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4:10~16,23 ‘그 이름을 모독하면 2019. 11. 3

 

10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의 어머니가 이스라엘 여인이요 그의 아버지는 애굽 사람인 어떤 사람이 나가서 한 이스라엘 사람과 진영 중에서 싸우다가 11 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므로 무리가 끌고 모세에게로 가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슬로밋이요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더라 12 그들이 그를 가두고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리더니 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4 그 저주한 사람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그것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에 얹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15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담당할 것이요 16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23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니 그들이 그 저주한 자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쳤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오늘 본문 10~23절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과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이 함께 있습니다. 태복수법은 다음 주에 보기로 하고 오늘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는 내용에 대하여서만 살펴보겠습니다. 국가 원수 모독죄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헌법에 국가원수 모독죄는 없고 국가모독죄(國家冒瀆罪)1975325일부터 19881230일까지 대한민국 형법 제1042에 범죄로 규정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유신말기에 만들어져서 군사쿠데타 집권자들까지 국가를 비방하지 못하게 할 법이었는데 대통령을 욕해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부마항쟁으로 인하여 민주화가 되고 국회에서 파기하였기에 지금은 대통령 모독한다고 잡혀가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모독해도 잡혀간 때가 있었는데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본문 10~16절과 결론인 23절을 봅니다. 출애굽한 사람 가운데 어머니가 이스라엘 여인이며 아버지는 애굽 사람이 있었습니다. 애굽 사람의 이름은 없지만 어머니의 이름은 단 지파 디브리의 딸 슬로밋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생시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이 됩니다. 이 유대인 어머니와 애굽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과 진영 중에서 싸우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대명사로 그 이름입니다. 그 이름을 모독한 것에 대하여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지 무리들이 그 사람을 끌고 모세에게 갑니다. 모세도 즉답을 못하고 여호와의 명을 기다린 후에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 모든 사람이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에 얹게 하고 온 회중으로 돌로 치게 합니다. 그 명대로 돌로 쳐 죽였습니다.

 

출애굽기 20:7절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한글 성경의 망령(妄靈)의 뜻은 늙거나 정신이 흐려져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번역은 함부로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는 젊은이입니다. 아버지는 이방인이라고 하더라도 유대인 여자인 어머니가 자녀를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하여야 한 것입니다. 십계명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면 죄가 있다고 하였지만 처벌 기준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여호와 이름을 모독하면 돌로 쳐서 죽이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2:28절입니다.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지니라이스라엘의 재판장과 백성의 지도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모독하고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를 모독하고 저주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에 금합니다. 물론 이 말씀을 가지고 재판장과 지도자들이 잘못 하는데도 따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들이 잘못하면 선지자들이 등장하여 책망을 합니다. 백성들도 등을 돌립니다. 그런데 거짓 지도자들을 따르는 자들이 항상 많았습니다. 이런 율법의 내용을 적용하는 사람이 사도행전 23장에 바울입니다. 바울이 재판을 받는 중에 대제사장인줄 모르고 자기를 치라고 하는 대제사장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이라고 욕을 했습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대제사장을 욕하느냐고 할 때에 자신이 몰랐다고 하면서 이 말씀을 인용해서 말한 것은 대제사장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율법을 모르는 자가 아니란 것입니다.

 

시편 106:32~33절입니다. “32 그들이 또 3)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33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으면 돌로 쳐 죽이라고 여호와의 명령을 전한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함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습니다.

 

출애굽기 17:1~7절입니다. 봉독 이 사건은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의 일입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어서 원망하며 모세를 향하여 돌을 들어 죽이려고 합니다. 이때 모세가 부르짖어 기도하니 여호와께서 나일 강을 치던 막대기로 호렙 산에 있는 반석 거기서 네 앞에 서리라고 합니다. 너는 반석을 치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반석을 치는 모양이 됩니다. 그렇게 반석을 치니 물이 나옵니다. 그곳 이름을 맛사라 므리바라 부르는데 다투었다고 이름을 붙입니다. 그런데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사건이 두 번인데 둘 다 다투었기에 므리바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두 번째는 약 40년 후의 일입니다. 처음과 두 번째의 차이를 보시기 바랍니다.

 

민수기 20:1~13절입니다. 봉독 첫 번째 반석에서 물이 나온 것과 두 번째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차이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반석을 치라고 하였지만 두 번째는 명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반석을 두 번이나 칩니다. 마치 자기들이 물을 내는 것처럼 우리가 물을 내랴 함으로 여호와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긴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모세도 돌에 쳐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배경을 보면 백성들의 원망으로 인하여 쌓였던 분노가 터져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임당하지 않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신명기 3:25~27절입니다.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2)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 너는 비스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모세가 기도하여도 하나님께서 거절하십니다. 반석을 향하여 명하지 않고 두 번이나 쳤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이것이 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한 것이며 이것으로 인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입니까?

 

그 이유를 출애굽기 15:13절을 봅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출애굽을 인도한 모세, 지면에서 가장 온유하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한 모세, 하나님을 가장 잘 아는 모세, 창조의 계시를 받은 모세, 율법을 받아 전한 모세, 하늘의 모형인 성막을 보고 전한 모세, 오실 그리스도를 증거 한 모세,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힘으로는 결코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주시는 사건입니다. 이런 모세가 여호와의 이름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들어가지 못한다면 누가 거룩한 처소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힘으로만 됩니다. 결국 주의 인자와 주의 힘으로 들어가게 하심을 보이시려고 이름이 여호수아, 예수가 들어가게 합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이들이 행한 일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한 일뿐입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하여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하였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갑니다.

 

이사야 48:11절입니다.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나라가 망하였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겠느냐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구원하여 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 우리를 위한 구원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구원입니다.

 

예레미야 14:21절입니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목도한 예레미야 선지자가 어떻게 기도합니까?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하지 말라고 기도합니다.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말아달라고 합니다. 우리는 언약에 신실함이 없어도 주님은 그 언약에 신실하심으로 구하여 달라고 합니다.

 

에스겔 36:20~28절입니다. “20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1)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2)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에스겔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일이라고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일뿐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기 이름으로 언약하셨기에 자기 이름을 위하여 구원하여 내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과 피로 세우시는 새 언약으로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새 언약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새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을 누가 모독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독합니다. 얼마나 모독하였는지 복음서 전체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하니 신성모독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으면서 신성모독이라고 하니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체포와 재판과 매 맞음과 조롱과 십자가의 처형은 어떤 죄수도 그 정도로 조롱과 모독을 당하지 아니한 치욕이었습니다. 그 모독을 당하시면서 십자가를 지신 후에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구약에서 그렇게 말씀하신 여호와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구원하여 내시는 일입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자들은 신성모독 곧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마가복음 3:28~29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귀신 들린 자의 일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이전에는 예수님을 모독하여도, 배신하여도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이후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믿지 않으면 용서가 없습니다. 십자가로 다 이루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십자가로 다 이루신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십니다.

 

히브리서 6:6절입니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므리바 사건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반석이신 그리스도(고전10:4)는 하나님의 아들로 한번 십자가에서 침을 당함으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행위가 모세가 두 번째 반석을 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서는 히브리인들이 복음을 들었는데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려는 것이 대하여 경계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다 이루었는데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이름을 망령되이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6~29절입니다.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진리를 아는 지식 곧 복음을 듣고 믿었는데 다시 유혹하는 자들이 나타나니 율법주의로 돌아가려고 하는 자들에게 경고를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법에서도 두 세 증인으로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무거운지 생각하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은 십자가로 다 이루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