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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3:21~27 지성이면 감천? 2016. 1. 17

 

오늘 오전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만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세상의 영을 받은 자들의 종교성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것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오후에 보는 이 말씀을 통하여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것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려고 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이런 종교성에 놀라서 도망가는 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여호와께서 붙여주신 전쟁의 마지막 승리의 순간에 적들의 종교성에 놀라서 도망갔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평소에 얼마나 종교성에 찌들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열왕기하 3:16~20절을 다시 봅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것은 북이스라엘의 왕 여로람 때문이 아니라 여호사밧의 얼굴을 보고 기도하여 준다고 하였습니다. 지난주에도 보았지만 여호사밧의 개인의 경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다윗에게 주어졌기에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위하여 우상숭배자의 아들인 여호람을 이기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와 에돔의 연합군이 목이 말라 죽기 직전에 엘리사가 기도하고 여호와의 응답을 받아 개천을 팠습니다. 그랬더니 아침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물만 주실 뿐만 아니라 적들을 어떻게 무너뜨릴지도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견고하고 아름다움 성읍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21~25절입니다. “21 모압의 모든 사람은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서 있더라 22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23 이르되 이는 피라 틀림없이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하고 24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들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25 그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세 개국 연합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모암 왕 메사가 모압 지역의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았다고 합니다. 갑옷 입을 정도는 향토 예비군까지 다 모았습니다. 그 이상이란 민방위대원까지 다 모은 것입니다. 모압은 북 이스라엘 한 나라의 지배를 받다가 힘이 좀 길러져서 배반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 나라가 연합하여 모압을 공격하니 메사 왕은 전 국민 소집령을 내리고 방어하기 위하여 그 경계에 섰습니다. 모압 사람들이 적의 진영을 보니 개천에 물이 가득한 것이 햇볕에 반사되어 피처럼 보입니다. 연합군의 사람과 짐승이 그 물을 마시고 살게 되었는데 모압 사람들에게는 연합군이 서로 싸움으로 피가 그득하게 흘린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모압은 약탈하러 가자고 달려들었습니다. 전쟁하기 위하여 가는 것과 약탈하러 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형세가 됩니다. 그런데 막상 적의 진영에 도착하니 만반의 태세를 가추고 이들을 공격합니다. 모압은 지리멸렬(支離滅裂)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연합군이 모압을 치면서 19절의 말씀대로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곧 적들은 다 섬멸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26~27절입니다. “26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 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27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모압 왕이 아무리 봐도 이길 수 없음을 보고 칼을 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연합군을 돌파하여 도망가려고합니다. 연합군 중에 에돔 왕이 가장 약하니 그곳으로 돌파하여 가려고 해도 이미 전세는 기울어졌기에 이것도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모압 왕 메사는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위에서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으로 전쟁의 기록은 끝입니다. 이 전쟁에서 연합군이 이긴 것입니까? 진 것입니까? 다 이긴 것 같은데 끝에서는 모호합니다. 적이 살아 돌아갔는지 어떤지 언급이 없이 이스라엘에 크게 격노함이 임하였다고 합니다. 격노라는 말이 전에 성경에는 통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는 진노라고 번역됩니다. 격노, 통분, 진노라는 것이 주체가 없이 사용될 때에 주로 하나님의 진노로 사용됩니다(22:20, 대하24:18). 그러면 이 전쟁에서 연합군이 패하여 돌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되어있습니다. 연합군이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전쟁에서 패배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다 이기게 해 주셨는데도 왜 이들은 전쟁에서 패배하여 돌아가게 되었습니까?

