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1~12.   다윗의 왕위     2014. 12. 14

지난주에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9:27절입니다.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안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들의 죄를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밖에서 죽은 자는 죽는 것이 끝이 아니라 반드시 심판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죄가 해결된 자들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기를 바라보게 됩니다. 

다윗도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야했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이었습니다. 그의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전합니다. 그 명령이 모든 사람들이 가는 죽음의 길임을 밝히면서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고 합니다. 2~4절입니다. “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4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마치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듯이 다윗이 솔로몬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이미 왕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의 세상 나라들 왕이라면 왕이 곧 법이며 왕이 신입니다. 직접 신이라고 하지 않아도 왕권은 신으로부터 왔다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이 근세까지 이어집니다. 왕의 권세가 신으로부터 왔기에 국민이나 의회로 인하여 제한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혀 다른 나라입니다. 물론 왕권이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세워지지만 세상의 왕과 전혀 다른 법이 있습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켜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왕을 폐하여 버리십니다. 

신명기 17:14~20절입니다. “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이 말씀이 다윗이 명령하는 내용입니다. 왕이 이러한 여호와의 법에 지배를 받는다면 왕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까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왕입니다. 단지 영원한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섬기고 돌보라고 세운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음으로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이란 자신이 왕이 되고 싶어서 반역을 일으킨 자들은 다 제거가 됩니다. 그것이 이미 압살롬을 통하여 드러나고 아도니야를 통하여서도 보여줍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가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교회의 직분에 적용해 보아도 됩니다. 교회의 직분을 받는 것은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지금 피택 받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만 아직 장로와 권사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들은 이미 주보에 피택 장로, 피택 권사를 표기하기도 합니다. 또 원로장로, 은퇴장로, 협동장로도 주보에 올립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인사로 여깁니다. 또 오래 교회를 다녔지만 권사가 되지 못한 분은 명예 권사패도 줍니다. 성경의 직분들은 그런 체면을 고려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섬기라고 주셨는데 지금 한국의 체면문화로 인하여 이런 모습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교회는 초대장로님들이 만 7년으로 조기 은퇴를 고집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다시 피택을 했습니다. 그리고 몇 분의 장로님들이 오셨지만 평신도로 섬기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직분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삐지는 자들도 혹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경우는 한국의 문화적인 상황에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개혁주의 신학의 보루라고 할 사람이 박형룡과 박윤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형룡 박사는 개혁주의 조직신학을 출간하였고 박윤선 박사는 혼자서 성경 66경 전권을 주석하였습니다. 그런데 박윤선 박사의 딸이 ‘목사의 딸’이라는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이 딸도 서울대 공대를 나와 미국에서 신학을 전공 하여 석 박사를 마쳤습니다. 기독신문의 책 광고가 이렇습니다. ‘고 박윤선 목사의 딸이 이제야 말하는 아버지의 신앙적 오류와 가슴 아픈 가족사! 한국교회의 병폐인 유교적 권위주의, 샤머니즘적 기복주의, 복음을 왜곡한 율법 주의적 요소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고 되어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세 가지 문제를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 책을 주문했습니다. 우리 안에 얼마나 이러한 요소들이 많이 들어있는지 보셔야 합니다. 

본문 3~4절을 다시 봅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면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명하셨다고 합니다.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하나님께서 확실히 이루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을 전하는 다윗 자신은 여호와의 말씀을 이렇게 다 순종하여 왕이 되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목동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택하여서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이러한 조건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왕으로 세워 놓으시고 다윗이 감사해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려고 할 때에 오히려 하나님은 다윗에게 다시 일방적인 언약을 합니다. 

사무엘하 7:8~16절입니다. “8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9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10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7 나단이 이 모든 말씀들과 이 모든 계시대로 다윗에게 말하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입니다. 전혀 다윗에게 어떤 조건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다윗은 자신이 죽어가면서 자기 아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까? 율법을 지키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문자대로 본다면 다윗 자신도 이미 왕위에게 폐위되어야 마땅합니다. 간음하고 살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까? 율법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알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이미 신약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보면서 구약 전체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여 나라가 결국 망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왜 이렇게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까? 

