 이 말을 그들에게 전하여라. 5 나는 너를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낸다. 어렵고 알기 힘든 외국말을 하는 민족에게 내가 너를 보내는 것이 아니다. 6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알기 힘든 외국어를 사용하는 여러 민족에게 내가 너를 보내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너를 그들에게 보내면, 그들은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 7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너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온 이스라엘 족속은 얼굴에 쇠가죽을 쓴 고집 센 자들이어서, 나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 있는 자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먹은 에스겔이 전하여도 백성들이 듣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었다는 것을 증거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다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돌이키지 않았다는 것은 인간의 죄가 어떠한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방인들은 이 말씀을 들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일차적인 선포의 대상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포로로 잡혀 온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도 듣지 않으니 쓴맛을 보는 겁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전합니다. 받아먹을 때는 달콤하였는데 전하는 과정은 쓴맛을 봅니다. 에스겔은 일시 동안 언어장애인이 되기도 하고, 아내가 죽기도 합니다. 아내가 죽었는데도 울지도 못 하게 합니다. 이런 일들은 이스라엘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이 빼앗길 때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일이 이런 고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오는 자들은 연예인 구경하듯이 오는 겁니다. 쓴맛을 다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8~10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하나님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 책을 예수님이 받아서 다 이루십니다. 그 이루신 내용이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의 말씀을 천사를 통하여 받아먹으니 요한의 입에는 달기가 꿀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복음의 말씀이 배에 들어가서는 쓰게 됩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입에 단 말씀이 어떻게 쓰게 되는지를 보았습니다. 왜 복음이 입에는 단데 배에서는 쓴맛입니까? 그 이유는 복음의 내용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1:15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알려질 복음의 비밀이 바로 이 내용입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을 하는 겁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주인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의 나라를 확장 시키는 일이 인생의 성공인 줄 알고 교회당에 와서도 나의 이름과 나의 나라를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제부터 나가 부인되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쓴맛이 됩니다.

 

교사 단톡에 이런 글이 올라왔습니다. 일전에 어떤 집사님이 저보고 천국 갈 수 있는지 물어보길래 예수님을 믿으니까 갈 수 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때 그 집사님이 그것은 알 수가 없죠! 라고 하는 말에 발끈하여 굉장히 마음이 상했던 적이 있습니다. 요즘에 생각해 보면 천국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내가 예수님이 주인이 아닌 삶을 살고 있다고 확신이 들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하고내일 걱정이 많은 것으로 보아 내가 주인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솔직한 심정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분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이제부터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님을 주님께서 확인시키실 겁니다. 돈을 사랑하면 돈을 잃게 되는 일이 일어날 겁니다. 내일 걱정을 할 수 없게 하실 겁니다. 지금까지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는 옛 자아가 있기에 계속하여 주님의 주인 됨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들이 일어날 겁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로 이미 완성해 놓으시고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입에는 달콤함 복음 같아서 삼켰는데 그 소화되는 과정은 고난입니다.

 

빌립보서 1:29절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 은혜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어 구원 얻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는 삶의 과정은 고난입니다. 복음은 내가 주인 되었던 삶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는 겁니다. 이렇게 산 자는 이제부터 자기가 주인이 아닌 삶을 삽니다. 자기가 주인 된 삶은 자기 욕망을 따라 사는 겁니다. 그 욕망은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만이 아니라 고상하고 우아한 욕망도 있습니다. 이러한 욕망과 탐심을 위한 삶이 배라는 신을 섬기는 겁니다.

 

빌립보서 3:17~19절입니다.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십자가의 원수가 있다는 겁니다. 십자가의 원수는 멸망인데 그들의 신이 배라고 합니다. 배만 섬기고(16:18) 배만 위한다는 것은(1:12). 욕망을 말합니다. 만족이 없이 끊임없이 달라고 하는 것이 배의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온갖 좋은 말로 다 꾸며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 속에는 자기 이름과 자기 자존심을 위한 일이라면 이것이 배라는 욕망의 신을 섬기는 일입니다. 선악과 따 먹은 아담의 모든 후손이 섬기는 신이 배라는 욕망의 신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입에서는 달지만, 배에서 쓰다는 말은 그 복음이 우리의 욕망을 끊어내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끊어지는 것은 죽음이지만 성도는 미리 끊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빌립보서 3:20~21절입니다.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게 되면 우리의 자아가 부인되는 과정이 쓰디쓴 과정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반드시 이 코스를 통과하여야 합니다. 그런 자들은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에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날에는 온전히 그리스도 충만합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구약의 선지자들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복음의 완성은 십자가입니다. 이제 다시 이 완성된 십자가의 복음을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전하여야 합니다. 이 과정도 고난의 과정입니다. 이 복음이 다 증거되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8:20절입니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2)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예수님은 십자가 이전에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10:5~6, 15:21~28). 그런데 십자가로 구약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는 모든 민족을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1: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십자가 이전에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들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로 이스라엘의 구원과 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혈통적 이스라엘이 있지만, 이들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예루살렘과 유대에 먼저 증거되고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증거되는 겁니다. 그 복음이 증거되고 받아들이는 과정들도 고난은 필수코스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입에서는 달지만, 그 배에서 쓰다는 말씀은 복음이 우리의 욕망을 끊어내는 능력이기에 쓴 겁니다. 그러나 배에 쓴 그 복음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복음임을 믿는 자들은,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이 낮은 몸이 그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바꾸어주신다는 말씀을 믿을 뿐 아니라 전하면서 그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