 

지난주에 여호람이 바알의 주상을 제거하였습니다. 자기 부모들이 그렇게 열심히 섬긴 바알의 주상을 없앤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호와의 도우심을 바란 것입니다. 그래서 남 유다의 여호사밧을 불렀을 때에 여호사밧이 아합 왕 때에 연합군으로 나갔다가 죽을 뻔 하였지만 다시 여호람의 연합군 제안에 동의한 것은 여호람이 바알의 주상을 없앴으니 하나님도 여호람을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이 여호사밧에게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물이 떨어졌을 때에 엘리사의 기도로 물이 허락되고 전쟁의 승리도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막 바지에 왜 연합군들이 다 각기 고국으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까? 연합군의 종교심보다 모압의 종교심이 특심하였기 때문입니다. 자기 뒤를 이을 왕을 잡아서 자기들의 신에게 인신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보고 질려버린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연합군들은 여호와의 약속이고 뭐고 간에 모압 왕 메사의 종교적 열성에 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목을 지성이면 감천?’ 이라고 했습니다. 연합군의 정성이란 여호람이 바알의 주상 정도 없앴습니다. 그러나 더 큰 우상숭배인 단과 벧엘의 금송아지 숭배는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물이 떨어지자 엘리사에게 물은 것 정도입니다. 그런데 모압 왕 메사는 자기의 아들, 왕위를 이을 왕자를 자기의 신에게 제물로 바쳐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연합군이 물러가고 메사는 살아남았습니다. 메사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자기의 아들을 제물로 바쳤더니 자기를 도와 적들을 이기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당연합니다. 연합군은 그 메사의 지극정성에 놀라서 다 이긴 다 이긴 전쟁인데도 전의를 상실하여 패배한 것입니다. 지난주 메사의 돌에 대하여 잠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내용을 보겠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메사 석비: 메사 석비(또는 메사 비문, Mesha Stele)는 기원전 9세기경 요단강(현재 요르단에 있는) 동쪽에 위치한 작은 왕국인 모압의 왕 메사의 명령으로 제작되었다. 91cm 높이와 60cm 넓이로 이루어진 검은 현무암 석판에 모압 왕 메사의 승리를 기록한 메사 비문은 성서 고고학에 굉장히 중요한 유물이다. 그 이유는 메사 비문에 이스라엘의 왕, 오므리가 언급되기 때문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오므리(왕상 16:21-28-역주)는 주전 9세기경 북이스라엘 왕국을 통치하였다. 메사 비문은 성서 외 비문에서 히브리어 성서의 인물이나 장소가 언급된 첫 번째 경우에 속한다. 메사는 비문에 자신의 주요 업적을 기록하였다. 아마도 그는 모압의 신 그모스(Chemosh) 신전과 연계하여 이 비문을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비문에 언급한 내용에는 메사가 오므리의 손자 여호람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를 격파한 기록이 있는데 히브리어 성서(왕하 3:4-27)에는 약간 다르게 묘사되고 있다. 특히 메사 비문에는 이스라엘에 빼앗긴 모압의 영토가 회복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비문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언급된 유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8백 년 전의 석비가 AD 1868년에 발견된 것입니다. 1868년 여름, 독일인 의료선교사 클라인(F A Klein)은 사해 동편지역을 여행하던 중 '디본'을 지나게 되었다. 