다윗은 무조건적인 언약을 받은 왕입니다. 자신이 왕이 되고 싶어서 왕이 된 자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과 대비하시기 위하여 일방적으로 세우시고 일방적으로 언약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언약을 은혜언약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일방적인 은혜언약입니다. 그러나 모세언약은 상호언약입니다. 언약을 체결할 때에 피로 언약하였기에 언약을 어기면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나 다윗은 모세 언약과 같은 상호조약이 없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언약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1절을 보시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합니다. 그러면 다윗은 왜 솔로몬에게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다윗의 왕위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세워지는 나라임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율법이 없이는 죄를 죄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율법의 규례를 주시면서 죄가 어떠한지 처절하게 보게 하시고서 왜 은혜로 세워지는 나라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다윗 자신도 원한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왕이 된 최고의 정점에서 무슨 짓을 합니까? 간음과 살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막아주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대로 내버려 두셨을까요? 그 이유는 왜 다윗의 왕위가 은혜로 세워져야 하는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피택 받으신 분들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뽑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뽑은 것이지 어떻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머리카락 하나도 헤아리시는 하나님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왜 세우셨을까요? 권세를 부리라고 세운 것이 아닙니다. 섬기라고 세운 것은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왜 세웠을 까요? 세워놓고 자기 죄를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죄를 봄으로 죄가 더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3:13절입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투표하기 전에 안내서에 1절부터 13절의 말씀을 기록하여 두었습니다. 이 말씀을 제대로 읽어보신 분계십니까? 지금 직분을 받은 자들이 그 직분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게 됩니다. 직분을 통하여 믿음의 담력을 얻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다윗과 같은 담력을 얻을 것입니다. 그 담력이란 자기 죄를 보면서 왜 하나님의 은혜여야 하는지를 아는 담대함입니다. 제가 목사가 되어서 알게 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자신만이 아니라 교인들을 보면서도 정말 죄인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믿음에 담대함을 얻습니다. 

로마서 4:6~8절입니다.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다윗이 일한 것이 없습니까? 많습니까?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그의 일한 모든 것을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자신이 행한 것이라고는 죄 뿐이라고 고백합니다. 자기의 어떤 행위로도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간음과 살인을 통하여 처절하게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완전히 바닥에 내려쳐서 처절하게 자신의 죄인 됨을 알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 되게 하시고 마음이 가난하게 하셔서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김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받은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3~4절을 봅니다. “봉독” 이 말씀을 여호와의 명령으로 다윗이 말하는 것은 모세가 전한 율법을 단순하게 반복하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통하여 죄가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알게 된 다윗이 솔로몬에게 명령함을 통하여 다윗의 왕위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지는 왕위임을 알려주는 계시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다윗이 말한 요압과 바르실래의 아들들과 시므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5~9절입니다. “5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그가 그들을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6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7 마땅히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들이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그들이 내게 나왔느니라 8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악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그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므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9 그러나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

이 말씀을 보면 다윗이 은근히 뒤끝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이 가는 그 길로 가는데 왜 꼭 요압을 평안히 죽게 하지 말고 시므이도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도록 하라고 합니까? 세상 사람들도 죽기 전에는 대부분 용서 하고 죽습니다. 그래서 저승길 닦는다고 합니다. 죽어서 심판이 있음을 사람들이 알기에 죽기 전에 어떻게 하든지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사람들 사이에 맺힌 것도 풀고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군 다윗이라는 임금이 뒤끝 작렬하는 것처럼 요압과 시므이를 곱게 죽지 못하게 하고 자기에게 잘해준 바르실래의 아들들은 잘 대우 하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할까요? 다윗 개인의 감정으로 말한 것일까요? 

디모데후서 3:14~16절입니다.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성경이 있어야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사로이 풀면 안 됩니다. 

베드로후서 1:16~21절입니다.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성경은 사사로이 풀면 안 됩니다. 사사로이 푼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푸는 것입니다. 목사가 성경을 자기 유익을 위하여 풀어내는 것이 사사로이 푸는 것입니다. 복음이 제대로 선포되지 않는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설교를 들을 때에 골라서 듣는다고 합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거름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거름망이 여러분에게 없습니까? 복음을 듣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 유익한 것만 챙겨내는 것입니다. 매미채로 매미를 잡듯이 자기 마음의 채를 가지고 자기 필요한 것만 주워 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마음에 샛별이 떠오를 때 까지 주의하라고 하는 것은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39~42절입니다.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유대인들이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부지런히 성경을 연구하였지만 성경이 증거 하는 예수님께 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 영광을 구하기 때문입니다(44). 자기 영광을 구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자는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되는 것입니까? 다윗이 늙어 죽어가면서 뒤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늙어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의 언약의 나라 곧 다윗에게 언약하신 그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나라임을 증거하고 가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고 하는 말씀도 자신이 죽을 때가 된 줄 알고 이 기록된 말씀을 남김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다윗은 마지막 남은 그 힘으로 오직 다윗의 왕위가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지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하여 요압과 시므이의 심판을 말합니다. 왜 요압과 시므이가 심판을 받아야 하는지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기에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음 주에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10~12절입니다. “10 다윗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워 다윗 성에 장사되니 11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 동안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다스렸더라 12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앉으니 그의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다윗이 드디어 죽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갔습니다. 이 다윗은 무엇을 알고 죽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약속을 자기 아들에게 전달하고 죽었습니다. 약속을 받은 자는 죽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합니다. 그 약속이 다윗을 살리고 솔로몬도 살리고 저와 여러분도 살려내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려냄을 당하는 자들은 반드시 무엇을 알게 하시고 살려내십니까? 자기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대신 죽으신 사실을 알게 하시고 살려내십니다. 이것이 다윗의 왕위가 보여주는 계시의 내용입니다. 

누가복음 1:31~33절입니다.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예수님께서 자기 죽음으로 다윗의 영원한 왕위를 이어가십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언약을 따라 왕의 희생으로 주어지는 긍휼과 자비의 나라가 하나님이 약속한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