디본에서 그는 고대 석비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아랍인의 안내를 받아 그 석비를 보게 되었다. 선교사 클라인은 성경 고고학 자료 중 매우 가치 있는 것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석비를 직접 보았던 최초의 서구인이자, 깨어지지 않은 온전한 상태의 석비를 본 유일한 서구인이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클라인은 주재하고 있던 독일 영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이 소식은 곧 독일로 전달되었다. 당시 서구 열강들은 중동 지역의 역사적 유물을 수집하는 경쟁을 벌이고 있었던 까닭에, 독일이 석비 구입에 큰 관심을 보이자, 디본의 주민들은 엄청난 값을 요구했다. 오랜 흥정 끝에 값이 결정되어 막상 석비를 이동하려고 했을 때 뜻밖의 문제가 생겼다. 디본 주변지역 아랍인들이 자기 마을로 석비가 지나가는 것을 허락지 않은 것이다. 난관에 봉착한 독일 측은 일단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바로 그때 예루살렘에는 프랑스 영사관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하던 청년 클레르몽 갸노(Clermont - Ganneau)라는 프랑스인이 있었는데, 그는 고대어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디본에서 발견된 석비 소식을 듣고 아랍인 친구를 그곳에 보내어 석비의 탁본을 만들었다. 한편 독일 영사는 석비 운반이 어렵게 되자, 그 지역을 관할하던 오토만 터키 총독에게 도움을 청했다. 총독은 군대를 동원해 석비를 가져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디본의 아랍인 주민들은 석비의 가치를 알지 못해 단순히 돈벌이 감으로만 생각했다. 그들은 돈벌이가 될 석비를 총독에게 빼앗기느니 차라리 산산조각으로 만들어 버리기로 했다. 그들은 석비를 장작불 위에 올려놓고 뜨겁게 달구었다. 그리고 달궈진 석비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렇게 해서 소중한 고고학 자료가 되는 석비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석비가 여러 조각으로 파손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독일 측은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인 클레르몽 갸노는 그 조각들을 하나씩 구입해 모으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57개의 조각들을 모으는데 성공, 이것들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겼다. 그가 모은 조각은 전체의 약 3분의2 분량이다. 나머지는 찾지 못해 영원히 미궁 속에 빠져 버렸다. 그러나 이 석비가 파괴되기 직전 탁본을 뜬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프랑스는 57개의 조각을 맞춘 다음 탁본을 근거로 나머지 부분을 복원했다. 지금 이 석비는 루브르 박물관이 귀중하게 소장하고 있으며, 요르단의 몇몇 박물관에 그 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이 석비의 내용 중 일부를 봅니다. “나는 그모스의 아들, 모압의 왕, 디본 사람 메사이다. 내 아버지는 30년 이상 모압을 치리 하였으며, 나는 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나는 카르호에 그모스를 위한 산당을 마련하였다. 내가 이 성소를 세운 것은 그모스가 나를 모든 왕들에게서 구원해주고, 또 나로 하여금 그들을 이기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모스가 그의 땅에 대해 진노를 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왕 오므리가 모압을 오랫동안 지배하였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이었으며, 그도 역시 "내가 모압을 지배하리라"장담하였다. 나의 임기 중에 그가 그처럼 호언했으나 나는 그와 그의 집안을 무찔렀으며, 이스라엘은 영원히 멸망하였다. 전에는 오므리가 마다바(메드바) 땅을 차지하여 그와 그의 아들의 임기 절반인 40년간을 그곳에 머물렀으나, 이제는 그모스가 그 곳에 머물게 되었다.”

 

더 많은 메사의 치적들이 비석에 새겨져 있지만 오늘 본문과 연관된 부분을 보면 오므리와 그 아들 아합의 때를 말하며 그들이 약 40년 동안 지배한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므리와 아합과 여호람까지 연결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메사가 이스라엘을 물리쳤고 이스라엘은 영원히 멸망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왕의 기념비는 역사적인 사실도 담고 있지만 그 왕의 공적을 높이기 위하여 자기의 실패보다 성공한 업적을 더 드러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므리와 그 아들이 약 40년 모압을 지배하였으나 자신이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은 그모스의 도움으로 그렇게 되었기에 그모스를 위한 산당을 마련한 것이라고 합니다.

 

메사가 생각하기를 이스라엘이 모압을 지배하게 된 것은 그모스가 그의 땅에 대하여 진노를 품었기 때문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종교성의 발로입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이 분노함으로 모압이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신을 달래려면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그러한 제물 중에 가장 최고의 제물이 인신제물입니다. 메사는 진멸의 위기에서 자신의 왕위를 이어받을 아들을 제물로 바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본 이스라엘 연합군이 왜 물러간 것입니까? 메사의 종교성에 항복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저 정도의 종교성이 없다는 것을 본인들이 알기에 이제 저들의 신이 우리를 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들 도망 간 것입니다. 메사의 입장에서 보면 누가 도와서 전쟁에 이긴 것이 됩니까?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쳤더니 그모스 신이 도와서 이긴 것이라고 믿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그모스를 위하여 산당도 짓고 이런 비석도 세워서 자신의 치적도 알리고 그모스 신의 영광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세상의 종교성의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의 종교성은 메사의 종교성 보다 못한 것입니다. 이방의 나라들은 자신의 신들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 신들이 우상이지만 그 신들에 대한 충성심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늘 배반합니다. 심지어 이방의 신들을 섬기면서 이방인들이 행하는 인신제사까지 드리는 자들이 이스라엘 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방 나라들의 강함을 보고 부러워한 나머지 이방의 제사를 도입하고 그 신들을 섬김으로 그들도 강하여지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마음 자체가 이미 우상숭배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 보다는 세상의 힘을 원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3절입니다. “9 그러므로 내가 다시 싸우고 너희 자손들과도 싸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 이같은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라 11 어느 나라가 그들의 신들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12 너 하늘아 이 일로 말미암아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여호와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하였고 남 유다만 남은 때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남 유다가 멸망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이방의 신들을 따라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여러 나라에 가보라고 합니다. 어느 나라가 그들의 신들을 신 아닌 것과 바꾼 것이 있느냐고 합니다. 그들의 신들이란 우상임에도 불구하고 충성을 한 것입니다. 메사가 그모스 신을 섬기는데 그들 나라가 이스라엘에 지배를 당한 것은 그모스가 분노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아들을 인신제사로 드릴 정도로 충성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하나님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이방의 신들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이것이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리는 것이며 스스로 웅덩이를 파는 모습입니다.

 

예레미야 19:3~6절을 봅니다. “3 말하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귀가 떨리니 4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곳을 불결하게 하며 이곳에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과 유다 왕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음이며 5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6 그러므로 보라 다시는 이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죽임의 골짜기라 부르는 날이 이를 것이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유다의 백성들도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습니다. 북 이스라엘도 이런 짓을 하다가 멸망하였습니다. 그런데 남 유다도 이런 종교성이 자신의 아들들까지 번제로 드린 것입니다. 어찌 이런 나라가 멸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앞에서 본 대로 메사는 그들이 섬기는 그모스 신에게 자기의 아들을 잡아서 제물로 바치니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기념하여 신전도 짓고 이런 비석도 남긴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도 우상숭배를 잘하고 있는데도 승리가 주어진다면 이것이 바로 심판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우상숭배라는 종교성에 빠져 있으면 안 되기에 그런 자들을 망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망합니다. 우상 숭배하는 이방 나라에 완전히 망하였다가 하나님의 약속대로 돌아오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돌아올 때에 무엇을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호세아 2:14~23절입니다. “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22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종교성이란 메사에게서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안에도 이런 종교성으로 인하여 결국 나라가 망합니다. 그런데 그 망한 자리에서 하나님은 자기 언약을 따라 돌이켜 주십니다. 이것을 호세아와 고멜을 통하여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역할이며 고멜은 이스라엘의 역할입니다. 고멜이 바람이 나서 늘 다른 남편을 찾아 갑니다. 그 남편이 바알입니다. 이것이 종교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을 찾아오시면서 그 입에서 바알의 이름을 제거 하신다고 합니다. 그렇게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장가든다고 합니다. 공의와 정의는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 심판을 통하여 우상을 버리고 하시고 은총과 긍휼을 베푸시는 것을 결혼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을 통하여 여호와가 누구신지 알게 하십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바알 숭배자이며 그모스 숭배자들입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자식들을 바알의 신전에 기꺼이 갖다 바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 대기업에 취직을 하면 축하를 합니다. 대기업이라는 곳이 바알의 신전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이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가 있습니까? 우리의 그 어떤 종교성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긍휼입니다. 그 긍휼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9:21~26절입니다.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사도가 전한 복음의 내용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하여 내십니다. 이 긍휼을 베푸시기 위하여 하나님 자신이 희생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희생이 극명하게 드러나신 곳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확증입니다. 우리가 풍요와 다산을 원하는 우상숭배가 몸에 배인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교회를 찾아오니 교회에서 하는 말이 정성을 바치면 복을 받는다는 말을 합니다. 물론 훨씬 세련되게 말을 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일입니다.

 

미가서 6:6~8절입니다.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번제물 아닙니다. 천천의 숫양이나 강물 같은 기름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맏아들을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몸의 열매도 아닙니다. 죄인의 몸에서 나오는 열매를 어떻게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빈손 들고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